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6화 (216/228)

환생군주(還生君主)- 2nd Story 

41화. 제 2차 조- 명 국경분쟁. 

16세기 중기, 명의 군사 사정은 어땠을까? 

명의 군제에 의하면 상비군은 200만의 군호로 이루어져 각 호가 대대로 1명의 성인 남자를 제공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바로 폐단이 생겼다. 민호가 군호로 편입되는 경우가 강제적이어서 지원을 했다하더라도 편의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군호를 편제해 관리하는 위소가 생기면 병사들이 도망치거나 민호로 이적하는 사태가 생겼다. 게다가 명군의 보급제도도 문제였는데, 군사보급이 행정과 일체화되어있으며 오로지 지방 정부의 공급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호부가 국가 재정의 중추로 전체 국면을 통괄해야했으나 실제로 호부는 그 자체가 거대한 회계기관으로 기동해 각 기관과 지방 정부의 출납을 형식적으로 관장하는데 그쳤다. 그리고 이것이 눈사태처럼 불어나 일개 부, 현이 수십개의 다른 조직으로 식량과 은을 보내고 하나의 위소가 십수개의 부, 현으로부터 식량과 은을 공급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수송선의 제조도 역시 문제였는데, 법정 사용기한은 10년이었지만, 총 관리국의 성격을 지닌 기관이 있어도 인력과 물자를 통일적으로 공급할수 있는 권한이 없는 탓에 있으나마나였다. 

군인은 근위군을 제외하고 일반 병사는 안에 작은 쇳조각을 덴 면제 웃옷이나, 종이를 채워만든 종이 갑옷이 전부였고, 무기의 질도 열악한데다 표준 규격에도 미달하는 것들이 많았다. 또한 명 권력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장군은 용맹과감하고 명석함은 다음이었다. 한 예로 명 말기의 두송이란 장군은 병사의 앞에 앞장서서 싸웠으나, 거칠고 무모하여 패하면 분을 이기지못해 자신의 갑주나 무기를 부수고, 억지가 흔해 냉정함과 침착성이 젼혀 없었다. 누르하치도 그를 두고 미치광이 두송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물론 명에도 무장을 뽑는 무과시험이 있었으나 실제로는 말뿐으로 이 시험에서 합격한 자가 상급 장군이 된 예는 없었다. 무과 시험의 내용은 검, 활, 창, 기마등의 무술이 우수한지의 여부가 중시되었고, 문관 주재 필기시험은 문자해독수준에 불과해 실제적인 군사학으로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그나마 쓸모가 있었던 것이 척계광이 직접 만든 척계군이지만 이것도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군 내에 쌓여진 모순을 해결하지못하고 어설프게나마 통합을 했기에 왜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지만 실제 훈련을 받은 정규군을 만나면 결과가 뻔했다. 

또한 이 시기 명 왕조의 비밀경찰인 동창도 정치문제에 휩싸였는데, 총책임자인 사례태감 풍보가 장거정과의 관계로 인해 문신들의 공격을 받아 궁지에 몰림으로서 명과 조선의 첩보전은 점차 비천에게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었다. 

자금성, 교태전. 

이곳에서 만력제는 조선에서 수입된 일부 서적들을 보고 있었고 그 속에는 조선견문록도 끼어있었다. 

"서학이라... 흥미롭군." 

"하지만 양이와 남만 오랑캐의 학문을 받아들이다니 조선도 이제 운이 다했군요. 조선도 오랑캐지만 말입니다." 

"그렇소이다. 세상에서 오로지 우리 중화(中華)가 최고요. 그것을 조선이 모르는 것같소." 

"조선 왕이 영민하다고 알고있지만 전하만 하겠습니까." 

"맞는 말이오. 전 내각수보는 조선과의 우의를 유지할 것을 원했지만 짐은 다르오. 

내각수보의 그림자에서 떠나보고싶소." 

만력제와 공빈 왕씨와의 대화였지만, 이들은 조선의 변화를 모르고 있었고 왜 그렇게 이미 죽은 장거정이 조선과의 우의를 강조했는지 이해하지못하고 있었다. 

며칠 후 조선, 경복궁의 내각회의실. 

지금 내각회의실은 썰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압록강변에서 훈련중인 명의 소부대의 시체가 발견되었고, 최근 명의 정세가 조선에게 경계를 하게 만들고 있었기에 신중하게 준비하고있었는데 이런 사건이 터진 것이었고 이성량의 밀서도 이여송을 통해 간신히 조선에 전달된 상태였다. 

"...압록강변에서 명 부대의 사체를 조사한 부대의 보고서입니다. 일단 사후처리를 위해 그대로 보존했다고 합니다." 

김호진의 말과 함께 시체가 된 명 부대를 조사한 국경부대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보고서를 필사한 사본들이 모인 사람들에게 돌려졌다. 그 내용은 발견한 자, 시체의 상태등 주요 사항을 기록한 외에 명이 국경분쟁을 유도할 것이 확실하다는 부대장의 소견서도 포함되었다. 

"으음..." 

이 보고서를 보고 세 의정들은 신음할 수 밖에 없었다. 이대로 간다면 조선과 명은 전쟁이 확실했다. 

"그래서 요동군은 어떻다고 하오?" 

"그들은 중립을 할 태세입니다. 하지만 척계광의 부관들이 대부분 변방에 위치해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지만..." 

"...명의 권신들이 전쟁을 앞두고 임지를 바꿀 것이란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영의정 대감. 

그들은 유능한 장군인 척계광을 장거정과 관계했었다는 이유로 유배를 보낸 사람들입니다. 그의 부하에 대해서도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이성량의 밀서와 비천의 보고에 따르면 지금 명의 이부상서는 유양호란 자요. 이전에 이곳에 사신으로 왔을때 도승지가 혼낸 적이 있지요. 그가 만력제를 전쟁으로 유혹한 것같습니다. 게다가 지금 명은 거의 끝나고 있는 토지측량마저 흐지부지하는 모양입니다." 

"...장거정이 없으니 자기 멋대로 할 수 있다고 하는 모양이군." 

"또한 우리 비천 베이징 지부의 보고에 따르면 명은 지금 전쟁 준비중에 들어가 다수의 농민들을 징집하는 것으로 알려왔습니다. 이제 명은 이 일을 기화로 전쟁을 결심한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따라 연합상단의 상인들을 모두 본국으로 서둘러 귀환시키는 중입니다." 

"그건 잘한 일이오. 명이 우리 상인들을 인질로 이용할 수 있기때문이지." 

"이쯤 되면 전쟁은 피할수 없는 것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들이 압록강을 도하할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건의하는 바입니다." 

박규남의 말에 김호진도 동의했고, 크리스도 거기에는 동의했다. 

"만약 그들이 쳐들어온다면 예전에 수, 당나라가 고구려를 칠때와 거의 동일한 길을 밞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동군이 중립을 지키고 있고, 여진도 있으니 약간 틀려질지도 모릅니다." 

"맞는 말이오. 그 당시 고구려는 초토전술로 수, 당을 괴롭힌 것으로 압니다. 만력제가 그때의 고사를 기억하면 모르지만 그 고사를 따르지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각 사람들은 명이 쳐들어올 경우에 대한 루트를 예상해봤는데, 이전에 수, 당이 고구려를 칠때와 거의 같은 루트를 밞을 것으로 예측했다. 단, 현재 요동군은 중립이고 여진이란 존재때문에 많이 틀려질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 조선의 농업사정은 어떻소?" 

균의 말에 조선의 농업을 담당하는 봉상시 첨정인 이영식이 바로 말을 이었다. 이영식은 이앙법의 확산외에 균의 명에 의해 승정원과 별도로 매일매일의 기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앙법의 확산과 관개시설의 계속된 확충으로 최소 3개월 정도의 여유분이 있습니다만 올해는 일기가 좋아 더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군으로 인력을 너무 빼지말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건 균도 알고있는 사정이었다. 

1차 세계대전말기, 핀치에 몰린 독일은 힌덴부르크 작전을 입안했다. 그 작전은 생산시설의 인력을 군으로 상당수 돌려 연합군에 쐐기를 박으려는 시도였지만 실패했고, 그에 따라 독일의 물자생산능력과 군의 여력도 바닥을 치고 말았다. 그렇기에 이영식의 말이 없어도 균은 그렇게 할 작정이었다. 

"좋소. 과인은 처음에 이 문제에 관해 명과 대화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오. 따라서 이제부터 조선은 전시에 들어가며, 전 군에 비상경계령을 하달하는 바이오. 하지만 저들이 압록강을 도하하는 것이 확실할때까지 기다릴 것이오. 

무진년때는 우리가 어쩔수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오. 조선은 타국을 참략하지않지만 도전해오는 싸움은 피하지않습니다. 

이것을 여기에 모인 여러분들은 알아주기 바라오. 조만간 강녕전에서 명에게 정식으로 선전포고할 것임을 알아두시오." 

"알았사옵니다. 전하." 

균의 말에 단호한 결의가 풍겼고, 그에 모인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대답했다. 

이제 조선과 명의 전쟁은 피할 수 없었다.

1582년도 거의 저물기 전. 

자금성에서 어떤 조칙이 내렸다. 

이전에 전국의 토지를 측량함에 있어서 많은 불법행위가 있었는데, 주로 각지에서 토지 소유자에게 경지면적을 부풀려 보고하도록 강요한 행위였다. 거짓으로 경지 면적을 늘려 보고하기도 하고 또 가옥이나 분묘등을 경지면적에 포함시켜 보고하기도 했는데, 지방관들이 자신의 업적을 높이려 한 데에서 연유한 일이었다. 폐해가 이와 같이 심각했음에 비추어, 그 측량은 실사구시에 입각한 세수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 

19- 20세의 젊은 황제가 날카로운 통찰력을 발휘해 인정仁政을 펼쳐 백성에게 소생의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생각은 좋았지만, 그가 생각하지못한 것은 이미 사망한 장거정의 이름이 거론되지않았지만 사실상 엄정히 측량을 해온 지방관들이 지탄받고, 태만히 한 지방관들은 되려 백성을 위한 관리라고 칭찬을 받게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장거정 탄핵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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