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편 - 속가제자
다음날이 되자 청솔이 직접 장수를 찾아왔다. 청솔에게 있어서 오늘은 매우 중요한 날이었다. 자신이 직접 찾은 인재를 직전제자로 임명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청솔은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이제 몇 시진 후면 장수가 그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이번에 세운 공으로 장수의 스승으로 지명 받았던 것이다.
"도우님. 잘 주무셨습니까?"
청솔은 말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아직 장수의 이름이 도적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 편하게 보냈습니다."
사실 장수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접객실의 침대가 딱딱한 것도 있었지만 유운을 만났다는 두근거림 때문에 한숨도 못 잤던 것이다.
청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무당파에 온 설렘으로 잠을 못 잔거라 생각한 것이다.
"장문인이 부르십니다. 따라오십시오."
"알겠습니다."
장문인실.
장문인은 말끔한 옷을 입고 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볼 때 장수는 빠른 시간에 절정고수에 오를 인재였다. 그런 인재를 얻었기 때문에 한 문파의 장문인으로서 기대가 컸던 것이다.
장수가 오자 장문인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그래. 어제 잠은 잘 보냈는가?"
"그렇습니다. 장문인."
"어제 청솔에게 말은 들었네. 본파의 제자가 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문인은 미소를 지었다. 단 하루였지만 석가장에 대한 조사도 이미 끝이 나 있었다. 석가장의 자손이라면 충분히 대무당파의 제자로 들어 올수 있었다.
"그래. 자네가 본파의 제자가 되는 것을 장로들 모두가 인정했다네."
장수로서는 자신의 몸 때문에 제자가 되지 못할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현문의 심법이라는 것은 무당파의 정당성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장로들이 찬성했다.
"본파의 제자가 되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네. 하지만 자네의 자질과 가문이 훌륭하고, 인성 역시 청솔이 보장했으니 본파의 제자로 합당하다고 생각을 하네."
"감사합니다. 장문인."
"아니네. 자네 같은 인재를 본파에 받아들일 수 있어 나 역시 매우 기쁘다네."
그때 장수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장문인에게 물었다.
"저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 무엇이든 물어 보게."
"그럼 저는 속가제자가 된 것입니까?"
장수의 말에 장문인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렸다.
"속가제자라고?"
"그렇습니다. 장문인."
"……."
장문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무당파의 직전제자와 속가제자는 모든 면에서 차이가 엄청날 정도였다.
직전제자는 자질에 따라 최고의 무공까지도 배울 수 있었지만 속가제자는 배울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뿐 아니라 무공을 배울 때 문파에서 해주는 지원 역시 확연히 틀렸다.
직전제자에게 단연 최고의 지원을 해주었으며, 그들은 차세대 후지기수가 될 확률이 높아 그에 걸맞은 무공, 예절, 다른 후지기수들과의 교류의 장 마련 등의 모든 것을 문파에서 지원해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직전제자는 함부로 뽑지도 않았다. 그들이 자랐을 때 문파의 얼굴이 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을 하고 뽑기 때문에 그 자격이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속가제자는 달랐다.
속가제자는 어느 정도의 돈과 권력만 있으면 직전제자에 비해 비교적 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것도 한정되어 있었고 지원도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무당파의 수입을 위해 존재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자네가 잘못생각하고 있는 것 같군."
장문인은 말을 하면서 청솔을 바라보았다. 마치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다.
장문인의 표정에 청솔은 장수를 보며 말했다.
"도우님. 도우님께서는 직전제자로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직전제자가 되시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솔은 직전제자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끝까지 들은 장수가 웃으며 말을 했다.
"도사님의 말씀은 정말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속가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청솔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는 직전제자를 거부하고 속가제자를 원하는 장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속가제자라면 이렇게 장문인을 만날 필요도 없다. 어차피 권력이나 돈으로 들어오는 자리였기 때문에 일대제자가 허가를 해주는 형식이었던 것이다.
장문인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로서는 문파의 자부심인 직전제자보다 세속에 찌든 속가제자가 더 좋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이다.
게다가 어제 장수를 만난 후부터 내심 가지고 있던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
"커험…. 이건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군. 그럼 이만 나가보게."
장문인의 지위에 있으면 겉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어야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곧바로 축객령을 내릴 정도면 그의 화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장수는 무당파 장문인이 화가 난 것에 대해서 별 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장법이었기 때문이다.
직전제자가 되어 검술을 배우는 것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장문인이 축객령에 장수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청솔이 그를 따라왔다.
"대체 어쩌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천금 같은 기회였다.
그리고 다시는 오기 힘든 기회였다.
대무당파의 직전제자를 거부하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도사님.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저는 정말로 속가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직전제자는 되기가 싫습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청솔은 말을 하다가 어제 유운을 보고 눈물을 흘리던 장수가 생각났다.
"설마 유운진인 때문에 그렇습니까?"
말을 하면서도 청솔은 속으로 설마 했다. 청솔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운은 아무리 예전에는 가진 바 무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지만 지금은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있는 폐인에 불과했다.
더구나 그가 요즘에 가르치는 제자들의 성취도 보잘 것 없었다. 그의 배분과 과거의 업적 때문에 사범 역할을 뺐지 못하는 것이지 다른 자였다면 당장 파직 감이었다.
그때 장수의 고개가 위 아래로 흔들렸다.
"그렇습니다. 도사님."
장수의 솔직한 말에 청솔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럼 언제부터 속가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속가제자에도 등급이 있었다. 가진 권력이나 기부금 등으로 사는 시설이나 배울 수 있는 무공이 달라지는 것이다.
청솔은 잠시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건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정말로 속가제자를 원하신다면 잠시 저를 따라오십시오."
청솔로서는 장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매우 큰 아쉬움을 느꼈다. 또한 그의 자질이나 인성 그리고 현문의 심법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장문인이 축객령까지 내려 노함을 표한 이상, 그로서는 장수를 속가제자에서 직전제자로 바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청솔이 장수를 데려간 곳은 인당이었다. 이곳에서는 속가제자를 관리하는 일도 맡아서 했던 것이다.
청솔은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장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사님,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아. 도우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과 함께 장수를 안내해주었다.
사실 청솔정도의 직급을 가진 상태라면 해야 할 일이 매우 많은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 막 복귀를 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처리할 일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장수를 안내해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청솔은 장수에게 큰 인연을 느낀 상태였다. 그리고 그의 순수함이 좋아서 일부러 직접 안내까지 한 것이다.
잠시 후 인당의 업무를 하는 도사가 청솔에게 다가왔다.
"사숙. 이곳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도사의 말에 청솔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 분이 속가제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구나."
청솔로서는 ‘속가제자’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도사는 그런 청솔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장수에게 물었다.
"속가제자가 되려고 하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럼 간단하게 문서를 작성해야 하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도사는 이런 일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장수를 능숙하게 탁자로 안내했다.
"신원 보증인이 청솔사숙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도사는 한 장의 서찰을 꺼내 장수에게 건넸다.
"여기에 그대로 써 주십시오."
돈만 있으면 되는 게 속가제자였지만 그것도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돈으로 뽑는 자리였기 때문에 만들어야 하는 서류가 많았던 것이다.
장수로서는 어서 빨리 작성을 마치고 속가제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유운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었다. 때문에 평소에 느릿하던 그의 동작이 빨라졌다. 물론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의 보통빠르기와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