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 만남
장삼은 유운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피리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누구냐?"
무당의 고수들은 크게 외쳤다.
안 그래도 유운과 비무를 하는 장삼을 경계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울려 퍼진 피리소리였기에 신경이 날카로워 진 것이다.
그 순간 장삼은 몸속의 압력이 아까보다 더욱 강해진 것을 느꼈다.
'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몸속의 기는 마치 터질듯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그것은 끔찍한 고통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몸속의 고통이 엄청났지만 몸을 움직일 수는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마치 자신이 몸이 아닌 것처럼 움직여 지지 않았다.
'아, 안 돼!'
장삼은 미칠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몸이 터지면 안됐다.
더구나 몸을 번천장협에게서 돌린 상황이었다. 차라리 마주보고 있는 상태였다면 눈빛으로라도 말을 하겠는데 지금은 눈빛도 보낼 수 없었다.
장삼이 그대로 서있자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유운은 급하게 장삼에게 다가갔다.
"왜 그러십니까, 도우님?"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장삼은 말을 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당장 도망가시요! 나에게서 떨어지시오!'
장삼은 급한 마음이 들었다. 정과 마를 떠나서 정말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
다. 아니, 좋지 못한 마음으로 비무를 청한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사람이었다. 지금 이렇게 그를 죽이기 싫었다. 그것은 아무리 사(邪)에 빠진 자신이라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삼은 급한 마음에 입이라도 벌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입을 벌리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혈교가 이런 계획을 세울 때는 철저한 안전장치를 세운 뒤다. 때문에 장삼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있다면 유운의 명복을 빌어주는 일 뿐이었다.
'젠장 장삼 네가 겨우 그 정도였냐?'
장삼은 오랜 시간 무공을 닦았다. 그 덕분에 지금의 무위를 가진 것이다.
그런데 겨우 피리 소리 하나에 몸의 통제권을 놓친 것이다.
그럴 수는 없었다. 죽음은 막지는 못하겠지만 죽는 것만큼은 그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어야 했다. 방식마저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장삼은 신체를 움직이려고 무척 애를 썼다. 다행이 방금 전 유운과의 비무에서 얻은 깨달음이 큰 힘이 되었는지 목의 기관을 조금이나마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
자신의 몸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장삼아 정신 차려라. 이 몸은 내 몸이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지를 상실한 채 살 것이냐?'
장삼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조금 벌린 입 사이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빨로 강하게 물었다.
"으악!"
혀가 조금 잘리고 그 충격으로 입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몸이 터진다! 도망가!"
장삼의 입에서 피가 터지면서 나온 말이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고수 이상이었으므로 장삼이 하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자는 없었다.
가장 놀란 자는 유운이었다.
그는 급하게 장삼이 몸을 만졌다.
"마음을 안정시키십시오, 도우님. 제가 도우님의 몸의 내기를 인도하겠습니다."
"꺼져. 죽기 싫으면 꺼지란 말이야."
장삼은 얼마나 급한지 화를 냈다. 하지만 유운은 피하지 않았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말과 함께 유운의 몸에서 정심한 기운이 장삼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무당의 심법은 정순함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 기운이 들어가자 장삼의 몸은 잠시 안정이 되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살 수 있습니다."
내기를 조절하면서 말을 한다는 것은 유운의 경지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장삼은 잠시나마 자신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었다.
그 순간 다시 한 번 피리소리가 울렸다.
"누구냐?"
무당파의 고수들이 급하게 피리소리가 퍼진 곳으로 달려갔다.
아까는 기습을 당할까봐 움직이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사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직접 찾아 나선 것이다.
하지만 피리소리 자체가 음공으로 펼친 것이었기 때문에 어디서 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장삼은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유운이 진기 덕분에 나아진 기운은 다시금 강하게 움직인 것이다.
"도망가!"
장삼은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처음 본 사람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것이다. 그는 이런 날이 올 줄
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얌전히 있으십시오."
유운은 그 말만 남긴 채 장삼의 몸을 최대한 정상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유운이 가진 기운은 놀랄 정도였다. 장삼의 몸속에는 엄청난 기운이 있었는데 그는 그 기운과 비슷할 정도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강호의 소문과는 다르게 그는 이미 궁극의 벽을 넘어 섰던 것이다.
장삼은 깨달았다.
방금 전 비무에서 그는 일장에 자신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하지 않고 가르침을 내렸다.
지금도 자신을 죽이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중인 것이다.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제발…….'
이미 눈이 보이지 않았다. 흐르는 눈물이 시야를 방해했다.
'도망가….'
처음 본 사람이었지만 유운의 그러한 행동은 장삼을 크게 감동시켰다.
‘맹세하겠다. 만약 내가 이곳에서 살아난다면 아니, 죽어서도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할 지 몰랐다. 물론 유운이 자신의 몸을 고쳐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살리기 위한 지금의 행동과 아까 자신에게 가르침을 내리던 모습이 생생하게 겹쳐지면서, 그 모두가 장삼은 죽음으로써도 갚을 수 없는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누군가가 외쳤다.
"자객이다!"
이미 수백 명의 고수가 밀집한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뛰어든 자객들은 마치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들처럼 목숨을 버린 채 달려든 것이다. 그와 함께 피리소리는 더욱 강해졌다.
무당의 문도들은 번천장협을 감싸기 위해 밀집한 상태였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자파의 상징인 번천장협만은 구해야한다는 신념에서의 움직임이었다.
그 상태에서 자객들은 빠르게 번천장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함께 피리소리는 더욱 강해졌다. 자객들이 비무장으로 뛰어듦과 동시에 피리소리의 위치가 파악되었다. 그렇기에 피리를 부는 자도 목숨을 내놓은 상태였다.
장삼은 움직이지 않는 몸 때문에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많은 자들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 욕심 때문에 너무 많은 자들이 죽는 구나.'
자신은 단지 장법을 겨루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장법의 일인자인 유운의 손에 죽는 것이 바람이라고 생각하던 그였다. 이런
결과를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 순간 그의 몸속의 기가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장삼은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두 번의 공력 팽창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식을 잃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처음 본 유운 때문이었다.
"안 돼! 막아야 해!"
장삼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랐다.
그 순간, 엄청난 충격과 함께 자신이 몸이 터진다는 것을 알아챘고, 그와 함께 의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