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편 - 작은 변화
보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장수는 유운이 하라는 수련을 완벽하다 싶을 정도로 수행했다.
유운이 가르치는 것은 장법의 기초였다. 하지만 기초라는 것은 원래 매우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누구나 꼭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장수 역시 군말 없이 악착같이 버티며 수행했다.
아침이 되자 장수는 태극권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맨 뒤였지만 그가 늦게 와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봐 일부러 일찍 왔는데도 뒤에 선 것이었다.
보름 동안 수련을 해서인지 장수의 태극권은 우스운 것은 여전했지만 자세가 좀 더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장수의 살이 어느 정도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보름이었지만 장수는 보통사람이 이백일 동안 해도 못할 정도로 힘들게 수련을 했다. 그 덕분에 몸의 반응속도가 빨라진 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 장수를 보고 비웃는 자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독하다고 생각했다. 장수가 얼마나 많은 수련을 하는지 소문이 날대로 난 상태였다. 하루 종일 대부분의 시간을 수련하는 장수는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수는 살을 조금 밖에 빼지 못했다. 일정 수준 이하로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태극권 수업이 끝나자 사람들이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장수역시 유운에게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몇 명의 사람들이 장수에게 다가왔다.
장수도 여러 번 봤던 자들이었다. 수련장에는 죽이 맞는 자들끼리 뭉쳐서 수련을 했는데 그도 마찬가지인 사람들이였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자가 장수를 보며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도우님."
"예. 반갑습니다. 도우님."
"제 이름은 장여홍이라 합니다."
"아. 제 이름은 장수라고 합니다."
여홍이라는 자는 장수를 향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언제 봐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시는군요."
여홍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좋게 봐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장수의 말에 여홍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봤을 때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도우님처럼 열심히 하는 분은 처음 봤습니다."
"아닙니다. 다른 분들도 수련을 열심히 하십니다. 저야 몸이 이래서 눈에 띄는 것뿐이겠지요."
장수의 말에 여홍은 고개를 흔들었다.
"도우님이 수련하는 모습에 모두가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과도 요즘 도우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수련을 열심히 하신다고요."
여홍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장수는 이정도 수련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혈교에 있을 때는 이보다 수련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그곳은 자신과 경쟁을 하는 자가 있으면 암살부터 하려는 곳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강해지기 위해서 쉬지도 못하고 수련을 해야 했다.
그에 반해 이곳에서는 누군가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긴장감이 없었고 몸도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상황이라 혈교에 있을 때처럼 가혹한 수련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보기에는 놀라울 정도의 수련 양이었다.
"사실 저도 처음 도우님을 봤을 때 덩치만 보고 금세 그만 두실 거라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오히려 경지에 도달할 분이라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경지라니요?"
장수는 일반인들에 불과한 자들이 경지라는 말을 하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지는 화경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화경의 경지는 지고무쌍의 경지로 그곳에 닿는 순간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가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전생의 그 역시 그토록 원하던 경지였고 지금도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열심히 수련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홍이 그런 경지를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 졌다.
"하하하! 사실 어렸을 때부터 명문문파에서 체계적인 무공을 쌓지 않는다면 그 경지에 도달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곳이 무당파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수련을 하다 보니 가끔씩 무골인 분들이 나옵니다. 그럼 그런 분들은 늦게 시작했지만 그 경지에 도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은사님들의 경지를 뛰어넘고는 하지요."
여홍은 마치 꿈을 꾸듯이 말을 했다. 명문정파인 무당파에서 체계적인 수련을 한 일대제자들을 뛰어넘는 경지란 이룰 수 없는 목표였다.
하지만 무의 세계에 발을 디딘 여홍으로서는 꼭 이루고 싶은 경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장수는 여홍의 말에 김이 샜다. 여홍이 말하는 경지란 고수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우스운 일이였다. 장수는 지금 당장이라도 수련을 가르치는 스승들을 상대로 맞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속마음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적당히 상대하고 존경하는 유운과 식사를 하러 가야 했던 것이다.
"그렇군요. 정말 대단한 경지로군요."
"예. 사실 여기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장을 꿈꾸며 수련을 하지만 그들도 꿈이 있지요. 강호의 고수가 되어 천하를 돌아다니는 꿈이 바로 그것이지요."
고수만 해도 대단한 경지였다. 고수만 해도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는 행세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에게는 관심이 없는 말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이야기는 이제 끝나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저는 도우님께서 그만한 자질이 있으시면 서도 잘못된 길로 가는데 매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장법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도우님께서는 태극권 수련이 끝나면 장법을 수련하시지 않습니까? 하지만 장법이라는 게 경지에 오르기 매우 힘든 무공입니다. 그래서 무림의 태산북두라는 무당파에서도 장법의 고수가 드물지 않습니까?"
장수로서는 황당한 말이었다.
무당파에서는 장법으로 최강의 고수를 만들어 냈다. 그가 바로 유운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법의 고수가 드물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
"저와 함께 검법을 배우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럼 도우님의 노력과 무당파의 검술이 만난다면 제가 장담하는데 삼년 안에 도우님께서는 경지에 오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검술을 배우라니.
장수는 잠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장법을 배우는 그로서는 검술은 여자나 배우는 연약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때문에 검술로 상당한 경지를 쌓은 그였지만 어지간해서는 검을 잘 쓰지 않았다.
그리고 겨우 고수의 경지에 불구한 자들이라면 혈교의 검술이 아니라 기본검술만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일부러 내색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유운을 모시고 오래 지내려면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때문에 장수는 이 여홍이라는 자의 장단을 좀 더 맞춰줄 생각이었다.
"삼년 안에 고수의 경지에 오른다고요?"
장수의 말에 여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명문 정파인 무당파니까 고수가 흔했지, 보통의 문파는 고수만 해도 핵심 재원이었고 매우 드문 경지였다. 그리고 작은 문파에서는 고수가 한 명만 있어도 대단하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경지를 장수의 정확한 실력도 모른 채 삼년 안에 될 수 있다는 말은 무언가가 있다는 말이었다.
장수는 음모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었다. 때문에 여홍의 말에서 무엇인가를 찾아 낸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여홍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여홍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우연인 듯 같이 온 무리가 다른 사람들과 장수의 시야를 가리듯이 에워쌌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도우님이 자질을 아껴서 하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같이 보통사람들에게는 상승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면 생계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무공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루 종일 그것에 매달릴 수가 없는 것이지요."
장수도 생계에 대해서는 냉하상에게 들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은 그런 것에 밀접하게 연관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요."
"하지만 저희 공자님께서는 그런 무사들을 불쌍히 여겨 생계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공자라는 말에 장수는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공자님이요?"
"그렇습니다. 무공을 익히러 잠시 이곳에 오셨는데 이곳에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주기로 결정을 내리신 것이지요."
그 정도 말이라면 충분했다. 장수도 어떻게 된 건지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