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편 - 유운의 제자가 되다
더구나 배우는 사람들의 실력이 엉망인 것이 눈에 보였다.
초절정고수에게 배우는 자들의 실력이 일반무사보다 못하다니 말도 안 되었다.
장수 역시 맨 뒤에서 얼떨결에 태극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유운은 불편한 몸으로 최선을 다해 태극권을 선보였다.
하지만 배우는 학생들의 자세가 문제였다. 그들은 감히 번천장협 유운의 무공을 배울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다. 더구나 어떤 자들은 불평을 늘여놓았다.
"젠장. 내가 돈만 많았어도 저런 병신에게 배우지 않아도 되었는데…."
장수로서는 열불이 터지는 말이었고, 참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가 그토록 존경하고, 평생의 스승으로 생각하는 유운에게 저런 말을 하다니. 당장 자신의 두 손으로 육장을 만들어 버려야 할 녀석이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녀석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론 그 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합에 묻혀 금세 사라졌지만 장수의 귀에는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들렸다.
'분명히 기억하겠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녀석들이었다. 지금 당장으로는 혈마보다 더 그를 화나게 만드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우선 상황을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 누군가가 수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척 보기에도 무당파의 제자로 보이는 도복을 입은 것이 속가제자들의 스승으로 보였다.
그들은 늦게 나타난 것도 모자라 아무도 없는 빈 곳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스승보다 늦게 속가제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스승들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스승들은 그런 그들을 먼저 가서 인사를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구나."
장수로서는 화가 날 지경이었다. 행색을 보니 저들은 있는 집 자제들 같았다.
'참나. 여기도 혈교와 다를 게 없구나.'
혈교도 ‘고귀한 피’라고 불리 우는 특권층이 있었다. 그들은 날 때부터 혈교의 최상승 무공을 얼마든지 배울 수 있었다.
그런데 정파 중의 정파라는 무당파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는 속가제자들이 그러든, 그들의 스승들이 그러든 하등 상관이 없었다.
그가 화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여덟 명의 스승이 나누어서 학생들을 받으면 자신이 유운에게 교육을 받을 시간이 많아진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자들이 유운에게 무공을 배우니 자연적으로 유운과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로서는 참 답답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를 더 답답하고 화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자신 때문이었다.
장수는 유운이 가르쳐 주는 태극권을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 부족한 자들이랑 같이 하는데도 자신이 가장 못 하는 것만 같았다.
태극권의 동작은 전생에서부터 전부 알고 있었다. 태극권은 널리 알려진 무공이었기 때문에 그 중 핵심 부분이나 비기를 뺀 나머지 대다수 동작들은 장수 역시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운이 가르쳐 주는 것도 그 범주를 넘지 않고 있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 법.
다 알고는 있지만 그의 몸은 그런 간단한 동작도 못 따라하고 있었다. 실로 황당한 일이었다.
장수가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장법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권법이나 수법, 각법 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장법에 근접할 정도의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승무공의 무리를 이해한다고 해도 몸이 이렇게 뚱뚱하고 느리면 동작이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크크크."
장수는 곳곳에서 들리는 비웃음소리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전진심법 때문에 그의 성격은 유순해졌다. 하지만 거듭되는 충격적인 일 때문에 그의 내부는 끊는 활화산처럼 끊어 오르고 있었다.
'분명히 기억해 두겠다.'
사방에서 기합소리가 요란했지만 장수의 귀는 선천지공 덕분에 작은 소리 하나하나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비웃음을 내던 녀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할 수 있었다.
장수는 초절정고수로서의 자존심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은 되지 않는 것이다. 정말 쉬운 태극권이었지만 장수로서는 한 동작, 한 동작이 너무 힘들었다.
더구나 느리게 움직이는 거라 장수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지만 장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의 정신력은 전생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의 몸속의 기운 역시 지친 몸을 달래주었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강한 정신력과 내공을 가지고 있어도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 동안은 석가장에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동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몸은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장수는 이를 악물었다. 최선을 다해서 태극권을 수련했다.
그렇게 한시진이 지나갔다. 그와 함께 동작이 끝났다.
장수의 몸은 땀으로 목욕한 듯 했다.
몸 구석구석에서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원래라면 상쾌함을 느껴야 했다. 몸을 한계까지 운용하면 수련을 끝내고 나서는 개운함까지 느껴져야 정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극한의 고통을 느꼈다. 근육이 덜 발달된 상태에서 수련을 해서인지 몸이 무리한 것이 느껴졌다. 게다가 몸이 비대해지고 나서는 이렇게 힘들게 훈련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고통이 심했다.
천하에서 가장 쉬운 무공에 속하는 태극권을 수련하면서 이렇게 극한의 고통을 느끼는 자는 장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때 유운이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에게 말을 했다.
"오늘 수련도 열심히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의 수련은 이것으로 끝입니다."
유운이 말이 끝나자 많은 사람들이 흩어졌다.
오늘 배운 무공을 수련하는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수련장 밖으로 나갔다.
'뭐야 한 시진만 수련을 하고 마는 건가?'
장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수련은 하루 종일 해도 부족한 것이었다. 더구나 이곳에 모인 자들의 자질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 시진만 하고 추가 수련을 안 하는 자들을 보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장수는 급하게 한 명을 잡아 물었다.
"오후에는 수련을 하지 않습니까?"
장수의 말에 남자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후에는 장법수련을 합니다. 그러니 그른 거지요."
남자의 말에 장수는 충격을 먹었다.
장법을 수련하는데 왜 글렀다는 말인가?
장법으로 초절정고수의 반열까지 오른 그로서는 이해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법을 배우는데 왜 글렀다는 것입니까?"
"시범도 없이 하라고만 합니다. 그냥 단순히 손만 뻗는 건데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겁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포기를 한 수련입니다. 만약 관심 있으면 배워보십시오."
남자의 말에 장수는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대부분이 사라진 뒤였다.
장수는 유운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유운이 반갑게 맞이했다.
"자네 왔는가?"
"그렇습니다. 스승님."
"그래. 자네는 장법을 배울 생각이 있는가?"
"당연하지요. 저는 스승님께 장법을 배울 날만을 학수고대했습니다."
"그래?"
유운은 장수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장법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스스로도 크게 회의감을 느끼는 중이였기 때문이다.
무당파는 본래 일장일검(一掌一劍)이라고 하여 과거에 권장법의 무공이 크게 융성 하였으나, 지금은 검만이 최고라 여기고 있다.
본시 도사란 살생을 금해야 하거늘, 살생을 원칙으로 하는 검을 더 숭상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늘 마음에 걸려 유운은 자신의 무공인 장법을 가르치려고 노력 했다.
또한 무당파의 내부에 자리한 검에게 기운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 했다.
허나 그러한 노력이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 그런데 수련은 언제부터 입니까?"
"수련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하는 거네. 자네 역시 식사를 하고 오게나."
"예. 그런데 스승님은 식사를 하지 않으십니까?"
장수의 말에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이게 있지 않은가?"
그가 들고 있는 것은 작은 환약이었다. 아마 선식을 뭉친 것으로 보였다.
"그걸 드시고 양이 되시겠습니까?"
"괜찮네. 오랜 시간 이걸 먹어서인지 배가 안고파."
"……."
장수는 유운이 너무 적게 먹기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그런데 자네 아까 수련하는 것을 봤는데 고생을 많이 하는 거 같네. 어서 식사를 하고 오게나."
유운의 말에 장수는 감동했다. 유운에게 수련을 받는 사람이 못해도 천 명은 되는 듯했다.
그런데 자신을 눈여겨봐 주다니. 너무 감사했다.
"저를 보셨습니까?"
"그래. 자네 수련을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어."
"……."
감동도 잠시 장수는 부끄러워 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걱정하지 말게 열심히 하면 자네도 실력이 상승할거야."
"정말입니까?"
장수는 유운이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그렇네."
유운의 말에는 깊은 신뢰감이 있었다.
장수는 유운을 보며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장수 역시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던 적이 있는 무학의 종사였다. 자신의 몸이 뚱뚱해 스스로 무공을 익힐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자괴감에 빠져 있던 장수였다. 그런 그에게 유운의 말은 더 없이 진중해서 꼭 그의 말대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