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228)

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01화. 다른 두 곳에서... 

1565년 7월 3일 아침. 

조선의 한성, 경복궁 근정전. 

이곳에서는 이제 조선왕조 14대 왕으로 등극하는 이균의 모습이 있었다. 

용상을 중심으로 늘어선 문무백관들, 그리고 근정문이 개방되면서 이제 왕복을 입은 된 균이 서서히 근엄하고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입장하고 있었다. 용상이 보이자 균은 오른쪽 경사면 계단을 올라 용상 앞에 서자 문관 누군가가 왕대비 박씨가 내린 즉위 명령서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고, 이어서 옥새가 균의 손에 들어왔다. 

옥새를 받고 여러 의식이 끝나자 균은 용상에 좌정했다. 그러자 영의정 이준경의 제창을 시작으로 모인 문무백관들의 천세 소리가 근정전에 울려퍼졌다. 

"주상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主上 殿下 千歲! 千歲! 千千歲!)" 

"주상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主上 殿下 千歲! 千歲! 千千歲!)" 

"주상 전하 천세! 천세! 천천세!(主上 殿下 千歲! 千歲! 千千歲!)" 

균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신의 사명을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의 정체된 조선을 완전히 다시 바꿀 것임을... 

조선의 반대쪽... 유럽. 

이때의 영국은 메리 1세의 신교 탄압이후, 엘리자베스 1세(출생: 1533.9.7, 재위: 1558.11- 1603.5.24)시대로 1559년에 영국 의회는 영국 내 교황의 권력을 폐지하는 최고권 율령(Act of Supremacy)와 영어 기도서와 영어 예배를 의무화하는 종교통일령(Act of Uniformity)를 가결했으며, 1563년에는 39조령(39 Articles)가 제정되어 영국 성공회(Anglicans)의 신조가 되었다. 

하지만 이때문에 영국은 당시의 강대한 카톨릭 국가인 스페인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었으며, 1554년 메리 1세(블러디 메리)에 의해 문장원(紋章院)이 정식 설립되자 노포크 공 하워드 가家는 문장원의 세습장관으로서 영국의 대내 정보기관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는 이것에 만족하지않고 대외정보기관을 생각중이었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후의 일이었다. 또한 영국은 스페인과 포르투칼이 독점한 신대륙 개척과 별도로 해외시장개척에 나섰는데, 중국으로 가는 북동항로를 찾아나선 챈슬러는 모스크바로 가는 북동항로를, 프로비셔는 북서로 갔으나 북극에서 길이 막혀 돌아오고 마는 일이 생겨났다. 

이 시점에서 이미 마르틴 루터에 의해 일어난 프로테스탄트 운동은 유럽을 분열해 아우구스부르크 강화회의가 열린지 10년이 지났지만 프랑스에서는 위그노 전쟁이 3년째로 접어들고있었으며, 네덜란드는 오렌지 공 빌헬름에 의해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이 시작되었다. 또한 포르투칼은 1557년에 마카오에 상관을 설치했다. 

영국, 런던. 

조선에서 균의 즉위식이 열리는 동안 이곳, 런던 항에서는 선단으로 부르기 뭣한 사각돛과 삼각돛을 단 5척의 중형 범선이 어둠 속에서 대기하고있었고 그 주변에 몇몇의 사람들이 대기하고있었지만 그 표정은 많이 어두웠다. 

"정말로 가는게냐, 크리스?"/"네, 아버지." 

"...크리스 언니..." 

"레이첼, 내가 없는 동안 집안을 부탁한다. 너도 아델레이드의 사람이니까." 

"하지만 나보다 언니가 더 백작위에 어울리는 걸요." 

"그건 너 생각일뿐이야."/"...누나..." 

"...부탁한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이제 먼 바다로 나가는 크리스라 불린 소녀를 보고 이야기하는 아델레이드 가家 본가 사람들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겨우 16세... 당시 서양 관점에서 성인대접받기에는 약간 어렸지만 당시의 베네치아가 배의 석궁수 또는 해상 변호사를 맡는 최저연령대가 17세부터인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어린 것도 아니었다. 

아델레이드 가家. 

기원은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있으며, 가문의 수장은 대체로 여성이 계승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가문의 특징은 정보에 대해서는 영국의 어떠한 귀족가문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으며, 하워드 가家와 연합방식으로 협력해 문장원의 설립에 일조했다. 그때문에 영국 왕실도 아델레이드 가家에 대해 함부로 하지못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가문의 다음 수장으로 미리 인정받은 크리스 아델레이드는 그 지위를 동생에게 넘기고 카타이와 지팡구를 찾기위해 먼 여행에 오르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록 그녀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은 것이었지만 큰 결정이었고 가족들이 만류했지만 결국 호기심이 이겨서 이렇게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On- board-!" 

크리스라 불린 소녀가 기함으로 올라타고 조금 후 바로 선원의 외침이 있었다. 그리고 5척의 중형 범선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겨우겨우 울음을 참던 사람들은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그것에 크리스도 섭섭해했고, 배가 움직이자 자신의 선실에서 다시는 가족들을 보지못할지도 못한다는 것에 슬피 울었다. 

이들을 뒤로 하고 대서양으로 나온 5척의 중형 범선들은 아침을 맞이했다. 

"이것이 대서양... 아름다워..." 

기함의 갑판에서 대서양의 아침 해돋이를 보는 크리스의 감상이었다. 

당시의 서양인답지않은 약간 큰 키에 늘씬한 각선미, 그리고 이제 약간 글래머티를 내고 있는 몸에 검은 색 머리카락이 바닷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녹색 눈에는 이미 눈물이 없었고, 먼 바다와 새로운 대륙을 찾아간다는 호기심에 가득차있었다. 마침 오늘의 대서양은 이들을 축복하는지 잔잔했고 아침 해돋이는 그녀가 자주 보았던 지중해의 아침 해돋이 이상으로 박력있었고 아름다웠다. 

"그렇습니다. 크리스님." 그녀 옆에 붙어 이야기하는 것은 그녀가 매우 신임하는 리처드였다. 

리처드는 아델레이드 가문의 집사중 하나였지만 전직 선원에 북해 국가들의 산업 단체인 한자에서 일한 경험때문에 이렇게 크리스의 먼 여행에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 물론 크리스도 에스콰이어로서 가업인 상업경험이 약간 있고 총과 레어피어 다루는 법에 대해서도 배웠지만 아직 많이 부족했고 더구나 이런 장거리 무역과 시장개척은 처음이었다. 

"...가족에게 안되었지만 카타이와 지팡구를 찾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지..." 

"...그렇지요..." 그의 목소리에도 섭섭함이 묻어있었다. 

"과연 찾을 수 있을까...?" 

"글쎄요. 하지만 마르코 폴로가 사실을 사실대로 썼는지는 의문입니다." 

"그건 그래. 나도 읽으면서 사실인지 아닌지 의문이 갔으니까." 

"정보를 다루는 자로서 그건 올바른 자세입니다. 남의 말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이 시대에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사실성에 대해 의문이 있었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상당 부분 허황된 이야기로 들렸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콜롬부스(*이탈리아식으로 크리스토포르 콜롬보)가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하고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신대륙을 조사해 그 후에 그의 이름이 신대륙에 붙여진 외에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1498년)과 코친 개항으로 상당 부분 바뀌었지만 그래도 의혹이 남아있었다. 

게다가 이것에는 카타이와 지팡구를 찾는 외에 다른 목적이 있었다. 포르투칼이 상관을 연 마카오이외의 영국과 다른 아시아 국가와 교류 및 무역협정체결이었으며, 덤으로 신교 전파의 목적도 있었다. 사족이지만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도달한 것은 1581년으로 이 시점에서 20여년 후의 일이다. 

그리고... 크리스의 모험은 이제 시작이었다.

이따금 역사는 하나의 인물 속에 자신을 응축시키고, 세계는 그후 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좋아하는 법이다. 이런 위대한 개인에 있어서는 보편과 특수, 멈추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한 사람의 인격 안에 집약되어있다. 그들은 국가나 종교나 문화나 사회 위기를 구현하는 존재다.... 

위기에는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여 하나가 되고, 위대한 개인 속에서 정점에 이른다. 

이런 위인들의 존재는 세계사의 수수께끼이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v Bourghart), 세계사에 대한 고찰 

...그로부터 5년후인 1570년, 어느 외딴 섬의 초가집. 

여기에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분노가 담긴 한탄이 나오고 있었다. 

"...정말, 정말 원통합니다. 대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난정아..." 

이들은 바로 윤원형과 정난정이었다. 

김진기와 이동명의 반란이 실패하고 이후 김진기의 반란 자금에 대한 조사중에 반란 자금의 출처가 바로 윤원형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밝혀지자 균은 이들을 아예 지금보다 심한 감시하에 두면서 아무도 손댈수 없는 먼 섬으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그런 자를 너무 믿은 우리 잘못도 있었다..." 

"..." 

이제 윤원형과 정난정으로서는 균의 치세를 방해할 힘이 없었다. 

이들의 비자금은 완전 몰수되어 빈털털이가 되었고, 정난정은 정경부인의 칭호도 뺏긴데가 이런 먼 섬에 유배되었기에 전처럼 외부에서 도움받을 여지도 없었고 거주지 밖으로 나갈수 없는 위리안치(圍籬安置)가 추가되어 월초와 월말에 점고(點考)를 받는, 이전보다 심한 감시하에서는 아무 것도 될리 없었다. 

이후 정난정은 홧병으로 2년후에 사망하며, 윤원형도 그 뒤를 따라간다. 이로서 구舊 훈구파는 완전히 소멸되어 홍담이 이끄는 신新 훈구파에 흡수되었으며 이를 기화로 균은 부패한 훈구파들을 정리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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