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편 - 방현으로
십오 년 후.
호북성 무한.
매우 뚱뚱한 남자가 무기력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석장수. 부모님이 오래 살라고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휴…. 오늘도 하루가 지났구나."
그는 하남에서 이십대 거부에 꼽히는 석가장의 후계자였다.
그리고 그는 혈교 서열 삼십 위였던 장삼이었다.
장삼은 사람이 뚱뚱한 것을 싫어했다. 뚱뚱한 사람들은 자기관리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몸이 이렇게 뚱뚱해진 것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진 듯 했다.
전진심법과 선천기공을 익힌 덕분에 장수는 십오 년 동안 삼십년의 공력을 얻을 수 있었다.전진심법처럼 극악한 심법을 가지고 십 오년동안 삼십년의 공력을 쌓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전진파에서도 스승의 가르침 하에 체계적인 수련과정을 거쳐 전진심법을 수련하여 삼십년 공력을 쌓기 위해서는 최소 1갑자 이상 고련을 해야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는 전진심법뿐만 아니라 선천지공을 수련해 선천지기까지 수련을 했다.
오로지 전진심법에만 매달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십년 공력을 쌓은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그러나 어릴 때부터 심법을 수련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분명 심법에서는 뛰어난 성취를 보였지만 장수가 잘못 생각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내외공의 조화였다.
원래 무공을 쌓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외공과 내공의 조화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 내공 수련을 할 때 외공수련도 당연히 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어렸기 때문에 큰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는데, 바로 어린 몸으로는 외공수련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외공수련을 못한 상태에서 내공 수련만 하자 그의 몸은 또래보다 더 덩치가 장대해 지기 시작했다.
얼마만큼 큰 다음에 외공수련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 생각했기에 장수는 그 문제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은 장수의 생에 있어서 가장 큰 착오였다.
내공이 큰 상태에서 외공 수련을 늦게 시작해서인지 몸의 근력이 생각보다 발달하지 못했다. 몸속의 방대한 기를 겨우 감당하는 수준의 근력만이 발달했을 뿐이었다.
그러한 문제점이 쌓이고 쌓여 결국, 장수의 몸이 뚱뚱해진 것이었다.
장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다. 더구나 이것 외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또 벌어졌다.
전진심법과 선천지공, 두 가지를 같이 익혀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상시에도 이 두 기운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전진심법이 하단전을 이용하여 몸속의 혈도를 경유하면 선천지공이 상단전을 이용하여 몸속을 돌았던 것이다. 그렇게 두 기운이 멈추지 않고 쉼 없이 돌았다.덕분에 내공은 빠른 속도로 늘어났지만 항상 기운이 움직이는 만큼 다른 일을 할 때마다 한 박자 느렸고 행동도 둔해졌다. 그래서 하인들은 그를 느림보에 둔한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른데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다른 심법을 익힐 수가 없었다. 원래라면 전진심법을 통해 내공을 쌓은 후 기가 안정화를 이루면 성취가 좋은 심법을 익혀야 했다.
자신이 익힌 흑룡심법만 해도 보통의 심법보다 성취가 8배나 되는 심법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심법 중 최하의 심법이 보통보다 5배의 성취를 주는 심법이었다.
그런데 전진심법은 쉬지도 않고 운기를 하면서도 겨우 성취가 2배 밖에 안 되었다.
"대체 이일을 어떻게 하지?"
장수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돌고 있는 심법을 억지로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자칫 잘못하면 문제가 발생해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때, 하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소장주님."
"무슨 일인가요?"
장수의 말에 하인은 고개를 숙였다.
"장주님께서 부릅니다."
"그런가요? 알겠습니다."
장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속에서는 두 가지 기운이 돌고 있는 중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작이 매우 느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하인들이 웃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몸은 느렸지만 오감은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뛰어난 오감 덕분에 주변의 시선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장수는 천천히 한숨을 내쉰 뒤에 장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왔느냐?"
장수의 덩치보다 더 큰 거대한 체격을 가진 남자가 장수를 맞이했다.
하지만 장수와는 다르게 연륜이 느껴졌다. 오십에 가까운 세월은 그에게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석가장의 장주였다. 그의 성격은 진중하면서도 온화했다. 하지만
맡은 일에는 철두철미하게 처리했기에 그가 장주가 된 후 석가장의 부는 5배 이상 늘었다.
"예. 아버지."
처음에는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장주가 장수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그 역시 마음을 열었다. 어찌 되었든 장주와 자신은 피를 이은 사이인 것이다.
"그런데 무슨 고민이 있느냐?"
"예?"
"살이 빠진 거 같아서 그런다. 좀 자주 먹어라. 이 애비는 너만 했을 때 그것보다 더 튼튼했단다."
"휴……."
보통의 무가라면 장수의 덩치를 보고 질책을 할 것이다. 하지만 석장주의 생각을 틀렸다. 오히려 장수의 체격을 보고 좋아한 것이다.
장수는 한숨을 내쉰 뒤에 석장주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부르셨습니까?"
"그거야. 이제 네 나이가 되었으니 가업을 이을 때가 온 거 같아서 그런다."
"가업이요?"
"그렇다."
장수는 인상을 썼다. 그의 계획은 무당에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모습으로 유운을 만나기 너무 창피했다.
'그냥 가업을 이을까?'
지금 상황에서는 무공을 익힐 수가 없었다.
다행이 석가장의 가업을 이으면 사는 데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십오 년 동안의 정이라는 게 있었다.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인 장수에게 매우 잘해주셨다. 떄문에 장수는 부모님에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한 번에 딱 잘라내기에는 생각보다 큰 은혜.
게다가 그가 아니면 석가장의 대를 이을 사람도 없었다. 혈족 중에서는 자신만이 유일하게 대를 이을 적자였다. 그 외에는 어머니의 오빠가 있었지만 그는 석씨가 아니었다.
장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그에게 있어서는 중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장주는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한데 뜸을 들이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장주의 말에 장수는 잠시 고민을 했다.
'몸 상태가 이러니 무공을 배운다고 말을 할 수도 없구나.'
무려 십오 년 동안의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창피하구나. 후…….'
장수는 한참을 고민하다 결심했다.
'그래. 그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구나.'
사실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유운의 생사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장수는 그동안 유운의 생사에 대해 한 번도 알아보지 않았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실 그 정도의 고수라면 소문이 나도 크게 나야만 한다. 이미 십 오년 전에도 경지에 오를 자로 두각을 나타냈으니, 지금이라면 벽을 넘었다는 소문이 나야만 했다. 아니, 어쩌면 더 장황한 소문이 나야 당연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문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죽었을 확률이 높았다.
장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만나보고 싶구나.'
그를 만나는 게 삶의 목표였다. 더구나 요즘 들어서는 꿈에서라도 그를 만나는 꿈을 꾼다. 단 한번 만났을 분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에 대한 기억이 컸다. 그 때문인지 그가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아버지."
"그래. 말을 하거라."
"부탁이 있습니다."
"뭐든지 말을 해 보거라."
"무당파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장주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 연관도 없이 무당파를 찾으니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다.
"무당파?"
"그렇습니다."
"그곳에는 무엇 때문에 가려고 하느냐?"
장주의 말에 장수는 잠시 고민을 했다. 무공을 배운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당파가 도교의 성지라고 하는데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주는 미소를 지었다.
"도관이라면 이곳에도 많다. 괜히 그곳까지 갈필요가 없을 것 같구나."
"제가 꼭 가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몰랐구나. 네가 그렇게 도에 관심이 많을 줄이야."
장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도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당파는 쉽게 갈 수가 있단다. 다행이 최근 무당파와 거래를 텄기 때문에 근처에서 인력이 필요하다는 구나. 그러니 무당파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무당파에도 가거라. 어차피 교육은 어디서든 받아야 하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장수는 기뻤다. 차라리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무당파에 가는 거라면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 것만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그런 방식이 더 나을 것도 같았다.
"그래. 나도 수업지로 어디로 할지 걱정이 많았단다. 이곳에서 교육을 받으면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가 없단다. 하지만 네가 무당파를 가보고 싶다고 하니 무당파 근처에 있는 방현에서 수업을 받으면 되겠구나."
"방현이요?"
"그래. 방현이다. 그곳은 물산의 이동이 많아서 거대한 상권을 이루고 있단다. 그리고 무당파가 있는 무당산도 그리 먼 곳이 아니니 괜찮을 거 같구나."
장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 지었다. 장사를 하는 수업을 받는다고 했지만 존경하던 무인인 유운을 만난다는 기쁨에 다른 말이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좋으냐?"
"예. 아버지."
"그래. 호북에서 장사를 하려면 무당파와도 안면을 익히는 게 좋겠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장수의 말에 장주는 미소를 지었다.
"녀석도 참…. 네가 기분이 좋다니 나도 기분이 좋구나. 여하튼 어서 방현으로 떠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