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37화. 그동안 일본에서는...(4)
1574
2.5 다케다 카츠요리가 노부나가의 성城인 미노 아케치 성을 공격해 함락시키다.
2.8 이에야스의 차남 오기마루(*히데야스)가 미카와 후지미무라에서 출생. 어머니는 오만.
3.18 노부나가가 참의 종 3품이 되다.
3.19 하시바 히데요시가 오니 나가하마 성에 들어가다.
6.17 카이의 다케다 카츠요리는 이에야스의 토도우미 타카텐진 성을 공격.
6.18 노부나가의 원군이 이마기레에 도착하지만 타카텐진 성의 함락으로 21일에 기후로 귀환.
9.29 이세 나가시마의 잇코 종도가 노부나가에게 항복.
1575
2.28 이에야스는 오쿠다이라 사다마사(*노부마사)에게 미카와 나가시노 성의 수비를 명함.
4.21 다케다 카츠요리는 미카와로 칩입해 오쿠다이라 사다마사의 나가시노 성 공격.
5.13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의 나가시노 성을 구원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기후를 출발.
5.21 나가시노 전투에서 노부나가- 이에야스 연합군이 다케다 카츠요리를 격파.
11.15
노부나가는 장자인 노부타다에게 다케다 카츠요리의 장수인 아키야마 노부토모를 미노 이와무라 성에서 공격할 것을 명함.
12.24 이에야스는 다케다 카츠요리의 토도우미 니죠 성을 함락함.
12.27
사쿠마 노부모리는 노부나가에게 미즈노 노부토모를 중상함.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의 명을 받고 노부토모를 죽임.
1576
2.23
노부나가는 오미 아츠지에 성을 축조하고 본거지를 그곳으로 옮김. 장자인 노부타다를 기후에 남겨둠.
3.17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토도우미 마키노 성에 머무르게 하며 마츠다이라 이에타다등에 명해 보호함.
11.21 노부나가가 나이다이진(內大臣)이 되다.
1577
3.1 이에야스는 이마가와 우지자네를 토도우미 마키노에서 하마마츠 성으로 옮김.
8.27 다케다 카츠요리가 토도우미 요코스카로 츨진하지만 이에야스가 격파.
10.23 하시바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명을 받고 츄고쿠 평정에 나섬.
12.15 이에야스가 종 4품하가 되고 29일에는 사콘에곤 소장에 임명됨.
1578
3.9 이에야스는 다케다 카츠요리의 스루가 다나카 성을 공격.
3.13 에치고의 우에스기 켄신이 49세로 사망.
11.2
이에야스는 다카다 카츠요리가 오이가와를 건너 토도우미 오야마에 도착했다는 정보를 듣자 출전을 명함.
1579
4.7 이에야스의 3남인 나가마츠마루(*히데타다)가 하마마츠 성에서 출생, 어머니는 오아이.
5.11 아츠지 성의 텐슈카쿠 준공.
7.16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의 자결을 명함.
8.3 이에야스는 미카와 오카자키 성으로 감. 아들인 노부야스는 미카와 오하마로 옮김.
8.12 이에야스는 혼다 시게츠구에게 오카자키 성을 지키게 함.
8.29 이에야스의 가신家臣인 오카모토 헤이몬등이 이에야스의 정실인 츠키야마를 살해함.
9.5 호죠 우지마사는 이에야스와 화친하고 다케다 카츠요리를 협공함을 약속함.
9.15 이에야스의 아들, 노부야스가 21세로 자살함.
1581
3.22 이에야스는 다케다 카츠요리의 타카텐진 성을 함락시키고 토도우미를 평정함.
9.11
노부나가의 명에 의해 노부나가의 아들인 노부오, 동생인 노부카네등이 카가를 평정.
1582
3.1 다케다 카츠요리의 부장인 스루가 에지리 성의 아나야마 바이세츠가 이에야스에게 항복.
3.11 다케다 카츠요리는 오다- 도쿠카와 연합군의 공격으로 카이에서 자살함.
5.15 이에야스는 아나야마 바이세츠와 같이 아즈시에 도착해 노부나가와 만남.
5.17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요청에 의해 직접 원병을 이끌고 나가 아케치 미츠히데에게 선봉을 명함. 미츠히데는 준비를 위해 영지인 탄바 카메야마로 돌아감.
6.2
오다 노부나가는 아케치 미츠히데의 공격을 받아 혼노 사寺에서 49세로 자살. 적자인 노부타다도 니죠 성에서 자살.
6.14 이에야스는 아케치 토벌을 위해 군을 이끌고 오와리 나루미로 진출.
6.27
시바타 카츠이에, 하시바 히데요시등이 오와리 키요스 성에서 회합하여 히데노부를 노부나가의 상속자로 정함.
7.3 이에야스는 카이, 시나노 평정을 위해 토도우미 하마마츠 성을 출발.
7.8 하시바 히데요시가 야마시로에 토지 측량을 명함.
9.12 히데요시의 양자인 하시바 히데카츠가 노부나가의 100일 기념 법회를 개최.
10.6
시바타 카츠이에가 호리 히데마사에게 글을 보내 하시바 히데요시의 키요스 서약 위반의 책임을 묻고 야마자키의 축성을 비난함.
10.15
하시바 히데요시는 양자인 히데카츠와 함께 오다 노부나가의 장례를 다이도쿠 사寺에서 치름.
10.18
칸베 노부타카가 하시바 히데요시와 시바타 카츠이에의 관계회복을 도모.
히데요시는 문서를 가지고 노부타카와 카즈이에의 비리를 주장함.
10.29 이에야스는 호조 우지자네와 강화하고 자신의 딸을 우지자네에게 출가시킬 것을 약속함.
11.2 칸베 노부타카. 시바타 카츠이에등이 마에다 토시이에등을 사자로 하여 히데요시와 강화함.
12.12
이에야스는 오쿠보 타다오, 토리이 모토타다, 히라이와 치카요시등에게 카이, 시나노를 제압하게 하고 토도우미 하마마츠로 귀환.
12.20
하시바 히데요시는 오미 나가하마의 성의 시바타 카츠토요를 항복시키고, 미노로 들어가 기후의 칸베 노부타카를 공략. 노부타카는 인질을 보내 강화함.
1582년 어느 날.
명의 베이징.
장거정의 저택.
저택에는 지금 슬픈 분위기였는데 주인인 장거정이 병으로 쓰러져 이제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기는 중이었다.
"수보님, 일어나셔야합니다. 그렇지않으면 이부가 황제를 부추길 것입니다."
"...아닐세. 난 이제 틀렸네. 하지만 내가 없으면 황제는 분명히 조선을 침공할 터.
그렇지만 조선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야. 특히 지금의 조선 왕은... 자네들이 그걸 막아야하네."
"하지만..."
"부탁이네. 아무 것도 모르는 황제를 막아야하네. 알겠나."
"알겠습니다. 수보님."
"그리고... 고공, 자네에게 미안하네..."
이 말을 남기고 결국 장거정은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후 내각의 권위는 쇠퇴하여 각신의 진퇴가 이부의 영향력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이 되었다. 장거정의 사인은 당시에는 가벼운 복통이 발전된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암癌이라고 생각된다.
장거정이 현재 거의 끝나가는 토지 측량작업을 남기고 숨을 거둠으로서 토지 측량은 정확하지못하고 어정쩡하게 끝나고 말았으며, 사후 1년도 안되 그의 개혁은 모두 전무(全無)가 되며 낡은 유교적 도덕을 숭상하는 문신들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
장거정의 장점은 강직하다는 것이었지만 또한 그것이 단점이었다. 왜냐하면 1577년 가을, 장거정 아버지의 복상문제가 있었는데, 3년을 지키느냐 마느냐에서 고공은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고 그에 따라 정적들이 많이 생겼다. 그리고 1582년인 지금 그의 정적이었던 고공도 유배된 고향에서 세상을 뜬지 오래였다.
내각수보는 장거정을 이어 장서유, 그리고 바로 신시행(申時行)으로 이어졌지만, 그들도 앞으로의 문제에 난감한 것은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