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새로 건설된 도로의 이름은 서광대로로 결정되었다. 말 그대로 서울(한성부)과 광주를 잇는 대로라는 뜻으로 총 연장은 약 800리(320km)에 달하는 대공사였다. 최단 거리는 그보다 짧지만 나중에 건설될 다른 도로들과 연계성을 위해서 약간 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구간은 지금의 경부고속도로 서울-대전구간과 호남고속도로를 합친 것과 비슷했다.
건설비용은 1리 당 1만 냥씩 총 800만 냥으로 책정했는데 그나마 인부의 상당수가 의식주를 해결시켜주기만 하면 되는 죄수들이었고 대부분 평지인데다가 이미 도로가 있는 곳도 있어서 비용이 적게 든 것이다. 거기다 배다리의 경우는 퇴역한 맹선들을 개조해서 이용하면 되었기 때문에 그 역시 많은 돈이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서 400만 냥의 예비비를 더 책정하여 총 1200만 냥, 은으로 따지면 300만 냥의 자금을 동원하는 것으로 결정하였고 이번에 국고에 흡수된 예산을 총동원하여 충당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정조시대 수원화성 건설비용 약 88만 냥의 13배가 넘었을 정도로 개국 이래 최대공사였다.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너무 큰 공사라서 신료들의 우려가 컸다. 물론 평시라면 신료들뿐만 아니라 각 계층의 반발이 있을 만한 일이었고 너무 엄청난 공사비로 인해서 비공식적인 조선 최고의 부자 균도 엄두를 내기 어려운 사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반란덕분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이보게. 남명. 잠시 나랑 이야기 좀 하세."
"퇴계, 왜 그러나?"
"아까전의 조회에서 말일세. 자꾸 걸리는 점이 있어서 말이지."
궁밖에 있는 호조로 향하던 조식에게 이황이 말을 걸어왔다. 그래서 두 사람은 궁을 나와서 예조로 향했다. 호조, 예조 같은 중앙관청들은 경복궁 바로 앞쪽에 있으며 그래서 경복궁 앞을 육조거리라고 불렀다. 예조관청으로 들어간 이황은 조식에게 하나의 문서를 꺼내주었다. 조식은 아무 생각 없이 그 문서를 읽어보다가 얼굴빛이 변했다.
"이것은?"
"그것은 명나라에 살고 있는 조선인이 우리 예조에 보내준 정보이네. 아직 자세한 정황은 알 수는 없지만 명군이 조선방면으로 증강배치되는 것은 사실인 듯 하고 명목상 병력은 20만 대군일세."
"명군이 왜 우리 조선을 경계한다는 말인가? 아니 이정도 병력이면 조선 내부로 진공도 가능할 듯한데, 이렇게 많은 병력을 동원한다니……."
"내가 생각하기로는 둘 중에 하나이네. 반란군이 명나라 상층부에 손을 써서 출병을 요청했거나 아니면 경복궁의 주인께서 장난을 쳐 둔 일이겠지. 내가 생각하기로는 둘 다 가능성이 있네."
"전하께서?"
이황은 밖에 있던 하인에게 명해서 차를 내오게 했다. 그리고 어리둥절한 표정의 조식에게 한잔을 내주고 자신도 조용히 차를 마셨다. 이황은 차를 한잔 다 마신 후에 다시 말문을 열어 자신의 말을 친우에게 설명했다.
"반란군 괴수 김진기는 나름대로 유능한 인물이네. 그러니 명나라를 움직여 관군을 남북으로 압박하는 작전을 구사할만한 인물이지. 특히 김진기의 두 번째 계획은 오늘 귀가 아프도록 들었을 테니 그것과 이번 일이 얼마나 부합되는 지는 자네도 알겠지?"
"겨울이 되어 강이 얼어붙으면 반란군은 한강을, 명나라 군대는 압록강을 건너서 진격해온다면 소수의 중앙군만으로는 불가능하겠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겠지. 하지만 전하께서 이런 일을 유도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전하께서 아까 전 조회 때 좌의정 대감에게 천천히 설명을 하신 것들이 있지? 그것들을 기억하는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좌의정대감이 전하께 그렇게 꼼꼼히 물어볼 이유도 없고 전하께서 좌의정 대감에게 그렇게 자세히 설명할 이유도 없으니 말이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내 생각도 그러하네. 전하의 큰 형인 하원군의 부인이 좌의정 대감의 여식이니 전하와 좌의정 대감은 인척관계이지. 거기다가 전하께서 입궁하시기 전에 하원군 군부인과 사이가 좋은 편이었으니 그런 이야기를 나눌 이유가 없지. 그런데 그것이 왜 그렇다는 말인가?"
균이 아직 인하궁에 살고 있을 때 형수 홍씨와 상당히 잘 지냈다. 덕분에 홍섬, 홍담 형제가 덕을 많이 보았다는 소리가 있기도 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균은 훈구파의 영수인 홍담을 더 총애하기는 했지만 홍섬과도 사이가 좋은 편이다. 즉 홍섬이 그렇게 조식에게 망신을 당하면서까지 나설 이유가 적었다.
"문제는 바로 전하와 좌의정 대감의 대화에는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이네. 내가 생각하기로 전하의 의중은 우리 조선도 명나라의 일조편법처럼 조세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중앙에서 지방을 손바닥 보듯이 할 수 있도록 지방세력을 철저히 통제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으로 보이네.
만일 내 생각이 맞는다면 좌의정대감의 발언은 전하께서 신료들에게 그런 설명을 해주기 위한 발언이었을 뿐이겠지. 나중에 갑자기 설명을 하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돌려서 자꾸 들려주는 편이 무의식적으로 아무래도 신료들의 반대가 덜할 테니까 말이야. 거기다 서로 사전에 입을 맞추었다면 이번 일에 대한 신료들의 반론을 효과적으로 묶어둘 수 있다는 장점도 고려된 것이겠고……."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일들은 왕권의 강화를 불러오는 일이니 상당수 신료들의 거센 반발을 받을 걸세. 물론 나중에도 지금처럼 정국이 전하께 유리하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비상시국을 너무 길게 끄는 것은 전하께 정치적으로 부담이 되지. 하지만 그런 일을 추진할 무렵에 명나라와 분쟁을 발생한다면 전하의 입지는 어떻게 되겠나?"
물론 일단은 강화된다. 외세와의 분쟁이 발생하면 내부의 갈등을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오랜 내전을 치른 국가들은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서 외국과의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명나라와의 분쟁이 일어난다면 균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전하께 유리할 가능성이 있기는 하네만, 너무 위험하네. 그런 상황에서 잘못 역풍이 일어난다면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있어. 주도면밀하신 전하께서 그런 일을 하시겠는가?"
"하지만 만일 이 상황에서 반란이 한 번 더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반란이 연달아서 일어나면 당연히 외부와의 분쟁은 필연적……. 퇴계. 그것이 무슨 일인가?"
"그러니까, 두 차례의 내전으로 인해 국내의 갈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전하께서 정치적인 주도권을 잡아 새로운 개혁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갈등은 꼭 필요한 것이라는 말일세. 그것이 이렇게 현실로 들어난 것이고……."
"그렇다면 전하께서 명군의 출동을 고의적으로 유도하셨다는 말인가?
조식의 물음에 이황은 침묵으로 답했다. 침묵은 긍정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조식은 이황이 명나라 군대를 불러들인 배후로 균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식은 동의할 수 없었다. 그런 일련의 행위들은 백성들의 고통을 필요로 한다. 혹여나 명나라와 전면전이라도 벌어진다면 백성들은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균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백성들을 위해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도리보다도 사람을 살리는 도리가 중요하다고 한 인물이 바로 균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용주의적인 남명학파의 학풍에도 부합했고 조식이 균과 손을 잡고 있는 중요한 이유였다. 조식은 불안했지만 애써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아직 반란이 일어난 곳은 없지 않는가? 내가 보기에는 자네가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듯하네."
"중앙군 5개 사단 전체에 출정대기명령이 하달됐네."
"……."
이황의 말을 들은 조식은 아연 질색했다. 이황의 말대로 반란이 한 번 더 일어난다면 조선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것을 균이
해결하는 방법은 내부적으로는 반대세력을 포옹하고 외부적으로는 분쟁을 일으켜 자신을 중심으로 국론을 결집시키는 것이고
이 이상의 해결책은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차 잘 마셨네."
"조심해서 가게나."
조식은 비틀거리면서 예조를 빠져나왔다. 이황이 무슨 뜻으로 그에게 이런 사실을 가르쳐주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균이 무슨 의도로 이런 일을 꾸몄는지 그리고 그것으로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고통을 받게 될 것인지가 더 마음에 걸렸다.
광녕성. 이곳은 명나라 요동방면군의 사실상 총사령부가 위치한 곳이다. 명목상의 명나라 요동방면군 사령관은 요동도지휘사지만 그는 군정을 책임지는 장관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그 밑의 총병관이 실질적으로 군대를 지휘통솔했다. 그리고 이 무렵 요동총병관은 이성량이라는 장수였다.
그는 원래 조선 사람으로 평안도 위원에 살다가 죄를 짓고 명나라로 도망가서 군대에 입대하여 지금의 지휘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지원군을 이끌고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친아버지가 되는 사람이니 조선과는 상당히 관련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무척 화를 내고 있었다.
"북경의 머저리들은 무슨 정신으로 군대를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리는 거야!"
"아버님. 언성을 낮추시지요. 누구 듣겠습니다."
"너도 들어서 알고 있지 않느냐? 요동에 있는 군대가 얼마나 된다고 조선방면에 군대를 배치하라는 것인지……."
"하지만 북경에서 지원군을 보내주겠다는 통지가 있었지 않사옵니까?"
"농민들을 징병하여 머릿수만 채운 그 10만의 지원군 말이냐? 그런 것을 데려다가 무엇에 쓴다는 말이냐? 강변에서 농사나 짓게 해서 군량미를 모으면 또 모를까?"
이성량은 아들 이여송의 말에도 기분이 나쁜 듯 투덜거렸다. 이성량이 지휘하는 요동군은 25개 위(명나라의 부대단위) 14만에 달하는 대병력이다. 하지만 명나라가 완연한 쇠퇴기를 맞고 있는 요즘에는 그 인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해서 절반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거기에 잡다한 병력들까지 모아도 요동군은 10만을 넘지 못한다.
이런 요동군으로 만주전역의 여진족을 통제하고 명나라의 동북방면을 지켜야 하는 이성량은 병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대비책에 부심하고 있었는데 북경에서 어이가 없는 명령이 내려왔다. 조선의 사정이 좋지 않으니 유사시 조선왕을 지원하기 위해서 몇 만의 대병력을 압록강에 배치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런 전문을 받아본 이성량은 명나라 황제 목종 융경제가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이야 조선왕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니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문제는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명나라 군대의 질이 너무 낮아서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백성들은 왜군보다도 명나라 군대를 더 두려워했다. 그 정도로 민폐가 심했다는 소리이다.
그런 군대를 국경에 배치한다는 것은 국경분쟁을 일으키겠다는 소리와 같았다. 안 그래도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인 압록강 일대에서는 함부로 국경을 넘어 농사를 짓는 명나라 사람들 때문에 분쟁이 자주 일어나고 있었는데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다가는 양국의 군대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성량이 상당히 곤란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요동군과 지원군을 합치면 20만 대군입니다. 그 정도라면 조선과의 국경에 배치할 병력은 충분히 나오지 않겠습니까?"
"배치할 병력이야 충분하다. 요동군은 여진족을 막아야 하니 이동시킬 수 없지만 지원군을 모두 조선과의 국경을 배치하면 되는 문제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잡병들이 압록강에 주둔하면 필연적으로 조선을 약탈할 것이고 양국간에 국지적이지만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점을 걱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그 상황이 좋지 않은데다가 우리 명제국의 속국에 불과합니다. 보나마자 조선측에서 숙이고 나올 것이니 별 문제야 있겠습니까?"
"물론 조선이 먼저 자극을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북경에서 이렇게 병력을 파견했다는 것은 이번 일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소리이다. 너도 조정이 장거정과 고공 두 대학사의 파벌로 나누어 졌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예. 아버님."
"내가 아는 바로는 대학사 장거정과 조선왕은 무척 사이가 좋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에 드나드는 사신들이 조선왕에게 감히 뇌물을 요구하지 못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 조선왕을 돕기 위한 군대 파견은 대학사 고공이 황제께 주청을 올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일이 과연 조선왕을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이느냐?"
이성량은 정략에 상당히 뛰어난 장수였다. 그는 그 뛰어난 정략을 이용하여 여진족 각 부족간의 세력균형을 맞추면서 수십 년간이나 만주의 여진족을 제어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번 일의 본질을 잘 알고 있었고 경험이 부족한 자신의 아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잡병을 배치하여 조선을 자극하려는 수작이 아니옵니까?"
"그렇다. 고공의 생각으로는 두 나라의 분쟁을 일으키고 싶은 것이야. 그래서 장거정을 실각시키고 자신이 정권을 장악하려는 것이지. 물론 장거정도 어느 정도 생각이 있었겠지만 군대의 출정을 허락한 것을 보면 그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 까딱하면 조선과 명이 대규모 전투를 벌일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두 나라 사이의 전장은 잘되면 조선북부, 못되면 이곳 요동 일대가 아니겠습니까? 결국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조선과 우리 가문일 것입니다."
"그렇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초조해 하는 것이다. 조선은 우리 가문이 나온 곳이고 우리 요동군의 후방을 지켜주는 든든한 우방이다. 너도 삼국지연의를 읽어서 알겠지만 우리 요동의 입장은 관우가 지키던 형주와 같은 상황이다.
눈앞에 강대한 여진족이 있는데 후방에 있는 든든한 동맹을 내친다니 이것은 조선과 우리 가문, 나가서 명나라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니다. 단지 고공이 정권을 잡기 위해서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려는 수작일 뿐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예. 아버님. 소자의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아들 이여송에게 이번 일의 본질을 설명한 이성량은 편지를 하나 내주었다.
"이것은 내가 주는 밀서이다. 이것을 네가 책임지고 조선왕에게 직접 전하여 우리의 진심을 보여주어라. 나는 따로 북경의 장거정과 연락을 취하겠다."
"예. 아버님. 소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