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5화 (165/228)

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여진족 중앙부대가 돌출, 선두부대를 형성했사옵니다. 뒤쪽에도 좌익의 여진족과 우익의 여진족이 각기 부대를 재편하는 중이옵니다."

"그렇다면 중앙의 주셔리부가 선두인가?"

"주셔리의 장수인 돈고호리는 주셔리 아니 장백여진이 자랑하는 용장이옵니다. 그가 이끌고 돌격하는 부대라면 장백여진 최강의 부대라고 할 수 있사오니 많은 주의가 필요하옵니다."

"그런 멧돼지 같은 장수가 오히려 상대하기 편한 법이다. 각 부대에 전령을 보내서 중앙지휘부의 명령이 하달되면 움직이고 개별적인 판단으로 병력을 움직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전하라."

"예. 전하. 즉시 전령을 파견하겠사옵니다."

균은 귀로는 장수들의 보고를 받고 입으로는 명령을 내리면서 망원경으로 적진을 살폈다. 겉으로는 장수들과 병사들에게 

의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이 세운 계책이 다 맞으라는 법이 없기에 내심 긴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망원경에는 땀

이 묻어 있었다.

포탄이 중심부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주셔리군이 입은 타격은 상당했다. 원래 압록강을 넘을 때만 해도 주셔리군의 병력은 5천

여 명에 이르렀지만 방금 전 포격으로 인해 전사자와 부상자가 1천명에 가까워 가용전력은 약 4천여 명으로 줄어들고 사기

도 떨어졌다. 그래서 돈고호리는 공격에 앞서 먼저 부하들을 격려했다.

"용사들이여! 저기 용이 그려진 깃발이 보이는가? 거기에 조선의 왕이 있다! 우리가 고작 조선의 일개 성에 불과한 함흥을 

점령한 것만으로도 풍족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하물며 왕을 사로잡는다면 어떻겠는가?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며 굶고 있을

 가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

"와아아아~~!!!"

역시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문제였다. 원래 여진족은 농사도 짓고 목축도 하는 반농반목의 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16세기 기후이변으로 인해 만주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많이 힘들어지면서 식량조달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었다. 그래서 독고호리의 말에 여진족들은 모두 공감하고 환호성으로 답했다.

"이곳은 원래 아무 질퍽한 농경지였지만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땅이 얼어붙어 단단하다! 거기다 겨울철답게 풀이 짧아서 조선군이 장애물을 설치하기도 힘들고 또 장애물을 설치한 것도 없다! 우리에는 마음껏 말을 달릴 수 있는 대지가 있고 등을 믿고 맡길 만한 동료들이 있다! 승리는 누구의 것이겠는가?"

"우리의 것입니다!"

"그렇다! 우리 주셔리는 장백여진 최강, 아니 그대들 같은 용사들이 있는 이상 여진족 최강이다! 우리의 앞에는 얼치기 보병으로 구성된 조선군이 있고 우리의 뒤에는 그 조선군에 겁을 먹은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장백여진의 진정한 얼을 보여주자! 나를 따르라!"

"돈고호리 장군의 뒤를 따르라! 전원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돈고호리는 손에 든 대부(큰 도끼)를 휘두르며 열변을 토한 후 앞장서서 말을 내달렸다. 그러가 부장들이 뒤를 따랐고 부장들을 따라서 일반병사들도 차례로 움직였다. 과연 돈고호리의 말대로 겨울철의 대지는 단단해서 말이 땅을 박차고 속력을 내는 데는 더없이 좋았고 차가운 공기는 말과 여진족들에게 상쾌함을 제공했다.

거기다 기동력을 가진 여진족에게 조선군이 날리는 쇠공은 더 이상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들에게는 그 쇠공에 희생된 동료들을 원수를 갚고 본거지의 가족들을 부양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여진족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앞 다투어 조선군의 진형을 향해 내달렸다.

"적이 온다! 전원, 진형을 끝까지 유지하라!"

"혼자서 경고망동 하지 말고 지휘관의 지시에 따르라!"

조선군 병사들의 시야에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멀리 떨어져 있던 점들이 점점 커지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에서는 아직도 포탄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포탄이 달려오는 여진족에게 떨어졌지만 아까만큼의 위력은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조선군과 여진족간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아까 전에는 작은 점으로 보이던 여진족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진족들은 조선군의 포격으로 밀집대형을 취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혼자 날뛰는 바보들은 아니었는지 주변의 동료들과 언제든 연계할 수 있는 수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점차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

이윽고 조선군의 눈에도 여진족의 선두부대의 윤곽이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조선군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이 아니고 짐승의 가죽과 털로 만든 옷을 입고 손에는 창을 들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등에는 활과 화살을 맨 전형적인 여진족이었지만 멀리서 보았을 때는 황색계통의 군복을 입은 기마대처럼 보였다.

그렇게 황색군복으로 통일된 기마대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자 상당한 위압감이 느껴졌다. 특히 조선군 병사들의 진

지는 평지였기 때문에 적군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들을 죽이려고 빠르게 달려

드는 여진족들이 만들어낸 황색의 파도들 뿐이었다.

"이런. 겁나게 많군. 포병대 녀석들, 소리는 요란하더니 여진족들에게 별 피해도 입히지 못하는군."

"누가 아니래. 척 봐도 정말 많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여진족이 돌격해오는 모습을 보는 조선군 병사들은 불안해했다. 돌격해오는 적은 고작해야 4천에 불과했지만 기마대의 특성상 먼지가 많이 나서 수가 많아 보인다. 거기에 후방에 있던 7천명의 여진족들도 내키지는 않지만 천천히 접근을 해오고 있었기에 병사들에게는 여진족 기병이 수만 명으로 보였다.

더욱이 사람이란 용감하면서도 겁이 많고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여러 가지 복잡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적군이 자신을 향해서 다가오는 것을 보면 옆에 수많은 동료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눈앞의 적군들이 자신만을 노리고 있다는 공포감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면 도망치는 병사가 나오고 그의 공포감이 주변에 전파되어 전투대형이 무너져 이길 싸움에서도 어이없이 패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임진왜란의 용인전투와 병자호란의 쌍령전투, 그리고 한국전쟁의 현리전투에서 조선의 근왕병과 한국군 제 3군단이 그렇게 무너졌다. 하지만 조선군 총사령관은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갑사 김재명. 두렵나?"

"아…아닙니다. 군관 나으리."

"말이 떨리는 것을 보니 두려운 모양이군. 하지만 죽어도 여기서 죽어야 해. 아니면 어떻게 되는 지 자네도 잘 알지?"

제 부하인 김재명이 떨고 있는 모습을 본 군관 진성확은 그에게 이미 전투 이전에 공포된 사실을 되새겨 주었다. 그 사실이 생각난 김재명은 잠시 떨렸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담담한 어조로 대답했다.

"도망자는 주상전하의 어명을 어겼기에 역적에 준하는 처벌을 받습니다. 전장에서 이탈하다가 발견되면 즉시 참수되고 나중에 체포되면 최전방의 노비로 보내집니다. 거기에 전 재산은 국고로 환수되며 일가족들까지 노비로 전락합니다."

"하지만 전장에서 영예롭게 전사하면 평소에 받던 녹봉의 절반을 나라에서 20년 동안 유가족들에게 지급하고 모든 세금과 부역이 면제되지. 어차피 우리 군이 전투에서 승리하지 않는 이상은 도망쳐도 살아날 방법은 없어. 그러니 고향에 계신 자네 노모를 위해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네."

"예. 군관 나으리."

조선의 경우 군인들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 죽어도 나라가 유가족들을 위해서 해주는 것은 곡식을 조금 나누어 주고 부역을 면제하는 정도가 보상의 전부였고 그나마 잘 지켜지지도 않았다. 그래서 조선군 병사들은 싸우다가 죽으면 자신만 손해였기에 앞장서서 용감하게 싸우지 않았다.

이에 균은 병사들의 전투의욕을 올리기 위해서 당근과 채찍을 모두 사용했다. 유가족들의 생계를 나라에서 책임지는 한편 가혹할 정도의 처벌을 사용하여 병사들이 도주하는 것을 막았다. 물론 보훈예산이 많이 소요되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측면 특히 병사들의 전투의욕 고취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진성확은 그 외에도 김재명의 전투의욕을 고취시켜줄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여진족이 접근하면서 그들이 내는 함성소리와 말울음소리가 들려왔고 대규모의 말들이 달리면서 내는 요란한 소리와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점차 조선군 진지에 가까이 떨어지는 포탄의 소리가 그들의 대화를 불가능하게 했다.

"역시 여진족들이 말 하나는 잘 타는군."

균은 망원경을 보면서 여진족들의 기마술에 감탄했다. 방금 전 바로 옆에 포탄이 떨어져 말이 요동을 치자 말에서 떨어질 뻔한 여진족이 있었다. 만일 웬만한 자동차와 비슷한 속도인 시속 60~7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말에서 떨어진다면 최소한 중상이고 그렇게 몸을 움직일 수없다면 뒤따라오는 동료기병들의 말발굽에 죽는 것이 보통이다.

실제로 그 여진족의 옆에서는 포탄에 낙마한 여진족이 그렇게 죽음을 맞고 있었지만 그는 떨어지기 직전 말의 다리에 매달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렇게 매달다고 해도 부지런히 움직이는 말 다리에 매달리면 어지러워서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그는 어떻게는 살아남겠다는 일념으로 말위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물론 말위에 올라서 환호성을 지르던 그와 그의 말에 조선군의 포탄이 정확히 명중하여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려 그 의미는 많이 퇴색했지만 상당히 기마술이 뛰어난 자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여진족 기마대의 돌격을 감상하던 균은 옆에 있던 곽재우의 보고에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전하. 적군이 약 1천보(1.2km)거리까지 접근했사옵니다."

"포병대에 대완구를 준비해서 적군이 사정거리 내에 오면 발포하라고 명하라."

"예. 전하."

균의 명을 받은 곽재우는 병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망루에 올라가 있던 병사들은 화전을 한 발 허공으로 날리고 영하기를 흔들었다. 영하기는 상급부대에서 하급부대에 명령을 내리는 깃발이다.

"영감. 본진에서 화전이 날아오르고 영하기가 움직였사옵니다."

"좋다. 비격진천뢰 발사준비."

"비격진천뢰 발사준비!"

위장 변양좌와 부장 이건진의 명에 따라서 황자총통 앞쪽에서 준비를 하고 있던 병사들이 비격진천뢰가 장전된 대완구를 최

종 점검했다. 대완구는 비격진천뢰나 단석(둥근 돌)같은 원형의 발사체를 발사하는 화포로 사거리는 약 500~600보(640~720m)이며 지

금의 박격포와 비슷한 조선의 화포였다.

"비격진천뢰는 이미 준비해둔 순서대로 사용하고 심지에 불을 붙여 방포하라!"

비격진천뢰는 원래 임진왜란 때 개발되는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목곡이라는 나무에 도화선인 약선을 몇 번 감느냐에 따라서 폭발

시간이 결정된다. 발사과정은 조선시대 다른 화포들과 거의 흡사하지만 포탄의 심지에 한 번, 그리고 포탄을 발사하는 대완구의 심지에 한번 이렇게 두 곳에 불을 붙이는 것이 다르다.

"퍼어엉~! 퍼어엉~!"

이윽고 심지가 타들어가고 대완구의 약실에서 화약이 폭발했다. 화약의 폭발력은 약실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았고 앞쪽을 막

고 있던 격목을 향해서 일시에 밀어닥쳤다. 화약의 폭발력에 밀린 격목은 다시 앞에 있던 비격진천뢰를 밀어냈고 비격진천뢰는

 그다지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고 하늘로 날라올랐다.

하늘로 날아오른 비격진천뢰는 균이 무심한 표정으로 전장을 살펴보고 있는 본진의 상공을 지나 통아에 편전을 끼우고 있는 

궁병들을 구경하면서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계속계속 날아갔다. 덕분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총을 쥐고 발사명령을 기다리는 

총병들과 방패와 창으로 최전방에서 총병들을 보호하고 있던 창병들을 구경하지 못했다.

한참을 날고 있던 비격진천뢰는 곧 정점에 이르렀고 이제는 땅으로 추락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목곡에 감긴 

약선이 제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다. 낙하를 시작한 비격진천뢰에게 한 무리의 기마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뒤에 있는

 화살통에서 활을 꺼내 자신들의 활인 맥궁에 걸고 있었기에 하늘에서 날아오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씨우우웅~!"

비격진천뢰가 만유인력의 법칙에 따라서 대기를 가르면서 여진족들에게 접근하자 여진족들은 방금 전까지 자신들의 동료

들을 죽였던 불길한 소리를 듣고는 재빨리 산개했다. 하도 많이 당한 후라서 산개만 잘 하면 조선군의 포탄이 별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 비격진천뢰의 약선은 그 명을 다하고 있었다.

"꽈과과광!!!"

진천뢰라는 이름에 걸맞게 벼락같은 폭음이 여진족들과 말들의 귀를 울렸다. 그리고 비격진천뢰의 내부에 있던 철 파편

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폭탄은 공중에서 터져야지 더 위력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균이 여진족들의 머리위에서 폭발

하도록 잔머리를 굴려두었기에 철 파편들은 자신들의 효과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으아아악~!!!"

"와아아아~!!!"

비격진천뢰 수백 개가 일제히 여진족의 머리위에서 터지는 것은 비명소리와 환호성을 교차시켰다. 철 파편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제 동료들의 모습을 보던 여진족 기병들의 입에서는 죽어가는 사람들 못지않은 비명소리가 나왔지만 눈앞에 모

습을 드러낸 엄청난 수의 기마대를 두려워하던 조선군 병사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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