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186/228)

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11화. 작은 사건. 

1572년 2월 8일. 

경남(慶南) 산청군(山淸郡) 시천면(矢川面) 사윤동(絲綸洞) 남명 자택. 

노옥계(盧玉溪), 김동강(金東岡), 정한강(鄭寒岡), 하각재(河覺齋)등이 마지막으로 가는 자신의 스승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는 하늘의 일월(日月)과 같은 것으로 변할 수 없는 진리(眞理)이니 힘써 지행(指行)할 것이라 너희는 슬퍼하지마라... ... 퇴계, 이제 나도 그곳으로 가네. 그리고 재우야... 전하를 부탁한다..." 

이 말을 남기고 남명 조식은 숨을 거두었다. 향년 72세. 

남명 조식. 

남명학파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면서 뜻을 굽히지않는 성격 탓에 많은 정적을 만들었었다. 

남명 조식(南冥 曺植)은 조선조(朝鮮朝) 연산군(燕山君) 7년(1501) 6월 26일 경남 합천군 삼가면 토동(慶南 陜川郡 三嘉面 兎洞)에서, 아버지 언형(彦亨 官承文院判校), 어머니 인천이씨(仁川李氏 忠順衛菊의 딸) 사이의 삼남 오녀(三男五女)중 이남(二男)으로 태어났다. 

본가(本家)는 삼가판현(三嘉板峴)에 있었고, 토동(兎洞 )은 선생의 외가(外家)다. 선생의 자는 건중(楗仲)이요, 호(號)는 남명(南冥)이다. 

선생 사후(死後) 나라에서는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하였다. 

5세 때까지 외가(外家)에서 자라던 선생은 아버지가 장원급제(壯元及第)하고 벼슬길에 오르자 서울로 이사해서 아버지에게서 문자(文字)를 배웠다. 9세 때 큰 병을 앓았는데 어머니가 이를 걱정하자 "하늘이 나를 생(生)함이 반드시 할 일이 있어서일 것이니 요절할 리 없다"하고 도리어 어머니를 위로했다 한다. 소학기(小學期)에 들어서서는 이윤경(李潤慶), 이준경(李浚慶) 형제(兄弟), 이항(李恒)등과 죽마고우로 자라면서 학업을 닦았다 . 아버지가 단천군수(端川郡守)로 외임(外任)에 나아가자 잠시 거기에서 지내면서 경전자사(經典子史)와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방(醫方), 수학(數學), 궁마(弓馬), 진법(陣法) 등 남아가 갖추어야 할 모든 지식(知識)과 재능(才能)을 익혔고, 특히 자기의 정신력(精神力)과 담력(膽力)을 기르느라 두 손에 물그릇을 받쳐들고 밤을 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단순한 의기(意氣)는 18세 때 서울로 돌아와 성수침(成守琛)과 성운(成運) 종형제(從兄弟)를 만남으로써 커다란 변화(變化)를 가져왔다. 그것은 그들의 의기(意氣)가 염담(恬淡)하고 그들의 정신경지(精神境地)가 고초(高超)하며 그들의 도덕 문장(道德文章)이 방결청아(芳潔淸雅)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이들의 영향(影響)을 받아 이왕의 짙었던 속기(俗氣)를 떨쳐 버리고 보다 높고 넓고 깊은 인생(人生)의 경지(境地)를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유서외(儒書外)에 노장(老莊)과 불서(佛書)를 섭렵하기도 하였다. 

20세에 생원 진사 양과(生員 進士 兩科)에 일, 이등으로 급제(及第)했다. 남명(南冥)은 좌류문(左柳文)을 좋아하고 고문(古文) 에 능하여 시문(時文)이 나닌 고문(古文)으로 시권(詩卷)을 써서시관(試官)들을 놀라게 하고 그 글은 사람들이 전송(傳誦)하기까지 하였다. 

이 때 기묘사화(己卯士禍)로 조광조(趙光祖)가 죽고 숙부(叔父)인 언경가(彦慶家)가 멸문(滅門)의 화(禍)를 입자 이를 슬퍼하고 시국(時局)을 한탄한 선생은 벼슬을 단념하게 되었다. 

25세때 산사(山寺)에 가서 성리대전(性理大典)을 읽다가 허노재(許魯齋)가 말한 "이윤(伊尹)의 뜻을 뜻으로 하고 안연(顔淵)의 학(學)을 학(學)으로 하여, 벼슬에 나가면 유익(有益)한 일을 하고, 야(野)에 처(處)해서는 지조(志操)를 지킨다. 대장부(大丈夫)라면 마땅히 같아야 할 것이니, 벼슬에 나아가서도 하는 일이 없고, 산림(山林)에 처(處)해서 지킨 것이 없으면 뜻한 것, 배운 것을 무엇에 쓸 것이가. "한 구절을 읽다가 홀연히 깨달은 바 있어 다시 육경사자(六經四子) 및 주정장주(周程張朱)에 전념했다. 

26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고향(故鄕)인 삼가(三嘉)에 장사지내고, 삼년려묘생활(三年廬墓生活)을 하였고 가난과 싸우면서 민생(民生)들의 고초(苦楚)가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했다. 남명사상(南冥思想)속에 항상 민생(民生)을 잊지 못한 것은 이 때 생민(生民)의 어려움을 실제로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30세 때 처가(妻家)가 있는 김해(金海)에 이사하여 거기에 산해정(山海亭)을 짓고 안정(安靜)된 공부(工夫)에 들어가니 태산(泰山)에 올라 사해(四海)를 바라보는 기상(氣像)을 길렀고 한사존성(閑邪存誠), 악립연충(岳立淵沖)하는 학문(學問)과 인격(人格)을 닦았다. 여기에 성대곡(成大谷), 이청향당(李淸香堂), 이황강(李黃江), 신송계(申松溪)등 명류(名流)들이 모여들어 기묘사화 이후(己卯士禍以後) 퇴상(頹喪)했던 사기(士氣)를 응집(凝集), 재기(再起)를 도모하는 중심인물(中心人物)이 되었다. 

48세 때 18년간 학문기반(學問基盤)을 닦던 김해(金海)를 떠나 다시 고향(故鄕)인 토동(兎洞)에 돌아와 계부당(鷄伏堂)과 뇌룡정(雷龍亭)을 짓고 한편으로는 후진(後進)을 가르치고, 한편으로는 처사(處士)로서 언론(言論)을 발(發)하여 국정(國政)을 비판(批判)하였다. 김해(金海)에서의 18년 생활(生活)은 급기야 사림(士林)의 기풍(氣風)을 다시 진작(振作)하는 힘이 되어 사림(士林)은 그를 영수(領首)로 추앙(推仰)하기 시작했고, 이를 안 조정(朝廷)은 그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그를 벼슬길로 나오도록 했으나 모두 사퇴했던 것이다. 

이 때 선생의 학문(學問)과 인격(人格), 그리고 사상(思想)과 정신(精神)은 널리 알려져서 오덕계(吳德溪), 정래암(鄭來庵), 노옥계(盧玉溪)같은 기성학자(旣成學者)들이 문하(門下)에 들어와 사림(士林)의 종사(宗師)로 추대(推戴)되었다, 특히 여기서 올린 이른바 단성소(丹城疎)가 조정을 놀라게 하고 사림(士林)을 용동(聳動)케 하자 선생의 명망(名望)은 극치(極致)를 이루었다. 

벽립천인(壁立千人)이니, 태산교악(泰山喬嶽)이니, 추상열일(秋霜烈日)이니 부시일세(俯視一世)니하여 선생의 선비로서의 기상(氣像)을 사람들이 추앙(推仰)하고 경도(傾倒)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뇌룡정(雷龍亭)에 있던 시대다. 선생의 학덕(學德)이 더욱 익어가고 명망(名望)이 더욱 높아지자 조정(朝廷)에서는 더욱 예우(禮遇)를 하고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퇴하여 선비의 고고(孤高)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 

61세가 되자 선생 일생(一生)의 마지막 도장(道場)으로 지리산 천왕봉(智異山 天王峰)을 바라보는 덕산(德山)의 사윤동(絲綸洞)에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60년 동안 갈고 닦고 쌓아올린 자신의 학문(學問)과 도덕(道德)과 인격(人格)과 정신(精神), 사상(思想)을 후세(後世)에 전(傳)하기 위해 많은 영재(英才)들을 모아 가르쳤다. 

원래 역사에서는 이렇게 은거했어야했지만 균에 의해 바뀌어진 역사에서 조식은 호조판서로서 친구인 화담학파의 이지함과 같이 조정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다. 

조식이 은퇴하고 자택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균은 원래 역사처럼 제물(祭物)과 제관(祭官)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국상으로 하기로 결정했고 장사는 미리 조식이 정해둔 산천재 뒷산으로 결정되었으며, 남명학파는 정인홍(鄭仁弘)이 조식의 계승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1개월 후인 1572년 2월말 어느 저녁. 

"...우리가 이 나라에 온지 거의 2년이지..." 

"그렇습니다." 

동평관 근처의 어느 주막구석에서 전혀 어울리지않는 조선 한복을 입고 있는 크리스와 리처드였지만 이들은 지금 조선 사람들이 알아듣지못하게 자신들의 언어인 영어로 이야기하고있었다. 물론 조선에 온지 2년이 된 지금은 상당한 조선어를 할 수 있었지만, 자신들의 언어를 잊지않으려고 이렇게 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무언가를 줄 때가 되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런 상태에서는 힘들지요." 

"만나본 적은 없지만 여러가지 이야기로 보건대 대단한 분인 것은 확실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사상가는 없었어." 

"...맞습니다. 백성의 생활을 알고 그들의 바램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정치가지요." 

"그런 면에서 보면 여왕폐하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세실 경이나 윌싱햄 경같은 사람들이 붙어있어서 말이지요." 

"맞아. 이 나라의 왕은 나라를 폐하처럼 만들고 싶어하는데 아직 그게 안되는 것같아." 

"아무래도 변화에 반항하는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죠." 

"...아무리 설득해도 고집피우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지... 

아무리 세상에 여러가지 종류의 사람들이 있어도 남의 사소한 일에 꼬투리를 잡는 것으로 자기가 높아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잘못된 자료를 가지고도 그것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단순한 비난을 구별못하는, 세상 일 우연히 몇번 맞은 것가지고 뻐기는 정신적 자폐아인 사람도 있지. 그래봐야 결국 자기 손해인데 말이야.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은 그 근거가 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해." 

"넌센스지요. 그래봐야 자신도 결국은 다른 사람과 같은데 말이지요." 

"그렇지. 그런 사람은 의외로 정신적인 겁장이일 가능성이 있어. 

자신이 다른 뛰어난 누군가에 비해 부족한 것이 들킬까봐 겁나서 되려 반작용으로 자신감이 넘쳐 우월감으로 발전할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이 뛰어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지못하기에 되려 정신이 퇴보한 자라고 볼 수 있지." 

"자신에 대한 자신감 결여일수도 있지않습니까?" 

"그럴수도 있지만 결국 남이 보는 자신과 자기가 보는 자신이 다른 것을 인정하지않는 거지. 그런 자일수록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 잘났고 우월하며, 그래서 남에게 충고를 가장한 비난을 할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단순한 비난과 적절한 비판은 다르고, 차이도 엄청나지. 

그런 사람은 심지어 남의 충고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비틀기까지 하니까. 오로지 자기만이 당당하다고 생각하고 믿기에 시야가 좁아서 부분과 전체를 잘 구분못하고 자신의 본질이 대낮에 밝혀지면 화를 내지. 물론 자신의 본질이 밝혀지는 것은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않겠지만 그런 자는 본질이 알려져야 하지. 오히려 그런 자의 허상에 이끌리는 사람도 있거든. 그런 자일수록 진짜 자아와 자신이 만들어낸 가짜 자아로 분열되있을 가능성도 있지.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의 마음의 어둠에 어느 정도 깊이 빠져들었으니까." 

"그런 자에 대한 대책이 없지않습니까?" 

"자신이 만든 준거틀에서 한발짝도 나오지못한 자에게는 정말 대책이 없지. 

누군가가 말했지. 자기 알의 껍질을 깨고 날아서 아프락사스를 만나야된다고 말이야.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비난한 그 사람 입장이 되어봐야 정신차리는 경우도 있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남긴 흔적-글이든 말이든-을 통해 그의 본질까지 볼수 있는데 말이지요." 

"드물지만 그런 흔적을 통해 사람의 마음 속 깊이 있는 진짜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지. 그런 사람들이 보면 정말 우습기 짝이 없지. 

모든 일은 공짜가 없고 반드시 유형이든 무형이든지 댓가가 따라. 남에게 눈물을 흘리게 했다면 반드시 피눈물을 흘리게 될거야. 그 댓가를 피하려고 해도 반드시 받게될테니까." 

"저기 봐. 양이(洋夷)다." 

크리스들이 대화하고 있는 방향에서 약간 바깥에 어느 양반 자제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이들은 지금 현재의 정세와 균의 정책에 대해 대화하고 있던 중이었다. 

"미인이군. 하지만 그 옆에 붙어있는 자는 시종처럼 보이는데." 

"시종이 아니라 동등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같아. 하지만 귀한 사람같아." 

"귀인(貴人), 양이들에게 귀인이 있으려나... 명에나 귀인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모르는 일이지." 

"우리가 모르는 언어로 대화하는군. 뭐라 하는지 알수 없어." 

"전하의 정책으로 중인과 평민들만 신났어. 무진삼란이 그렇게 끝나니 말이지." 

"하지만 전하의 생각대로 양반들도 바뀌어야한다는 것은 사실이네." 

"그렇다고 천한 상업을 하란 말인가? 난 못하네." 

"하지만 전하의 뒤를 받혀주는 것이 뭔가? 외수사와 내금위 아닌가." 

"..." 그 말에 다른 양반자제는 할 말이 없었다. 

"한번 저 양이를 건드려볼까?"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 난 빠지겠네." 

"나도일세. 아마 거처가 동평관일텐데 문제를 만들기 싫네." 

"동평관이면 더 좋지않나. 왜구 두목의 딸과 엮으면 그만일테고." 

"그러면 왜와 전쟁이지. 국제 문제는 만들기 싫네." 

이들 세 명의 양반 자제들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대화를 끝낸 크리스들은 주막 밖으로 나왔다. 

"그럼 나 혼자라도 하겠네." 

이 말을 남기고 친구들을 남긴채 그 양반 자제는 크리스 뒤를 조심스럽게 뒤따라갔다. 

이제 해가 지고 어슴프레하게 어둠이 다가오는 가운데 동평관으로 돌아가는 크리스는 뒤에 누군가가 따라오는 기운을 느꼈다. 

"뒤에 누가 따라오는걸." 

"내금위 위사들은 아닐까요? 그들은 거의 우리 곁에 붙어있는데 말입니다." 

"아니, 우리가 익숙해지고해서인지 일부 내금위 위사들은 철수해서 많이 없지." 

"...그럼 뻔하군요." 

"우리가 만만히 보인 모양이야. 따끔한 교훈을 줘야겠지." 

그 말과 함께 크리스는 속저고리 안을 만져봤다. 그 안에는 2년전 표류했을때 몰수되었다 돌려받은 권총이 들어있었고, 점검을 꼼꼼히 해서 지금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흘끔흘끔 보는 것은 아직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리처드는 그대로 동평관으로 가는 척하고..."/"알겠습니다." 

어느 사이에 리처드와 크리스는 갈라져 나갔고, 그 양반자제는 잘됬다싶어서 크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조만간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덮칠 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크리스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놀란 그는 허겁지겁 뛰어갔지만 크리스는 아무 흔적도 없었다. 

당황한 그의 뒤에 목소리가 들렸는데 어느 정도 독특한 억양이 섞인 조선어였다. 

"...아가씨를 노린 사람이 너인가."/"!!!" 

그 양반 자제가 뒤를 돌아보려고 했을때, 그의 복부에 뻐근한 감이 느껴지면서 빈 골목 안으로 튕겨들어가 쓰러졌다. 기습을 당했지만 자신도 어느 정도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우욱... 콜록!" 

"상당히 약하군요. 이 나라 관료의 아들이겠죠." 

복부 쇼크에 정신 못차리는 그에게 조선어로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양이따위가..." 

"우리야 이 나라에서 외국인이지만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는데... 

내 이름은 크리스 아델레이드. 잉글랜드 귀족가의 딸이고 이쪽은 리처드 비스마르크. 

하지만 이 말은 알려주지. 그렇게 말만 늘어놓지말고 백성을 위한 일을 직접 실천해. 

이런 형편없는 것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천한 상업을..." 

탕-!! 

그의 옆에 권총 소리와 함께 벽에 총알자국이 났다. 크리스가 총을 쏜 것이었고 그는 눈을 옆으로 돌려 벽에 박힌 총알자국을 봤다. 처음보는 권총의 위력에 그는 떨릴 지경이었다. 

무진삼란에서 "불뿜는 막대기"의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초소형 철포의 위력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뚱뚱한 돼지로 죽을 것이란 말이지. 백성들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지않고 말이야. 

그렇게 세상이 싫으면 자신을 바꿔. 아니면 지금처럼 고독하게 죽던가." 

"..." 

"너는 이미 한번 죽었다. 만약 제대로 살 생각이 있으면 우리에게 와라. 그전에 이름은 듣고싶군." 

"...김태성..., 홍문관 부수찬인 김문성의 아들이다..." 

"홍문관 부수찬 김문성의 아들인 김태성... 기억해두도록 하지. 할 말이 더 있군. 

이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않을거니 걱정말도록." 

그 말을 남기고 크리스와 리처드는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얼떨떨한 상태와 복부의 욱신한 충격에서도 그는 크리스가 남긴 말을 되새겨보고 있었다. 

"...그렇게 세상이 싫으면 자신을 바꿔. 아니면 지금처럼 고독하게 죽던가... 

잉글랜드 귀족가의 딸이라... 그래서 그런 고귀한 기운을 풍긴 것이었군... 후후후... 하하하!" 

텅 빈 골목에서 태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조식이 사망한지 2개월후인 1572년 4월 어느 날, 북한산성... 

북한산성의 훈련장에서는 사단급으로 재편된 친위군과 시위군의 훈련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들은 무진삼란이후 자신감을 얻어 조선과 왕조를 지킨다는 사명감이 가득차있었다. 그런데 이들중에 전혀 어울리지않은 두 사람이 끼어있었다. 

탕-! 탕-! 

"명중이오!"/"명중이오!" 표적에 서있던 한 병사의 외침이었다. 

"휘이- 정말 저 서양 여자는 대단하군. 귀족가의 딸이라고 했지?" 

"네, 하지만 정말 총을 잘 다루는군요." 

임꺽정의 말에 대답하는 서유생이었다. 이들은 지금 균의 명으로 동평관에서 북한산성으로 거처를 옮긴 크리스와 리처드를 보고있었는데, 여성용 한복을 입은 크리스의 비금도 소총을 다루는 솜씨에 임꺽정은 놀라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 옆에 항상 붙어있는 저 양인 청년도 대단한 체격이야." 

"대장님과 맞붙어도 지지않겠습니다." 

"완력으로 말이지."/"네." 

서유생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고 있었다. 

"남명 선생이 돌아가신지 2개월후인 지금... 전하께서는 저 양인(洋人)을 어디에 쓰시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어딘가 쓰실데가 있으니 동평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게 한 것이 아닙니까. 왜구 두목의 딸은 몰라도..." 

"왜구 두목의 딸은 이유가 있으니 아직 동평관에 있게한 것일테지... 어쨌든 두고보는 것외에 방법이 없지않을까? 전하께서도 무슨 방책이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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