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편 - 동행
"저는 철마표국의 욱현이라고 합니다."
"아, 무림의 영웅이셨군요."
청솔은 표두를 추켜세웠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장수를 바라보았다.
"저는 석장수라고 합니다."
"그러셨군요."
청솔은 장수를 보는 느낌이 매우 좋았다. 뚱뚱했지만 왠지 도가에서 나오는 인연을 느낀 것이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수의 말에 청솔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른 두 명의 도사도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 장수가 주머니를 하나 꺼내 청솔에게 건넸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청솔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주머니를 건네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시주입니다. 작은 정성일 뿐이니 너무 마음 쓰지는 마십시오."
청솔은 주머니를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다. 도인의 신분으로 시주가 들어오면 받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는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무량수불."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하지요."
청솔은 장수를 보며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더 감사하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사들을 만나자 너무 기뻐서 말실수를 한 것이다. 그로서는 도사들을 만나니 마치 유운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껴서 ‘더 감사하다.’는 말이 툭 튀어나온 것이었다.
"아…. 도사님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하지요."
장수의 말에 도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들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환대였기 때문이었다.
도사들이 흐뭇한 표정을 짓자 장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넘어갔구나.'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 무당파의 도사들을 만나면 할 말이 정말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것도 정말 많았다.
하지만 직접 만나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상상하기 싫은 일이 벌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유운진인은 어떻게 지내나요?'
그는 그 말을 속으로만 되뇌었다. 무려 15년 동안이었다. 그동안 유운만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에 대한 일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 때문인지 입을 열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와 함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수가 시간을 보내는 동안 주문한 소면이 나왔다.
청솔은 장수가 자신에게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을 알고 슬며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도우님. 음식에 감사드리겠습니다."
무당파의 직전제자로서 받는 대우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만약 무당파 안에서의 은혜라면 청솔로서는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 있는 자는 일반인이었다. 그것도 자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자였다. 그런데 이정도로 환대를 하니 그는 매우 기분이 좋았다. 그랬기에 그의 부탁이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청솔이 말문을 열자 장수는 가슴이 두근거림이 조금 진정되는 걸 느꼈다.
"아닙니다. 드시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시키십시오."
장수의 말에 청솔은 미소를 지었다.
"수행하는 몸이므로 기름진 음식은 독이 됩니다. 그래서 이 소면 하나면 충분합니다."
청솔이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솔은 정말 도사의 모범을 보여주는 수행자였다. 소면을 먹으면서도 움직임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던 것이다.
청솔은 맛있게 소면을 먹은 후에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사이에 장수의 앞에도 주문한 음식이 하나씩 놓여졌다.
"이제 하고 싶은 말씀을 하십시오."
청솔의 말에 장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그래 유운진인에 대한 것은 다음에 듣도록 하자.'
장수는 결심을 굳혔다.
"저는 무당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무당파요?"
장수의 말에 청솔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장수의 말이 너무 뜬금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냥 무당파의 소소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도사님이 이곳까지 오면서 겪은 이야기나 잡다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청솔은 미소를 지었다.
"무당파에 대한 궁금함이 크셨나 보군요."
"그렇습니다. 전부터 무당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레 무당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청솔은 잔잔하게 무당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부터 소소한 이야기까지 다채로웠다.
그리고 청솔은 인자한 모습처럼 이야기도 매우 재미있고 흥미진진했다. 그 덕분인지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솔은 한참을 이야기하다 말을 멈추었다. 이야기가 끝난 것이다.
"이야기는 재미있으셨습니까?"
청솔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일상적인 이야기였지만 장수로서는 무당파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은 무당파의 세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청솔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장수는 혈교에서도 삼십 위권 서열이었다. 그 덕분에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정보와 청솔의 이야기를 합치면서 무당파의 상황이 그려졌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때 봤던 유운진인은 대단한 거인이었다. 만약 그가 멀쩡하다면 무당파가 쇠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무당파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20여 년 전만 해도 무당파하면 유운진인의 이야기가 주를 이었다.
장수로서는 무당파 이야기가 나오면 당연히 유운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단 한 차례도 유운진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이외였다. 그 정도되는 인물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한 가지 결과 밖에 없었다. 최근에 활약을 펼칠 기회가 아예 없었다는 말이었다.
면벽 수행이라도 하고 있다면 그 얘기가 빠질 리가 없었다. 청솔의 이야기에서 유운진인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었기에 수행 중인 것도 아니었다.
'설마 정말 죽은 것인가?'
장수로서는 가슴이 답답한 일이었다.
유운은 죽으면 안 되었다.
십오 년의 세월이 흘러 몸의 노화를 못 견디고 죽었다?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화경에 근접한 고수가 20년 사이에 늙어 죽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만약 이유가 있다면 자신과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바로 자신이 그를 죽인 것이다.
장수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자 청솔이 걱정이 되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어디가 아프십니까?"
청솔이 말에 장수는 다시금 현실로 돌아왔다.
"아… 아닙니다."
"이런 몸이 약하신 거 같군요."
장수의 몸에는 엄청날 정도의 내공이 있었다. 하지만 심법의 효능으로 그것이 들어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고수의 경지에 있는 청솔로서는 무공을 지니지 않은 일반인인 장수가 식은땀을 흘리자 걱정을 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약해서……."
"아…. 아닙니다.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이야기를 너무 길게 한 거 같습니다."
장수로서는 청솔에게 묻고 싶은 것이 생겼다. 바로 유운진인이 생사였다. 하지만 물을 수 없었다. 만약 지금 유운진인이 죽었다는 것을 들으면 삶의 희망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 사실을 들어도 무당파에 가서 듣고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정말 감사한 말씀이었습니다."
"제 얘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충분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랬다면 다행입니다. 원시천존."
청솔의 맑은 미소를 보자 장수는 마음이 조금 개운해 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오늘 묵으실 곳은 있습니까?"
장수의 말에 청솔이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수행중인 몸이라 근처 민가에서 잠을 구하면 됩니다."
"아닙니다. 마침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객잔의 방을 이용하십시오."
청솔은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평소였다면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솔은 장수가 이상할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장수의 청을 거절하기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