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14화. 한 연금자의 초상(2)
그날 밤 고공의 저택...
고공은 그답지않게 화를 내고있었고 그의 앞에는 김진기가 있었다. 김진기는 중국에 온지 4년이 되어 이제 어느 정도 중국어를 할 수 있었지만 아직 필담을 우선하는 편이었고 고공도 그걸 선호했다.
-...결국 장거정이 대학사 수장이 되었군요.
-그렇소. 이제 조선만 좋게 된 것이지. 이것을 조선의 왕이 알고있었을까, 김 공(公)?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장거정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의 일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망신을 당했지요. 그후 조선 왕과 친하게 된 것으로 압니다. 조선 왕의 방식을 볼때 알고있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으음..." 신음이 담긴 고공의 말이었다.
그 사건은 고공도 들어 알고있었다. 당시에는 장거정이 조선 왕에게 당한 것에 고소하게 여겼던 것이지만 무진삼란이후 장거정은 고공과 그 일파에 대해 공세를 펴서 이제 완전 수세에 몰렸다.
이러는 사이에 김진기의 말이 이어졌다.
"조선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조선은 두번째 대로를 완공하고 정비에 바쁘다고 세작들이 알려왔소. 그리고..."
"...그리고?"
"요즈음 조선 상인들의 공세가 대단하오. 우리 중국 상인들이 밀릴 정도로.
분명히 반란이후 조선의 상계마저도 완전 재편된 것이 분명하오. 그리고 이것."
고공은 김진기에게 무언가를 꺼냈는데 그것을 보고 김진기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진주 아닙니까!?"
"그렇소. 진주요. 겉보기에도 아주 잘 된 것이오. 알다시피 조선에는 진주가 자랄 수 없소.
왜나 우리 명의 남해정도지. 분명히 어딘가에 진주를 생산하는 곳이 있소."
"...하지만 해금령 이후..."
"물론 왜에서 조선이 수입하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건 아닌 것같소만... 조선의 외수사가 나선 것이 아닐까싶소."
"그것이 맞을 것같습니다. 외수사는 조선 왕의 자금창고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장거정쪽이 더 급합니다. 이제 장거정 일파가 공격해올텐데 지금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한번 조선을 흔들어놓을 필요가 있소. 지금 조선은 서서히 우리 명의 손을 벗어나는 중이오. 게다가 친조선파로 알려진 장거정이 대학사 수장이니 말이지."
"하지만 저와 이동명의 반란이후 사림은 중소당파가 되었고 마땅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조선 왕의 방법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있을 것 아니오?"
"불만이 있겠지만 그것을 드러낼 양반은 없을 것입니다."
"반란이 안되면 다른 방법이 있지... 후후후..."/"...설마..."
"바로 그 설마요. 내가 다리를 놓을테니 조선의 불만을 품은 양반들과 연락을 해보시구려."
"해보겠습니다만 상당히 위험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와 이동명이 반란을 일으켰을때에도 조선 왕은 이미 그것을 알고있었던 것같았습니다."
"하지만 은밀히 진행하면 되지않겠소. 지금 그대로 조선을 놔두면 안되지... 어떻게든 손을 써야하오."
"시간이 많이 모자랍니다. 장거정 일파가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선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합니다."
김진기의 말에 고공은 주저하는듯이 보였다. 분명히 장거정 일파가 자신을 이제 본격적으로 손보게 될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고공의 붓이 움직였다.
-인계인수할때까지는 시간이 있소. 그 사이에 어떻게든 해보시오.
-알겠습니다만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대인은 저의 방패인데 만약 이것이 들통나기라도 하면...
-...상당한 국제문제가 될 터이지만 우리에게서 벗어나려는 조선을 그냥 둘 수 없소. 그리고 김 공도 금의환향(錦衣還鄕)해야되지않겠소.
-그 반대가 될까 두렵습니다. 차라리 대인이 조용히 은퇴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마음이 약해진 것이오. 김 공?
-그것은 아닙니다만... 대인이 위험해지면 저도 위험한 것입니다.
김진기의 글에 고공은 잠시 주저했다. 김진기의 말대로 지금 고공은 조선의 반란분자를 숨겨주고 있는데 장거정이 대학사 수장이 된 이때에 이것이 발각되면 자신은 아직 남은 권력마저도 잃고 김진기는 당연히 조선으로 송환될 것이었다.
-일단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만 대인의 힘을 빌어 조선의 양반들과 선을 놓겠습니다.
언젠가는 때가 오겠지요.
-알겠소. 김 공의 말을 따라 은퇴하는 편이 낫겠지. 그럼 일이 진행되어도 혐의는 벗어날 수 있겠으니 말이오.
하지만 그도 김진기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바로 이 해 목종 융경제가 갑작스레 사망하고 아직 10살인 황태자 신종 만력제가 재위에 오를 것과 자신들의 운명이 이제 경각에 달렸음을...
똑같은 나무를 바라봐도 바보와 영리한 사람은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
가장 지혜로운 자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동기를 본다. 제일 어리석은 자는 언제나 행동만 본다.
-W. B 예이츠, 캐서린 백작부인.
1572년도 이제 절반을 지나 가을이 가까워올 무렵의 어느 저녁...
한성 북촌의 어느 집...
이곳에서는 양반 자제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쌍륙을 벌이고 있었다.
쌍륙은 체스와 같은 장기판에 쌍방 12개의 말을 일렬로 배열해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 그 숫자에 따라 말을 전진해 원래 자기 말이 있던 라인에서 모든 말이 벗어나는 쪽이 이기는 경기로 고려때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즐거이 쌍륙을 벌이는 중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의 전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