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00화. 프롤로그
20XX년 4월 어느 날.
대한제국(大韓帝國)의 서울(구 한성부)의 신新 국립중앙박물관.
이 박물관에 오늘은 어느 고등학교에서 견학을 왔는지 많은 사람들이 유물들을 구경하는데서도 아이들은 떠들고 있었지만 담임으로 보이는 여선생님의 말에 조용해졌다.
"자, 여러분.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대한제국의 지도에요."
선생님이 가르킨 지도는 지금의 대한민국 전도와 상당히 많이 달라있었다.
중국은 황하를 경계로 수도가 남경(南京)으로 되어있지만 여러 성省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동북 3성省을 포함한 만주와 간도, 그리고 연해주는 현재 대한제국의 영토가 되어있으며, 일본은 일본 주(日本 洲, State of Japan)라는 지명과 함께 수도는 도쿄(東京)로 되어있지만 16개도로 행정구역이 분할되어있었으며 미 대륙 중서부와 알래스카를 포함한 캐나다 중서부 그리고 타이완(臺灣)과 홍콩(香港)은 자치주로 표시되고 있었다.
현재 대한제국의 인구는 약 1억 5천만- 2억. 수도는 신시(伸市)로 반도의 북부, 이전에 평양이라 불린 곳에 위치해있다. 또한 동남아 국가들과 연합체제를 구성해 통합 아시아 연합(統合 亞細亞 聯合, Pan Asian Union)으로 세계에 알려져있고 그 인구를 합치면 미국 인구의 1.5배가량된다. 또한 국체는 입헌군주제와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의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한 곳에 멈추었다. 그 장소에는 조선 전래의 조총들이 개발자들의 이름과 같이 전시되어있고, 동시대 서양의 소총도 있었다.
"여러분, 이것은 비금도 소총과 북한산 소총으로 우리나라가 조선이라 불리던 시절에 자체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소총이에요.
비금도 소총은 말 그대로 비금도에서 개발한 조총이죠. 개발자는 당시 비금도 병기부 담당인 나원호에요. 그리고 이 비금도 소총은 저기 보이는 북한산 소총의 시험판이자 원형이기도 하고요.
이 북한산 소총은 지금도 남아있는 북한산성 병기창에서 제조된 소총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고 개발자는 여기있는대로 유재영과 신해영이죠. 이 소총은 수석식으로 당대의 화승총이라 불리는 1세대 소총과 다른 2세대 소총이에요. 그리고 이 두 소총 밑에 보이는 것들은 이들에게서 진화한 소총들과 당대 서양의 소총입니다.
비교해봐도 당시 조선 소총이 서양의 것에 비해 뒤지지않고 오히려 앞서고 있지요."
선생님이 설명하자 아이들은 놀라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
균이 만든 비금도 상단은 시간이 지나 외수사, 제국 비금도 상회, 대기업체로 바뀌어 지금은 제국 최대 기업중 하나로 되어있고, 상단 시대에 가지고있었던 농업부, 병기부등은 자회사 형식으로 분리되어 제국을 받치는 기업들중 하나로 남아있으며 황세자들의 제왕학 교육등의 일환으로도 쓰이고 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제국 비금도 주식회사(帝國 飛禽島 株式會社, Imperial Bigum Island co., ltd)는 현재 제국의 다국적 기업중 하나죠.
제국 비금도 주식회사는 조선 시대에 상단으로 출발했는데 아직 왕실의 종친으로 하성군이라 불리었던 조황(祖皇) 선조께서 만든 것이라고 하지요. 당시 그분과 같이 상단을 만든 사람들도 기록에 남아있는데 황재훈, 나원호, 김호진이라고 하지요."
"그럼 당시 조황의 나이는 몇이었나요?"
"믿기어렵지만 9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비금도 조총을 개발하신 분도 조황이시죠."
선생님의 말에 학생들은 웅성였다.
"...믿을수 없네요."/"정말이야."/"미래를 아셨던 게 아닐까?"
"그렇죠."
"그리고 비금도 상단은 처음에는 천일염(天日鹽)으로 시작해서 품목을 여러 개로 늘려 거대한 상단이 되어 지금은 제국의 다국적 기업이 되었죠."
"그럼 나상(羅商)은요?"
처음에 비금도 상단의 나주 지부로 출발한 김형중의 나상은 시대변화에 따라 외수사에서 독립해, 지금은 제국 비금도 주식회사와 같이 제국을 떠받히는 다국적 기업으로 남아있었다.
"나상도 마찬가지에요. 나주 상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제국 상회, 그리고 지금의 제국 나주 주식회사로 현재 제국의 다국적 기업중 하나죠. 기록에 의하면 제국 나주 주식회사의 전신인 나상도 역시 선조께서 만드신 거라고 합니다. 나상의 초대 대방이었던 김형중도 조황의 가신(家臣)으로 알려져있죠."
"...대단하신 분이군요. 어린 나이에 상단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요."
"맞아요. 하지만 그분이 이런 상단을 통해 제국의 기초를 놓았다는 것도 중요한 사실이에요.
이를 통해 서양식 절대군주제와 중상주의로 나라를 이끌게 되었고, 마침내는 제국이 탄생하게 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갔는데 그곳에는 일반 조선시대의 책보다 약간 두께가 두꺼운 책이 양 옆으로 펼처져 보는 사람들을 의아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여러분, 이것은 선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백과사전이에요.
이것은 서울이 옛 한성부라 불리었을 시대에 경복궁의 제궁에서 발견된 것으로 내용을 보면 지금의 백과사전과 거의 차이가 없어요. 학자들은 이것을 선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추측하고 있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때 선조 이전의 것이라 생각되요. 하지만 선조 이전 시대에는 백과사전과 비슷한 것은 있었지만, 지금의 백과사전과 구성과 내용이 거의 동일한 것은 이것이 유일한 것이에요."
"선생님, 그럼 선조 이후시대는 어땠나요?" 어느 아이의 질문.
"선조 재위를 기점으로 서양 문물이 어느 정도 우리나라에 유입되고 이후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학자들은 추정하지요. 또한 이상한 것은 지금의 시멘트와 거의 비슷한 조성의 시멘트나 기중기가 성곽축조에 사용되고있었다는 거지요."
이 말에 아이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럼 선생님은 그것이 여기, 백과사전에 나왔다고 생각하시나요?"
"실제로 그런 증거는 없지만 정황증거는 많아요. 그리고 또 하나, 선조실록은 아니지만 다른 기록에는 황실 정보부장인 박규남과 함께 색목인 윤소희(色目人 奫笑僖) 또는 구리수(久悧遂)라고 표기된 서양인이 선조를 뒤에서 도왔다고 하지요."
"그 외국인의 진짜 이름은 누구고 어디에서 왔을까요?" 다른 아이의 질문.
"학자들은 그 외국인을 영국인, 그것도 여성으로 여기고 있어요."
"그 시대의 영국 여성이 어떻게 제국까지 흘러들어왔나요?"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그 영국 여성은 귀족으로 카타이와 지팡구를 찾기위해 배를 타고 왔지만 좌초해 제국, 그 당시 이름으로 조선 서해에 표류해왔다고 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서양에 카타이와 지팡구로 알려지게 된 것은 베네치아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때문이지요. 그리고 카타이는 지금의 중국, 그리고 지팡구는 일본이에요.
학자들이 당시의 영국과 조선의 여러가지 기록을 대조해본 결과 그 영국 귀족의 이름을 알게되었지요. 그녀의 이름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흥미진진했는지 계속 귀를 세우고 듣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