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선조
무진삼란(삼려의 난).
북쪽과 동쪽을 잇는 두 곳의 다리가 폭파된 이상 여진족이 함흥평야를 이탈하기 위해서는 서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주셔리군 5천명을 십여 분만에 괴멸시켜버린 조선군이 버티고 있다. 그래서 여진족들은 지형지물과 조선군에 의해서 완전히
포위를 당한 셈이었다.
아패란과 타오가치는 겁에 질려 무작정 후퇴하는 자신들의 부하들을 격려하고 안정시키려 했다. 여진족들은 처음에는 혼란스
러워 했지만 뒤쪽으로 한참을 달아나 조선군의 화포사정거리에서 벗어나자 점차 그 동요가 가라앉았다. 물론 두 장수의 격려와
전투민족인 여진족 자체의 특성 때문에 빨리 동요가 가라앉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 여진족은 배수진을 치
고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싸워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막다른 곳에 몰린 여진족들은 다시 사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냥 그대로 있어봐야 보급로와 퇴각로가 모두 끊어진 여진족들은 살아날 길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진족을 살기 위해서 싸워야 했고 포위당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투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래서 아패란과 타오가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우리는 7천의 기병을 보유하고 있고 조선군의 기병은 4천에 불과하다. 수적으로 2배가 넘고 질적으로는 서너 배에 달하는 기병 전력으로 조선기병을 격파하고 조선군 본진을 피해서 철수한다면 한번 해볼만하다.'
조선군의 강력한 부대인 포병과 총병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빈약한 기동력이다. 따라서 여진족들이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서 그들을 크게 우회한다면 기동력이 떨어지는 조선군의 주력부대는 구경만 해야 한다. 이때 조선군에게 여진족을 공격할 수 있는 전력은 기병밖에 없는데 조선기병 4천이면 그렇게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아패란. 우리 두 부족의 군대를 합치면 7천이나 되오. 한번 해볼만 하지 않소?"
"내 생각도 그렇소. 특히 우리는 발 빠른 기병으로 이루어졌으니 별 피해 없이 조선군의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것이오."
두 장수는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군대를 움직이기로 했다. 그래서 막 출전명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그 때 뒤에서 야류장군의 부장 하나가 달려오더니 타오가치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속삭였다. 아패란이 무슨 비밀이야기인가 싶어서 한 번 물어보았지만 타오가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별일이 아니라고 답했고 아패란도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조선군의 포격에 당하지 않도록 적 본진을 크게 우회해서 빠져나간다! 전군 진격!"
아패란은 서둘러 군대를 움직였다. 아무래도 조선군이 주셔리군의 잔당을 완전히 쓰러버리고 압박을 해오기 전에 도주를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류장군이 뒤에서 천천히 출발을 했는데도 전혀 괘념치 않았다. 손을 잡았지만 야류장군이 결국에는 아군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열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 최대한 빠르게 돌파한다!"
너연군은 싸울 생각이 없었기에 빠르게 이동했다. 전사가 된지 얼마 안 된 어린 전사들이 뒤에 낙오하는 경우가 생기기는 했지만
그들을 구한다고 여유를 부리다가는 더 많은 피해가 예상되었기에 너연군은 과감히 도주했다. 그들의 상대인 조선기병
은 비록 접근전은 약하지만 원거리 공격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흐흐흐. 애송아! 그 정도로 장수가 됐다는 말이냐? 여진족도 알고 보니 형편이 없구나 하하하!"
"괴…괴물이다!
겨우 진창에서 빠져나온 돈고호리는 이번에는 조선군 기마대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조선군 기마대는 옆
에서 주셔리의 패잔병들을 처리한 것이고 돈고호리는 웬 괴물을 만나서 질겁하고 있었다. 돈고호리라면 장백여진이 알아주
는 장사였지만 자칭 조선왕의 호위대장이라는 괴물을 더 대단했다.
"캉~!!"
"맙소사! 내 도끼가……!"
진창에서 빠져나온다고 힘을 다 써버린 돈고호리에게 임꺽정은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 물론 처음에는 둘이 어느 정도 상대가
되었다. 하지만 돈고호리는 지쳐 있었고 임꺽정은 피가 끓고 있었다. 거기에 돈고호리의 대부도 좋은 무기였지만 임꺽정의
대도는 조선에서도 이름난 장인이 만들어낸 명품이었다.
덕분에 최초 임꺽정의 일격으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던 돈고호리의 대부는 고작 몇 차례 부딪쳤을 뿐인데도 엿장수에게나 필요한 쇳덩이로 변해 있었다. 임꺽정은 산적시절에 자주 지었던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잃고 저항할 의도를 상실한 돈고호리를 칼등으로 때려 눕혔다.
"패잔병들은 모두 처리했사옵니다. 기마대가 선두에서 경계를 피는 상황에서 각 부대가 차례대로 건천을 도하중이옵니다."
"내분작전이 성공할 줄 알았다면 애써 건천을 만들 필요도 없었는데, 덕분에 아군이 도하하는데 시간이 걸리는군. 너연과 야류
장의 상황은?"
"너연군은 아군을 피해서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고 있사옵니다. 아군의 포격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이옵니다. 그런데 야류장군
은 이상하옵니다. 일단 너연군의 뒤를 따르고는 있지만 계속 너연군과의 차이가 벌어질 정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사옵니다."
"걸렸구나."
장수들의 보고를 받던 균은 야류장군의 움직임을 전해 듣고는 무척 좋아했다. 균은 두개의 다리를 모두 폭파시키지는 않았다. 그러
다가 배수진을 친 여진족에게 많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균은 북쪽의 다리는 완전히 부수고 동쪽의 만세교는 적당한 수준으로 폭파를 시켰다.
그 결과 여진족에게는 안전한 퇴로가 생겼다. 하지만 상당부분 훼손된 만세교는 한번에 많은 병력을 철수시키기에는 부적합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타오가치는 조선군의 시선을 너연군에게 돌리고 자신들은 만세교를 건너 도주할 요량으로 일부러 그 사실을 숨기고 도주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서진중인 너연군을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겠지. 즉시 기마대를 총동원하여 북쪽의 너연군을 공격하되 접근전은 불허하고 오르지 화살공격만 가해 너연군의 기동을 방해하라. 그사이 포병을 이동시켜 너연군을 다시 동북쪽으로 밀어버린다. 나머지 본군은 천천히 북동진하여 여진족에게 압박을 가해 적들이 혼란에 빠지도록 유도하라."
"예. 전하!"
건천을 도하한 조선군은 병력을 크게 두 부대로 나누었다. 균이 지휘하는 본대는 보병, 총병, 궁병으로 구성된 7천명의 혼성부대로 그대로 북동진해서 별동대에게 밀려올 여진족을 최종적으로 포위섬멸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기병과 포병 6천명으로 구성된 별동대는 북진하여 너연군의 탈출을 저지하고 본대가 기다리고 있는 북동방면으로 몰아넣는 작전이었다.
"쉬이웅~!"
"히히힝~!"
선두에서 진격하던 너연군의 기병들이 말에서 떨어졌다. 그들이 타고 있던 말들이 갑자기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전력질주
를 하고 있던 너연군은 갑자기 쓰러진 말들과 동료들을 피하느라 한참동안 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속도는 크게 느려지
고 그들의 대열은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너연군이 혼란스럽기를 바라기라도 했다는 듯 남서쪽에서 수많은 화살들이 나타나더니 빠른 속도로 공기를 가르며 너연
군의 대열로 행했다. 덕분에 수많은 병사들과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곧 자신의 팔에 박힌 편전의 존재를 확인한
한 병사가 자신의 동료들에게 외쳤다.
"편전이다! 조선군이 나타났다! 윽~!"
하지만 그사이 조선군의 편전이 한 차례 더 날아들었고 그 병사는 소리를 치다가 말고 편전에 맞아 그대로 절명했다. 그리고 그
옆에서 그런 것을 지켜보던 여진족들은 예상보다 빠른 조선기병의 출현에 당황해 하면서도 지휘관들의 통제를 받아 서둘러 동
료들의 시체를 남기고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편전은 그 긴 사거리만큼이나 조선의 적군에게는 위협적인 무기였다. 사거리가 1km를 넘어가니 편전를 발사한 조선군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너연군이 조선군의 위치를 알아내는 데는 한참의 시
간이 걸렸다. 그것도 조선군의 기마부대가 달려오면서 나타나는 소리와 먼지 때문에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이런 남서쪽에서 출현하다니 우리가 이쪽으로 도주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저것들과 싸울 수도 없고, 별 수 없군. 맥궁
으로 조선군을 견제하면서 계속 진격한다! 여기서 발목이 묶이면 안 된다!"
"궁을 가진 자들은 어서 활을 쏴라!"
여진족의 궁사들 역시 맥궁으로 반격을 가했다. 여진족의 맥궁 역시 조선군의 각궁과 같은 활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우수
한 활이었지만 편전 같은 장거리 화살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 덕분에 여진족 궁사들이 힘껏 잡아당긴 활시위에서 날아오
른 화살들은 조선군의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땅으로 파고들었다.
"무리하게 싸우지 말고 적과의 거리를 유지하라! 지원군이 올때까지 어떻게든 버티어야 한다!"
그렇게 여진족의 원거리 공격이 무력하다는 것을 확인한 위장 남언순은 균의 명령을 받들어 원거리에서 적을 요격하는데 치중했다
. 안 그래도 그가 지휘하고 있는 1사단의 전력은 기병 2천명에 불과했다. 그런 전력으로 여진족 기병 4천과 맞붙는 것은
괴멸을 의미했다. 이윽고 다시 한 번 조선군의 각궁에서 편전들이 비행을 시작했다.
약 1천여 발에 달하는 편전의 비행집단과 마주친 너연군은 남서쪽에 있던 병사 백여 명이 편전에 맞아 말에서 떨어졌다. 다섯 차
례의 편전공격으로 몇 백 명이나 되는 병력을 잃어버린 너연군들은 이러다가는 조선군의 편전공격으로 전멸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래서 아패란은 그냥 상대하지 않고 도주하려던 자신의 계획을 수정했다.
"전군 돌격하라! 귀찮은 조선군 기병을 일단 상대한 후에 계속 이동한다!"
"와아아아~!"
아무래도 여진족기병이 조선기병보다 우수한 분야는 접근전이다. 물론 철제무기의 성능면에서는 조선군이 우세하지만 여진족의
기마술은 그 정도는 충분히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너연군이 향하는 지역은 조선군의 본진에서 멀어서 포병의 지원을
받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래서 여진족들은 윙윙거리는 모기를 때려잡고 이동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 조선군의 숫자가 적었기 때문에 만만해 보인다는
장점도 있었고 평야지대라서 조선군이 꼼수를 불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낙관한 덕분이기도 했다. 때문에 여진족들은 거칠 것 없이 내달렸다.
"두두두두~!"
"여진족이 몰려온다. 일단 장전된 편전을 발사하고 최고속도로 남쪽으로 이동하라! 절대 접근전을 벌여서는 아니된다!"
여진족이 접근하자 조선기병들은 미련 없이 남쪽으로 후퇴했다. 하지만 여진족의 기마술이 워낙 훌륭한지라 조선군이 전력으로
도주하는데도 여진족은 빠른 속도로 간격을 줄이고 있었다. 간격을 줄인 여진족들은 다시 맥궁을 손에 잡았다. 저 정도 거리
라면 조선기병은 맥궁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있었다.
"쒸웅~! 쒸웅~!"
"제기런! 2사단과 포병대는 무엇을 하는 거야!"
방금 전까지 편전으로 여진족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조선기병들은 이제는 그 형세가 역전되어 두 배는 많은 여진족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조선기병의 뒤를 쫓는 것은 여진족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발사한 화살들이 조선기병의 머리위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는 조선군들이 화살에 맞아서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조선군들에게는 이런 일을 대비해서 균이 나누어준 질려포통(손으로 던지는 일종의 수류탄)이 있었지만 심지에 불을 붙이 틈조차 없을 정도로 여진족의 추격을 대단했다. 더러 질려포통에 불을 붙이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속도가 느려지는 바람에 여진족의 화살세례를 받아야했다. 그래서 남언순은 다급히 구원을 요청하는 화전을 쏘아 올려야했다.
"1사단이 너연군의 공격을 받아서 후퇴중이옵니다."
"뭐? 2사단과 5사단은 무엇을 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직 합류하지 못한 듯하옵니다."
본대 7천명을 이끌고 북동쪽으로 진격을 하고 있었던 균에게 화전을 확인한 이순신이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균은 잠시 얼굴을 찌푸렸지만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말투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이런 너무 거리가 멀어서 어떻게 할 도리도 없고 도망치면서 질려포통만 던졌어도 도망칠 틈은 있었을 텐데, 일단 2사단과 5사단이 빨리 합세하기를 바라는 수밖에는 본대에서 할 도리가 없다. 본대는 여기서 대기하여 보조를 맞추고 전령을 파견해서 상황을 상세히 조사하라."
"예. 전하."
조선군의 원래 작전은 2개 기병 부대중 하나는 너연군의 발목을 잡고 하나는 주셔리군의 잔당을 소탕한 후 합류하여 너연군의 이동을 저지하며 그사이 포병이 접근해서 너연군을 북동쪽으로 밀어버리고 이를 조선군 본대가 포착 섬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사단이 후퇴하면서 조선군의 작전은 차질을 빚었다.
화전을 확인한 2사단의 임꺽정과 5사단의 변양좌는 1사단이 남쪽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다시 전장을 재설정했다. 1사단이 남쪽으로 후퇴하면서 여진족이 서쪽으로 도주할 수 있는 길이 열려버리는 문제가 있었지만 최소한 2개 사단에게는 이동거리가 짧아지는 장점이 있었다.
"위장영감. 여진족이 예상보다 빠르게 남하하고 있사옵니다. 하니 이쯤에서 화포를 방렬한다면 현자총통은 충분히 사거리가 될 듯 하옵니다."
"좋네. 일단 현자총통은 이곳에서 방렬하여 1사단의 후퇴를 돕고 대완구는 계속 이동하는 것이 좋겠구만. 그럼 현자총통은 자네가 지휘하여 1사단을 지원하게."
이동거리가 짧아진 덕분에 가장 큰 덕을 본 것은 포병이었다. 조선군의 포병은 포가와 바퀴가 달린 화포를 보유한데다가 자체에 말과 소, 수레를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보급품을 나르는 일꾼중 상당수를 탄약수로 지원받고 있었다.
덕분에 거의 이동력이 없을 것이라는 여진족의 기대와는 달리 일반 보병보다도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여진족들이 알아서 포병의 사정거리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1사단이 발사한 화전을 보고 대강의 적 위치를 파악한 부장 이진건(고칩니다.)은 수백 문에 달하는 화포를 방렬하고 예상되는 지점을 조준하도록 했다. 그리고는 지원포격을 시작했다.
"방포하라!"
"펑~! 퍼엉~! 퍼엉~!"
현자총통에서 발사된 수백 개의 쇠공은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그들은 아직도 전방으로 이동중인 변양좌의 포병대를 지나
서 한창 도망치느라 정신이 없는 조선 기병의 머리 위를 지났다. 그리고는 한창 조선군의 뒤를 쫓고 있던 여진족의 머리 위마
저 지나서 뒤쪽에 떨어졌다. 여진족의 진격속도가 너무 빨라서 계산이 틀렸기 때문이었다.
비록 비격진천뢰가 아니고 조준도 잘못되어 별 피해가 없었지만 예상치 못한 조선군의 포격을 받은 여진족들은 크게 당황했다. 자신들의 뒤쪽에 포탄이 털어진다는 것은 자신들이 조선 포병의 사정권내에 있다는 소리가 되고 그렇다면 그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비격진천뢰가 날아올 수도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철수한다! 전군 반전하라!"
여진족들은 바로 추격을 중단했다. 그리고는 다시 왔던 길을 따라서 북쪽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한숨을 돌린 남언순과 조선기병들의 눈에 반가운 사람들이 보였다. 임꺽정이 임시로 지휘하고 있던 2사단이 도착을 했기 때문이었다. 1사단이 다소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두 부대를 합치면 기병이 4천에 가깝다.
여기서 합세한 조선기병은 북쪽으로 달아나는 너연군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너연군은 3500여명이고 조선군은 3800여명이라서 수적으로는 비슷했지만 아까 전 비격진천뢰의 일제 폭발로 인해 주셔리군이 무너지는 모습을 기억하는 너연군은 포병의 지원을 받은 조선군과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진족들이 서쪽으로 도주해서는 안 된다! 계속해서 몰아붙여라!"
조선군들은 집요할 정도로 너연군이 서쪽으로 도주하지 못하도록 밀어붙이는데 주력했다. 조선군의 기동을 본 너연군은 서쪽을 차단하고 동진해오는 조선군과 싸우지 않고 동쪽으로 물러났다. 물론 그러면서도 조선기병이 포병의 지원을 받고 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피며 반격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일단 천천히 물러나라! 기회를 보아서 조선포병의 사정거리를 충분히 벗어나면 반격하던지 아니면 후속해오는 야류장군의 지원을 받아서 활로를 뚫는 거다!"
아패란은 빠르게 철수하여 조선 기병과 포병을 분리시키고 후방의 야류장군의 지원을 받아서 일거에 조선기병을 괴멸시키고 퇴각로를 확보할 요량이었다. 그리고 그런 전법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야류장군이 제자리에 없었다.
너연부가 조선기병을 추격하자 타오가치는 다시 동쪽으로 돌아갔다. 거기서 반파된 만세교를 통해 전장에서 이탈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잠시 후 낙오한 야류장군의 병사에게서 그런 사실을 전해들은 아패란은 크게 노했다. 주셔리부라는 강한 전력을 내분으로 잃어버린 것도 분한데 또 내분으로 인해서 전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바보 같은 타오가치. 내가 내분이 일어나면 그 누구도 만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누누이 말했거늘, 저런 배신을 하다니……."
하지만 이미 배신한 타오가치를 욕해봐야 아패란에게는 득이 없었다. 그보다는 무슨 일이 있어도 최대한 많은 병력을 살아서 복귀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아니면 야류장군을 공격하여 장백여진의 세력균형을 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다.
'본거지에 남은 병력은 주셔리가 5천, 우리 너연과 야류쟝이 각각 4천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전멸하고 야류장이 탈출에 성공하면 최강자가 된 야류장이 최약체가 된 우리 너언부를 공격해 올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어차피 우리 너연군이 도망칠 곳은 없으니 야류장을 공격하여 세력을 맞추는 것이 우리 너연을 위한 일이다.'
아패란은 강대한 적인 조선군을 나두고 한때 아군이었던 야류장군과 싸우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함흥전투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야류장군을 쳐부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아패란은 주저하지 않고 군대를 동진시켰다. 덕분에 열심히 추격하고 있는 조선군 별동대만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점차 멀어져 가는 너연군을 추격했다.
한편 반파된 만세교에 도착한 타오가치와 야류장군은 먼저 급조된 방어진지부터 구축하기 시작했다. 조만간에 도착할 조선군과 너연군의 공격으로부터 다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방어진지를 대강 완성한 야류장군은 만세교을 통해서 병력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곧 조선군과 너연군이 들이닥칠 것이다. 필요 없는 물건은 다 여기서 버리고 최소한의 물자만 휴대하고 건너라!"
하지만 반파된 만세교는 결코 대병력을 철수시키기에는 좋은 곳이 아니었다. 더욱이 야류장군은 기병이었기에 말과 사람이 같이 건너야 했으므로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성진강을 무사히 건넌 야류장군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게 철수작전이 더디게 진행되는 사이 아패란의 너연군이 서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네 이놈! 타오가치! 감히 우리를 미끼로 삼아서 달아나려고 하다니,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흥! 그러면 다같이 사이좋게 여기서 죽자는 말이냐?"
"7천의 기병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우리는 단 4천으로도 조선군을 남쪽으로 밀어붙였어! 그런데 네놈들이 배신하는 바람에 이렇게 다시 북동쪽으로 밀려온 것이다!"
"조선군의 포격을 피할 묘책이라도 찾은 모양이니 열심히 싸워보게. 나는 더 안전한 길을 택할 테니 말이야."
"말이 필요없구나! 네놈을 잡아죽이지 않으면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하느냐? 어서 장백여진의 수치인 저 배신자들을 처단하라!"
아패란은 그동안의 지적인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흥분을 하면서 타오가치를 몰아붙였다. 그리고는 바로 싸움을 걸고 공격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미 방어준비를 한 야류장군이 우세했다. 하지만 야류장군은 원래부터 수가 적은데다가 소수의 병력이나마 계속해서 철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너연군이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