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04화. 비금도의 색목인(色目人)[2].
다시 시간을 돌려 약 1주전 경복궁 취로전.
정인기와 이지함을 보낸 뒤에 균은 강녕전을 떠나 취로정에서 백과사전을 뒤지고있었다.
숙부 정인기를 통해 알게된 색목인 두 사람의 이름은 비록 한자로 가차되긴 했지만 본래의 뜻을 잃을 정도는 아니어서 백과사전에서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아, 아데.., 아델... 아델레이드. 찾았다."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것을 백과사전에서 찾은 균은 바로 환호 섞인 외침을 했다.
백과사전에 있는 아델레이드 가家에 대한 내용은 이랬다.
아델레이드 가家 アデルレイド 家 The Adelydes
기원이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가는 영국 유수의 귀족가문중 하나로 작위는 백작이다.
이들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가업인 상업에 종사해왔으며 로마 시대에는 당시의 로마 상인답지않게 제국 전역에 지점을 차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로마 멸망후에도 이들은 살아남아 영국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상당부분 영국사의 뒤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지며 가문의 수장은 대부분 여성이 계승하는 전통이 있다.
이 가문이 문장원과 추밀원 설립시에 관여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야사로 볼때, 정보에 관해서는 당시의 영국에 있어서 중요한 가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아델레이드 가문에 있어서 유명한 사람은 시조인 율리우스 아드레우스외에 에섹스 왕국에서 후작위를 받은, 당시 이 가문의 수장으로 알려진 리비아 아델레이드외에 여러 명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아델레이드 가家 사람은 크리스 아델레이드이다. 그녀는...
"정말 대단한 가문이군. 대외정보에 있어서 딱 맞아. 이거 완전히 우연치않게 굴러들어온 넝쿨채 딸린 호박이네. 흐흐흐..."
우리나라에 서양인이 표류해온 것으로 정식 기록되어있는 것은 1653년 효종때의 네덜란드인 벨테브레(박연)과 하멜 일행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따져볼때, 16- 17세기, 서양의 대항해시대에서 많은 서양인들이 일본에 도달해 그들의 선진문물을 전해준 것으로 추정하면, 극히 일부의 서양인들이 조선에 도달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쇄국정책으로 전환중이었기에 조용히 본국으로 돌려보냈을 가능성도 있고 우리나라가 좋아 조선인으로서 동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것을 아는 균으로서는 자신이 환생한 조선이 다시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개화기때의 고난을 겪지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중이었는데, 갑자기 크리스들이 온 것이었다. 이제 앞으로 크리스들을 어떻게 써먹을까에 대해 결정이 난 균의 얼굴은 기쁨과 음험한 웃음이 가득했다.
다시 5월 말, 비금도.
비금도 본단 창고에서 갇혀있는 크리스와 리처드는 바깥에서 와글거리는 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귀를 세워 들으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밖이 저렇게 소란스러운데."
"아마 여기에서 높은 사람이 왔겠지. 여기 정부 사람라던가..."
"그럼 크리스님 말은 이 섬이 정부 소유라는..."
"그렇게밖에 결론이 안나와. 아마 여기 국왕 개인 영지라던가, 아니면 국왕에 준하는 사람이던가. 그렇지않으면 이렇게 바깥이 시끄러울리는 없거든."
"그럴수도 있겠군요."
한편 비금도 본단 건물.
"아, 어서오십시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박 부장님."
김호진들이 한성으로 떠난 후, 비금도를 지키고 있었던 비금도 부장이 박규남을 보자마자 하는 첫 말이었다.
"주상 전하의 밀명을 받고왔네. 지금 그 색목인들은 어떻게 하고있나?"
"현재 표류해온 색목인들은 창고에 가두어놓되, 매일 음식을 가져다주고 있습니다만 색목인들이 식성이 좋은지 음식을 삭 비우더군요."
"그외 다른 일은?"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같습니다만... 알아들을수는 없었습니다. 명이나 왜의 언어와 아주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흐음... 결국 손짓발짓밖에 없다는 말이로군."
"그런데 박 부장님, 주상께서는 무슨 생각이실까요?"
"아마 주상께서는 이들을 긴히 쓰실 생각일 것같네."
"색목인을 말입니까!?!" 박규남의 말에 비금도 지부장은 놀란 표정이었다.
"...아마도 말일세, 주상께서는 색목인들을 이용해서 그들의 나라와 교역을 틀지도 모를 일일세."
이 박규남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물론 균도 맨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하고있었지만, 당시 영국과 조선의 거리는 한참 걸렸다. 지금도 항공기로 유럽으로 가려면 12시간 이상이 걸리는데, 16세기 기준으로 유럽에 도달하려면 더 걸릴 것이었다. 참고로 임진왜란 후, 일본의 천주교 다이묘들의 사신들이 태평양을 횡단해 멕시코의 아카폴코를 거쳐 이탈리아 바티칸의 교황을 접전한 일이 있는데 5년 이상의 기간이 걸렸다고 기록에 남아있다.
"일단 정중하게 그 색목인들을 본단으로 데리고 오게."
"알겠습니다만 반항을 하면 어떻합니까?"
"할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정중하게 하게나. 전하의 명이기도 하니까."/"알겠습니다."
박규남의 지시에 비금도 지부장은 당장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본단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박규남은 비금도 지부장이 데리고 온 크리스와 리처드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박규남은 크리스를 보자마자 얼굴이 약간 벌개졌다.
비록 지금 약간 모습이 엉망이 되긴 했지만 이제 21살의 크리스는 성인 서양 여성의 매력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것에는 지부장도 넋이 나간 듯했다. 물론 두 사람은 명과 왜이외의 외국인을 처음 보는 것이긴 했지만 1880년대의 조선 개화기때처럼 "금발 머리와 푸른 눈의 괴물"이라고 말하지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어쨌든 자리에 두 사람이 앉자마자 박규남은 지부장을 증인삼아 심문을 시작했지만 말이 통하지않기에 손짓발짓으로 해야했다.
-귀하들의 이름은?
-크리스 아델레이드./-리처드 비스마르크."
-나는 선전관 박규남으로 외수사 정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이쪽은 이 섬을 맡는 지부장이고. 어떻게 해서 조선에 오게 되었는가?
-우리는 잉글랜드인으로 카타이와 지팡구를 찾아 교역하기위해 왔지만 폭풍에 밀려 이 나라로 표류해오게되었다.
-잉글랜드, 카타이와 지팡그?
-잉글랜드란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우리 잉글랜드는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의 통치하에 있는 나라로 이웃한 국가로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즈, 해협 너머로는 프랑스(France)라 불리는 나라가 있다.
-프랑스?/-불란서(佛蘭西)?
우리가 프랑스를 다른 말로 부를 때 불란서라고 하는데, 불란서는 프랑스의 한자 가차식 표기이다. 하지만 1880년대 이후의 조선 개화기때 국가문서의 프랑스의 표기는 불란서(佛蘭西)외에 법국(法國)이 쓰였고, 이 둘이 혼용되어 쓰인 적도 많았다.
-...우리가 이곳 아시아에 도착하는데에 5년이 걸렸다.
비록 손짓발짓이지만 박규남과 지부장으로서는 놀랄 소리였다.
자신이 모르는 머나먼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고, 교역을 하기위해 찾아왔다라...
'주상께서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박규남은 그런 생각을 했다.
-일단 주상에게 이야기는 해보겠다. 그러니 조금 더 참아보길 바란다.
-알겠다. 하지만 우리는 빨리 이 나라의 통치자를 만나보고 교역하길 원한다.
일단 크리스와 박규남들의 대화는 비록 손짓발짓이었지만 우호적인 분위기로 끝났다.
나중의 일이지만 박규남은 자신의 생에서 이 일은 힘든 교섭 경험중 하나로 꼽게 된다. 어쨌든 박규남으로서는 자신이 할수있는 한 최선의 일은 한 것이었고, 서둘러 균에게 이 교섭내용을 보내 지시를 받아야했다.
"그러고보니 요즘 양반들이 잠잠하다지요."
크리스들을 보낸 후, 지부장이 박규남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렇지. 아무래도 그 반란 사건이 조기종결된 후에는 더 이상 폐하에게 기어오를 수 없지.
하지만 나도 명이 도발해왔을때에는 조마조마했던 것이 사실이네."
"그렇지만 전하는 어린 나이답지않게 잘 끝내셨죠."
"맞는 말이네. 하지만 이제부터가 고민일세."
"네?"
"조만간 서광대로가 완공될 걸세. 그럼 조선에는 다른 도로들도 놓이게 되지."
"아!" 이제사 감이 잡히는 지부장이었다.
작년의 무진삼란(戊辰三亂)이 조기 종결되자 균은 반란자들에게 가담한 양반들의 재산을 모두 몰수해 그것을 도로 공사에 투입하고 남은 돈은 국고로 돌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공용 도로인 한성과 전라도 광주를 잇는 서광대로는 이제 완공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전국적인 인구, 토지, 세금조사도 이와 병행해 진행중이었는데 거의 끝나가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후의 일이지만 서광대로는 조선의 "도로의 여왕(Via Regina)"로 공인되고 여기서 쌓인 노하우는 조선 내의 다른 도로 공사에도 이용되게 된다.
"평민들이 아주 좋아하겠군요."
"...그렇지..."
그렇게 말했지만 박규남은 뒷말을 잇지않았다. 지금 당장의 일도 그렇지만 명으로 도주한 김진기와 만주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동영의 행방이 잘 잡히지않았던 것이었다. 균도 알아보길 원했지만 박규남이 가진 지금의 대외정보력으로는 그렇게 쉽지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다시 창고...
크리스와 리처드가 방금 전의 일로 대화중이었다.
"한 나라를 대표해 온 교섭자치고 예의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응, 그것도 아마 정부 고위층 인사겠지. 비록 손짓발짓이었지만 우리가 할 말을 다했으니까."
"이제 어떻게 될까요?"
"나도 몰라. 하지만 예정을 바꿔야겠어."
"예정을 바꾼다면...???"
"교역을 하러온 것은 사실인데 거기에는 우리 성공회 전파의 목적도 있었지."
"...그렇습니다만..."
"성공회 전파는 좀 나중으로 미루고 교역에 집중하자고. 이 나라에 있어서 우리의 종교는 이질적일테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군요."
"그건 그렇다치고 앞으로 우리 일이 걱정이군..."
"기다려보기로 할까요? 그 사람이 잘해주겠다고 하니까."
"그래야겠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걱정이 많아진 크리스와 리처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