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7화 (177/228)

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02화. 서쪽에서 오는 바람. 

1570년(선조 재위 5년) 5월 중순 어느 밤. 

이제 한성도 봄과 여름의 교차기에 접어들어 서서히 더워지고 있었지만 밤은 시원했다. 

한성의 거주 구조는 다음과 같지만 기록이 된 것이 18세기 이후이기에 그 이전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북촌: 북악산 밑, 노론 거주. 

남촌: 남산 밑, 남인 무반, 삼색 잡거 

동촌: 낙산 밑 

서촌: 서소문 내외 

북산은 지금의 경복궁 뒤, 정확히 말하면 청와대 뒤의 북악산, 남산은 지금의 남산, 낙산은 동대문 북쪽의 타락산(駝駱山)이며, 서소문(西小門)은 소의문(昭義門)이다. 

북촌은 남북으로 지금의 율곡로 이상 북악산 이남, 동서로는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이다. 현재 서울의 지명으로 보면 삼청동 이하 팔관동, 가희동, 화동, 소격동, 재동, 사간동, 송현동, 안국동등이 되며, 넒게 보면 율곡로 이하 운니동, 수송동, 견지동, 인사동등도 들어가나 역시 중심은 삼청동, 가희동을 중심으로 한 율곡로 북쪽으로 궁 및 관청가와 가까워 권력을 쥔 양반의 거주지이다. 

남촌은 가장 넒게 보면 종로 이남부터 남산 기슭 전부를 포괄하지만 널리 알려진 남산골은 지금의 남산동 1, 2, 3가와 회현동 1, 2, 3가를 포함하는 동리이다. 이곳은 세력없는 양반들, 가난한 양반, 실세 남인들과 일부 소론, 무반의 거주지였다. 

동촌은 동대문 북쪽 타락산 아래에 있다. 지금 서울의 행정구역으로 볼때, 연건동을 중심으로 이화동, 동숭동, 원남동, 연지동, 충신동등이 여기에 들어가지만 협의의 관점에서는 어의궁(於義宮)이 있었던 어의동을 말한다. 어의궁은 효제동 22번지에 있던 인조의 사저를 가리키며, 효제동과 연건동 일대를 지칭한다. 

서촌은 서소문, 즉 소의문 안팎 일대의 동리로 현재 행정구역에 따르면 서소문동 일대다. 

이곳은 남대문과 지금의 봉래동 1가에 있는 조선 3대시의 하나인 칠패가 있어 상업지역화되었기에 자연스레 상인들의 거주지역이 되었다. 

이들과 별도로 양반의 다른 거주지역은 인왕산 기슭에서 삼청동에 이르는 지역으로, 경아전의 거주지인 우대와 겹친다. 

중간 신분층은 우대와 아래대에 거주하는데, 우대는 인왕산 기슭에, 아래대는 동대문, 광희문 일대 동리다. 상인들은 시전 일대와 오강 유역에 거주했는데 바로 청계천 운종가가 그곳이다. 운종가는 동으로 연화방(연건동 일대), 서로는 혜정교(광화문 우체국 동쪽 복청교 자리), 남으로 훈도방(을지로 2가), 북으로 안국방(견지동)이 그 범위에 들어간다. 

삐이이- ㄱ! 삐이이- ㄱ! 

"검계(劍契)다!"/"잡아라-!!" 탁탁탁- 

포도청 포졸들의 호루라기가 불리는 소리가 들렸고 바로 포졸들이 웅성이는 소리,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달려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균의 군사개혁후, 한성부는 어느 정도 치안이 안정되었지만 아직도 불안한 곳이 많았다. 

그중의 하나가 검계(劍契)의 존재였다. 

검계(劍契)는 지금으로 말하면 깡패나 조직 폭력배에 가깝다. 이들은 스스로를 왈자라 자칭했으며 숙종때의 민정중의 보고에 따르면 이 검계는 향도계, 즉 장례를 치르기위한 계에서 발전된 것이라 말하고 있다. 이 검계는 조선 왕조의 골치거리중 하나였는데 조선조 역대왕들이 수차례에 걸쳐 퇴치작업을 했지만 조선 말기까지 계속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특징중 하나는 일상적 행위를 철저히 뒤집는 것에 있었다. 예를 들면, 낮에 자고 밤에 돌아다니며 안에 비단 옷, 겉에는 낡은 옷을 입으며, 나막신을 맑은 날에 신고 가죽신을 비오는 날에 신는 행위이다. 

"후우-" 

무사히 암행을 끝내고 관저인 경복궁 강녕전로 돌아온 15세의 균은 한숨을 내쉬었다. 

즉위 전에도 느낀 것이었지만 조선, 특히 밤의 한성부 치안은 아직도 불안했다. 물론 균의 장기 계획 안에는 상비군외에 치안 경찰력의 창설도 들어있었지만 이제 막 군사개혁과 두 개의 반란이 끝난 후라 시기를 봐야했다. 작년에 균은 김진기와 이동명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이동명의 뒤에 명의 고공 일파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들이 조선에 국경분쟁을 도발해왔다. 이것은 오히려 균이 기다린 것으로 분쟁이 시작되자 장거정(張居正)과 이성량(李成梁)의 도움도 있어서 융경제와 고공 일파에게 외교적으로 혼내주는 것으로 마무리지었으며 아버지 이초를 덕흥군에서 덕흥대원군으로 승격시켰으며 마침내 대동법과 세금개편안을 실행시켰으며 여진에게서 이전 세종때의 함경도 4군 6진을 회수하는데 성공했으며 방어시설의 건설과 함께 상당수의 이주민들을 이주시켰다. 

균의 이주정책은 기민정책이 아니라 이주민에게는 일정기간동안의 세금 감면외에 농기구들과 씨앗을 충분히 주면서 가능하면 방어시설 내로 이주시키는 정책이었다. 이에 따라 함경도의 인구는 이전의 배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복을 벗고 본래 의복을 입은 후, 자리에 앉으면서 균은 생각에 빠졌다. 

"아무래도 박규남으로서는 무리인가... 국외정보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한데 아직 없단 말이야..." 

박규남은 작년 일본에서의 일은 무사히 잘 끝냈다. 하지만 아무래도 조선의 대외정보는 명과 왜를 가상적국으로 할 수 밖에 없었고, 더구나 앞으로 일어날 왜란을 생각하면 그 중요성이 더했다. 명과 왜, 양국을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서 정보를 얻을수는 있었지만 역시 전문적인 대외정보기관이 필요했고, 그럼 앞으로 박규남은 대내정보담당으로 돌릴 수 밖에 없는데, 아직까지 균의 눈에 드는 대외정보담당자가 없었다. 

톡톡톡... 

이런저런 생각으로 서안을 손가락으로 두드리고 있는 균에게 문 밖에서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폐하, 신臣 사헌부 장령(정 4품) 이지함이 독대를 청하옵니다." 

"들라하라." 

이지함이라면 균에게도 반가운 인물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독대를 청해온다라... 무슨 급하게 말할 일이 있나, 라고 균이 생각하는 동안에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이지함이 들어와 절을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오, 사헌부 장령. 무슨 일이길래 독대를 청하는거요." 

"예, 폐하. 신臣의 눈으로 본 중대한 사실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이옵니다." 

'중대한 사실...?' 

"신臣이 어느 날 점을 쳐본봐 서쪽에서 폐하의 치세에 도움이 될 여인이 올 것입니다." 

"???" 균의 표정은 의문이 가득했다. 

조선의 서쪽이라면 동남아와 인도, 더 넒게 본다면 중동과 유럽이 들어간다. 그런데 그쪽에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사람, 그것도 여인이라니? 

"누군지 장령은 아시오?" 

"송구스럽지만 자세한 것은 알수없고, 그녀는 네 개로 나뉘어진 서쪽 섬나라에서 오는 것은 알고있습니다." 

균의 생각은 빨리 돌아갔다. 이지함의 말을 전생에 배운 유럽 지리를 배운 것으로 되짚어봤다. 네 개로 나뉘어진 섬나라. 그것도 서쪽이라면 바로 영국, 정확히 말하면 잉글랜드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이라니...' 

이지함의 말을 들으면서 균은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런 균의 생각을 한번에 멈추고 이지함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문이 기습적으로 열리다 닫혔고 균의 방에 허겁지겁 들어온 사람은 도승지이며 숙부인 정인기였다. 지금 정인기는 굉장히 놀란 표정이었는데다 통상적인 예도 무시하고 있었는데 그것에는 균도 의아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인기는 안에 있는 이지함도 무시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독대중에 죄송합니다. 폐하. 

급보입니다. 지금 외수사에서 표류자를 구해 보호중이라고 하는데... 명나라 사람도 왜인도 아닌 색목인(色目人)이라고 하옵니다." 

"몇 사람인가?" 놀란 균이 묻는 말. 그러면서도 균은 이지함을 보고있었다. 

"두 사람입니다. 폐하. 한 명은 여인이고 다른 한 명은 남자라고 하옵니다." 

이렇게 해서 균과 크리스가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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