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228)

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이동영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길주는 예상대로 항복을 해왔기에 화령군이 무혈입성을 할 수 있었지만 남쪽에 있던 단천과 북청은 함흥의 소문을 듣고 이동영의 화령군에게 대항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길주에 있는 이동영이 함흥으로 진격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곳이 단천과 북청이다.

특히 단천은 지금은 폐광되었지만 대규모 은광이 있던 곳으로 아직도 상당한 양의 은이 남아있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꼭 점령해야 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렇게 중요한 지역에서 반발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동영은 무척 당혹스러웠다. 물론 지금의 병력으로 함락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북청이나 단천은 그렇게 인구가 많은 고을이 아니니 많은 병력을 모으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소수의 병력이라도 성에 박혀서 수비에만 치중한다면 아군이 함락시키기에는 무척 곤란합니다. 그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아군은 길주의 본군과 함흥의 여진족으로 양분된 상황에서 중앙의 토벌군에게 시간을 주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화령군은 한시라도 빠르게 함흥의 여진족과 합세해서 그들의 행패를 막고 중앙의 토벌군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사실상 단천과 북청을 지나는 길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빠른 시일 내에 그들을 회유하거나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것이 함경도의 장점이자 단점이지. 진군로가 한정되어 있으니 소수의 병력으로도 다수의 토벌군을 상대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이렇게 역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것이지. 그런데 과연 그들이 회유가 될까?"

"일단은 그들에게 충분한 이익을 보장해야 합니다. 함경도 사람들은 이익에 약하니 우리가 많은 이익을 보장한다면 어느 정도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현된다는 보장이 없으니 지금이라도 압도적인 수의 군대를 동원하여 저들의 방어준비가 끝나기 전에 공격을 펴서 조기에 함락시키는 편이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단천과 북청을 공격하기에는 병력이 너무 부족하지 않겠나? 이곳 길주도 지켜야 하고 일부 병력은 북쪽으로 파견해야 하는데 우리 군에 지원하는 자들이 거의 없어서 대병력을 동원하기가 힘드네."

이동영은 답답한 마음에 부하장수들을 불러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대부분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였을 뿐 그가 바라는 답변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리고 쓸데없는 회의를 한다고 시간만 많이 잡아먹었을 뿐이었다. 그런 이동영에게 다시 한번 조흥수가 보낸 편지가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조흥수가 쓴 것이 아니었다.

'서면으로나마 뵙게 되어 반갑소. 나는 전 병조참의 김진기라고 하오. 장군도 잘 알고 있겠지만 충청도의 거사를 주도한 사람으로 이번에 장군의 소식을 듣고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천리 길을 싫다하지 않고 찾아왔는데 장군은 만나지 못하고 조부장이란 사람을 만나 이렇게 서면으로 인사드리오.'

"아니, 이것은?"

이동영은 조흥수가 보내준 김진기의 서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는 몇 번이나 다시 읽더니 마음에 드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찰에는 군사를 모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몇 가지 적혀있었다.

첫째는 지방유력자들을 중심으로 포섭하라는 것이었다. 각 마을에는 그 마을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유력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움직이면 마을 전체가 움직였다. 그래서 지금처럼 개개인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보다 효율이 높았으며 나중에 홍경래의 난 때 사용되어 상당한 효과를 본 방법이었다.

둘째는 병사들을 돈을 주고 고용하라는 것이었다. 평안도와 함경도지역의 경우는 특히 심하지만 조선시대 사람들이라고 해도 이익을 탐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인좌의 난과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은 병사들을 돈을 주고 고용했다. 참고로 홍경래의 난 당시 고용비용은 1인당 1~3냥이었다.

세 번째는 조선의 지방군 동원체계를 이용하라는 것이었다. 이 역시 이인좌의 난과 홍경래의 난에 쓰인 방법인데 지방관이 가진 병부를 이용해서 병역대상자들을 소집한 후 그들을 반란군에 편입시키는 방식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김진기의 조언은 상당히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충분히 통용이 됐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정보가 작기 때문인데 부족한 정보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반란군인 줄도 모른 채 잘못된 정보를 믿고 관군과 싸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시애의 난 당시 이시애는 자신이 세조의 밀명을 받은 절도사라고 속이고 3만에 가까운 대군을 모았다. 그리고 반란은 4개월 동안 계속되었는데 마지막에 이시애가 두만강을 건너 만주로 도망가려고 하자 그제서야 반란군 병사들이 자신들이 반란군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 이렇게 해도 병사들이 많이 모이겠구나. 아무리 못해도 그냥 모병하는 것보다는 많이 모이겠지. 병력이 충분히 확보되면 단천과 북청을 함락시키는 것도 한결 나아질 것이니 한번 해볼 만하다."

이동영은 김진기의 조언에 따라서 먼저 자신을 '화령대원수' 라고 칭했다.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에게 함경도 일대의 관직을 내려주었다. 예를 들면 부장 조흥수의 경우는 함경남도 병마절도사였다. 물론 진짜 함경남도 병마절도사는 북청에 있었지만 또 조흥수가 병마절도사가 되자 일부 조선군들이 누가 진짜인지 몰라서 혼란스러워 하는 일이 생겼다.

그 사이 화령군은 무서운 기세로 병력을 모았다. 자신들에게 가세하는 유력자들에게는 현감, 현령 같은 벼슬이 막 내려졌고 군자금을 털어서 병사들을 모으니 가세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거기에 점령지의 남자들을 징병하여 단시일 내에 많은 군대를 모을 수 있었다. 덕분에 화령군 본대의 병력은 순식간에 1만을 넘어섰다.

"그동안 안 좋은 소문이 돌아서 병사들을 모집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지만 이제 아군의 전력도 1만이 넘는다. 나는 1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단천을 공략할 테니 너희들은 계속해서 병력을 모집하도록 하라."

"예. 대원수!"

며칠간 병사들을 모운 이동영은 소수의 병력만 길주에 남겨 후방기지로 삼고 자신은 직접 1만의 대군을 이끌고 단천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단천을 점령하고 은광을 다시 열어 부족해진 군자금을 충당하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진출할 계획이었다.

11월 28일. 함경도 최남단의 고을인 안변은 한창 축제분위기였다. 함흥의 소문이 전해져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었는데 때맞추어 1만 3천에 달하는 조정의 대규모 토벌군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그 토벌군을 지휘하는 사람은 한성부의 화려한 궁궐에서 미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진수성찬이나 즐기는 존재로만 알고 있던 자신들의 왕이었다.

그냥 운 좋게 왕위에 올라서 책이나 읽어대는 허약한 서생정도로 알고 있던 왕이 백마를 타고 대군을 호령하는 모습을 본 백성들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무래도 지리적인 여건상 여진족과 싸워야 하는 함경도의 백성들에게 좋은 왕이란 여진족을 물리쳐 줄 수 있는 강한 왕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보면 싸워서 이기고 개선하는지 알겠군."

"그래도 백성들이 전하께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사옵니까?"

"글쎄. 내가 저들에게 환호성을 들을만한 일을 했을까? 함흥에 사는 내 백성들을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전하! 그것은 방비를 게을리 한 관리들과 군사들의 책임이옵니다. 전하께서는 백성들을 지켜주시기 위해 이렇게 친히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오시지 않으셨사옵니까?"

'하지만 내 책임이 엄청나다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지.'

"휴~!"

균은 백성들과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는 여유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있었지만 자신의 임시거처로 돌아와서는 무척 소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곽재우가 옆에 붙어서 위로를 해주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균이 소심할 이유는 충분했다. 자신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공작으로 인해서 함흥의 참극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균은 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부터 저렇게 소심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서 측근들에게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물론 자신들을 괴롭히지 않아서 좋기는 했지만 언제나 활기에 찼던 균이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것도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다시 원래의 균으로 되돌아갔기에 그런 것을 눈치 챈 사람은 별로 없었다.

얼마 후 강행군을 하느라 지친 병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을 틈타서 균은 장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방금 전 입수된 최신정보를 바탕으로 반란군에 대한 작전을 의논했다.

"반란군 자칭 화령군은 전군을 두 갈래로 나누어 하나는 함흥에 주둔하고 있고 하나는 단천을 공격중이옵니다. 하지만 단천을 공격하는 반란군이 많아서 지금쯤이면 단천이 함락된 것으로 보이옵니다. 따라서 반란군의 점령지는 갑산, 길주, 단천, 함흥 이렇게 네 고을이옵니다."

"반란군의 병력은 총 2만 4천 정도입니다. 상세한 병력 배치를 알아보면 함흥에 여진족 기병이 1만 2천이고 단천에 1만, 길주에 2천명의 반란군이 있고 근거지인 갑산에는 병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사옵니다. 특히 여진족의 수가 소신들의 예상보다 훨씬 많아서 반란군의 전력은 무척 강대한 상황이옵니다."

"일단 우리가 예상하던 병력 2만 5천에서 큰 차이는 없는 듯하니 참으로 다행이로다."

"하오나 전하. 예상보다 여진족의 수가 많아서 상당히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사옵니다."

"아니오. 오히려 여진족이 많은 것이 우리에게는 유리하오."

감히 조선기병과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1만 2천의 여진족이 있다고 확인된 상황인데도 은근히 걱정을 하는 장수들과는 달리 균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여진족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반란군의 통제력이 약하다는 소리이기도 하오. 여진족이 어떤 자들인데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고분고분 따르겠소? 그래서 반란군에게는 오히려 해가 되는 일을 여진족이 저질렀던 것이고 그렇다면 사실상 반란군은 2개로 나누어진 셈이니 이들을 각개각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오."

"하오나 전하. 본시 기병을 상대하는데 기병만한 것은 없사옵니다. 하지만 아군의 기병은 임시로 편입한 병사들까지 합쳐서 4천에 불과하옵니다. 상대인 여진족의 수는 1만 2천이나 되는데 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거기다 여진족의 기병은 우리 조선 기병보다 강하니 실질적인 전력비는 더 낮다고 하야하오. 하지만 기병은 무적이 아니고 그들은 본국의 영토내로 깊숙이 들어온 상황이니 크게 유리할 것이 없소. 거기다 아군은 1만 3천에 달하는 대군이고 훈련 잘 된 정예병이 아니오. 전술만 잘 짜면 승리는 문제가 없을 것이오."

하지만 균의 말에도 장수들은 많이 걱정을 했다. 그 정도의 대규모 기마대라면 두 배의 조선기병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거기다 보병으로 기병을 상대하려면 8배의 병력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1만 2천의 여진족들을 보병으로 물리치려면 20만에 가까운 대군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겠지만 아무리 훈련 잘 되고 무장도 잘된 군대라고 해도 기병 4천과 궁병, 보병, 포병 각 2천. 그리고 총병 3천으로 구성된 군대로 그 정도의 기마대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은 없었다. 고작해야 간신히 이기거나 비기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뭐. 아직 전장의 주역이 기병인 시대이니 걱정되는 것은 당연하지. 하지만 앞으로는 보병의 시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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