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228)

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그러나 주셔리군의 전군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한때 5천에 달하던 주셔리군의 기병중에서 이제 남은 것은 반수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병력이 줄어든 대신 살아남은 자들은 전투경험이 많은 노련한 전사들이었다. 그래서 아까 전처럼 동료들의 시체에 걸려 넘어가는 추태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거기다 그들에게는 다행이도 편전은 그 길이가 짧아서 통아라는 발사보조도구에 끼워서 발사를 하는 바람에 장전시간이 다

른 화살보다 많이 걸렸다. 그래서 조선군은 장거리 공격에는 편전을 단거리 공격에는 장전을 많이 사용했다. 물론 장전이라

고 해도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길이의 화살에 불과하다.

"여진족이 계속 접근해온다! 이제부터는 편전을 대신해 장전을 사용하라!"

"적은 빠르게 움직이는 기마병이다. 세세히 조준하지 말고 최대한 연사하여 적의 돌격을 막는다!"

그래서 임시 궁병대를 지휘하는 위장 오운과 부장 이상헌의 지시에 따라 조선군의 궁수들은 자신의 활시위에 장전을 걸기 

시작했다. 장전은 사거리는 짧지만 연사력이 편전보다는 낫기 때문에 이미 양군의 간격이 많이 줄어든 이상 장전이 유리했

다. 하지만 조선군의 편전공격이 잠잠해지자 돈고호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조선군의 공세가 뜸하다! 이틈을 이용해서 최대한 적진으로 붙어라!"

"장군! 맥궁의 사격은?"

"나중에 발사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적진에 바짝 접근하여 적의 포격을 피하는 것이다!"

"씨우우웅~! 꽈과과광!!!"

지금 주셔리군의 주변에 떨어지는 비격진천뢰는 아까 전처럼 연기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철파편을 사방으로 비산했다. 덕분에 

비격진천뢰의 살상반경 안에 들어간 여진족과 말들의 피로 대지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렇게 비격진천뢰가 떨어지고 있는데 맥

궁을 날린다고 폼을 잡는 것은 곤란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조선군 보병진지로 돌입하는 것은 자살행위입니다."

"나도 알아! 그대로 돌격만 하다가는 조선군과 너연, 야류장군 사이에서 우리의 희생만 커진다! 힘껏 돌격하고 조선군에게 우

리 맥궁의 위력을 보여준 후 측면으로 빠진다! 그러면 너연, 야류장군의 반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군!"

지략이 부족한 돈고호리였지만 최소한 일군을 지휘할 능력은 갖추고 있는 장수였다. 후방의 너연, 아류장연합군에게 떠밀려 조선군에게 돌격을 강요당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당할 인물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병력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그가 지휘하는 부대는 소수정예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장기인 기동전을 벌이기에는 오히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 셈이었다. 돈고호리는 병사들을 격려하면서 빠르게 조선군 진형으로 접근했다. 비록 많은 병력을 잃어버렸지만 조선군이 잠시 공격을 늦춘 사이 정신을 차린 여진족 전사들은 다시 한 번 힘을 내고 있었다.

"저…저것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녀석들이지?"

"세상에! 전력의 절반이 날아갔는데도 오히려 힘을 내서 돌격해오는 놈들이라니……."

상식을 뒤엎는 주셔리군의 힘찬 돌격에 조선군 진형은 크게 당황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질렸다고 할 수 있었다. 싸우다가 죽는 사람보다 도망가다가 죽는 사람이 많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조선군으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그들은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균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척박한 만주에서 다른 부족들과 매일 싸우면서 살아온 민족답게 여진족은 강하구나. 여진족 중에서도 가장 약하다는 장백여진이 저 정도인데 그보다 북쪽에 있는 여진족들은 얼마나 강할까? 아니 여진족보다도 강하다는 몽골족은 도대체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는 말인가? 우리 조선기병으로는 상대할 엄두도 나지 않는구나."

균이 한탄을 하는 것처럼 지금 조선군의 전면으로 돌격해오는 주셔리군의 기세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들의 돌격을 그대로 지켜볼 균과 조선군이 아니었다. 포병은 계속해서 비격진천뢰를 주셔리군의 머리위로 날렸고 궁병은 화살을 비 오듯이 쏘아댔다. 거기에 위장 유태수와 부장 남창완이 임시로 지휘하는 총병들이 가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총구를 간단히 청소한 후 페이퍼 카트리지와 철제 장전봉을 이용해서 신속하게 장전을 마친 그들은 화승에 불을 붙이고 앞에 총 자세로 명령을 기다렸다. 얼핏 보아도 그들은 지난번 온양전투의 총병들과는 다르게 보였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내금위 예하의 수도여단소속의 병사들로 벌써 수년간 소총에 숙련된 병사들이었던 것이다.

"위장영감. 사격준비가 끝났사옵니다."

"좋네. 그럼 궁병의 사격이 끝나면 삼단사격술을 실시하게."

"예. 영감. 전 병사들은 들어라! 지금부터 삼단사격술을 실시한다! 1열은 무릎 앉고 2, 3열은 뒤에서 대기하라!"

올해로 입대한지 만 2년, 햇수로는 3년이 된 갑사 신승현은 지휘관인 남창완의 명이 떨어지자 즉시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

고 앉았다. 그리고는 구령에 맞추어 비금도 소총을 들어 앞쪽을 겨누었다. 길이가 1보(1.24m)에 달하는 비금도소총은 

신장이 150~160cm에 불과한 조선인에게는 상당히 버거웠다.

'57식 북한산소총인가? 그것은 짧아서 다루기 편하다고 하던데 그것이나 지급해줄 것이지 이렇게 무겁고 긴 총을 주다니…….'

하지만 별 수 없었다. 균도 하루라도 빨리 더 좋은 총으로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싶어 책임자인 나원호는 물론이고 실무진

인 유재영과 신해영까지 갈구였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승현은 물론이고 그의 동료들도 무거운 비

금도 소총를 탓하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무기였기에 다시 한번 총의 이상유무를 검사했다.

"두두두두."

여진족이 가까이 다가왔는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고 오른쪽 무릎에는 미세한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신승현은 고개를 가까이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여진족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의 바로 앞쪽에는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보병대가 있었기에 앉자

있는 상태의 그로써는 땅의 울림과 소리로만 여진족의 접근을 알 수 있었다.

"보병대 좌우로 이동!"

보병대 지휘관 이강민의 목소리가 들리자 신승현의 앞쪽을 가리고 있던 보병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덕분에 신승현등 총병들

은 여진족이 날리는 화살에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었지만 그 대신 자신들을 향해서 돌격해오는 여진족 기마대를 확실히 보고 조준할 수 있었다.

"전방의 적을 향해 조준!"

처음에는 그 윤곽만 보이던 여진족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커졌다. 후방의 포병과 궁병이 발사한 비격진천뢰와 화살

이 머리위로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달려오던 여진족과 말들을 차례로 쓰러트렸지만 아직 여진족의 수는 많게만 보였다.

"저기 막대기를 든 녀석들은 뭐야? 조선군이 저렇게 무장이 부실했나?"

한참동안 돌격을 가장한 도주를 하고 있던 돈고호리와 주셔리군은 곧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조선군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고작 쇠막대기로 무장하고 있는 조선군 보병의 현실에 혀를 찼다. 비록 포격이 요란하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보병이 저렇게 부실하다는 것을 알게 된 돈고호리는 딴 생각을 했다.

'그냥 적진으로 돌격을 계속할까? 어차피 이렇게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옆으로 방향을 틀어 도주하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 일인데 조선군이 저런 상황이라면 한 번 해볼만 하지 않을까?'

돈고호리의 생각대로 달리고 있는 말이 단번에 방향을 바꾸는 것은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서 그의 계획대로 측면으로 방향을 틀어 도주하려면 지금보다 느리게 달려야 하고 또 조선군에게 측면을 들어내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돌격해서 저 마귀 같은 조선왕을 때려잡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대로 돌격한다! 적진을 돌파하여 동료들의 원한을 갚자!"

"와아아~!"

돈고호리가 균을 때려잡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서 다시 정면돌파로 작전을 바꾸었을 무렵 쇠막대기를 들고 있던 조선군들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그 쇠막대기를 들어 자신들에게 겨눈 것이다. 돈고호리등은 막대기를 들고 이상한 짓을 하는 조선군들이 단체로 미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하긴 저 마귀가 왕으로 있으니 조선군들도 미칠만 하겠지.'

화약무기라고는 조선군이 가끔씩 사용하는 신기전을 구경한 것이 전부인 여진족에게 신무기인 총의 등장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그래서 돈고호리는 모든 의문점을 다 균에게 떠넘겼다. 승리의 달콤함에 눈이 멀어 자신들이 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 돌격하고 있는지를 잠시 잊어버린 것이다.

주셔리군이 조선군 진형에 가까워지자 조선군의 화살은 계속 날아들었지만 포격은 멈추었다. 이에 돈고호리와 기병들은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더욱 속도를 내서 조선군 진형에 다가갔다. 그런데 선두로 달려가던 기병이 이유도 없이 갑자기 쓰러졌다.

처음에는 조선군의 공격으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일정한 선을 넘는 아군 기병이 모두 쓰러지자 돈고호리는 당혹스러워 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정찰병을 보내 조선군의 대기병장애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지역이었고 그 후에 조선군이 장애물을 설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 그 곳에 도착한 돈고호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푹~!!!"

"이런! 건천을 이용한 방어진이란 말인가?

그랬다. 원래부터 전장인 함흥평야는 성진강과 광포강이 함께 만들어낸 충적평야였다. 두 강은 서로 합치고 나누어지는 것을 반복하면서 함흥평야를 만들었는데 덕분에 함흥평야의 곳곳에는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던 건천이 곳곳에 있었고 조선군의 진형은 바로 그런 건천을 이용한 것이었다.

조선군이 방어선으로 삼은 건천은 주변의 대지와 별로 차이가 없을 정도로 깊이는 깊지 않지만 대신 너비는 상당한 곳이었다. 하지만 건천은 토질이 부드럽고 수분이 많은 곳이라서 기병의 진격에는 좋지 않은 곳이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불리한 것도 아니다 . 더욱이 지금은 겨울철이라서 수분이 많은 건천은 단단하게 얼어붙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군이 방어선으로 삼은 건천은 원래라면 여진족 기병의 장애물이 될 수도 없고 여진족의 정찰병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균이 이끌고 온 1만의 일꾼들이 그냥 놀고 있었을까? 만일 그 일꾼들이 강줄기의 일부를 건천으로 돌려놓았다면 상황은 180도로 달라진다. 더욱이 오후 2시경, 하루 중에서 가장 기온이 높은 때라면 그 상황은 더하다.

아침 무렵에 얼어붙어 있던 건천은 기온이 올라가면서 점차 해동되기 시작했다. 물론 지표면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갑자기 근처의 하천에서 물이 유입되면서 상황은 급진전됐다. 물이 흐르면서 얼음의 한기를 빼앗아 가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건천은 유입된 물과 녹아버린 얼음으로 인해 질퍽한 진창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건천은 잘 달려오던 말에게는 끔찍한 곳이었다. 무거운 말이 달리기 위해서는 단단한 대지가 필요한데 진창이 생기면서 겁이 많은 말들은 갑자기 땅이 꺼지는 것에 놀랐다. 거기다 말 자신의 무거운 무게덕분에 깊지 않은 진창이나마 발목 깊숙이 빠지게 되며 달려오던 관성의 힘이 있는 바람에 결국에는 넘어지게 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아무리 기마술이 뛰어난 여진족들이라도 별 수 없다. 운좋게 진창에서 쓰러진 아군을 피한다고 해도 말과 함께 넘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아니면 말을 정지시키거나 옆으로 피해야 하는데 전력질주를 하던 말이 그렇게 하는 것은 묘기에 가깝다. 결국 주셔리군의 사람과 말들은 진창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뒤에서 달려오는 적군들을 먼저 노린다! 쏴라!"

"타탕~! 타타탕~!! 타타타탕~!!!"

이때를 놓칠 조선군이 아니었다. 1천명의 총병들은 일제히 방아쇠를 당겼다. 화승에 의해서 점화된 화약의 힘으로 1미터에 달

하는 소총의 총신을 벗어난 탄환은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비행했다. 한참을 날아온 탄환은 흥분한 말을 달래서 속도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쓰던 뒤쪽의 기병들에게 날아갔다.

"으아아악~!"

"히히잉~!"

조선군의 탄환을 유효사정거리 내에서 뒤집어쓴 여진족들은 붉은 피를 뿌리며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주인을 잃은 

말들은 총소리에 놀라서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갔고 진창에서 미끌어지거나 쓰러지면서 이제 막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려는 여

진족 기병들을 덮쳤다. 덕분에 일부 여진족들은 말에 깔려죽거나 질식해서 목숨을 잃었다.

"제 이열 전진! 전방에 조준! 쏴라!"

"타탕~! 타타탕~!! 타타타탕~!!!"

하지만 조선군의 공격은 전혀 늦추어지지 않았다. 숙련된 병사들이 사용하는 비금도 소총은 장전보조도구가 우수하여 아주 빠

르면 1분정도 만에도 재장전이 가능했다. 거기다 원칙대로라면 총구를 청소하고 발사하는 것이지만 급하면 그 과정은 생략해

도 되기에 조선군의 소총은 20초만 한번씩 여진족을 향해 발사되었다.

"이럴 수가! 막대기가 불을 뿜다니!"

말이 진창에 빠져 낙마를 하는 바람에 군데군데 진흙을 묻힌 돈고호리는 조선군의 쇠막대기가 큰 소리를 내면서 불을 뿜는 것

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불 뿜는 쇠막대기에 맞아 진창과 대지를 붉게 물들이며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자

신의 병사들에게 돈고호리는 더욱 큰 충격을 받아야 했다.

잠시 정신이 나갔다가 돌아온 돈고호리는 남은 병력이라도 수습하려는 생각으로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주변에는 온통 조선군

에게 사살당한 시체들과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패잔병들뿐이었다. 조선군의 소총공격을 받기 전까지 최소 2천명의 병력을 유지

했을 것으로 생각되었던 주셔리군은 이제는 수백 명의 패잔병들만 남아 말의 시체 뒤에 숨어 목숨을 연명하는 처지였다.

"전하. 주셔리군의 돌격이 완전히 저지되었사옵니다. 기마대에서 출동을 허가해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만 지금의 상황으로는

 크게 필요 없을 듯하옵니다."

"아니다. 주셔리군은 무너졌지만 아직 너연, 야류장 두 여진족이 남아있고 그들 역시 함흥에서 한 죄과를 치러야 한다. 즉시 기

병을 출동시켜 주셔리의 패잔병들을 섬멸하라! 그리고 지금부터 아군에게 접근하는 후방의 여진족들에게 포격을 감행하고 동시

에 다리를 장착한 화약을 폭파시켜라!"

"예. 전하!"

"기병이 건너편을 정리하면 본진도 건천을 건너 진격한다. 이제부터 전면공세로 전환할 것이다."

하지만 전투가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비록 힘든 전투는 끝이 낫지만 아직 7천에 달하는 여진족이 있었고 균은 그들을 격멸하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균은 부장 박승진이 기병출정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는데도 기병의 출정을 명했다. 이제 조선군이 수세를 취할 필요는 없었다.

한편 균의 계책에 속아서 주셔리군을 강제로 조선군 쪽으로 돌격하게 만든 너연부의 장군 아패란과 야류장부의 장군 타오가치는 자신들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군 전방 500미터지점까지 진출해 있었다. 처음에는 주셔리부가 조선군에게 혼쭐이 나는 것을 반겼던 그들이지만 주셔리부가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는 반가워 할 수만은 없었다.

특히 초반부터 맹위를 떨친 조선군 포병과 마지막에 수천이나 되는 기병을 일거 몰살시켜버린 조선군 총병을 보면 더욱 그랬다. 아무리 밀약이 있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 조선군은 그들의 적이다. 그런데 5천이 넘는 주셔리군이 저항도 못해보고 무너질 정도로 조선군이 강하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주…주셔리군이 저렇게 무너지다니……. 아패란. 예상보다 조선군이 너무 강한 것 같소."

"나도 타오가치 당신과 같은 생각이오. 저 정도의 전력이면 주셔리뿐만 아니고 우리들 모두를 상대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설마!"

"아패란. 왜 그러시오?"

"타오가치. 혹시 조선왕에게 밀서을 받은 적이 있소?"

"그…그게 무슨 말이오?"

타오가치는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 조금 부자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래서 아패란은 자신뿐만 아니라 타오가치도 밀서를 받았다

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선군의 공격을 받고 유난히 화를 내던 돈고호리가 밀서를 받았을 확률도 적지 

않았다. 아니 그의 행동을 보아서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설마 우리의 내분을 조장하기 위한 거짓 밀서였다는 말인가? 그래서 가장 먼저 배신을 당한 돈고호리가 그렇게 격분했던 것이고!'

용맹을 숭상하는 여진족중에서는 제법 머리가 좋은 편인 아패란은 곧 조선왕이 자신들이 연합군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내분을

 부추겼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생각이 정리된 아패란은 즉시 전군에 소리를 질렀다.

"전군 즉시 후퇴하라! 함흥에 들리지 않고 바로 북쪽의 다리를 건너 부전령으로 철수한다!"

"아패란. 애써 얻은 물건들도 챙기지 철수를 한다니 갑자기 무슨 소리오?"

"타오가치! 당신도 죽기 싫다면 어서 병사들을 이끌고 부전령으로 철수하시오. 당신이 받은 밀서는 우리의 내분을 부추기려는

 조선왕의 음모요!"

"뭐!……."

"씨우우웅~! 꽈과과광!!!"

하지만 타오가치의 소리는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조선군 비격진천뢰의 폭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고 들을 필요도 없었다. 너연

과 야류장 연합군 7천명은 즉시 후퇴를 시작했다. 7천의 기병이면 충분히 조선군에 맞서 싸울 능력이 있지만 조선군 포병의 

밥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꽈과과아아앙~!!!"

전장인 함흥평야에서 바로 부전령으로 도주할 수 있는 북쪽의 다리와 함흥성으로 이어지는 동쪽의 만세교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

리더니 시뻘건 불꽃과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졸지에 철수로를 모두 잃은 여진족들은 크게 동요했고 사기가 급격히 떨어

졌다.

"이럴 수가! 우리를 여기서 모두 죽이려는 조선왕의 흉계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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