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8화 (188/228)

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13화. 그동안 영국에서는... 

튜더 시대의 영국의 지방조직은 어땠을까? 

튜더 왕조는 이전부터 내려온 소교구집회(Parish meeting)을 구호조직의 기반을 다졌고 이를 통해 사회가 노인과 병자, 맹인과 광인(狂人)을 부양할 의무를 져야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교구민에 있어 생계수단없이 다른 촌락으로 이사하는 것은 엄중히 금지되었고 유랑민에게 시주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로 취급되었다. 붙잡힌 유랑민은 태형을 받았고 재범이면 어깨에 V자 낙인(Vagabond)을 찍었으며 위험성이 있는 유랑민은 불한당Rouge이라는 뜻의 R자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본인이 문자를 해독하고 성직자의 특권을 요구하면 엄지 낙인을 찍고 출생 교구에 송환되는 것으로 끝난다. 

1597년에 나온 법령에 따르면 미경작지에 병원을 건립할 것, 각 교구 빈민감독인은 실업자에게 직업을 줄 수 있도록 철, 목재, 양모, 마등의 자재를 준비해둘 것, 빈민의 자녀를 도제로 고용할 것을 명하고 있고 이엥 따라 많은 부자들이 빈민을 위한 무료 주택을 건립했다. 

또한 한 오막집마다 땅을 갈아 자가 식료품을 얻도록 최저 4- 5에이커의 공지가 있어야하고 생활능력이 없는 노인을 위해 매주 4펜스- 1실링의 부조가 필수였고 한 교구의 빈민부담이 과중하면 다른 부유한 교구가 구원하도록 명령되어있었지만 이는 지방이 부조 책임을 지는 원칙일뿐 중앙 정부는 이에 전혀 관여하지않았다. 

각 교구에서 유랑민의 체포, 태형의 집행, 싸움 중재, 도박 금지를 담당하는 것은 1년 임기의 비직업 경찰관(Petty constable)이었다. 이들은 에드워드 1세부터 시작되었고 무기, 검색, 촌락경비, 범인 수색을 담당했다. 

만약 유랑민이 다른 사람에게 체포되면 경찰관은 임무태만으로 벌금을 내야했으며 범인을 체포하는 경우, 주군 법정에 연행하기 전에 자기 집에 감금해야했고 경범죄를 저지른 부락민의 목에 칼을 씌워야하는 것도 임무였다. 또한 유랑민이 출생지 교구에 송환될 때에는 도중에 있는 교구 경찰관은 호송에 연대책임을 져야했다. 

요우멘이 경찰과 배심의 임무를 맡고, 향사는 치안재판의 의무가 있다. 

치안재판소 향사는 선거제가 아닌 왕에 의해 임명되어 교구와 왕과의 연락을 맡게되었다. 

그는 교구 내에서 대지주이고 저택에 살고있어 지도적 인물로 존경받고 있으며 1년에 4회 주군의 수도에 나가 치안법정에 참석애 사법과 행정관계의 사건을 해결해 "모든 일을 맡아하는 튜더가家의 하녀"로 불리게 되었고, 중앙 정부의 대리인이자 정부에서 독립된 지방권력이었다. 

처음 1주군Couty에 6명의 치안판사가 있었으나 수가 점점 늘어갔으며 임지 체류기간동안 일당 4실링을 받고 지방 조사가 필요할 때에는 2명의 치안판사가 이를 담당했다. 

튜더 시대의 농촌생활은 벽돌담을 둘러싼 정원이 있는 회색 돌의 우아한 영주 저택이 바로 향사이고 치안판사인 사람의 집으로 지역에 따라 관례로 남은 공유경지의 소유권 분쟁이 아직 경제관의 골치거리가 되고 있었다. 주중에는 모두 일을 했고 일을 안하면 경범죄였다. 주일에는 활쏘기 연습이 있지만 이제 형식으로 밖에 남아있지않았으며 다른 놀이를 하려해도 경찰관이 제지했다. 교회 시간을 제외하면 선술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주일에 교회에 가는 것은 의무였으며 안나가면 빈민구호비로 벌금을 물었다. 

마녀와의 관계는 중죄였지만 화형은 없었고, 합법적이고 정당한 이유없이 자기 교구를 떠나는 사람은 없었다. 순회배우의 경우는 치안판사의 허가증이 없으면 순회공연이 불가능했으며 유랑민으로 취급받아 태형 또는 낙인이 찍혔다. 대학생이 여행을 하려면 재학증명서의 휴대가 필수였다. 새로운 포고가 국왕의 이름으로 설교단이나 시장 네거리에 공포되었으며 요우멘은 3개월에 1회 치안법정에 참석하기 위해 도읍으로 나간다. 치안판사는 국왕으로부터 사령장을 받았으며 주의 최고참장관은 때때로 런던으로 가서 대신들과 면식을 갖는다. 

이때의 영국은 모든 촌락에 국가라는 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하던 때인 것이었다. 

1572년 4월 어느 날... 

영국,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의 의회 상원의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려던 크리스의 아버지, 아델레이드 백작을 붙잡는 누군가가 있었다. 

"백작님, 죄송합니다만 왕궁에서 왔습니다."/"오, 왕궁에서... 이건 영광이군." 

"전하께서 기다리십니다. 어서 궁으로 가시지요." 

"알겠네." 

백작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포기하고 일단 왕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부르는 것이니... 

잠시 후, 왕궁의 어느 접견실. 

접견실에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는 엘리자베스 1세가 있었고, 그에 아델레이드 백작은 정중한 예를 청하자 엘리자베스 1세의 말이 이어졌다. 

"기다렸습니다. 백작. 어서 앉으시지요."/"영광입니다. 전하." 

아델레이드 백작이 의자에 앉자 엘리자베스는 본론을 꺼냈다. 

"아닙니다. 아델레이드 가문의 이야기는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녀의 이야기도요. 

카타이와 지팡그를 찾으려했다가 실종되었다지요?" 

"예, 전하도 아시다시피 프로피셔와 챈슬러 이후 우리 잉글랜드도 카타이로 가는 길을 찾으려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지요. 게다가 유럽 정세가 점차 잉글랜드에게 나쁘게 돌아가는 것도 있어서 말입니다. 그 아이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그렇게 결정했습니다. 

저와 아내도 무척 반대했지만 결국 범선 5척을 내주었지요. 하지만 마카오에 도착한 것은 확인했고 지금은 조선이란 나라에 있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몇년전에는 실종되었다고 하지않았나요?" 놀란 엘리자베스의 어투. 

"예, 분명 몇년전에는 그랬습니다만 간신히 연락이 되었습니다." 

"그 조선이란 나라는 어디있나요?" 

"예, 크리스의 말에 따르면 극동 아시아의 반도 국가로..." 

호기심을 느낀 엘리자베스에게 아델레이드 백작은 크리스가 알려온 조선에 대한 대체적인 정보를 알려주자 엘리자베스도 기쁜 모습이었다. 

"아시아에 친 잉글랜드 국가 아니면 신교국가가 하나 있게되는 것도 나쁘지않아요. 

에스파니아(스페인)과 포르투칼에 대항하려면..." 

"그렇습니다. 전하." 

"상선을 조선으로 보내야겠는데 백작의 생각은 어떠한가요?" 

"에스파니아와 포르투칼의 신대륙 점유에 대항하려면 아시아일수 밖에 없습니다. 

신대륙에도 배를 서둘러보내야겠지만 조선에 상선를 보내야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에스파니아, 포르투칼 상선들이 지팡그에 갔지만 되려 화포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만..." 

"그건 제가 조만간 명하겠습니다. 노포크 공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만..." 

이때의 엘리자베스의 말은 메리 스튜어트를 대신해 자신이 사과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미 지난 일이지요. 하지만..." 

"백작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는 알고있습니다만 저도 이것이 최선입니다." 

엘리자베스의 진심이 담긴 듯한 말에 아델레이드 백작은 일단 한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엘리자베스와 아델레이드 백작은 국정에 관해 몇가지를 더 이야기하고 헤어졌다. 

접견실에서 나와 돌아가는 길에 아델레이드 백작은 프란시스 윌싱햄을 만났다. 이 시기의 엘리자베스가 신임하는 사람은 뒤에 벌리 경(Lord Burleigh)이 되는 주무대신 윌리엄 세실(William Cecil)이 있었고 약간 뒤에 여기에 참가하는 국무장관 격인 프란시스 윌싱햄 경(Sir Francis Walsingham)이었다.(*윌싱햄이 국무장관이 되는 것은 1573년) 

"오랜만이요. 윌싱햄 경." 

"오랜만입니다. 백작. 보아하니 전하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모양이군요." 

"그렇소이다. 그 카톨릭 여자를 그대로 놔둔다면 분명히 잉글랜드에 화근이 될 것이오. 전하가 공주일때도 그랬지만 지금의 전하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않소."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역시 문장원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영국 외 국가들에 대항할 정보기관이 필요하지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지요... 노포크 공이 죽은 것도 그런 기관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오." 

"그렇지요. 결국은 자금이 문제입니다." 

"으음... 그렇지요. 역시 아직 때가 아닌 것같소. 좀 더 스튜어트 여자를 지켜보는 것이 낫겠소. 있다보면 그 여자도 본색이 드러날 때가 있겠지." 

이외에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고 아델레이드 백작과 윌싱햄은 헤어졌다. 

조금 후 아델레이드 성成의 백작 집무실. 

집무실에는 국가적인 일외에도 영지 업무로 밀린 서류가 있었다. 그것을 어느 정도 처리하자 크리스들의 어머니가 되는 제시카 아델레이드 백작 부인이 들어왔다. 

"...어떻게, 크리스에게서 연락이 있었소?" 

"예, 여보. 방금 전에 전서응으로 연락이 왔어요. 영빈관에서 산성으로 거처를 옮겼다는군요. 그리고 조만간 어떤 직책에 임명될 것같다는군요." 

크리스는 영국에 편지를 보낼때 동평관을 영빈관(迎賓館, Royal guest house)으로, 북한산성을 "North Mountain Castle"로 번역해 썼다. 

"아마도 정보관계쪽이겠지. 그것이 우리 가문의 숙명일테고." 

"그렇지요. 그래도 그 아이가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레이첼은 어떻소?" 

"크리스의 편지를 받더니 기쁜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크리스가 자기 대신으로 가문을 맡겼기에 책임감이 더 커진 모양이고... 전하를 만나셨다면서요?" 

"그렇소만... 전하는 조만간 상선을 조선으로 보낼 예정이오. 하지만 아직 그 스튜어트 여자를 감싸고 있었소. 지금은 지켜보기로 하겠지만 그녀는 언젠가는 잉글랜드의 화근이 될 여자요." 

"상선을 조선으로 보낸다니 반가운 일이군요. 그렇다고 본국으로 돌아올 애가 아니지만... 우리 친척인 노포크 공이 죽은 것도 그 여자가 한 짓이니까요." 

"그건 그렇소만 아직은 때가 아니오. 윌싱햄 경과 의논했지만 조만간 대외 정보기관이 필요하겠지. 그건 백작의 힘과 재력으로 될 것이 아니오. 물론 어느 정도는 알아낼 수는 있지만 상당부분 제약이 따를테고 그러면 상당한 국가 예산이 필요하지. 그건 로마 시대이후 지금까지 내려온 우리 가문이라도 힘든 일이오." 

"..." 이것에는 그녀도 할 말이 없었다. 

만약 이대로 메리 스튜어트를 둔다면 언젠가 잉글랜드에 화근이 될 것을 알고있었지만 지금은 레반트 해전이후 기세등등해진 스페인과 유럽 정세를 고려해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이 시기의 잉글랜드의 상황이었다.

1572년도 여름이 될 무렵, 명에서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바로 장거정이 정적인 고공을 물리치고 대학사 수장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약간 시간을 돌려 봄. 

명의 수도 베이징, 자금성(紫禁城). 

아침 조회의 자금성의 삼대전(三大殿)에서 얼핏 보기에 많이 허약해보이는 융경제가 주최한 임명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4년전 명- 조 국경분쟁및 알탄 칸과의 협약등의 공으로 정거정을 내각대학사 수장에 임명하노라."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것을 보는 고공은 속이 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방해공작을 했는데도 결국 융경제는 자신을 몰아내고 장거정을 내각대학사 수장에 임명한 것이었다. 이로서 명은 장거정을 중심으로 한 친조선파가 득세하게 되었고 장거정은 자신이 생각한 개혁정책을 마음껏 펼수 있게 되었다. 

백과사전을 통해 이를 알고있는 균도 장거정의 내각대학사 수장 임명을 축하해 개인적으로 큰 선물을 장거정에게 보내었음은 물론이고 그것을 받은 장거정의 입이 귀에 걸렸음은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사이에 균은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진주사업으로 얻은 자금과 외수사의 자금으로 한성과 제물포를 잇는 경인대로를 완공했고, 완공된 도로 주변에 역참을 설치하고 평민의 위생상태 강화와 북한산성에 있는 비천(砒天) 본부의 건설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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