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편 - 수련
그는 전생에서 사람을 죽이던 자였다. 그리고 도복을 입은 도사들도 수를 셀 수 없이 죽였다.
그런 그가 도복을 입으니 어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감상은 잠깐이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장수는 수련복으로 갈아입었다. 도복을 입고는 수련을 하기에 힘들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게 태극권을 수련하는 것이었다. 동작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상승무리도 알고 있는 그였기에 태극권의 동작을 외우고 그 뜻을 아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그런 장수지만 동작을 취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수련을 해도 몸이 안 따라 주었다.
"이 놈의 몸이 말을 안 듣는 구나."
석가장에서도 그랬다.
혈교의 상승 무공들을 시전해 보았지만 몸 때문에 제대로 된 동작을 취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암기하고 있던 무공들을 익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태극권 역시 마찬가지였다. 장수가 동작을 취하면 취할수록 웃기는 자세만 형성되었다.
‘창피하구나. 만약 전생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면 믿지 못할 일이겠지’
그는 전생에서 냉정한 표정과 날렵한 몸매로 명성을 날렸다. 더구나 단번에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은 싸늘한 매력까지 있었다.
그 덕분에 혈교의 수많은 여자들이 그를 보고 반해 있었고 그로서는 여자들을 마음대로 취하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생의 날렵한 장삼이 아니라 뚱뚱한 석가장의 장수였다.
장수는 악착 같이 수련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몸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고 점점 해괴한 몰골만 되어 갈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하자 그의 몸은 노곤하게 되었다. 그제야 장수는 동작을 멈추었다.
"정말 힘들구나."
온몸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 않아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온몸에서는 땀을 비 오듯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오늘처럼 진저리나게 수련을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은 석가장이라 눈치를 봐야 했고 그 이후에는 마차에 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무당파에서 무공을 배우는 속가제자였다. 더구나 태극권이라는 무당파의 무공을 배운 뒤였다.
장수는 힘들지만 마음은 개운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얼굴에는 계속해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장수. 그는 천생 무인이었던 것이다.
장수는 땀에 절은 수련복을 벗고 다시 도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스승님에게 가야겠구나."
유운을 만나는 것은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유운은 그의 참된 스승이었고, 같은 장법을 행하는 호적수였기 때문이었다.
유운의 처소로 가자 유운이 웃으며 마중 나왔다. 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은근히 장수를 기다렸던 것이다.
"스승님 제가 왔습니다."
"오. 그래 왔는가?"
유운의 밝은 표정을 보자 장수는 노곤한 몸이 한순간에 씻기는 듯한 기분을 들었다.
"예, 스승님."
"그래. 식사는 했는가?"
유운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하지만 장수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 왈칵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운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래서 식사를 했냐는 사소한 물음에도 깊은 정을 느꼈던 것이다.
"물론입니다. 스승님."
"그래. 잘했네."
"스승님은 식사를 하셨습니까?"
"나야 자네가 사준 점심을 먹고 배가 행복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기에 달래느라 혼났네 그려."
유운은 배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그래. 무공을 익히는데 궁금한 점은 없었나?"
장수는 장법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그가 평생 동안 수련한 것이 장법이었다.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유운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심오한 무리를 물어보면 유운이 이상하다 생각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꼭 물어보겠습니다.'
장수의 머릿속에 있는 것을 물어보려면 장수의 무공이 최소 절정의 경지에는 이르러야 했다.
만약 그 전에 물으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없습니다. 스승님."
"그래. 아직은 없겠지만 조금만 지나가면 궁금한 게 생길 것이네. 그럴 때면 어려워하지 말고 꼭 물어 보게나."
"알겠습니다. 스승님."
장수가 바라던 바였다.
유운과의 대화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유운의 처소를 나서자 하늘이 별로 가득 차 있었다.
"어서 가야겠구나."
장수도 피곤했다. 어서 수면을 취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내일도 유운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일어나십시오."
"음……."
장수는 억지로 눈을 떴다.
수련 첫 날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장수는 힘이 들었다.
“첫 날이라 힘드셨나 봅니다.”
냉하상의 말에 장수는 창피한지 고개를 숙였다.
'이거 초절정고수로서의 체면이 살지 않는구나.'
장수는 지금의 상태가 고수의 내공을 가졌지만 내면으로는 초절정고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몸만 좋아지면 초절정고수는 금방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반인에 불과한 냉하상의 말에 창피함을 느꼈던 것이다.
"괜찮습니다. 저 역시 첫 날에는 장수님처럼 쉽게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삼 개월째를 넘어서니 몸이 상태가 좋아져 버틸 만했습니다."
냉하상의 말은 장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장수가 무공을 익힌 시간은 1갑자에 가까웠다.
그렇게 무공을 익힌 장수가 겨우 무공을 익힌 지 삼 개월밖에 안 되는 자에게 훈계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의 떨떠름한 표정에 냉하상이 웃었다.
"어째 되었건 저는 먼저 가겠습니다. 그러니 장수님도 어서 준비를 하도록 하십시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 냉하상을 비롯해서 방안에 있던 자들이 모두 나갔다.
"어서 가야겠구나."
밥을 먹고 수련을 하러 가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때문에 장수는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물론 장수 딴에는 급하게 움직이는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매우 느린 움직임일 뿐이었다.
장수가 수련장에 모습을 보인 것은 한참 뒤였다. 이미 다른 사람들은 맨 앞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늦게 뒤에 선 장수는 유운을 기다렸다.
'이 시간도 아깝구나.'
장수는 뭐든 것이 아까웠다. 어서 빨리 살을 빼서 절정고수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는 유운과 나누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다. 그리고 그 말을 하기 위해서는 절정의 경지에 올라서야 했던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태극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살찐 돼지가 뒤뚱거리며 엉덩이를 흔드는 모양 같았다.
유운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웃음이 터졌다.
"저, 저게 뭐야?"
한쪽에서 시작된 웃음이 다른 쪽으로 퍼졌고, 그 웃음은 끝이 없이 터졌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웃음보가 터졌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미친 듯이 웃었다. 어제 수련할 때는 사람들도 유운을 보며 태극권을 따라하는데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그랬기 때문에 뒤에 있던 장수를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보니 미칠 정도로 웃긴 것이다.
'젠장.'
장수는 인상을 썼다. 참을 수 없는 일이였다.
감히 자신이 태극권을 펼치는데 비웃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였다.
'두고 보자.'
장수는 원한을 가슴에 깊게 새겼다.
전생의 자신이었다면 당장 모든 자들을 육장으로 만들어 버렸을 것이다.
그는 피를 보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자신을 비웃는 녀석들에게는 확실한 본보기를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혈교에서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무당파였다. 성격대로 행동할 수 없었고, 더 중요한 것은 화가 그대로 식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화가 나면 잠시만 참아도 단전에서 전진심법의 기운이 한 차례 지나갔다. 그리고 화가 났던 감정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때문에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장수는 가장 크게 웃는 녀석들을 하나하나 기억했다. 그리고 곱씹었다.
'분명히 복수해 주마.'
장수는 창피함을 느끼면서도 끝없이 수련에 전념했다. 창피한 감정보다는 수련이 먼저였다. 그리고 무에 대한 갈망이 창피함보다 컸다. 그런 그의 무에 대한 열망은 다른 감정을 잊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장수가 무공을 연마하는 광경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웃겨도 너무 웃겼다. 때문에 웃음은 끈이지 않았다. 오히려 장수의 다음 동작을 보고 배꼽이 빠져라 웃었던 것이다.
연무장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있는 집 자제들이 조금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멀리서 장수를 보다가 좀 더 가까이 봤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
장수는 미칠 지경이었다. 차라리 가까운데서 보고 웃으면 좀 더 나을 것이다. 이젠 아예 다른 곳에서 보고 비웃었던 것이다.
어제는 너무 멀었기에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웃음소리가 크니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장수로서는 이제는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추면 더 뻘쭘해 지는 상황이 올 것이었다. 그랬기에 장수는 묵묵히 수련을 계속했다.
그때 잔잔한 음성이 수련장을 가득 채웠다.
"수련을 하도록 하겠네."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수련장을 가득 채우는 목소리였다.
유운이 나타난 것이다.
노쇠한 그의 목소리가 어떻게 수련장을 가득 채우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그 소리가 나자 속가제자들은 유운을 바라보며 섰다.
그러자 그 기회를 틈타 장수도 동작을 멈추었다. 그리고 유운을 바라보았다.
"오늘 역시 태극권을 할 것이니 자세를 취하도록 하게."
말과 함께 유운은 천천히 태극권을 펼쳤다.
태극권은 무공이었지만 또한 동공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오랜 시간 연공을 하면 심법을 운기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났다. 때문에 알게 모르게 속가제자들의 단전에 내공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러한 이치는 속가제자들은 모르고 있었고 유운 역시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는 않았다.
장수는 유운의 자세를 정확하게 보고 자신도 그대로 따라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자들은 모르겠지만 유운의 자세는 무공의 교범과도 같았다. 너무 완벽한 자세라 그대로만 따라 한다면 태극권만으로도 고수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태극권 자체가 절정의 경지에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무공이었다. 괜찮은 내공심법만 익힌다면 절정고수도 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속가제자들은 동작만 익히려고 하지 유운의 자세를 완벽하게 따라하려고 하는 자는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 유운은 다리를 저는 노쇠한 노인일 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깔보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 보석이 눈앞에 굴러다녀도 안목이 없어서 못 줍는 것과 같은 일이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장수는 달랐다. 그는 기를 쓰고 유운을 바라보았고 그와 닮기 위해 노력했다.
나름대로는 잘하고 있었다.
나름대로는 말이다.
1권 분량의 연재가 끝났네요. 내일부터는 2권 분량의 연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끔 코멘트를 보는데..재밌게 읽으시고 코멘트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하단 말씀 드립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