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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고수-28화 (28/398)

28편 - 재회

장수가 진정하기까지는 일각이라는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장수는 그 동안의 마음고생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유운이 살아있어 줘서 감사했다. 아무것도 필요가 없었다. 자신 때문에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장수로서는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유운은 그런 장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물어보았다.

"도우님은 누구십니까?"

인자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장수가 15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그 음성이 분명했다.

"제 이름은 장… 석장수입니다."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장삼이라 말할 뻔 했다. 15년 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이름이었지만 유운을 만나자 자신도 모르게 전생의 이름을 말할 뻔 했던 것이다.

"석장수 도우님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초면인거 같은데 어찌 그리 구슬프게 우셨습니까?"

유운이 말에 장수는 잠시 생각을 했다.

"저는 장법을 익혔습니다. 그런데 장법으로 이름이 높으신 번천장협을 만나니 감격을 해서 울게 된 거 같습니다."

장수의 말에 유운이 웃었다.

"예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시는 군요. 이제 저는 번천장협이라는 명호를 놓은 지 오래된 퇴물입니다. 지금은 번천장협이 아니라 무당파의 평범한 도사인 유운이라 보시면 됩니다."

장수로서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사님. 도사님의 위명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위명이 사라지시다니요?"

장수의 말에 유운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공이 사라진 뒤로는 도사로서의 역할만을 하고 있습니다."

"무공이 사라지셨다고요?"

장수로서는 믿지 못할 말이었다. 그가 평생을 두고 존경을 했던 분이였다. 그런데 무공을 잃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유운은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15년 전이였지요. 그 당시 구해야했던 도우님이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 도우님은 구하지도 못하고 말았지요. 무공을 잃은 것은 상관이 없지만 그 도우님을 구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입니다."

장수의 눈에서는 다시금 눈물이 흘렀다.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 때문에 무공을 상실한 것이다.

유운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후회가 됩니다. 만약 제 경지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그 도우님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요."

유운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눈이 살짝 떨리는 것이 그 당시 일을 진정으로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숙조님. 그 당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본파에 큰 손실을 안겨준 자는 마인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사숙조님께 큰 피해를 주었으니 동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청솔이 말에 유운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 도우님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분 도우님은 오히려 저에게 피하라고 말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분은 마인이 아니었습니다."

단호한 말이었다. 그 말에 무게감을 느낀 청솔은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번천장협이라 불려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저는 하늘이 아니라 한 명의 도우님도 도우지 못했는데요."

유운이 말에 장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내공을 잃으신 겁니까?"

"내공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유운은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러자 청솔이 이어서 말했다.

"중요 혈도가 막히셨습니다. 그리고 본신의 진기를 폭발 때문에 거진 날려 버리셨습니다. 그 당시 들어온 마인의 몸이 터졌을 때, 사숙조님께서 모든 충격을 홀로 감당하셨거든요. 그것 때문에 본파의 인명손실은 없었지만 사숙조님은 그 당시의 무위가 사라져 버리셨습니다."

청솔은 심히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운만 멀쩡했다면 무당파 역시 화경의 고수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지금보다도 무당파의 세력이 더욱 강성했을 것이기에 안타까운 생각이 곱절은 더했다.

장수는 죄책감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자신 때문에 유운이 이렇게 변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도우님께서는 어리신거 같은데 저에 대해서 아는 것 같군요?"

번천장협은 15년 전까지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폐인이 되고서 잊혀졌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제는 먼 과거의 이야기인데 어떻게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제가 장법을 배워서 그런지 번천장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비록 폐인이 되었지만 장법에 대해서만큼은 유운이 최고였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일 것이다.

"그럼 요즘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말을 하면서 장수의 눈이 반짝 거렸다. 그로서는 유운의 제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속가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속가제자들을요?"

장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유운이 폐인이 되었다고 해도 한때는 장법으로는 천하제일인이었다. 그리고 가진 무공 역시 엄청날 정도였다. 그런 그를 속가제자들의 무공스승으로 쓴다는 것은 큰 인력낭비라 생각했던 것이다.

유운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도우님. 요즘에는 장법을 배우겠다는 제자가 별로 없습니다."

단 한마디였지만 많은 것을 내포하는 말이었다. 무당파에서 직전제자들은 장법을 배우려는 의지가 없다는 말이었다.

유운의 말에 장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전생에는 장수의 몸에 맞는 무공은 장법이었다. 손의 혈도가 굵고 팔이 길었던 그였기에 장법이 가장 적절한 무공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장법에 관하여 개인적으로 관심도 많았다. 하지만 혈교에서는 장법을 배울 방법이 없었다. 혈교는 주술이나 사이한 대법으로는 배울 길이 많았지만 정통 무공은 빈약했던 것이다.

배울만한 스승은 없었지만 마교의 무공서적은 많았다. 그 때문에 장법의 기본적인 것만 익히고는 거의 독학으로 배울 수 있었다.

전생에서는 이렇듯 어렵게 배울 수 있었던 장법이었다. 그런데 무당파에서는 천하제일의 장법스승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배울 의지를 가진 자가 없다는 말에 장수는 무당파의 제자들을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에는 또한 무당파 내부의 분위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무당파는 유명한 검파(劍派)다. 지금까지 내려오는 무리(武理) 중에는 검에 대한 상승무공이 많았고, 검을 가르치는 서적이나 깨달음이 많았다. 때문에 검을 익히면 빠르게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장법은 내려오는 서적이나 깨달음이 많지 않았고, 더불어 인기도 덜했기에 배우려는 자들이 없었다.

이와같은 현상 때문에 무당파 내에서는 다른 것보다도 검을 우선으로 두었다.

또한 일정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검법이 다른 것들보다 오르기 쉬웠다. 그래서 장법이나 권법은 기초정도로만 익히고 검술 위주로 무공을 연마했던 것이다.

때문에 유운이 가르칠 곳도, 가르칠 제자도 없었다. 그래서 유운은 자청해서 속가제자들의 무공을 가르친다고 한 것이다.

속가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들은 배울 의지가 없었고 열정도 없었다. 더구나 콧대가 높았기 때문에 비위를 맞추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유운은 장법을 가르치는 일을 죽기 전까지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장수는 잠시 유운을 바라보았다.

"그럼 도사님에게 무공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장수의 말에 유운은 웃으며 말했다.

"그건 간단합니다. 속가제자로 들어오시면 저에게 무공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유운이 말에 청솔이 웃었다. 장수는 어린나이에 고수의 경지에 올랐다. 더구나 전설의 현문 심법을 익혔기 때문에 무당파 내에서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때문에 직전제자가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직전제자보다 급이 월등히 낮은 속가제자에 대해 물어보니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도우님. 도우님은 직전제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청솔의 말에 유운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당파에서는 제자를 함부로 뽑지 않는다. 속가제자는 사정이 다르지만 직전제자의 경우에는 자질과 인성을 세밀히 살핀 후에야 제자로 들이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도 중요한 요건이었다. 장수의 나이가 직전제자가 되기에는 많아보였는데 청솔의 당연하다는 듯 직전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놀라워했던 것이다.

"도우님의 나이는 어떻게 되십니까?"

유운이 말에 장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현재 열다섯 살입니다."

"열다섯 살이라고요?"

유운으로서는 놀랄 말이었다. 장수의 덩치는 열다섯 살을 훨씬 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운의 말에 장수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몸이 생각났던 것이다.

'부끄럽구나.'

전생에 초절정고수였던 그였다. 그런 그였기에 자존심이 엄청 강했다. 현생에서는 그 자존심이 줄어들었지만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이렇게 뚱뚱해 보이니 유운이 자신을 어떻게 보겠는가?

'그 망할 심법만 아니었으면…….'

처음으로 전진심법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이제는 어떻게든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는 유운을 만나는 순간 결심한 게 있었다. 유운을 위해 평생을 보답하는 것이었다. 이미 장수 때문에 폐인이 된 상태였다. 그가 유운에게 속죄할 수 있는 방법은 그를 위해 헌신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그를 만났으니 제자가 되어 장법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비록 그가 스스로 만든 멸천장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지만 멸천장은 그게 한계였다. 그이상의 경지는 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운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으면 자신은 화경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유운이 죽을 때까지 봉사한 후에 혈교를 때려 부수는 게 두 번째 목표가 되었다.

유운의 은혜를 갚는 게 가장 큰 목표였다. 그리고 원수를 갚는 것은 차후의 일이었다.

장수가 굳은 결심을 하고 있었지만 청솔은 그런 것도 모르고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접객실로 돌아온 장수는 뛰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드디어 유운을 만났다. 그 기쁨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는 어서 속가제자가 되어서 유운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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