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편 - 수련
저녁을 다 먹은 장수는 합숙소로 가는 길에 청솔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청솔도사님!"
"도우님. 수련은 잘 하셨습니까?"
청솔은 장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예. 모두 도사님 덕분입니다."
"수련을 잘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렇잖아도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저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청솔은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입니다. 뭐든 물어보십시오."
"제가 오늘 수업시간에 이상한 것을 봤습니다."
"어떤 겁니까?"
"오전에는 제자들이 유운스승님에게 줄을 서 있었고, 오후에는 유운스승님을 뺀 나머지 스승님들에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청솔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궁금하셨군요. 그게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청솔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사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창피하지만 일곱 명의 스승들이 오전에 수업을 담당한 것은 권세가의 자제분들입니다. 그분들도 나름의 이유 때문에 이곳에서 속가제자로 들어섰는데 그분들은 가문의 후광이 있어서 따로 수업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한 것이 하루의 반나절을 따로 그분들에게만 할당하게 된 것입니다."
청솔이 말에 장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군요."
"사실 그분들의 가문에서 본파를 지원해준 게 많으니 그 정도의 편의는 봐드려야 지요."
청솔은 말을 하면서도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그럼 오후에는 그분들이 왜 수업을 안 나오는 겁니까?"
"그분들은 체력이 약하셔서 그 정도 수련만 하셔도 힘들어 하십니다. 물론 그 중에 뛰어난 분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그리고 따로 전담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본파의 제자들이 전속으로 가르침을 주는 분이 계시지요."
"그렇습니까?"
"예. 속가제자라고 해서 재능이 모자라는 분만 있는 게 아닙니다. 가문의 사정상 도인이 될 수 없어서 속가제자가 되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능력을 인정해서 따로 전담스승이 붙습니다. 그리고 무공을 허락하는 것도 많아집니다."
"그렇군요."
장수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러니까. 결국은 특권층이라는 거군. 따로 전담스승을 붙일 수는 없어도 가르치는 스승에게 그 정도로 요구를 한다는 말이지. 이 사이에도 뭔가가 있겠구나.'
"그런데 이상한 건 왜 유운스승님에게 수업을 안 받는 겁니까?"
청솔은 미소를 지었다.
"그게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본파에서는 권법을 비롯해 무수히 많은 상승무공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 근래 유행이 검을 배우는 게 되서 장을 배우는 제자가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고수들도 어느 정도 장법이나 권법을 배우는 게 필요하지만 검을 주로 익혀서 그 외의 무공은 안 익히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속가제자들도 장법을 잘 안 배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장수는 청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생각은 달랐다.
'당사자가 아니니까 정확한 것은 모르는구나. 다른 속가제자에게 물어봐야 되겠구나.'
"그렇군요."
"예. 그래서 도우님이 유운사숙께 수업을 듣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하긴 장법을 쓰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청솔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긁적였다. 그의 전생에서의 무위였을 때는 장법을 쓰면 무적이었다. 그랬기에 상단에서 장법을 쓴 것은 창피하기만 했던 것이다.
"장법을 잘 못씁니다."
"아닙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훌륭하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직접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청솔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장력을 쓰셨다면 어느 정도 내공이 있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몸이 느리신 겁니까?"
청솔의 말에 장수로서도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몸의 근력이 너무 부족해서 그런 거 같습니다."
청솔은 장수에게 관심이 매우 많았다. 도가에서 말하는 인연을 느낀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바쁜 와중에도 여기까지 찾아 온 것이었다.
"그런가요? 그럼 잠시 몸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청솔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그럼 어디 조용한 데로 가시지요."
무당파 곳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곳이 많았다. 유운이 안내한 곳은 나무로 만든 정자였다.
청솔은 안자마자 장수의 맥문을 만졌다.
"제가 한번 몸을 살펴보겠습니다."
말과 함께 청솔의 기운이 장수의 몸을 샅샅이 뒤졌다.
이미 장로에게서 유운이 현문의 심법을 익혔다는 것을 들은 뒤였지만 기운이 너무 오묘하게 숨어져 있어서 유운으로서는 자세하게 살펴야 희미한 흔적을 발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 기운이 정순하고 숨어있는 양이 상당하다는 것은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진맥을 끝낸 청솔은 한숨을 내쉬었다.
"상당히 심후한 공력이 숨어있는 것이 느껴지는 군요."
그 기운은 전진심법의 기운이었다. 선천지공으로 쌓인 상단전의 기운은 청솔이 아예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장수 역시 그런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짐짓 모르는 척 되물었다.
"예. 그런데 내공이 있으면 몸이 반응속도가 빨라지는데 도우님 같은 경우는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청솔은 모르고 있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장수의 몸에서는 전진심법과 선천지공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기를 끊임없이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긴 내공은 전신 세맥으로 보내지고 있었다.
장수의 몸은 내공덩어리라 할 수 있었다. 내공이 끊임없이 운기 되는데 몸의 근력이나 상태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움직임이 매우 느렸던 것이다.
하지만 청솔은 그런 것까지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생각하며 장수를 향해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요. 제가 장로님에게 말씀을 드릴 테니 장로님에게 찾아가 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청솔의 말은 장수의 흥미를 돋우는 말이었다.
지금 그의 상태로는 무공을 익히기가 매우 힘들었다. 몸이 일반인만큼은 되어야 무공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데 지금은 일반인보다 못했다.
내공이 뛰어나고 머릿속에는 초절정고수일 때의 무리와 깨달음이 그대로 있었지만 몸 때문에 되는 게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장수로서는 청솔의 말에 희망을 가진 것이다.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이제 본파와 인연을 맺었으니 한식구인데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청솔의 말에 장수는 감격했다. 청솔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지금 도우님에게 아무것도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오히려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장수는 청솔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제 몸을 생각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청솔은 은은한 미소를 짓더니 장수에게 말했다.
"이제 제가 가봐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일대제자인 청솔이 한가할리가 없었다. 그는 장수를 향해 포권을 하고 어딘가로 급하게 달려갔다.
청솔이 사라지자 장수는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좋은 분이구나."
역시 대무당파였다.
무당파의 정기를 이은 제자의 마음이 너무 따스하고 정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