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편 - 내공출수
장수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아주 어렸을 때 자세를 잡아보고 정말 오랜만에 자세를 잡은 것이다. 보통은 편한 자세로 명상을 했는데 이렇게 하니 낯설게만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운기하는 자신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몸속은 끝없이 운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장수는 그것을 관찰하기만 했다.
그렇게 장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잠시 동안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그러자 도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을이 급하게 물었다.
"자네 지금 운기를 한 것인가?"
태을이 태도에 장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저러지?'
"그렇습니다."
"그래?"
태을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도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장수를 보며 말을 했다.
"나는 자네가 운기하는 것을 몰랐네. 아니, 이 방에 있는 다른 도사들도 자네가 운기하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네."
'이런 뭐가 잘못된 걸까?'
도사들보다 전진심법에 대해 잘 알 수가 없었다. 근원을 보면 결국 도사들의 심법과 전진심법의 근원은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도사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전진심법이 맞았어. 운기를 할 때 어떤 흔적도 남지 않는다고 고서에 써 있었는데 그 말이 맞는 거야."
태을이 말에 장수는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히 문제가 될게 없었던 것이다.
그때 태을이 이어서 말을 했다.
"자네 혹시 스승이 있는가?"
태을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도사들은 아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태을이 먼저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먼저 말했을 텐데 하는 표정이었다.
태을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는 천하를 줘도 바꾸지 않을 스승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있습니다."
"그래? 상관없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양보하라고 해야겠네. 자네에게 무당파 최고의 무공을 가르쳐 주겠네. 그럼 자네는 단 시간에 무당제일고수가 될 수 있을 걸세."
태을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고 그만한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바로 무당의 전전대 장문인이었고, 전전대 무당제일검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천마와 혈마, 그리고 무성이 없었더라면 천하제일인의 자리는 그의 것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고개를 저었다.
"제 스승님은 유운진인입니다."
"그래?"
태을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미 폐인이 된 유운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장수가 자신을 택할 것이 뻔했던 것이다.
"내가 유운에게 말을 할 테니 자네는 앞으로 그에게 갈 필요가 없네. 내가 앞으로 자네를 가르치겠네."
하지만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그래……, 뭐? 아니라고?"
태을은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검술의 한 초식을 지도해달라는 자들이 몇 천 명이었던가. 그리고 스승이 되어 달라고 사정하던 자들이 또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태을의 눈은 매우 높아 단 몇 명에게만 무공을 사사했다. 그리고 그 중 한 명이 지금의 장문인이었다.
다급해진 태을은 급하게 말했다.
"자네가 내 제자가 된다면 무당제일의 영약인 자소단과 내가 직접 개정대법을 해주겠네. 그럼 단시간에 고수가 될 수 있어. 일성이마와 같은 자리에 오를 가능성도 생긴다는 말이네. 그런데 왜 거절하는 건가?"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제 스승님은 유운진인 한 분뿐입니다. 그런데 어찌 다른 분을 스승으로 삼
겠습니까?"
사실 태을의 제안은 즉흥적이었다. 장수의 자질이 괜찮고 이제는 잊혀진 현문의 심법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제안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거절을 하자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하에 누가 있어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겠는가? 태극혜검을 극성까지 이루고 화경의 벽을 두드리고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런 자신을 거절하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일어섰다. 이제 슬슬 유운에게 장법을 배울 시간이 다가왔던 것이다.
자신의 스승은 은근히 소심해서 장법시간에 조금 늦으면 서운해 하신다. 겉으로는 표정이 없지만 장수로서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더 시험할 것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 스승님에게 무공을 배울 시간이라서요."
장수는 천천히 포권을 취했다. 그리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남겨진 도사들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장수를 바라보았다. 영약 중의 영약 자소단과 개정대법, 그리고 무당최고의 무공인 태극혜검을 거부하고 떠나는 장수를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장수는 급하게 수련장으로 향했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방금 전에 원로들을 보느라 시간을 지체했다는 핑계를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가 그 변명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자기 자신도 납득 못하는 변명으로 남을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그리고 그의 스승은 분명 멀뚱히 서서 자신을 기다릴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장수가 급하게 가자 청솔이 다급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그 역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넋이 나가 있었다.
방금 전에 장수에게 천운이 닿았다. 무당이 아니라 천하 누구라 할지라도 바라 마지않을 기회가 눈앞에 온 것이다. 만약 자신이라면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태을에게 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그것을 일언지하에 거절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도우님!"
청솔이 부르자 장수는 잠시 멈추었다. 장수는 매우 바쁜 상황이었지만 청솔을 위해 잠시 시간을 낸 것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따로 더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원래라면 원로원에서의 일이 끝날 때까지 있어야 했다. 그것은 정식제자라면 당연한 일이였고 속가제자라 할지라도 당연한 예의였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가 그냥 가버리자 청솔은 그를 잡아야 했던 것이다.
"아직 원로분들이 가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그래요? 저는 제자가 되라는 말을 하기에 물어보실 말이 다 끝나서 하신 건줄 알았습니다."
장수는 무당에서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괜히 밉보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당의 도사들을 존중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 유순해졌지만 그것은 유운과 관련된 것들에 한에서였다. 더구나 태을이 밑도 끝도 없이 자신에게 무공을 배우라는 강요 아닌 강요를 한 덕분에 기분이 나빴다.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장법이다. 그리고 무당파에서 장법의 제일인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유운이었다. 그런데 유운을 아랫사람 대하듯 하는 태을에게 반감을 가진 것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배분 상으로는 유운이 태을보다 배분이 낮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지만 장수는 아직 그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장수의 말에 청솔도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검사를 하러 갔는데 제자가 되라는 말은 필요가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게 예는 아닌 거 같습니다."
청솔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가요? 하지만 저도 수련시간이 다 되서 가봐야겠습니다. 만약 더 할게 있다면 나중에 하죠."
장수의 말에 당황스러웠다. 원로들은 충분히 존경받을 가치가 있는 분들이다. 하지만 정식제자도 아닌 장수에게 강제로 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원로님들께 물어보고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예."
장수는 말을 하면서 다시 수련장으로 달려갔다. 시간이 많이 지났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가자 수련장이 보였다. 그리고 다른 속가제자들은 수업을 하고 있는데 유운 혼자서 멀뚱히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분명 자신을 기다리는 것 일거다. 자신이 원로원에 간 것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문도 모르고 늦게 오는 자신을 마냥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유운의 모습에 장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속가제자이기 때문에 다른 스승에게 무공을 배워도 상관없고 그냥 수업을 빠져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장수와 유운의 관계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서로가 신뢰하고 믿음을 주는 관계였던 것이다.
장수는 급하게 유운에게 달려가서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 죄송합니다!"
유운은 장수를 보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왔느냐? 오늘은 늦었구나."
유운은 말과 함께 뭐가 그리 즐거운지 허허 거렸다.
"예. 제가 많이 늦었습니다."
"그래. 늦을 수도 있지.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어서 수련하도록 하자."
유운은 장수가 왜 늦었는지 묻지 않았다. 장수를 믿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장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 믿음을 주는 사이인데 괜히 변명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스승이 자신을 믿을 것을 알기 때문에 천천히 수련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