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3화 (163/228)

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이제 곧 적군이 돌격을 해올 것이다! 진형만 무너지지 않으면 아군이 이기니 모두들 마음 단단히 먹어라!"

"예! 군관 나으리!"

전방에 여진족들이 포진하자 지휘관들은 결전이 임박했다는 말을 하면서 실전에 임한 병사들을 다독거렸다. 그러나 이곳의 

조선군은 전원이 다년간 복무한 직업군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보통의 조선군들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그래서 대부

분의 병사들은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여진족의 공격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병사들도 있었고 지휘관들은 그런 병사들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다독거리는 데 힘썼다. 자신이 거느린 

부하들을 다독거리고 있던 군관 진성확은 자신이 지휘하는 대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부하이며 이제 군대에 입대한지 2년

밖에 되지 않은 갑사 김재명이 살짝 떨고 있는 모습을 보고 먼저 말을 걸었다.

"왜? 많이 떨리나?"

"아닙니다. 군관 나으리. 제가 이 부대에서 가장 신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난 여름의 고된 훈련을 받아낸 정예병입니다. 저런 오랑캐들이 두려울 리가 있겠습니까?"

"자넨 참 용감하군. 나는 두려운데 자네는 두렵지 않다니……. 뭐,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최소한 벌벌 떠는 겁쟁이보다는 동료들에게 폐가 안 될 테니까. 자네 아직 장가 안 갔지?"

"예. 군관 나으리."

"이번 전투가 끝나면 군대가 확장되면서 자네도 지휘관이 될 거야. 정식으로 품계를 가진 무관이 되어 병사들을 지휘해야 한다는 말이네. 그러면 고향에 계신 자네 어머니가 반가워하시겠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잘 싸우고 살아남아야 하네. 내 말 뜻 알겠는가?"

내전이 끝나고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중앙군은 현재의 2만여 명(번상병 5천명 포함)에서 편제대로인 5만 6천의 대병력으로 증강될 예정이었다. 물론 상당수가 의무병으로 채워지겠지만 그 정도의 군사력이면 감히 중앙의 명령에 거역할 지방세력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진성확은 자신이 지휘하는 비완편 대대 60여명(정인원은 300명이다.)들에게 이번에 승리하면 그들에게 제대로 된 벼슬이 주어진다는 것을 광고하고 다녔다. 보병이 기병을 이길 수는 방법은 강력한 조직력을 발휘하는 수밖에 없기에 다른 지휘관들도 나이 어린 병사들을 중심으로 비슷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아함~! 졸려 죽겠네. 도대체 언제 공격해 오는거야."

"이건 분명히 우리를 졸리게 하려는 녀석들의 작전일꺼야."

"넌 눈이나 뜨고 말해. 누가 보면 잠꼬대 하는지 알겠다."

방금이라도 지축을 울리며 돌격해 올 것 같던 여진족이 진형을 갖춘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진격해오지 않았다. 그 대신 하

늘에서 빛나고 있던 태양이 뿌리는 따스함이 조선군 병사들에게 다가왔고 점차 긴장이 풀린 병사들은 하나둘 졸음에 못 이겨 꾸벅거렸다. 지휘관들 중에도 졸고 있는 자가 나올 정도로 따스한 햇볕이었다.

"전하. 여진족이 너무 오래 동안 공격을 해오지 않아서 병사들의 긴장이 너무 풀렸사옵니다.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다독

거리고 있기는 하지만 오후가 되면서 햇살이 따스해 조는 병사가 부기지수이옵니다. 이럴 때 적군이 공격을 해온다면 아군이 크게 어려워질 것은 분명하옵니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본시 공격군의 장점중 하나는 전장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옵니다. 소장이 보기로는 여진족은 공

격시간을 늦추어 아군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는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아무래도 반란군 쪽에도 상당한 지략가가

 있는 것으로 보이오니 선공을 해야 하옵니다."

"……역효과가 난 것인가?"

주변에 있던 장수들의 우려가 섞인 말에 균은 뜻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곽재우에게서 망원경을 

받아서 여진족의 진형을 한 번 훑어보더니 갑자기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잠시 망원경에서 눈을 때지 못한 채 웃고 있던

 균은 주변의 공기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다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들을 하지 말라. 아무리 보아도 아군이 우세하다."

"하오나 전하!"

균은 대답 대신에 눈앞에 있던 부장 박승진에게 망원경을 주어 적진을 보게 했다. 적진을 살펴본 그는 잠시 후 얼굴에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는 듯 얼굴근육을 씰룩거렸다. 그러자 장수들은 살짝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망원경을 꺼내서 적진을 살폈다. 곧 그들 역시 웃음을 참는다고 고생을 해야 했다.

"아무래도 여진족들은 우리를 졸리게 해서 쓰러트리고 다시 우리를 웃겨서 죽여 버릴 생각인가 보군."

"그러하옵니다. 전하."

근엄한 표정을 지은 장수들이 웃음을 흘릴 정도로 여진족은 엉망이었다. 원래 기마민족인 여진족은 말위에서 자는 것도 가능할 정도로 말을 잘 탔지만 손쉽게 함흥을 점령하고 승리에 도취된 탓인지 말에서 졸다가 굴러 떨어지는 자들이 속출할 정도로 군기가 풀려있었다. 그것을 잠시 바라보던 균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명령을 내렸다.

'아무래도 우리와 싸우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겠지. 하지만 너희들이 후퇴하는 것을 두고 볼 내가 아니다. 그래서 전장을 이

곳으로 설정한 것이고.'

"여진족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을 터이다. 변 위장은 휘하 포병대를 지휘하여 미시정(오후 2~3시)이 되

거든 전방의 여진족에 대해서 화포를 발사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

"예. 전하."

임시 포병대인 제 5사단은 바로 지휘부의 근처에 위치하고 있었다. 원래는 더 후방에 배치하고 포탄이 정확히 떨어지는 것을 감시해줄 관측병만 전방으로 보내는 것이 포병의 배치였지만 적의 기병 전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화포의 사정거리가 길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바로 근처에 배치된 것이다.

이번에 동원된 포병대는 약 오백 문의 각종 화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태반이 야전포로 개량된 현자총통과 대완구였다. 현자총통은 천지현황 중 3번째에 해당하는 중소형의 화포지만 사거리는 조선군 보유화포 중에 가장 길어 약 2000보(2.5km)에 달했다. 그리고 대완구는 조선군이 보유한 비격진천뢰를 발사할 수 있는 화포였다.

"각 현자총통은 포신내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도화선을 준비하라!"

포병들은 위장 변양좌와 부장 이건진의 호령에 따라서 현자총통을 발사할 준비를 시작했다. 원래 조선시대에 화약을 장

전하는 방법은 네 단계로 구분된다. 먼저 총통안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점화구로 도화선을 넣는다. 그다음에 화약을 넣는데 보통은 그 자리에서 포수가 적당량의 화약을 넣는다.

그다음 종이를 넣어 화약을 덮은 후 화약과 종이를 다지고 다시 격목을 밀어 넣는다. 다음에 발사체를 장전하는데 요즘처럼 발사체를 한 개만 넣는 것이 아니라 포신을 가득 채울 정도로 여러 개의 발사체를 넣는다. 즉 청소와 도화선삽입, 화약 넣고 다지기, 격목 넣기, 발사체 장전. 이렇게 네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적군과의 거리는 5리다! 거리에 맞추어 약포를 넣어라!"

하지만 중앙군은 다른 조선군과는 다르게 장전했다. 먼저 포수가 직접 화약을 제어 넣는 방식은 급박한 전장상황에서 실

수가 많이 생기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중앙군은 종이에 포장된 화약을 사용해서 불발과 폭발을 방지하는 한편 약포의 

수에 따라서 사정거리의 조정도 간편하게 조정할 수 있었기 때문에 화약을 넣는 속도가 빠르고 실수가 적었다.

"철환을 넣어라!"

격목은 원래 화약의 에너지를 발사체에 전달하는 나무토막으로 조선의 화포에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포탄과 포구의 구

경이 차이가 날 때나 쓰는 방법으로 중앙군 포탄은 포구의 구경과 별 차이가 없어서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중앙군 포병들은 바로 포탄을 장전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렇게 장전단계가 간편해지면서 전반적으로 장전속도가 전보다 빨라졌다. 물론 그 대신 포탄과 포구의 구경이 비슷해 포탄을 장전하는 것에 애를 먹었지만 다른 부분에서 충분한 시간을 만회할 수 있는데다가 그러면 명중률이 좋아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래서 신속히 장전을 마친 병사들을 보고 위장 변양좌는 만족스러워 했다.

"위장 영감, 방포준비가 끝났습니다."

"좋군. 급조된 포병인데도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군. 역시 훈련 잘 된 병사는 확실히 달라. 곧 미시정이라서 전하의 명령이 내

려올 것이고 우리 부대의 공격을 시작으로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모두들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전하라."

"예. 영감."

이여송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전투를 구경하고 싶었지만 부하들이 모두 만류했다. 십중팔구는 기병이 부족한 조선군이 패할 

것이 뻔한데 잘못 접근하다가 여진족에게 포로가 되면 여러 가지로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여송은 아쉬운 듯한 표정

을 지으며 멀리서 어렴풋하게 움직이는 양군의 모습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아니 저것은? 화포가 아닙니까? 도련님."

"화포라니 무슨 소리야? 이런 야전에 화포를 가지고 나와 봐야 빠른 기병에게 얼마나 소용이 있다고 가지고 나오겠나? 화포란 원

래 성에서나 쓰는 물건이 아닌가?"

"예. 물론 야전에서는 화포을 운영하는 것은 큰 효용성이 없습니다만 조선군 뒤쪽으로 몇 백 개는 되는 듯한 화포가 보입니다."

"뭐라구? 화포를 그렇게 많이 끌고나왔어?"

이여송은 하인의 말에 조선군 뒤쪽을 살펴보았다. 과연 그 뒤에는 햇빛에 반사되는 물체가 여러 개 있었는데 정말 화포인 듯 했다. 그것을 본 이여송은 혀를 내둘렀다. 여진족을 상대하는데 화약무기만큼 좋은 무기도 없지만 그것은 방어시설이 있어야지 가능한 일이다. 야전이라면 이동속도가 느린 포병은 기병의 좋은 사냥감에 불과했다.

"야전에서 화포를 저렇게 많이 가지고 나오다니 조선왕도 급했군. 하지만 지형이 조선군에 너무 나빠."

"아닙니다. 도련님. 조선군이 승리할 것 같습니다."

"자네가 어제까지만 해도 조선군이 패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말을 바꾸나?"

"발밑을 보시지요. 도련님."

이여송은 하인의 말에 따라서 땅을 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놀라서 잠시 말을 잊은 이여송의 귓전으로 큰 소리

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이여송이 다시 시선을 전방으로 돌리자 약 250문에 달하는 조선군의 화포가 일제히 불을 뿜는 모

습이 보였다.

"펑~! 퍼엉~! 퍼엉~!"

여진족은 거친 만주벌판에서 사납고 호전적인 주변 부족들과 같이 살아가는 민족이다. 그래서 여진족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부족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간 함흥성에 쌓여있던 풍족한 물자로 많이 나태해져 있던 

여진족들은 말에서 졸다가 떨어지는 추태를 보이고 있었다.

물론 전방에선 적군인 조선군이 포진하고 있었지만 여진족들은 괘념치 않았다. 별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너진 함흥성의 조선

군들처럼 눈앞의 적도 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야전에 나온 조선보병이 두려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여

진족들은 지금 힘을 보충했다가 나중에 적군을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따사로운 햇볕을 느끼며 졸고 있었다.

"씨우웅~! 씨우우웅~!"

처음에는 휘파람소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누가 부르는지는 몰라도 그 휘파람소리는 빠른 속도로 커졌고 곧 굉음으로 들려왔다. 

그래서 여진족들은 잠에서 깨어나고 그들을 말들은 놀라서 울음소리를 내며 불안해했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볕을 능가하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폭발음을 내며 자신의 옆에 있던 동료들을 날려 버렸다.

"꽈과광!!! 꽝! 꽈아과광!!!"

"으악~!"

"히히힝~!"

폭음 뒤로 말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여진족들은 조선군의 선공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런 소리들에 놀란 말이 요동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진족들은 자신의 말을 진정시

키느라 애를 먹었지만 한 번 겁을 먹고 흥분한 말들은 쉽게 진정되지 않고 이리저리로 날뛰기 시작했다.

"히히힝~! 히히힝~!"

흥분한 말들은 신음소리를 내고 있던 사람들을 사뿐히 밟아서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고는 그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져 버렸다. 덕분에 말에 타고 있던 여진족은 땅으로 구를 수밖에 없었고 그의 몸 위로 말의 육중한 육체가 덮쳐왔다. 잠

시 후 말이 일어서 구슬픈 소리를 내며 주인을 찾았지만 이미 갈비뼈가 모두 부러진 주인이 대답을 할리는 만무했다.

"씨우우웅~! 꽈과광!!! 씨우우우웅~! 꽈아과광!!!"

아직도 혼란스러운 여진족 전열을 향해서 하늘에서 두 번째 불벼락이 쏟아져 내렸다. 혼란을 수습하지 못한 채 돌아다니던 

여진족들은 자신의 말과 함께 허공을 나는 체험을 해야 했고 온 몸에 화상을 입어 날뛰는 말과 함께 다른 동료들에게 돌격하

는 자들도 있었다.

조선군의 포격은 여진족의 중앙에 집중됐다. 그곳이 가장 여진족의 병력이 밀집되어 있기도 했고 병사들이 가장 방심하고 있었

기 때문에 조선군의 포격은 위력적이었다. 하지만 포격에 놀라서 말이 날뛰는 경우가 많아 피해가 커졌을 뿐 실제 포탄의 위력

으로 죽은 자들은 적었다. 조선군의 포탄은 파편이 튀는 것이 아니라 큰 쇠공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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