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8화 (158/228)

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즉위 3년 11월 16일. 드디어 이동영은 근거지인 갑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이동영이 처음에 동원할 수 있었던 병력은 여진족 1만 2천명, 그리고 자기 휘하의 정규군 3천과 자신에게 동조한 토호들이 거느린 군사 3천명, 총 1만 8천 명에 이르렀다. 반란초기의 동원병력으로는 상당히 많았지만 그 주력이 여진족이었기 때문에 실속은 없는 편이었다.

이동영의 원래 계획대로라면 자신과 자신에 동조하는 자들이 합쳐 1만의 군사를 모으는 것이 목표였는데 실제로는 겨우 6천

명이었다. 거기다 토호들이 거느리고 온 군사 3천여 명은 모두 정규군이 아니었다. 덕분에 정규군만 1만을 동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던 이동영의 계획은 첫 단추부터 어긋난 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동영과 그 부장들은 물론이고 돈을 받고 참전한 여진족들까지 불안해했다. 원래 이동영이 장담한 병력이 3만이

었는데 이래서는 2만도 안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반면 남쪽의 중앙정부는 빠르게 충청도의 반란을 진압하고 일사천리로 뒷수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반란군의 사기는 높지 못했다.

"이장군. 예상보다 장군의 군사가 적어보이는 구려. 그 정도의 병력으로 이번 일에 성공할 수 있겠소?"

"하하하. 물론 현재 병력은 6천에 불과하지만 저 남쪽의 바닷가에는 우리를 따르는 많은 군사들과 풍부한 물자가 있소. 그들이 합세한다면 충분한 수의 대군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마시오."

"하지만 듣자하니 조선조정은 단숨에 남부의 반란을 진압했다고 하오. 그러면 조선은 마음 놓고 대병력을 동원할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수적으로 너무 열세한 것이 아니오?"

"그런 오합지졸들이 많아봐야 여진기병의 돌격이면 알아서 도망갈 수준에 불과하오. 거기다 우리가 함경도를 제패할 무렵에는 겨울이 되어 관군의 움직임에 제약이 생길 것이고 그사이 세력을 길러 대항한다면 별 문제가 없소이다."

이동영은 불안해하는 여진족들을 달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돈을 주고 그들의 힘을 빌린 것까지는 좋았지만 언제든 배신하고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여진족이었다. 그래서 이동영은 그들의 마음을 얻는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었지만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하지만 이렇게 계획이 어긋난데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은 바로 이동영이었다.

여진족이야 제 고향인 만주로 돌아가면 되지만 이동영은 모든 것을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동영은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은 것도 걱정인데 여진족까지 불안한 반응을 보이자 이중고에 시달리는 처지였다. 물론 겉으로는 의연하게 행동했지만 심복인 부장 조흥수 같은 이들의 눈은 속일 수 없었다.

"나으리. 너무 심려 마십시오. 우리가 군사를 모은 곳은 함경도 내륙지방에 불과합니다. 해안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우리를 따르는 자들도 많을 것이고 우리가 승리를 거둔다면 우리 병사가 되겠다고 찾아오는 자들은 셀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결국에는 저 여진족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을 것입니다."

"휴~! 그렇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런 자들이 많아봐야 머릿수만 채우는 효과가 있을 뿐이고 우리가 한번 패하기라도 하면 다들 도망갈 자들이 아닌가? 실속이 없네. 차라리 저번에 군대를 일으켜 북방군을 동원할 수 있었다면 정말 해 볼만 했을 것인데……. 한번 기회를 놓치고 나니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 군."

"하지만 그 정도는 이미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진다면 이 세상에 왕이 아닌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태조대왕도 일개 북방의 장수로 시작하여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선을 건국하셨습니다. 그분에 비한다면 나으리는 오히려 유리한 상황이십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이제 자네도 그만 가봐야지?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부디 여진족들을 잘 다스려주게."

"……나으리. 그럼 소장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게."

반란은 일종의 도박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거대한 규모의 도박이다. 이동영은 자신이 가진 패를 뒤집어보고 나서야 자신이 쪽박을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이나 공을 들였는데도 이동영은 자신의 근거지와 그 일대에서 고작 6천의 군사를 모았다.

이런 상황이니 자신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다른 지역이라면 호응하는 세력은 그보다 더 적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동영은 계획대로 군대를 움직였다. 일이 뜻대로 안 됐다고 실망할 시간이 있다면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16일 봉기한 이동영의 군대는 공식명칭으로는 반란군이었지만 스스로는 화령군이라고 칭했다. 화령은 조선태조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 영흥의 다른 지명으로 일설에 따르면 이성계가 명나라에 조선과 화령 두 개의 국명을 보내 명나라 황제에게 선택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당시 명나라 황제 주원장이 조선이라는 국호를 정해주었다고 한다.

그런 고사를 알고 있던 이동영은 이미 엉망인 조선이란 국호를 계속 쓰는 것보다는 화령라는 새로운 국호를 사용할 생각으로 화령을 선택했다. 거기다 화령은 이성계가 인정한 국호 중에 하나였으니 이성계의 유지를 받들어 기존의 조선왕실을 뒤엎는다는 이동영의 명분에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현 조선왕실은 이방원의 자손이다. 이방원은 태조대왕의 여러 자손 중에 하나일 뿐인데 스스로 제 형제들을 죽이고 공신들을 살해했으며 아버지를 유폐하고 왕위를 이었다. 그런 패륜아의 자손이 조선의 왕위를 계승하니 대대로 조선왕실은 차마 눈뜨고는 보기 어려운 패륜을 자행해왔다…….(이하중략)

특히 현 국왕 이연은 고작 방계의 종친에 불과한 자인데도 선왕인 명종과 그 후계자인 순회세자를 독살하고 왕위에 오른 후 상국인 명나라를 성심으로 섬기지 않았고 함부로 제도를 고쳐 백성들을 힘들게 하였으며 밤마다 미소년들과 남색을 즐긴다고 들었다……."

"푸우우~!!!"

그 부분까지 곽재우가 낭독하는 반란군 아니 화령군의 격문을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감상하던 균은 남색이라는 소리에 입안의 녹차를 뿜어냈다. 균의 녹차브레스를 격문을 읽고 있던 곽재우가 다 뒤집어쓰는 사고가 일어났지만 곽재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균이랑 붙어 다니는 미소년은 없다. 하지만 소년은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균이 자신의 동생진이를 시집보내려고 눈독을 들이고 있는 곽재우였다. 그래서 균은 물론이고 격문을 읽던 곽재우까지도 격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매일 사주단자 보내라고 협박을 듣는 것도 분해죽겠는데 그것을 남색이라고 오해받다니…….'

'제기랄! 여동생 시집보내려다가 남색가로 찍히다니…….'

이윽고 두 소년이 뿜어내는 분노의 오라가 회의장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두 소년이 붙어 다닌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의 일이었고 최근에는 진이의 혼사문제로 균이 엄청난 총애를 보여주고 있던 터라서 회의장안의 장수들은 쌍둥이처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반란군의 봉기가 한성부에 알려진 것은 반란 시작 3일 후인 19일의 일이었다. 반란군의 격문을 입수한 정보요원이 말을 갈아타면서 소식을 전해왔는데 덕분에 한성부 남산봉수대에 봉화가 올랐을 때에 균은 비교적 상세하고도 열 받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이를 갈면서 출정준비를 서둘렀다.

"경들도 봉수대의 봉화를 보아서 변고가 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만 정확한 소식은 모를 것이오. 3일 전에 함경도 갑산

에서 전 운총만호 이동영이라는 자가 여진족과 손을 잡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소."

"웅성웅성~."

균의 말에 급히 어전회의에 참가한 조정의 대소신료들은 모두 웅성거렸다. 충청도의 반란이 진압된 지 고작 18일째. 그런

데 또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국가의 근본을 뒤흔들 수 있는 큰 문제였다. 반란이 일어나면 국력이 엄청나게 소진이 되는

데 조선의 국력으로는 두개의 반란을 견딜만한 입장이 아니었다.

"일단 반란군의 정확한 병력은 알 수 없지만 기존의 정보를 바탕으로 산출한 병력은 대략 2만 5천명 정도이오."

"2만 5천……!!!"

균의 말에 너무 놀란 신료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웅얼거렸다. 다른 신료들 역시 얼굴빛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충청도도 반란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 중 하나였지만 함경도도 그에 뒤지지 않는 지역이다. 건국초기 함경도는 거의 매년 반란에 일어났다. 다행히

 그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반란이 안 일어나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그것의 결정판은 조사의의 난이었다. 태종 이방원이 왕실의 치부라는 이유로 기록을 많이 지웠기는 하지만 여진족에 가세한 반란

군의 규모는 몇 만의 단위였다. 그 뒤로 조선왕조는 함경도를 반란의 고장으로 생각하고 차별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단종

 때 이징옥의 난이 발생한 후 조선의 함경도 차별정책은 극에 달했고 그것을 기화로 일어난 것이 이시애의 난이었다.

반란군만 약 3만, 토벌군 15만이 대결한 이 반란은 조선전기 최대의 반란으로 손꼽히며 무려 4개월 동안이나 계속되었을 정도로 

토벌에 애를 먹었다. 그것도 반란이 일어났던 때가 세조가 지방군개혁을 단행하여 조선의 군사력이 최고조에 이른 때의 일이었

다. 그런데 군사력이 많이 약화된 지금 그런 반란이 일어난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었고 이미 조선은 한번의 내전을 간단하

게나마 치룬 상황이었다.

"정확한 정보는 장계가 올라와봐야 아는 일이지만 반란군의 기세는 그전 이시애의 변란 때와 큰 차이가 없는 듯하오. 그래서 과인

은 지금 즉시 대군을 동원하여 함경도로 친정을 떠날 것이오."

"아니 되옵니다. 전하. 부디 분부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전하. 분부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친정을 떠나겠다는 균의 말에 신료들은 결사반대했다. 반란군의 목표는 보통은 중앙정부가 있는 수도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임금이었다. 반란군의 최종목표인 균이 반란이 일어난 곳으로 간다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다. 거기다 균은 아직 미혼이라서 후사가 없는 상황이라 균이 잘못되면 조선은 후계자 분쟁으로 자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경들의 걱정을 과인이 모르는 바는 아니오. 하지만 지금 신속하게 과인이 함경도로 이동하여 민심을 수습한다면 반란군의 기

세가 크게 줄어들 것이오. 경들도 지금 생각하고 있겠지만 이시애의 변란당시 조정의 대처가 늦은 결과가 얼마나 큰 피

해를 불러왔소? 또한 과인은 정예부대의 호위를 받으니 너무 걱정하실 것이 없소."

"하오나 전하. 전하는 나라의 근본이시옵니다. 나라의 근본이신 전하가 계실 곳은 그런 변방이 아니라 수도인 한성부이옵니다. 부디 신의 뜻을 가납하여 주시옵소서."

"과인이 경들의 충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미 과인의 뜻은 굳어졌소. 지난번은 근처에 유생들도 있고 백성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려는 목적으로 겁만 주었지만 이번에는 과인에게 도전하는 자들이 어떻게 되는 지를 확실히 보여줄 것이오. 

뿌드득~!"

"……."

균은 이를 한 번 갈더니 다시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반란군을 아작 내버리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표정에서 살벌한 말이 나오는 

균을 보면서 신하들은 도대체 반란군 격문에 뭐라고 서두었기에 저런 상황이 나오는지 궁금하게 여겼다. 그렇게 신하들의 반대가

 있기는 했지만 반란이 일어난 이상 왕의 권한은 절대적이었다.

다음 날인 11월 20일. 균은 중앙군 5개 사단 병력 1만에 수도방위군 1개 여단 3천명까지 동원하여 총 1만 3천명의 병력을 이끌고 

친정을 시작했다. 물론 딱 1만 3천명의 병력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보급을 목적으로 할 일꾼이 1만여 명이나 뒤를 이었고 각종 무기와 군수물자가 쌓인 수레가 뒤를 이었다.

이에 따라서 수도인 한성부에 남은 병력은 친위군 2천여 명에 오위도총부의 잔류병력 오천여명에 불과했다. 특히 잔류병력은 번상병으로 구성되어 그 전투력을 믿기 어려운 병사들이었지만 균에게는 저 반란을 신속히 진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래서 동원 가능한 전 병력이 토벌에 나선 것이다.

한성부를 출정한 토벌군은 최고속도로 추가령으로 향했다. 이미 11월 하순, 이제 북쪽은 완전한 겨울이었다. 그래서 폭설이 쏟아져 도로가 두절되기 전에 원정군은 함경도에 진입할 필요가 있었다. 아니라면 반란군은 백두대간의 함한 지세와 폭설이라는 지원군의 도움으로 함경도를 제패하고 내년 초까지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빨리빨리 서둘러라! 이번 달 내로 함경도로 진입해야 한다!"

"에헥~!"

조선의 수도 한성부에서 함경도의 최남단 고을인 안변까지는 고작 584(234km)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험한 산길에 보급물자까지

 가득 가지고 이동하는 군대가 10일 만에 도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균이 지휘하는 토벌군이 기후와 지형이라는 적군을 만나서 고생을 하고 있을 무렵 이동영의 화령군은 전군을 두 갈래로 나누어 진격을 하고 있었다. 한 갈래는 여진족으로 이루어진 부대로 부장 조흥수가 여진족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이 부대의 목적은 최대한 빨리 함경도의 중심도시인 함흥과 영흥을 기습공격하여 점령하는 것으로 갑산에서 출발하여 풍산을 점령하고 부전령을 지나 함흥으로 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다른 한 갈래는 이동영이 지휘하는 본군이었다. 이 부대는 함경도 해안가의 고을을 공격하여 후방을 든든히 하는 한편 지원병과 물자를 모으기로 하였는데 그 덕분에 동쪽에 있는 남설령을 넘어 길주를 공격할 예정이었지만 근처에 북방군의 주둔지가 있어서 우회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었다.

"나으리. 이렇게 우회하다가는 조부장의 부대와 시간을 맞추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북방군과 싸우다가는 오히려 피해가 크고 시간도 많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후방에 북방군을 놔두고 싸우는 것이 더 위험하니 지금 손을 쓰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저들이 남하한다면 본거지인 갑산도 위험합니다."

"가뜩이나 병력이 부족한 북방군에서 내 휘하의 부대 3천명이 이탈한 것만 해도 큰 타격일 것이다. 거기다 북방군에서 가세한 병력이 더 있으니 지금의 북방군은 여진족의 파상공세를 막기도 어려워 우리에게 신경을 쓰지는 못할 것이다. 어서 가자구나. 갈 길이 멀다."

"예. 나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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