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178/228)

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03화. 비금도의 색목인(色目人)[1]. 

1주일후, 비금도 상단 본관 창고... 

창고에 갇힌 한 여성과 남성이 이야기중이었는데 창고 바깥을 지키는 사람들은 무슨 언어인지 알아듣지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 여성과 남성은 크리스와 리처드였고, 당시 조선 사람들이 이해못하는 자신들의 언어인 영어로 이야기중이었다. 

"...아가씨가 그렇게 여유가 있으신 건 처음 봅니다." 

리처드는 영국 출발 후 5년이 지나서 그런지 크리스의 이런 두둑한 배짱에는 놀란 모습이었다. 

"그렇잖아.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 말이야. 하지만 이렇게 있어서는 연락을 할수도 없어." 

"그런데 아셨습니까? 이 섬이 잘 만들어진 요새와 군대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이곳에 표류했을때부터. 그 덕에 전서구를 쓸 수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우리가 배에서 빠져나오면서 가져나온 물건은 모두 저들에게 압수되었지만 이해할지도 의문이야."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곳이 어딜까요?" 

"나도 그게 의문이야. 마카오(澳門)를 경유한 직후에서 조국의 이야기는 듣긴했지만..." 

"그 스튜어트 여자가 문제인 것은 확실합니다." 

"여왕 폐하께서도 알고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손댈 수 없지... 아무래도 스코틀랜드의 전前 여왕이니까. 

하지만 우리 집안 사람들은 폐하의 뒤를 이을 음모를 꾸미는 그 스코틀랜드 여자를 가만두려고하지않을거야." 

"동감입니다." 

크리스와 리처드가 지금 말하는 것은 1568년 5월, 스코틀랜드 레븐 호湖 감옥에서 탈출한 전前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에 대한 이야기였다. 메리 스튜어트가 레븐 호湖 감옥에 갇힌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녀의 책임이라 생각되는데, 자신의 총신 겸 애인인 음악가 단리 공 데이비드 리치오의 살해에 상당 부분 관여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메리의 묵인하에 그 음모를 주도한 것은 보스웰 백작이었다. 

단리 살해 3개월후, 메리 스튜어트는 보스웰 백작과 결혼하게 되었지만 스코틀랜드 전 국민의 반란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레븐 감옥에 갇혔지만 탈출, 엘리자베스의 보호하에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음 해인 1569년부터 엘리자베스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음모를 꾸미기 시작해, 잉글랜드 북부 지방의 카톨릭 교도의 반란, 문장원 장관인 노포크 공의 사망에 더해 프랑스와 스페인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그때문에 영국 하원은 엘리자베스에게 메리 스튜어트의 처형을 요구해 엘리자베스는 메리 스튜어트를 우선 런던 탑 감옥에 가두었지만, 그녀의 음모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메리 스튜어트가 간과한 것은 문장원의 뒤에 있는 아델레이드 가家와 하워드 가家가 연합 관계라는 것이었고, 노포크 공의 죽음때문에 이 두 가문은 메리 스튜어트에게 충분한 원한을 가질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사건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진지하게 대외정보기관의 설립을 검토하게 된 것이었고 1575년 마침내 추밀원이 설립되어 초대 장관으로 엘리자베스의 심복인 프란시스 윌싱햄이 임명된다. 

한편, 한양의 경복궁에서는 비금도에서 보낸 크리스들의 물건과 그들의 처리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었고 명과 왜와는 다른 외국의 물건이라는 것에 호기심을 보이고있었고 현재 균의 가신들은 경복궁 각 부에 배치되어 이제는 내각 일원으로 경력이 쌓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흐음, 이것이 비금도에 표류한 색목인들의 물건인가요?" 

"그렇습니다." 박규남의 말에 나중현이 대답했다. 

지금 외수사 책상에 놓인 물건은 표류해온 크리스들에게서 압수한 물건들이 가득했는데, 나침반, 육분의, 망원경, 해도, 총, 항해일지외에 여러가지 책들이었다. 

지금 박규남들이 호기심을 가지는 것은 망원경, 나침반외에 책들이었는데 제지술이 서방에 전파된 것은 8세기 무렵으로, 서(西)투르키스탄 지방까지 세력을 미쳤던 이슬람 아바스 왕조의 내부싸움에 당나라가 개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물론 종이는 보다 먼저 실크로드를 통해 신장(新疆) 각지와 중앙 아시아 지방에 전해졌으나, 제지술은 싸움에서 패한 당나라의 포로 가운데 기술을 가진 이가 있어 이때 비로소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가장 먼저 사마르칸트에 제지공장이 설립되었고 이곳이 이슬람 제지의 중심이 되었다. 또 그 영향으로 시리아의 다마스커스에도 공장이 세워졌고, 수세기에 걸쳐 유럽에 종이를 수출하여 유럽에서는 다마스커스지紙가 유명하다. 한편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에서 북아프리카를 지나 에스파니아(스페인) 남부에까지 미쳐 그 경로를 따라 제지술도 서서히 유럽에 전파되었다. 이집트는 본래 파피루스의 생산지였으나 9세기부터는 점차 종이가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0세기 무렵부터는 종이의 사용이 압도적으로 많아져 1040년 한 페르시아 여행가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에서는 야채나 향신료등을 종이에 싸서 팔았다고 할 정도였다. 13세기에 들어서면서 남프랑스 및 이탈리아에서도 제지가 이루어졌으며, 14세기 말 독일의 뉘른베르크에 처음으로 제지공장이 세워지면서 마침내 유럽 전역에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유럽의 제책법은 두루마리 형식에서 지금의 책과 비슷해졌는데, 조선에서의 종이 생산은 1415년에 이르러 최초로 국가운영의 종이 생산시설인 조지소(造紙所)를 설치하였고 그곳에서 각종 종이가 생산되었다. 

"이건 총이군요. 하지만..." 

"그렇지요. 우리의 비금도 소총이나 북한산 소총에 비해 떨어져보입니다." 

박규남은 압수된 물건중에 총을 가르켜보였고 거기에 나원호의 대답이 이어졌다. 군기시장인 나원호의 말은 외수사 사람들중에서 병기전문가로 인식되었기에 나머지 사람들도 이의를 달지않았다. 

당시 서양의 총은 13세기경에 최초의 대형 화기가 등장하고 14세기경에 대포를 줄여놓은듯한 소형화기가 등장하는데 최초의 총은 한마디로 사람이 휴대가능한 작은 대포였다. 

흔히 쇠나 청동을 넓적하게 펴서 판을 만들고 이걸 김밥처럼 둥글게 말고 접합부를 용접해서 만들거나 당시의 대포들처럼 길쭉한 쇠판을 여러 개 둥글게 이어 붙여서 원통 모양을 만든 다음 쇠고리를 씌워서 보강해서 만든다. 

특히 당시 대포등에서 길쭉한 쇠판과 쇠고리를 씌워 붙이는 제작법은 마치 큰 나무 술통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고 총신이나 포신을 지칭하는데 배럴(barrel)이란 단어가 사용되게 된다. 

구경이 큰 물건들은 주물로 만들기도 했으나 주조의 경우 주물을 붙는데는 주물 내부의 공간이 좁을수록 만들기 힘들어지고 가장 큰 문제는 좁은 공간에 녹은 쇳물이 잘 안들어간다는 점이었다. 

쇳물을 부어넣던중 생기는 기포를 제거할 변변한 방법이 없어 총정도의 물건을 만드는데는 거의 활용하기 힘든 방법이었다. 

이러한 대포를 줄여놓은 듯한 총들은 핸드건(handgun)혹은 핸드 캐넌(hand cannon)이라고 불리었고 중세 영어로는 곤드(gonne) 혹은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다고 핸드곤느(handgonne)라고 불리었으며 복수형일 때는 곤네스(gonnes)라 불리었다. 여기서 gun이란 단어가 등장했다. 게다가 15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핸드건에는 별도의 발사 장치가 달려 있지 않아 대포처럼 점화구에 고운 점화약을 채워 넣고 불붙은 심지나 붉게 달군 철사를 집어 넣어서 점화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법은 일견 간단하지만 실제로 총을 들고 조준하고 불붙은 화승(火繩)을 제대로 점화구(點火口, touch hole)에 찔러넣으려면 사람의 정상적인 신체로는 하기 곤란했다. 

이에 비하면 비금도 소총이나 북한산 소총은 매우 편리했고 성능도 뛰어났다. 

그리고 또한 나원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소총외에 권총이었다. 

권총의 기원은 소총과 거의 비슷한 시기이고 14세기 초 구리로 만든 원통(圓筒)에 점화구를 뚫어놓고 원통 속에 화약과 탄환을 장전시켜 점화구에 화승(火繩)이나 가열한 쇠꼬챙이를 찔러넣어 발화시키는 원시적 휴대용 화기 핸드캐넌을 말 타고 사용하기 편하도륵 소형화한 것이 시초이다. 피스톨이란 어원은 1)최초로 피스톨이 만들어진 곳이 이탈리아 피스토야 시(市)였고 2)초기 피스톨의 구경을 옛 화폐 피스톨(피아스톨)의 크기에 맞추었으며 3)안장 앞 끝에 놓아두었기 때문에 피스타로(안장 앞부분의 명칭)에서 연유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16세기 중엽 휠 록(톱니바퀴식 발화장치), 플린트 록(부싯돌식 발화장치)이 발명되어 프랑스 기병이 처음으로 군용에 사용한 이외에 지중해, 대서양을 휩쓸고 돌아다닌 영국, 에스파냐(스페인), 포르투갈 등 해적들이 호신용으로 흔히 사용했다 

"이 초소형 화포는 저도 처음 보는 것입니다. 연구를 해봐야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색목인들은 우리보다 더 가벼운 소총을 쓰고있다면 우리도 연구해 만들어야지요. 이런 것은 폐하께서도 지원해주실겁니다." 

"주상께서는 어떻게 처리하실 예정입니까?" 

"주상께서는 이것을 나에게 보내셨고, 나는 곧 비금도로 가야합니다." 

김호진의 말에 박규남은 균의 명령서를 보였다. 명령서의 내용은 "가능한 비밀리에 정중하고 눈에 띄지않게 그 색목인들을 궁으로 데리고 오되 압수한 물건에 대한 분석도 하라."라는 것이었다. 

"주상이 색목인들에게 관심이 가시는 모양이구려."/"내 생각도 그렇소이다." 

"하지만 아마 주상이시라면 이 물건의 쓰임이 어떨지 아시지않을까요?" 

"그렇습니다만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난 바로 승지(陞志)를 얻은 후 비금도로 가겠습니다." 

"그럼 부탁합니다. 주상도 이 색목인들에 관심이 있으시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처리해야겠지요." 

"그런데 그 색목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아직 모릅니까?" 

"유감이지만... 비금도의 사람들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해보는 수밖에 없군요..." 

이렇게 동료들과 의견을 나눈 박규남은 이런 말을 남기고 비금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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