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편 - 스승의 가르침
유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앞으로 수업하기 전에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는 내가 가르쳐 주는 장법 이외에도 권법과 수법 장법들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거라. 그런 것들을 모두 배우려면 시간이 없다. 그러니 잠을 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그것을 배울 생각을 해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유운의 말은 장수로서도 바라는 바였다.
장법이라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권법과 수법, 그리고 각법을 배워야만 했다. 장법을 펼치는데 순간적으로 많은 내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법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는 힘 조절이 힘들었기 때문에 완숙의 경지까지 배우려면 다른 여러 가지 무공도 익히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공들은 서로 상승작용을 했다. 때문에 유운 역시 혈교에 있을 때 많은 권법과 수법 각법 등을 익혔다.
"내가 전에 말했던 칠선장을 보여주마."
유운은 어설프게 동작을 취했다.
정말 웃기는 자세였다. 그리고 불 품이 없었다. 늙고 노쇠한 늙은이가 펼치는 장법이 멋있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장법이라면 화려한 볼거리가 필요했다. 못해도 바위가 부서지고 땅이 파헤쳐 올라가는 모습이 보여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유운의 칠선장은 그냥 동작일 뿐이었다. 그저 간단하게 손바닥을 내미는데 배울 점은 못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수가 느낄 때 유운의 칠선장은 배울 점이 많았다.
장수는 몸만 느린 것이었다. 그의 안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한 눈에 칠선장의 오묘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따라해 보거라."
장수는 칠선장을 펼치는 동작을 취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장력이 펼쳐지지 않는다. 구결과 함께 그에 맞게 내공을 운기해야 장력이 발휘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절한 보법과 다른 무공을 만나야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될 수 있었다.
장수는 지금 당장이라도 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유운의 가르침을 따를 때였다. 그랬기 때문에 동작만을 취할 뿐이었다.
"그게 아니다. 좀 더 허리를 굽히거라."
유운의 말에 장수는 좀 더 허리를 굽혔다.
둘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다.
남들이 보면 웃기는 일이었다. 무공을 연마하는 것도 아니고 위력을 높이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한 동작을 여러 차례 행하는 것은 그들이 보기에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였다.
더구나 속가제자들 대부분의 안목은 일반인과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위력적인 발동작이나 손동작을 배우는 게 아니라 엉덩이에 힘을 주고 손바닥을 내미는 단순한 동작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배우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유운과 장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었다.
뭐든 무공은 기초가 중요하다. 그것은 장수 역시 초절정의 경지에 오를 때 느꼈던 것이다. 그가 초절정의 벽에 마주쳤을 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기초의 부실함이었다.
그 당시 그는 조금이라도 더 강한 무공을 배우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기본 무학은 익히는 듯 마는 듯 했고, 강한 무공을 위주로 배웠던 것이다.
때문에 기초가 부실했고 초절정의 경지에 도달 했을 때 겨우 벽을 넘었다. 그것은 순전히 운 때문이었다. 실력이 아닌 것이다.
장수는 그 당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유운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운은 장수에게 기초를 잡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 하나, 숨 하나마저 기본이 안 되어 있다면 금세 무너지는 법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상승의 경지
를 쉽게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장수는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배울 뿐이었다.
하지만 구경하던 자들은 계속해서 웃을 뿐이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갈까?"
"그래. 너무한 거 같아. 저런 무의미한 동작을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계속 시키잖아."
구경을 하던 속가제자들은 웃으며 말을 했다. 그들도 저런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열심히 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자기 탓을 안 하고 유운의 탓으로 돌렸고, 때문에 상승무공을 배울 기회를 스스로 놓친 것이다.
아무리 평범한 자라도 유운을 믿고 그대로 따랐다면 시간이 지나 절정의 경지까지는 무난하게 올랐을 것이다. 그만큼 유운의 가르침은 체계적이면서 진보적인 가르침이었다. 그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모르겠지만.
자세만 봐주는 것으로 그날의 수업은 끝났다. 이윽고 종이 치자 장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단순한 자세였다. 하지만 그것에 온 신경을 썼기 때문에 보통 때보다 갑절의 피곤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유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을 봐주는 것은 쉬운 게 아니었다. 자신이 펼치는 자세야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했기에 틀리면 무의식적으로 고쳐졌지만 다른 사람의 자세는 집중하지 않으면 세세한 곳까지 정확하게 지적해줄 수 없기 떄문에 많은 정신력이 소모되는 것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냉정한 말이었다. 하지만 유운은 수업을 가르칠 때는 엄한 스승이었다. 자신이 엄해야 제자의 성취가 오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유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수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너무 억지로 일으켜서인지 그의 몸에서는 괴기스러운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유운을 믿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악착같이 일어선 것이다.
"알… 헉헉. 알겠습니다. 스승님."
장수의 몸에서는 엄청난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억지로 일어섰다.
그러자 유운이 장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자는 몸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스승은 가슴으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 좀 더 힘을 내라."
유운은 손으로 항아리를 가리켰다.
"항아리가 보이느냐?"
장수도 아는 항아리였다. 바로 자신이 가져온 항아리였기 때문이었다.
"예, 스승님."
"앞으로 저 항아리에 물을 담아라. 그리고 물이 삼분의 이가 될 때까지 손바닥으로 쳐내도록 하거라."
"예?"
장수가 듣기에도 황당한 수련법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항아리에 물이 삼분의 이가 될 때까지 손바닥으로 왜 치라는 건가?
하지만 장수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유운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러자 장수는 스승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항아리 수련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항아리가 워낙 컸기 때문에 큰 지게로 물을 날라야 했던 것이다.
물을 다 나르자 암담한 마음이 되었다. 손바닥으로 쳐서 항아리에 물을 언제 쳐내겠는가?
하지만 장수는 스승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물을 쳐내기 시작했다.
퍽. 퍽. 퍽.
물을 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너무 세게 치면 손바닥이 너무 아팠고 약하게 치면 물이 밖으로 튀지 않았다.
몇 번 해본 장수는 항아리로 하는 이 수업이 힘의 강약을 익히는 수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공을 쓸까?'
내공을 쓰면 그 파괴력이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면 일이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승님은 내공을 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만약 내공을 쓰라고 했다면 미리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었으니 내공을 쓰지 말라는 말인 거 같구나.'
생각을 정리한 그는 항아리의 물을 손으로 쳐냈다. 하지만 물이 처음부터 쉽게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우선 그의 손바닥이 너무 연약했고 요령을 몰랐다. 그래서인지 지금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였다.
"열심히 하자."
장수는 스스로를 응원했다. 그리고 열심히 손바닥으로 항아리의 물을 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