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편 - 재회
사람의 기운은 모두 달랐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기운을 확인할 실력이 되지 않았지만 장수는 가능했다. 선천지기 덕분인지 다른 사람의 기운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유운의 기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와 생사결을 펼치면서 그의 기운을 직접 겪어 봤기 때문이었다.
청솔은 그런 그를 세심하게 살폈다. 그는 장수 같은 젊은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강한 무공이었다. 그는 지금 무당의 무공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게 뻔했다.
보통 제자들의 수련 장소에는 일반인들의 접근을 금지했다. 하지만 장수는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장문인이 말이 있었기 때문에 무당파의 한식구나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제자들의 수련을 보여줘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음 장소로 가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둘은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원래 무당파 내에서는 무공을 수련할 때나 중요한일 이외에는 빠르게 움직여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그것보다도 더욱 느렸다. 그 이유는 장수에게 있었다. 장수의 몸이 일반인들보다도 느렸기 때문에 청솔이 그에 맞추어서 느리게 움직였던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연무장에는 무당파의 삼대제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무공을 연마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무공을 가르치는 교두들이 제자들의 성취를 살피면서 가르침을 베풀고 있었다.
청솔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장수를 바라보았다. 장수의 반응이 궁금했던 것이다. 청솔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장수는 무공에 그리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는 삼대제자들이 무공을 수련하는 것보다 주변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우님, 흥미가 없으십니까?"
청솔이 봤을 때는 장수 혼자서 무공을 닦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 그였기에 다른 사람이 수련을 하는 것이 궁금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수는 전생에서 혈교의 무사들이 수련하는 것을 지겨울 때까지 봤었다.
거기다 그의 무위는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면서 무학의 이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많았다. 그런 그에게 무당파의 삼대제자들이 수련하는 것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가 관심을 끄는 것은 다른데 있었다.
"아닙니다.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장수의 말에 청솔은 궁금함을 느꼈다. 독학으로 고수지경에 이렀으며 도가의 사상도 심오할 정도로 터득한 천재의 질문이 궁금했던 것이다.
"무엇입니까?"
"수련하는 사람들을 보니 검만을 수련하는군요?"
장수는 장법을 경지까지 익힌 자로서 장법을 연마하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자 청솔이 웃으며 말했다.
"무당파는 원래 검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제자들이 검을 익히지요. 도우님도 본파에 정식으로 들어오시면 검을 수련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장수는 검을 익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익히고 싶은 것은 장법이었다. 유운에게서 무당의 장법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무공은 수련을 하지 않습니까?"
장수의 말에 청솔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본파에서 검 이외의 무공은 정해진 시간에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게 오늘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 검 이외의 무공은 무엇을 배웁니까?"
"권법을 배우지요. 본파에서 기초무공으로 태극권과 함께 무수히 많은 무공이 있습니다."
"태극권이요?"
장수 역시 태극권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장법을 배울 때 권법과 각법 등도 배우기 때문에 권장각에 대해서는 조예가 깊었다.
"그것을 전문으로 배우는 분도 있으십니까?"
"근래에는 검을 위주로 배우는 사람이 많고, 검 이외의 무공은 배우려는 자들이 드뭅니다. 호신용으로 배우거나 기초적인 무공을 닦을 때나 권법 등을 배웁니다."
청솔은 말을 하면서 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듯했다. 사실 천하에서 검으로 가장 이름 높은 문파는 무당이었으니 그런 자부심을 가지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검술은 관심이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할 줄은 알았지만 무당에 와서까지 검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장수는 직접적으로 물어봤다.
"그럼 장법 같은 것은 배우지 않습니까?"
장수의 말에 청솔은 느껴지는 게 있었다. 산적이 습격했을 때 장수가 장법으로 물리쳤다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물론 장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장법이라는 것이 익히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에 비해 효율이 많이 떨어져서 사장되고 있습니다. 근래에 배우는 자들은 속가제자들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속가제자요?"
장수도 속가제자에 대해서 들어는 보았다. 하지만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다. 속가제자는 직전제자에 비해 실력이 월등히 떨어졌다. 그랬기 때문에 이름 높은 고수도 없었던 것이다.
속가제자는 고관대작의 자식들이나 명문가의 자식들 중 장원을 이을 자들이나 직전제자가 될 정도의 자질이 없는 자들을 속가제자로 받아들이는데, 보통 문파의 재정을 위해 제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들을 볼 수 있겠습니까?"
장수의 말에 청솔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속가제자들이 수련을 할 시간이 아닙니다."
직전제자들의 수련시간은 매우 길었다. 하지만 속가제자들의 수련시간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았다. 속가제자들은 자질도 부족하지만 무공에 대한 열정도 짧았기 때문에 수련시간도 매우 짧았던 것이다.
"지금 당장 가볼 수 있겠습니까? 수련을 하기까지 구경하고 싶습니다."
청솔은 장수를 보더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본파에는 볼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꼭 가보셔야 하겠습니까?"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유운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당파의 장법도 궁금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청솔은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안내를 하기 시작했다.
속가제자들이 수련을 하는 연무장은 바깥쪽이었다. 직전제자들의 연무장이 안쪽에 있었기 때문에 바깥으로 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자 드넓은 연무장이 있었고 화려해 보이는 건물이 솟아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한 명의 노인의 연무장을 빗자루로 쓸고 있는 게 보였다.
장수는 그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아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청솔이 경공을 발휘해 앞으로 나아갔다.
"사숙조님. 뭐하시는 겁니까?"
청솔은 노인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그런데 노인의 모습은 멀리서 봐도 다리가 절고 몸이 구부정한 것이 노쇠한 것이 분명하게 보였다.
"청솔 왔는가?"
"그렇습니다. 사숙조님. 몸도 편찮으신데 들어가 쉬십시오. 이런 일은 어린 제자들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청솔의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아니야. 소일거리 삼아서 하는 일이니 나를 그냥 두게."
노인이 말에 청솔은 머리를 긁적였다. 노인의 배분은 원래라면 쳐다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분이었다.
그렇게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장수는 땀을 흘리며 노인에게 뛰어갔다.
장수는 뛰는 것이지만 보통사람이 걷는 것보다도 느렸지만 장수로서는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그는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이었다.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는 모습은 이색적이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청솔과 노인은 대화를 멈추고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동안 달려서야 장수는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노인을 바라보았다.
"도, 도사님…."
그가 꿈에서도 그리워했던 얼굴이었다. 무려 15년만이었다. 예전에 비해 훨씬 늙고 추레해 보이는 외모였지만 장수로서는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바로 번천장협 유운이었던 것이다.
장수가 눈물을 흘리며 유운을 바라보자 유운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장수를 바라보았다.
"도우님은 누구시기에 저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시는 겁니까?"
이번 생에서는 단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전생에서도 단 한 번의 만남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장수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기억이었다.
장수의 얼굴에서는 눈물과 콧물이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도사님…."
장수는 그 말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더구나 평소라면 민첩하게 돌아갈 머리가 지금은 정신이 멍했고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장수는 그 큰 덩치에 유운의 작은 덩치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고목나무가 매미를 안은 형상이었다. 하지만 유운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장수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그리고 청솔은 그런 유운과 장수를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