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며칠 후. 박규남이 무척 기쁜 표정을 지은 채 균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 얼굴만큼이나 좋은 소식을 균에게 전했다.
"전하. 송민진이 예상대로 소신들의 조사에 협조적으로 응하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송상과 송민진의 집을 뒤져도 알 수 없던 정보들이 속속 입수되고 있사오니 심려를 놓으시옵소서."
"휴~. 정말 다행이군. 그럼 더 이상 후방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그러하옵니다. 전하. 이제 후방을 걱정할 필요가 없이 전면의 반란군에 총력을 집중할 수 있으니 승산이 더욱 높아졌사옵니다. 또한 아직 시간이 없어서 아직 많은 정보를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제 부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조만간에 반란군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옵니다."
"수고가 많겠지만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겠지만 그대가 입수한 정보 하나가 수많은 군사들의 목숨을 살린다는 것을 명심하라."
"예. 전하."
박규남의 보고를 받은 균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균이 송민진을 처벌하지 않고 특별대우를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반란군의 정확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송상의 보부상단들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를 고르라면 바로 송민진을 따르는 보부상들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보부상단은 상당한 능력을 가진 집단이다. 그들은 정보력 면에서는 균의 정보조직보다는 전문적이지 않지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막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며 그들의 입을 통해서 헛소문을 유포시킬 수도 있다. 군사력 면에서도 균의 군대에 비해서 전투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전국 방방곡곡의 지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유사시 군자금이 될 자금도 가지고 있다.
거기다 행상을 통해 다져진 엄청난 체력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수십 명 단위의 소규모 단위로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그들 내부의 조직력은 군대의 그것 이상이었다. 덕분에 조선왕조는 건국 초기부터 이들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고 유사시 병사로 동원했다. 조선건국 당시는 물론이고 임진왜란 때도 보부상들이 참가했으며 조선 말기에도 보부상들은 일종의 용병으로 관군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보부상들이 균에게 대항하여 전국 곳곳에서 유격전을 벌인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거기다 아직 강력한 반란군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보부상유격대가 토벌군의 보급로를 막는다면 균도 무척 난감하다. 그래서 균은 송민진과 송상을 회유하고 포옹하려는 의도로 어제의 만남을 가졌던 것이다.
원래 적은 적을수록 자신에게 유리해지는 법이다. 그들을 모두 적으로 돌려서 위험을 자초하는 것보다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훨씬 안전하고 더 이득이라고 균은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나 보부상들이라면 필히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송민진의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현 시간부로 개성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을 철수시키고 그들의 행동을 불문에 붙여라. 만일 송민진이 과인을 돕겠다는 뜻을 밝힌다면 풀어주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를 믿는 것은 아직 위험하지 않겠사옵니까?"
"아니다. 송상에는 아직 많은 첩자가 있고 송민진의 조카딸 안지연의 신변만 확보해도 송민진이 함부로 행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송민진을 내세워 보부상들의 움직임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 전하.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반란군에 대한 정보가 입수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그대는 최선을 다해서 반란군에 대한 상세정보를 알아내도록 하라. 그리고 각 부대의 주요 지휘관들을 소집하도록."
송민진을 통해서 함경도 이동영군의 반란을 알아낸 균은 즉시 출동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개성과 충청도에 파견되어 있던 병력을 한성부로 이동시키고 주요지휘관들을 모두 한자리에 모아서 북한산성에서 작전회의를 열었다. 덕분에 북한산성에 모인 장수들만 이십 명에 이르렀다.
그들을 살펴보면 먼저 위장급 장수들로는 곽흘, 남언순, 유태수, 오운, 변양좌, 장의현이 참석했고 부장급 이하의 장수들로는 남창완, 정병은, 이상헌, 박승진, 이진건, 이강민, 김경섭 등이 참석했다. 대체로 낮은 장수들은 비금도 경비대 출신이 많았고 높은 장수들은 무과급제자 출신이 많아서 잘 대비가 되었다.
여기에 선전관 이순신과 호위대장 임꺽정, 호위부대장 곽재우, 정보부장 박규남까지 모두 참석하여 친위군과 중앙군의 주요 지휘관들은 모두 참석한 셈이었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균이 나타나 자리에 앉자 박규남이 나서서 반란군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면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먼저 반란군의 주요 근거지는 함경도 갑산입니다. 그곳은 삼수갑산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교통이 매우 불편한 지역이옵니다. 덕분에 제대로 된 정보를 입수하지 못한 점, 정보책임자로써 송구스러울 따름이옵니다. 그럼 현재 입수된 정보를 바탕으로 반란군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말씀드리겠사옵니다.
반란군의 수괴는 운총만호 이동영이라는 자이옵니다. 그는 영흥이씨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환조대왕(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의 서자인 이원계의 후손이옵니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갑산일대에서 세력을 떨쳐온 대토호이며 백 년 전 이시애의 난에 가담하지 않고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세력가중에 하나입니다."
"이원계의 후손이라? 그렇다면 이동영이 반란을 일으킨 이유가 족보문제 때문인가?"
"소신의 생각도 그러하옵니다. 태종대왕 연간에 왕실의 족보가 개편된 적이 있는데 이때 이원계의 자손들은 왕실족보에서 삭제가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자신들을 영흥 이씨라고 속이고 숨어산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족보문제가 맞군."
태종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직후는 조선의 혼란기였다. 그래서 태종은 왕위계승자를 축소하여 왕권을 안정시키고 왕위를 자신의 자손이 독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왕족들을 왕실족보에서 삭제하는 작업을 취했다. 그 결과 태종 12년 왕실족보가 정리되면서 이성계의 이복형인 이원계, 이화가 서자취급을 받아서 왕실족보에서 삭제되었다.
심지어는 친형인 조선 2대 왕 정종의 자식도 서자라는 이유로 왕실족보에서 삭제했다. 이원계, 이화들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어느 정도 일조를 한 인물들이다. 특히 이원계의 경우는 이성계와 함께 군사를 지휘한 공이 있었던 인물이었는데도 태종은 그들를 족보에서 삭제하여 조선의 왕족이라는 명예를 빼앗았다.
조선시대에 족보라는 것은 의미는 굉장한 것이다. 앞서 균이 이룬 종계개정의 예를 보면 알겠지만 조선왕실은 종계개정을 이루기 위해 200년의 시간동안 명나라에 공을 들였다. 균이야 그런데 별로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실제의 선조는 종계개정을 이루고 나서 그 일과 관련 있는 자들을 공신으로 책봉했고 신하들은 선조에게 존호를 올려 그 업적을 기렸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많이 퇴색이 되었지만 유난히 핏줄을 중시하던 옛날에는 개인보다도 가문을 먼저 따졌다. 그런 사회풍토 속에서 왕족의 자리에서 밀려난 것은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한 셈이었다. 따라서 그런 자들이 조선왕실에 불만을 가질 여지는 충분했고 후손 중에 야심과 능력을 갖춘 자가 나온다면 이번 일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었다.
'끙~! 나는 지지리 운도 없지. 어째서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이 한 일 덕분에 내가 피를 봐야한다니…….'
균도 따지고 보면 이번 반란으로 이익을 많이 보지만 상당한 피해를 본 것도 있다. 균이 일부러 정세를 불안하게 했기는 하지만 원래 계획으로는 김진기의 반란 하나면 모든 것이 충분했다. 그러나 난데없이 선대의 원한을 갚겠다는 이동영과 송민진이 나타나서 일이 복잡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균 자신이 왕족이라는 이유로 왕위에 오른 이상 당연히 책임져야 할 일이기도 했다. 모든 것에는 권리와 의무가 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균은 한숨을 내쉬고 손짓을 보내 박규남의 설명을 더 듣기로 했다.
"반란군의 규모는 정확히 입수된 바가 없사옵니다. 물론 대략적인 정보는 있기는 하지만 반란군의 특성상 정세가 변화하면 병력의 규모도 바뀌기 때문에 신뢰할 수가 없사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동영이 여진족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라서 반란군의 전력은 막강합니다."
"여진족이? 이런 변고가 있나?"
"그러게 말입니다. 영감. 반란군이야 좀 많아도 상관이 없지만 여진족이라면 상대하기 벅차지 않습니까?"
"그렇소. 우리 조선의 기병이 여진족 기병을 막으려면 최소 2배의 전력은 필요하고 우세를 점하려면 3배는 필요할 것이오. 여진족 기병이 많다면 그만큼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이번 반란에 여진족이 참가하고 있다는 소리에 대부분의 장수들 특히 위장 급의 높은 장수들이 긴장했다. 젊은 장수들이야 비금도 출신이라서 여진족과 직접 겨루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위장들은 젊은 시절 여진족과 싸운 적이 많았고 아직도 몸에 흉터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그렇기에 여진족이 얼마나 뛰어난 전사들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저렇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란스럽던 회의장을 조용하게 만든 인물은 바로 균이었다. 균은 심기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크게 하여 장수들을 진정시키고 박규남에게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일단 정확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정보를 취합하여 반란군의 대략적인 병력규모를 산출해보았사옵니다. 일단 반란군 자체병력의 경우 이시애의 난을 참조한 결과 최소 1만 5천에서 최대 3만이라는 결론을 얻었사옵니다."
"아니 그 정도면 최소치와 최대치가 거의 두 배 차이가 아닌가?"
"영감.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번 온양전투의 전모가 함경도에 어떻게 알려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토벌군이 강하다고 소문났다면 반란군은 1만 5천에 근접하겠지만 김진기의 반군이 너무 약했다고 소문난다면 반란군은 3만에 근접할 것입니다."
박규남은 위장 변양좌의 말에 가볍게 응수했다. 그의 말대로 다른 지역에서는 중앙군의 신무기인 비금도 소총의 위력이 과장되어 퍼진 반면 함경도와 평안도 일대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의 북방군은 여진족을 막는 부대였기에 화약무기를 많이 사용한 경험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신형 화약무기인 비금도 소총에 대한 두려움이 적었다. 총소리에 얼어버리는 충청도 일대의 병사들과는 격이 달랐다.
"그럼 계속 하겠사옵니다 여진족의 경우는 더욱 판단하기 어렵사옵니다. 각 부족마다 그 세력이 달라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을 추산하기 힘든데다가 또 반란군에 얼마나 지원군을 보낼지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소신의 생각으로는 3천여 명이 한계로 사료되옵니다."
"3천명이 한계라?"
"예. 전하. 소신은 원래 반란군이 여진족을 움직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왔사옵니다. 이미 조선과 여진족의 사이가 틀어진 것도 170년에 이르고 반란군 수괴 이동영은 그 옛날 이징옥처럼 여진족을 움직일 만큼 뛰어난 인물도 아닙니다.
따라서 이동영이 여진족을 움직이는 것은 물자를 공급해주고 병력을 사오는 즉 용병의 형태만 가능하다고 보았고 실제 이번에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정보에 따르면 그 상인이 이동영에게 전해준 재물을 상당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많은 여진족을 움직일 수는 없사옵니다.
거기다 이동영 자신이 가진 재물은 반란군의 본대를 만드는데 써야하니 여진족을 움직인다고 해도 고작해야 3천이 한계라고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물론 이동영의 재물이 예상보다 많다면 모르겠지만 반란군이 척박한 함경도를 근거지로 하는 이상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사옵니다."
"하긴 그렇겠지. 태조대왕의 유산이 없는 이상은 말이야."
균의 말에 임꺽정, 박규남, 곽재우 등 일부의 참석자들은 조용한 소리로 웃거나 미소를 지었다. 그들은 지난번 균이 수미법을 시행하면서 언급한 이성계의 유산이 사실은 비금도 상단의 수익금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성계의 유산이 실존하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이 있다면 균이 가만히 두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반란군은 1만 8천명에서 최대 3만 3천여 명으로 추산되옵니다. 다행히 북방군의 대부분은 전하를 지지하는데다가 여진족과 대치중이라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반란군의 규모는 작고 그 주력은 북방군과 여진족보다는 농민군이 될 듯합니다."
"그것은 다행이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북방군을 마음껏 동원할 수 있다면 반란을 손쉽게 진압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하오나 전하. 박 선전관의 말처럼 우리 조선의 최정예인 북방군을 이번 일로 소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 해도 큰 이득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그 대신 우리 중앙군의 피해가 클 것을 생각하니 과인의 마음이 망극한 것이오."
"군사들을 아끼시는 전하의 마음이 망극하심은 소장들도 잘 알고 있사오나 전쟁이란 손실이 나는 것이고 군사들이란 싸우라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소. 내금위장."
곽흘은 균에게 그렇게 말했지만 그 역시 내심 불안했다. 중앙군은 분명히 훈련이 잘 된 강한 군대였다. 하지만 실전경험이라고
는 어설픈 농민군들을 상대로 한번 소탕전을 벌인 정도가 고작이다. 균의 말대로 북방군을 움직여 중앙군과 같이 운용한다면 가
장 좋겠지만 제대로 된 실전경험이 없는 병사들로 여진족 기병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은 무척 곤란한 일이었다.
"반란군의 예상진격로는 모두 다 아실 터이니 따로 설명하지 않겠사옵니다. 더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으신 분은 저에게 직접 질문을 하시거나 아니면 사전에 나누어드린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규남의 말처럼 반란군의 예상진격로는 거의 뻔했다. 함경도는 산이 많은 지역으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곳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함경산맥이 존재하여 내륙지방과 해안지방이 완전히 나누어지는 지형이고 해안지방의 중요도가 높았다. 따라서 반란 초기에 반란군의 진격은 해안가의 고을들을 접수하여 세력을 키우는데 있을 것이다.
거기다 반란군의 기본적인 목적은 중앙정부를 전복시키는 것에 있다. 따라서 반란군은 나중에는 한성부로 진격을 하게 되는데 백두대간이 있어서 그 역시 진격로가 한정된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함남평야(함흥에서 원산까지의 평야지대)를 지나야지만 한성부로 공격이 가능한 것이다.
물론 우회할 수도 있지만 함남평야는 함경도내에서 중요한 곡창이라서 반란군이 장악할 필요가 있고 거기를 비우고 있다가는 토벌군이 함남평야를 통해 진격해 와서 본거지를 함락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반란군은 최소한 갑산에서 함남평야까지는 해안평야지대를 지나서 진군해 올 것이 거의 확실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이오. 주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내일까지 작전계획을 준비하시오. 내일은 그것들을 의논하는 것으로 회의를 계속하도록 하겠소."
"예.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