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1화 (191/228)

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16화. 두 거성(巨星)과의 만남. 

금강산을 떠나 한성으로 온 휴정스님과 유정스님은 변한 한성의 모습에 놀라고 있었다. 

무진삼란이후 서광대로와 경인대로가 개통되어 물동량이 많아지고, 1570년에 시행된 수미법과 대동법과 세금 개편덕에 백성들은 과도한 세금에서 벗어나 풍족한 생활을 하게되어 균을 칭송하고 있었다. 물론 두 스님이 백성을 통해 들은 말도 그랬다. 

"정말 한성이 맞습니까? 사람들이 활기찹니다." 

"그렇구나. 역시 만나봐야될 것같다." 

"그럼 한성에 오신 것이..." 

"덱, 이놈. 내가 금강산을 내려온 것이 뭐라 생각하느냐. 단순한 유람인줄 생각했느냐." 

";;;;...아닙니다만..." 

"일단 경복궁으로 가자."/"예." 

...아무리 후에 사명대사로 알려지게 될 유정스님이라도 아직은 수행중이라 휴정스님에게 야단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잠시 후, 경복궁의 취로정. 

휴정스님과 유정스님이 자신을 보러왔다는 말에 균은 당연히 놀라고 있었다. 물론 균도 예전에 박규남과 천주교 문제로 이야기했던터라 우리나라 불교사에 이름이 남는 두 분이 언젠가 자신을 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건 예상보다 빨랐다. 

"두 분을 어서 들라하라."/"예." 

균은 일하던 서류를 뒤로 밀어내고 두 스님을 맞이하기로 했다. 

"...전하의 칭송을 여러 곳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취로정 밖에서 두 스님을 기다린 균에게 조금 후, 두 스님이 왔고 먼저 불교식 합장인사를 한 휴정스님이 말문을 열었고, 역시 합장인사로 한 후 균의 대답이 이어졌다. 

"과분한 상찬이십니다. 휴정스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그리고 차茶를 중심으로 한 가벼운 상이 놓여진 가운데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유정스님이 이런 말을 꺼냈다. 

"전하도 아시다시피 우리 불교는 태조이후 유생들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상당수 산으로 들어가 명맥을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유생들도 석가의 눈으로 보면 중생일진데 불교가 국가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탄압하고 있지요." 

"...그건 맞는 말입니다만 아직 시기가 아닙니다. 불교가 자비의 종교인 것은 압니다만..." 

"그럼 언젠가 불교가 내려와도 된다는 뜻으로 봐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고려말에 있었던 사찰의 부패는 용납해서는 안되겠지요. 안그렇습니까?" 

이 말에 유정스님은 말을 더 이을수 없었다. 고려말에 있었던 사찰의 부패는 심각해서 조선 초 유생들이 숭유억불 정책을 펴는 주요한 이유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국가종교인 탓도 있어서 부패가 많았습니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승단도 국가에 봉사할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있지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범죄자가 사찰로 도주하는 경우도 있지않습니까. 수행을 하지않고 또한 자질이 안되는 자들도 있을 것이고요." 

"..." 

"그런 자들을 우선 쓸어내 승단을 정비해야 될 것입니다. 물론 후학과 자질이 안되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만 불교도 억불정책에 대해 불평만 하지말고 원효대사처럼 좀 더 백성을 감싸안아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균의 논리에 유정스님이 일단 물러나자 휴정스님이 말을 이었다. 

"그럼 주상의 생각은 어떠싶니까?" 

"불교에 대해 저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있지않다는 것을 우선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기가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명을 내리면 사람들이 놀라지않겠습니까?" 

"그렇겠군요." 균의 마음을 짐작한 휴정스님이 대답했다. 

이후 세 사람은 불교와 유교 논리에 대해 심층적인 토론을 벌였고, 이에 휴정스님은 만족한 듯 돌아갔다. 하지만 균은 조식과의 논쟁이후 두번째인 이 일로 잠시 국정을 미뤄야할 정도로 휴우증이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 금강산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어허... 역시 전하는 전하로고."/"??" 

휴정스님의 말에 유정스님은 의문이 일었고 물어봤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스승님?" 

"전하는 심정적으로 우리 불교가 중생들을 껴안는 것에 동의하는데 그전에 승단에 대한 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왕족이지만 그렇게 개방적인데에 놀랐느니라." 

"하지만 억불정책에 대항은 해야되지않겠습니까." 

"이놈, 그렇게도 모르느냐. 태조도 불교를 섬긴적이 있었느니라. 하지만 회암사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느냐." 

"..." 이 말에 유정스님은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휴정스님이 말한 회암사는 태종 이방원의 왕자의 난때문에 화가 난 태조 이성계가 함경도로 가면서 무학대사와 같이 있으면서 마음의 상처를 달래었던 사찰로 최근의 발굴결과에 따르면 태조궁이라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태조 사망이후 억불정책이 진행되면서 유생- 엄밀히 말하면 유교 근본주의자들이 불상을 파괴하고 회암사를 아예 폐허로 만들고 불태워버렸다. 

"아직 유생들의 세가 강하니 전하께서는 시기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느니. 허나 승단에 대한 정화는 필요한 것. 언젠가 우리 불교도 산에서 내려와야허니 이제부터 준비를 해야하느니라." 

"그럼..." 

"그렇다. 이제 나를 따라 전국을 돌면서 승단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해야할터. 하지만 우선 준비를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일단 금강산으로 가겠습니다." 

균과 휴정, 유정스님의 이런 만남은 헛되지않아 몇년후 휴정스님이 주동이 된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나 승단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작업이 시작되 사찰에 숨은 범죄자, 계율을 어기거나 수행을 제대로 하지않는, 일부 자질이 부족한 승려들이 모두 쫓겨나고 불교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일어나 불교의 새로운 증흥기가 시작되었고 앞으로 들어오게 될 서양의 천주교와 개신교에 대한 방패가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해, 1572년이 다 가기 전, 전해인 1571년에 영중추부사로 은퇴하고있었던 이준경과 이명도 세상을 뜬다.

1572년도 거의 다 갈 무렵, 정확히는 1572년 10월 20일. 북한산성. 

이곳에서는 숨은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현재 중간 개축중인 북한산성에는 친위군 훈련장, 병영, 무기개발소등이 차례로 들어서고있었고, 임꺽정- 지금은 임창정 휘하의 친위군이 훈련하는 장면은 장관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바로 조선 최초의 대외정보기관인 비천(砒天)의 중앙본부가 약 6개월여의 공사를 마치고 완성된 날이기 때문이었다. 

"굉장히 큰 건물들이군요." 

"그렇지. 전하께서 친히 납실 정도면 이 일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짐작이 가네." 

"저 건물에서 무엇을 하게될까요?" 

"글쎄, 그건 전하만이 알겠지." 

비천 본부를 보고 말하는 임꺽정과 서유생의 말이었다. 이들은 지금 비천 본부의 규모에 놀라는 중이었고, 아직 비천에 대한 상세한 것을 알지못했지만 조만간 균은 비천을 공개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본부의 규모에 놀란 것은 크리스와 리처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정도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아가씨를 믿고 맡기는 것이겠지요."/"그건 좋지만..." 

"일단 이 나라에서 머무는 몸이니 열심히 해야겠지요." 

"맞아. 정보관계는 우리 가문의 숙명이기도 하니까." 

이들이 이런 말을 하는 사이에 균이 왔다는 소리가 들렸다. 

"주상전하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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