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06화. 동평관(東平館).
며칠 밤을 통해 한성의 경복궁으로 온 크리스 일행은 취로전에서 조선의 군주인 균과 접견했다.
사관을 물리치고 한 독대이기에 실록에는 남아있지않지만 다른 기록들에 따르면 크리스는 조선과 영국의 교역을 원했고, 균도 그것을 원했지만 거리때문에 지금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고 조선도 영국과 교역은 물론 우호관계를 원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제 조선에 온 일본 사신의 숙소인 동평관(東平館)에서 묵게 된 리처드가 크리스에게 묻는 말이었다.
취로전에서 리처드는 안전관계 때문에 일부러 취로전 밖에서 내금위 위사들의 호위 겸 감시를 받으며 기다렸는데,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 것에 놀랐다. 그래서 동평관에 온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크리스에게 묻고있었다.
동평관(東平館).
조선 시대에 일본 사신이 들어와 머물던 객관(客館)으로 조선은 국초부터 일본과 왕래가 있어서 1407년(태종 7년)에 그들이 있을 곳을 동평관, 서평관(西平館)이라 하여 마련하여 주었는데, 1420년(세종 2년)에는 일인들이 질서를 어기므로 이를 통합하여 동평관이라 하고 여기에 감호관(監護官)을 두어 감시하는 한편 동평관 주위에 울타리를 둘렀다. 동평관에서는 무역을 하게 했으나, 외부에서의 개인적인 거래는 불법화하였다. 1445년(세종 27년)에는 일인들이 담을 넘어 민가에 들어가 행패를 부려 의금부(義禁府)에서 단속을 하였고, 삼포왜란(三浦倭亂) 때에도 10여 명을 의금부에서 감금하는 등 폐단이 많았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인사동(仁寺洞)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폐지되었지만 1570년인 현재는 아직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이 나라의 관료들이 문제인 것같아. 본인은 그런 말을 안했지만..."
"우리 잉글랜드와 교역은 원하는데 거리도 있지만 관료들 설득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일까요."
"그런 것도 있겠는데... 제의를 해왔어."
"무슨 제의말입니까?"
"우리가 이 나라에 표류해서 당분간은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알고있지."
"네, 그렇습니다만... 아!"
"그래, 그거야. 그 군주는 내가 아델레이드 사람인 것을 아는 눈치였고 조만간 이 나라말이 익숙해지길 기다리겠다고 하더군."
"알 것같습니다. 이 나라의 정보관계일테죠."/"아마 그럴거야."
"아가씨가 하실 줄 아는 외국어는 뭡니까?"
"대체로 유럽의 언어는 거의 다 알고있지. 리처드도 알고있쟎아. 하지만 아시아의 언어는 백지상태나 다름없어."
"아마 이 나라도 마찬가지일겁니다. 주변 국가들의 언어는 알고있지만 그 너머, 우리 유럽의 언어는 모를테지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크리스와 리처드가 이런저런 말을 나누는 중에 자신들이 묵는 방 밖에서 문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몇몇 시녀들과 함께 17세의 일본식 쪽머리인 치고와를 하고 기모노를 입은 고귀해보이는 듯한 소녀가 들어왔고 일본어로 묻기 시작했다.
"ワタシハ シマズ ユメ. アナタハ ダレ?(나는 시마즈 유메. 당신들은 누구죠?)"
"Who are you!?"/"Shimazu Yume?" 그런 그녀에 대한 크리스와 리처드의 첫 대답이었다.
다시 취로전.
박규남의 보고를 받은 균은 매우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색목인과의 첫 교섭을 무사히 잘 끝내서 다행이네. 부장."
"감사하옵니다. 전하."
"이제 큰 일 하나를 끝냈으니 좀 쉬게나. 조만간 상을 내리도록 하지."
"네. 감사하옵니다만 묻고싶은 것이 있사옵니다. 전하."
"뭔가, 부장?"
"저 색목인들을 어디에 쓰실 작정이옵니까?"
"그건 아직 비밀일세. 부장."
박규남의 이 말에 균은 빙긋 웃으면서 말을 돌렸고, 균의 미소를 본 박규남은 균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르려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하, 미리 묻겠습니다만... 정말 저 색목인들이 원하는 대로 교역을 할 작정이옵니까?"
"^^"
박규남의 이 말에도 균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이에 박규남은 균에게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취로전을 빠져나와 쉬어야했다.
박규남이 취로전을 빠져나간 것을 확인한 후, 균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가사키의 완전 개항은 막을 수 있겠군. 나도 물론 영국과 교역을 원하긴 하는데 시간과 거리가 너무 멀어... 명과 왜의 교역은 몰라도 유럽과의 교역은 아직 대신들도 반대할테니 말이야.'
균이 아는 원래 역사에서 일본의 나가사키 개항은 히라도에 이은 두번째였다.
나가사키의 개항은 1542년 다네가시마(種ヶ島)섬에 표류하던 포르투갈 배가 정박하면서 시작되었고, 이제 다음 해인 1571년은 포르투갈을 기수로 하여 영국, 네덜란드, 러시아, 프랑스등 서방 국가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해 그들의 선진 문물이 일본으로 전달되게 된다.
하지만 이제 시마즈에 화약과 철포를 지원한 균의 영향으로 이제 시마즈 일족들은 균의 조언대로 원래 역사와 다르게 올해인 1570년에 오토모 소린을 치기위해 움직일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남큐슈는 사실상 시마즈 가家- 그리고 균의 영향권 안에 들어오게 되고 나가사키는 완전 봉쇄된다.
'...그렇게되면 아무리 토요토미라도 힘들게 되겠지...'
원래 역사에서 시마즈 가家는 오토모 소린의 요청을 받은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강대한 병력에 눌려 남큐슈의 지배권을 토요토미에게 넘겨주게되고 나가사키는 완전 개항되어 조총이 서양을 통해 일본으로 공급되게 된다. 이것을 막기위해서 균은 시마즈 가家를 외수사 및 나상과의 무역을 통해 조용하게 뒤에서 지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균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취로전을 나서자 바로 선전관 남형의가 다가왔고 균이 물었다.
"동평관의 색목인들의 동태는 어떠한가?"
"예, 방금 전 왜구 두목의 딸- 시마즈 유메와 접촉했습니다만 서로 말이 안통해서 고생하는 것같았사옵니다. 손짓발짓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옵니다."
"(...당연히 그렇겠지...^^)색목인들을 조만간 쓸 때가 있으니, 내금위 위사의 일부를 그들에게 붙여 우리 말을 가르치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도록 하도록."
"역관들을 붙이겠사옵니다. 폐하."
"아니, 그들의 언어는 왜와 명과도 다르기에 그들의 언어를 전담하는 역관을 양성해야한다.
그것에 대한 준비를 사역원에 명하도록."
"알겠사옵니다."
사역원(司譯院).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1276년(고려 충렬왕 2년) 통문관(通文館)을 설치하여 한어를 교육한데서부터 시작되었고, 외국어 통역과 번역에 관한 일을 맡는 중앙기관으로 공식인정된 것은 조선 태조때이다.
사역원은 한학청(漢學廳), 몽학청(蒙學廳), 왜학청(倭學廳), 청학청(淸學廳) 그리고 우역청(偶語廳)으로 구성된다. 이중 우어청은 그 나라의 말로만 대화하도록 되어있는 순수 회화교실이었고, 당시 조선의 제 1외국어는 중국이기에 가장 많은 수의 역관이 나온 곳은 한학청이었다.
위치는 현재 서울의 종로구(鍾路區) 적선동(積善洞)과 도염동(都染洞)에 걸쳐 있었으며 규모는 동서 23칸(間), 남북 24칸으로 30여개의 청으로 구성되었다. 학생 중에는 문과에 합격한 문신으로 한어 공부를 위하여 한달에 15일간 공부하는 강이관(講肄官), 합격 후 관직 없이 한어 공부를 하는 강예관(講隸官) 및 일반 생도가 있었지만 대체로 역관 가문에서 나온 학생들이 대다수였다.
지금도 전해지는 조선의 중국어 교재는 상하권으로 구성된 "노걸대(老乞大)"로 상권은 완전 회화체로 구성되어있는 실용성이 높은 교재였고 4개국어로 번역되어 쓰였다.
조선의 일본어 교재는 역관 강우성이 편찬한 "첩해신어(捷解新語)"로 왜역관들이 왜관에서 일본인을 접대하거나 통신사 수행시의 대화를 엮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균의 지시로 사역원 내에 기존 4개청외에 영학청(英學廳)- 후에 서학청(西學廳)으로 개편되는 신규 기관이 설립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