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편 - 내공출수
장법은 쇠퇴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물론 무당의 도사들은 장법을 사용했고 많은 고수들이 장법을 즐겨 사용했지만 자신이 봤을 때 그들은 장법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손에서 내공을 발충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 그게 장법이라 이름붙일 만한 것은 아니었다.
유운은 장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기대를 그에게 걸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유도 전해주고 싶었다. 자신은 가지지 못한 자유를 말이다.
"너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하는 단계이지. 그러니까. 너의 성취를 자만하지 말고 끊임없이 전진해야 한다. 알겠느냐?"
유운의 말에는 장수에 대한 걱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수가 작은 성취에 고무되어 수련을 하지 않을까 고민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정도의 수준이라면 속가제자들 중에서는 상위권이라 할 수 있었고 또래 중에서도 장수보다 나은 자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목표는 겨우 장력을 방출하는 게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더욱 더 정진하겠습니다."
장수는 고개를 숙이며 말을 했다. 그래서 그의 눈빛을 유운이 보지 못했지만 장수의 눈빛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화경의 경지까지 쉬지 않고 달려보겠습니다.'
장수가 원하는 경지는 유운이 추구하는 바와 같았다. 스승과 제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의 전생의 경지는 초절정경지였다. 그런 그가 고수의 경지에서 만족할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되었다. 그래 장력을 방출하는데 걸리는 것은 없었느냐?"
유운의 말에 장수는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았다. 전생에서의 장력운영과 지
금 유운이 가르쳐준 장력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스승님. 제가 장력을 방출하는데 너무 자연스러워 장력이 방출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된 것인가요?"
장수의 말에 유운은 미소를 지었다.
"참 잘했구나. 네 말이 맞는다면 너의 수행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반증이다. 원래 장법이라는 것은 걸리는 게 없는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움에서도 마주치는 것들을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유운의 가르침은 장수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의지로 조절한다고요?"
"그렇다."
장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장법이라는 것은 뭐든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래서 방해하는 것이나 진로를 막는 것도 과감하게 부셔버려야 하는 것이다.
장수는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유운의 말은 무엇인가 틀렸던 것이다.
"좀 더 가르침을 주십시오."
유운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장법이란 상대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 아니란다. 상대방의 피해를 줄이면서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란다. 그래서 효율성을 매우 중시한단다. 너는 상대방에게 장을 뻗을 때 중간에 장애물이 있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냐?"
"저는 장애물을 부셔 버릴 것입니다."
유운은 장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가 없단다. 장애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내공을 투과해도 될 것이고, 장을 피해서 움직여도 될 것이고, 장애물을 이용해도 될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쓰던지 간에 파괴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유운의 발상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리고 장수가 기존에 생각했던 사고방식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놀랍구나.'
혈교에서 장법에 기술한 책은 대부분 강한 내공으로 모든 것을 파괴시키며 상대방의 내장을 뒤흔들거나 부셔버리는 것을 기술하고 있었다. 혈교의 무공은 마교에서 기원한 것이니 마교 역시 그럴 것이 뻔했다.
하지만 유운이 말하는 장법은 파괴시킬 필요도 없이 상황에 맞게 움직이고 상대방을 죽이거나 파괴시킬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생각이 장법이 발전하는데 큰 차이를 가져 왔던 것이다.
정파는 활인(活人)을 생각한다. 그리고 내공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무공이 적은 내공을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식으로 발전을 해왔다.
그리고 혈교나 마교는 반대로 죽이는 것만을 생각한다.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공의 경지보다는 내공이 월등히 많았고 부족하면 증폭시키는 방법도 있었기 때문에 무식할 정도로 많은 내공을 쏟아 붇는 것만 생각했다.
그러한 차이 때문에 무공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장수는 유운의 가르침에 크게 감명을 받은 것이다. 그 덕분에 장수의 사고력은 증대되었다. 이것은 기연이라 할 수 있었다.
장수는 미처 깨닫고 있지 못했지만 그는 혈교의 무공으로 무공의 끝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제 정파의 무공으로 끝에 갈수 있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산을 올라가는데 굳이 정(正)이니 마(魔)니 따질 필요가 없었다. 정상에 올라서면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두 가지 길을 비교하며 더 나은 방향을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수는 그 외에도 장법에 대해 궁금한 것을 유운에게 물었다. 그러자 유운은 미소를 지으며 장수에게 장법에 대한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그 덕분인지 장수의 얼굴은 점점 밝아졌다.
* * *
종이 울렸다. 하지만 장수의 수련을 끝나지 않았다. 원래 장수와 유운은 지금까지 수업시간이 끝났다고 수련을 멈춘 적이 없었다. 끝났으면 끝난대로 자신들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자동으로 연장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수업은 그런 유운과 장수는 내버려 두고 알아서 시간이 되면 마쳐왔었다. 지금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지만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유운과 장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련은 열심히 했지만 뚱뚱하고 느린 장수가 저렇게나 강맹한 장력을 뿜어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넋이 빠져 쳐다본 것이다.
주먹만 휘두르는 권법보다 장법이 위력이 훨씬 강맹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실력차이도 확연했다. 장법만 쓸 줄 알아도 남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실력이 올라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만약 쉽게 실력이 올라간다면 권법이나 검법보다는 장법을 배우는 게 훨씬 나았다.
그리고 그것은 무공을 볼 줄 아는 안목이 고수보다 얕은 일반인들은 더욱 심했다.
그들이 봤을 때 변변한 무공도 모르는 장수가 단지 이십일 동안 수련한 것만으로 고수지경에 오른 것처럼 보였다.
저 정도의 장력이라면 고수라 할지라도 버티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더 정신없이 유운과 장수를 쳐다본 것이다. 만약 그들도 장수와 같은 기간을 수련해서 저 정도의 장법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들도 배워야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장수의 자질이 탐이 났다. 이들이 이곳에 무공을 배우러 왔지만 인맥을 사귀는 것도 허투루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비록 정식제자인 무당파의 도인들과의 관계는 어렵지만 같은 속가제자들과의 관계는 무난하게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수가 될 만한 자질을 가진 자들은 인기가 많았다. 서로 앞을 다투어 친교를 맺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자는 나중에 도장을 하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눈길은 그를 전부터 주시하고 있던 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능력 있는 자들을 주시하고 있던 자들은 장수를 우선적으로 영입해야 하는 사람으로 점찍었다.
그렇게 한참이 흘렀다. 하지만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무려 천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장수와 유운이 수련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유운과 장수는 그런 것에 아무 상관없이 수련을 했던 것이다. 마치 둘만의 세계에 있는 것처럼 다른 것들을 모두 배제한 것이다.
하지만 수련이라는 것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다. 둘의 수련은 어느 순간 끝을 달려갔다.
"오늘 수고가 많았구나."
유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장수를 보며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장수의 성취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리고 발전 가능성이 풍부했던 것이다.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잘만 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수준까지 충분히 끌어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모두 스승님 덕분입니다."
"아니다. 너의 무에 대한 열망은 감탄을 불러일으킬 정도이다. 이 정도라면
꾸준히만 한다면 성취를 볼 수 있겠구나."
유운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유운의 지도를 받자 혼자서 수련을 하는 것보다 실력이 놀라우리만치 더욱 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전생의 자신은 그토록 스승을 열망했었다. 앞에서 누군가가 끌어준다는 것은 혼자 그 길을 가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잠시 옛 생각을 하자 장수는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유운이 말을 이었다.
"그래.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된다.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더욱더 위의 세계이다. 그리고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구나. 그러니 좀 더 분발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스승님."
"그래. 그럼 수련은 이만 끝내도록 하고 너는 내가 하라고 한 것들을 마저 하도록 하거라."
"예."
유운은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그는 주변에 있는 천여 명의 속가제자들은 쳐다보지 않았다.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유운의 마음속에는 장수만으로 가득했다. 그가 바로 자신의 꿈을 대신 이루어줄 제자였기 때문이었다.
유운이 가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장수에게 몰려들었다. 그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고련을 시키는 유운보다는 그 수련을 묵묵히 이겨내고 쉽게 경지를 올린 장수에게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마치 물처럼 출렁이며 장수에게 몰려들었다. 그들 역시 무에 대한 갈망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도우님."
몰려든 사람들은 장수에게 급하게 물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유운과는 다르게 장수는 주변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주변을 관찰하는 것은 버릴 수 없는 습관이었기 때문이었다.
종이 울리고도 가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자신에게 백여 명이나 몰려들었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인상을 썼다. 잘못해서 깔리기라도 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가장 앞에 있던 사람이 장수에게 말을 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장법을 그렇게 잘하십니까?"
장법을 배우기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장수가 손쉽게 실력이 는 거 같자 호기심이 생겨 물어본 것이다.
장수는 남자의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까 펼친 장력을 보았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그런 위력적인 장력을 가
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무엇을 부수는 것은 보지 못했지만 저 정도 위력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보일 수 있었다. 그랬기에 물어본 것이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니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장수의 말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단지 따라하는 것만으로 저
렇게 위력적인 장법을 발휘할 수 있다면 당장 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노력도 안하고 거저 얻으려고 하는구나.'
장수는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거저 성취를 얻으려는 자들을 많이 보긴 했지만 이렇게 대규모로 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무엇이든지 간에 노력을 해야 성취를 이루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천재라 할지라도 노력을 하기 때문에 실력이 올라가지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장수는 혈교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혈교에서도 저런 사람들이 있었는데….'
일명 축복받은 피라고 불리는 수뇌부의 자식들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무위가 강해지기만을 바랬다. 그들은 상승의 무공과 명사의 가르침,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훌륭한 자질과 수많은 영약을 먹어서 남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가지고 있었지만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이 죽을 정도로 노력해서 실력을 늘이고 서열 삼십 위권까지 올라가자 질투를 했던 것이다.
장수는 속가제자들을 보자 축복받은 피를 받은 자들이 생각나서 기분이 언짢아졌다.
'땀만이 정직한 것인데.'
어떤 무공이던지 간에 열심히 노력하면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그것을 알기에 장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속가제자들과 대화를 하기 싫어졌다. 노력도 하지 않고 거저 얻으려는 자들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졌던 것이다. 장수는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말을 했다.
"비켜주십시오. 수련을 해야 합니다."
장수의 말에 앞을 막던 자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지만 질문은 끝이 없었다.
"혹시 유운스승님이 도우님에게만 특별한 방법을 알려준 것은 아닙니까?"
무공에 특별한 방법은 없었다.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세상에는 강자들로 득실거릴 것이다. 오직 노력만이 모든 것이었다.
장수로서는 스승의 명에 의해 가볍게 장을 선보인 것인데 이렇게 큰 방향을 일으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있으면 알려주십시오. 우리는 같은 속가제자 아닙니까?"
남자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사람들을 헤치고 항아리로 가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보았다. 무엇인가 특이한 점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사람들은 많이 사라졌다. 사실 장수가 한 일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관찰을 한 것이다. 속가제자들 대부분은 장수의 위력적인 장법을 보고 한번 배워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세상은 검이 대세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를 끝까지 관찰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 수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주시하고 특별한 점을 발견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장수의 수련은 끝났다. 장수는 수련이 끝나자 땀을 닦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도 있구나.'
겨우 10여 명이었지만 장수는 성가셨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특별히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언제나처럼 유운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이대로 내가 스승님의 처소에 가면 방해가 될 거 같은데…….'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쫓아오라고 하기도 뭐했다. 자신이 이 길을 전세 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무시하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관심도 멀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유운의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