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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8화 (8/398)

8편 - 방현으로

준비를 하는 시간은 매우 오래 걸렸다.

석가장의 소장주가 가는 거였다. 중간에 산적이라도 만난다면 큰 낭패였기 때문에 석가장의 무사들이 호위무사로 정해졌다. 그뿐 아니라 근처 표국에서 표두와 표사들이 합류하기로 했고 상단까지 만들어졌다.

원래라면 이 모든 일은 상단의 단주가 처리해야 하지만 석가장을 나서면서부터 장수는 수업을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단주가 하는 모든 일을 따라다니면서 배워야만 했다.

장수는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현문의 최고의 심법인 전진심법과 선천지공이 끊임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그만큼 몸의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알 수가 없었다.

상단의 단주는 송죽이었다. 사십대로 보이는 그는 매우 뚱뚱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셈이 매우 빨라서 장주의 신뢰가 대단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었다.

"소장주님. 이제 상단을 꾸미는 것을 대충 아시겠습니까?"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머리는 전생에서 보다 월등히 좋아졌던 것이다. 그래서 인지 어떤 것이든 보기만 하면 한 번에 기억을 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몸이 둔한 것이 문제였다. 좋은 머리도 둔한 몸 때문에 어리석게 보여 졌던 것이다. 때문에 장수를 바라보는 단주의 눈빛이 그를 못미더워하는 듯 보였다.

"석가장의 무사들은 주의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무사들에게 대우를 해주는 게 중요하지만 그래도 장원과 계약을 맺은 무사들이기 때문에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걱정을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표국은 다릅니다.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강호인입니다. 비록 저희와 계약을 맺고 있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항상 주의를 기울이셔야 합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호라면 장수가 단주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만약 전생이었다면 옆에서 잔소리하는 단주에게 진작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현문의 심법을 익혀서 그의 성격은 차분해 지고 이해심이 넓어졌다. 현문의 내공심법이 가지는 장점이었다.장수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단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맡은 임무는 상단을 호송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바로 소장주의 교육이었다. 소장주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중요했지만 만약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더 큰 문제가 되었기에 한숨을 내쉰 것이다.

장수는 단주의 모습을 보고 그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생까지 치면 무려 1갑자를 살아왔기 때문에 눈치가 빨랐다. 그가 자신을 못 믿는 것은 당연했다. 단주와 자신은 둘 다 뚱뚱했지만 단주의 행동은 매우 재빨랐던 것이다.

그는 물건을 확인하는 것이나 사람을 다루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재빨랐다. 때문에 장수는 자신이 느린 것이 부끄러웠다.

'이런 내 모습이 부끄럽구나.'

전생이었다면 단주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재빨랐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느림보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장수가 한숨을 쉬자 단주도 보이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석가장의 앞날이 걱정되었던 것이다.

단주는 장수를 보며 말했다.

"소장주님.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이번 거래는 소장주님께서 처음으로 주관하시는 행사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소장주님의 평가가 오늘에 달려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잘 해주셨으면 합니다."

장수는 단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몸이 뚱뚱해지고 느려지자 장수의 성격은 어쩔 수 없이 소심해져만 갔다. 더구나 심법 덕분에 예전의 성격들이 점점 희석되어져만 가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무에 대한 갈망만은 여전했다. 그리고 유운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상단이 모두 꾸려지자 표국의 사람들이 합류했다. 모두 이십여 명이었는데 몸이 모두 날렵해 보였다. 그들은 거대한 깃발을 펄럭이며 걸어왔는데 그 모습이 대단히 위풍스러웠다.

철마표국(鐵馬鏢局).

깃발에 써 있는 글자는 철마표국이었다. 호북에만 수백 개의 표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상위권에 있는 게 철마표국이었다.

철마표국은 소림사와 관련이 있었다. 표두들은 대부분 소림사의 속가제자였다. 덕분에 표사들과 쟁장수들도 속가제자들이 배우는 무공을 배울 수 있었다.표국의 무리를 이끄는 표두가 단주를 향해 다가왔다. 그의 얼굴은 사십대로 보였는데 매우 날렵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수많은 표행을 성공리에 마친 자였다. 더구나 그의 무공은 고수급이었기 때문에 찾는 사람도 많았다. 철마표국에서도 상위권 서열인 그가 온 것만 보더라도 철마표국에서 이번 상행에 대해 얼마만큼이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단주님.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척 예의바른 모습이었다. 아무리 무림인과 일반인의 관계였지만 상단을 꾸린 곳이 석가장이었기에 정중하게 대한 것이다.

단주도 그런 사실을 알았기에 표두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표두님. 그동안 건강하셨습니까?"

"예. 그동안 단주님이 저를 불러 주시지 않아서 표국에서 편히 쉬었습니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속에는 뼈가 담겨 있었다. 표국도 경쟁이 치열했다. 저번 상행에 다른 표국을 이용한 것을 알고 말한 것이었다.

"그때는 규모가 작아서 작은 표국을 이용한 것뿐입니다."

"규모가 작으면 저희도 그에 맞게 준비해드립니다."

"이런 제가 몰랐군요. 다음에는 꼭 철마표국을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약속해주신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표두의 말에 단주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웃으면서도 단주와 표두는 계속해서 서로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표두가 단주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십니까?"

장수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척 보기에도 위치가 상당해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도저히 일을 할 수 있는 몸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호위무사나 쟁자수일 것 같지 않았다.

단주는 표두의 물음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장주라 말하기에 창피했던 것이다. 하지만 말은 해야만 했다.

"이분은 본장의 소장주님이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표두는 장수를 처음 보았다. 석가장의 소장주라고 했다. 호북에서도 영향력이 큰 석가장의 소장주라면 표두로서는 당연히 관계를 맺어야 하는 상대였다.

"이런 진작 인사를 드려야 하는 건데! 만나서 영광입니다, 소장주님."

표두는 급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자 장수는 무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아닙니다. 제가 더 영광입니다."

표두는 장수를 보면서 성격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만약 이번에 비위를 잘 맞춰 석가장의 소장주와 인연을 맺으면 호북에서는 큰 고객을 잡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저만 믿어주십시오. 그럼 제가 최선을 다해서 소장주님을 모시겠습니다."

말뿐이었지만 표두의 행동은 진실해 보였다.

하지만 표두를 보는 장수는 속으로 씁쓸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보기에 표두의 무공 수준은 겨우 고수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절정고수라 해도 눈에 차지 않은데 겨우 고수급이 유세를 떠니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전진심법의 공능이 발휘된 것이다. 원래 성격이 급했지만 전진심법을 익히면서 몸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진기처럼 노여움도 어느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장수와 표두가 이야기하는 동안 떨어져 있던 표사들이 장수를 보고 인상을 썼다.

"말 들었어? 저자가 석가장의 소장주래."

"정말 놀랄 일이군."

"어떻게 저렇게 뚱뚱하지?"

"옆에 단주도 뚱뚱한데. 둘 다 걸어 다니는 게 신기하구나."

그들끼리는 안 들릴 거라 생각하고 매우 조그맣게 얘기하는 거지만 장수의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몸이 느린 것이지 오감은 오히려 더욱 발전한 상태였다. 때문에 작은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표사들의 말을 듣자 장수는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표두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

"소장주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기억하겠다. 철마표국. 앞으로 너희와는 거래를 하지 않겠다.'

속이 넓어진 장수였지만 뚱뚱하다는 것은 장수에게 있어서 참을 수 없는 약점이었다. 뚱뚱하다는 말을 들으니 소심하게 복수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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