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편 - 작은 변화
'그렇구나.'
사실 무당파의 입장에서는 속가제자들은 자금줄 정도밖에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무력은 무당파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따로 특출 난 자들은 관심을 보이지만 그 외에는 방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일반 권세가나 상가에서는 입장이 달랐다. 무당파에서 무공을 어느 정도 익힌 자라면 훌륭한 무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자질을 보이는 자를 은자를 지원하고 후에 수련이 끝나면 자신의 세가로 데려와 무사로 쓰는 것이다.
장수는 그렇게 생각하자 주변의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생각해 보니 한두 명이면 몰라도 너무 많은 자들이 같이 다녔던 것이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이니 세가 생기고 그래서 세력을 과시하는 자들이 생기는 듯 했다. 물론 순수하게 수련만 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발휘하면 이들의 눈에 띨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까?"
장수는 오늘의 대화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이런 것은 알고 있어야 나중에 써먹을 수 있지, 모른다면 나중에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크게 관심은 없었다. 장수는 지금 실력으로도 웬만한 위협은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 어떻습니까? 관심이 있으십니까?"
"저는 오늘 처음 듣는 거라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생각도 정리가 안 되고요. 그러니 나중에 다시 얘기 하지요."
장수의 말에 여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그냥 관심이 있다는 것만 알려주면 충분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잘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입니다. 저희 쪽에서는 다른 쪽에 비해 세도 크고 지원양도 많습니다. 그러니 그 점을 깊게 생각해 주십시오."
'음. 다른 세력도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가 보구나.'
장수로서는 사실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일반인들이나 다름없는 속가제자들이 마치 혈교나 마교처럼 세력을 모으고 힘겨루기를 하다니 웃음이 나올 일이였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것이 보통사람들의 생각인거 같았다.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되어 수련을 해 도장을 세우거나 어느 권세가의 지원을 받고 세가의 무사가 되거나 둘 다 어떻게 보면 매우 안정적인 일이였고 괜찮은 직업이었다.
'내가 일반인이 아니라 그런지 조금도 흥미가 없구나.'
무림을 삼분하는 혈교에서도 수뇌부에 가까웠던 그였다. 그랬기 때문에 이들이 모습이 우습게만 느껴졌다.
'이런 스승님이 기다리겠구나.'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예.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리고 검술을 배우실거면 청악스승님께 배우십시오. 그 분이 솜씨가 매우 훌륭하십니다."
"청악스승님이요?"
"그렇습니다. 괜히 장법을 배운다고 몸만 상하십니다. 장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상승의 내공심법이 있어야 배울 수 있습니다. 더구나 몸이 많이 상하고 효능은 거의 없다고 보셔도 무관합니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검술을 배우는 게 나으실 겁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장수는 여홍에게 인사를 하고 유운에게 향했다.
장수는 움직이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많은 자들이 자신을 주시하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게 뭐지?'
그전까지도 수련이 끝나면 관심을 가졌는데 오늘처럼은 아니었다. 마치 여홍 패거리가 접촉을 하자 불안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이거 혹시 내가 인기인이 된 건가?'
세를 불리는 것도 경쟁이라면 경쟁이다. 여홍 패거리가 자신을 섭외하는데 실패한 것을 알면 다른 패거리에서도 연락이 올 것이다.
'이거 무공을 수련하는데 방해가 되겠구나.'
장수는 고개를 흔들더니 유운에게 향했다.
유운에게 향하자 유운이 하늘을 보며 서있는 것이었다.
"스승님."
"그래. 왔느냐?"
"그렇습니다. 스승님."
"그래. 가자."
유운은 장수와 식당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침과 저녁은 생식을 하지만 점심만은 장수와 같이 먹었던 것이다.
식사가 끝나자 같이 수련장으로 향했다.
수련장에 도착하자 유운이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래. 수련을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스승님."
장수는 천천히 칠선장의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천천히 동작을 취했다.
어떻게 보면 미련한 짓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내공도 없이 장법의 동작만을 취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장수는 미련할 정도로 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취했다. 더구나 유운은 지켜보기만 할뿐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의 시선이었고 장수에게는 유운이 지켜보기만 해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혼자서 무공을 익혀왔었다. 하지만 유운을 만나고 스승이라는 존재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인식하는 나날이었다.
유운은 옆에서 서있기만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든든했고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동작이 이상하면 말을 해준다. 그러면 그것은 그대로 장수에게는 큰 성취가 되었던 것이다.
홀로 수련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데 자신은 이 분야에서만큼은 최고라 할 수 있는 유운에게서 항상 지도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장수는 가장 중요한 기초를 충실히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한시진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장수의 온몸에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내공이 없이 동작만 취하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땀이 흘러내린 것이다.
장법이라는 것은 내가중수법이다. 그것을 시전하기 위해서는 온몸을 사용해야만 상대방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다. 발가락에서부터 안면의 근육까지 모든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신에서 땀이 흘러내린 것이다. 그만큼 장법이라는 것이 어려운 것이었고 성취도 없었기 때문에 많은 자들이 포기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곰 같은 성격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무공만큼은 무식하게 배우려는 자세가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유운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에 일절의 망설임도 없었다. 무조건적으로 유운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장법 수련이 끝나자 장수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자세를 잡았다. 다음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유운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는 이 시간에 태극권을 수련하도록 하거라."
유운의 말은 의외였다. 태극권은 오전에 지겹도록 수련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조금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유운의 경험과 깨달음을 믿었던 것이다.
장수가 태극권의 자세를 취하고 수련을 하자 그것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검술 수련도 멈추고 장수를 쳐다보았다. 그것은 그들을 가르치던 스승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였다.
유운은 지금까지 오후가 되면 장법 수련만 가르쳤던 것이다. 만약 그가 각법이나 수법 그리고 권법도 가르쳤다면 지금보다 많은 자들이 유운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운은 철저히 오후에는 장법만 가르쳤기에 배우려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뒤집은 것이다.
유운의 고집은 못 말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랬기 때문에 아무도 안 배워도 장법수업을 고집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장수에게 태극권을 가르치는 것을 보자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다 놀랐다.
"보니까? 태극권 같은데?"
"설마…."
속가제자들은 장수가 수련하는 것을 똑바로 보면서도 믿지 못했다. 유운이 수업의 변화를 준 것은 장수의 재능을 인정했다는 말이기도 했기에 모두들 놀라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 정보가 있는 사람이라면 유운이 초절정고수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에게 접근해 악착같이 버티며 무공을 익히다 실망해 떠난 사람도 많았다.
그런 유운이 자신이 정한 원칙을 어길 정도라면 장수의 자질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가 없군."
장수는 모르고 있었지만 속가제자들은 어떻게든 장수를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운의 태극권 수업은 무엇인가가 달랐다. 장수는 지금까지 자신이 태극권이 완벽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초절정의 깨달음이 머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오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수의 자세는 전부 틀렸다. 모든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유운은 세밀하게 장수의 동작을 봐주었다. 그 때문인지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동작을 고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태극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1회를 하기는커녕 1초식을 펼치는 데만 1각이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만큼 유운은 세밀하게 장수의 몸을 살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세가 이상하면 나아질 때까지 수련을 시켰다.
장수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 원래의 태극권보다 유운이 고쳐서 가르쳐준 태극권이 더욱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유운이 고치는 태극권은 안 쓰던 근육을 이용해야 했다. 유운이 하라고 하는 자세들은 신체가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만들어 장수로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고통을 계속해서 안겨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통이 일어나도 잠시였다. 그의 단전에서 청량한 기운이 나오면 몸속의 고통이 그대로 사라졌던 것이다.
하지만 고통과 회복이 반복되는 것만큼 큰 아픔은 없었다. 반복되는 고통은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악착같이 수련에 몰두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종이 울렸다. 수업이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