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편 - 절정고수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단주는 웃었다. 장수가 겸손하게 말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단주는 장수처럼 강한 자를 본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쉽게 이길 거라 생각한 것이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이 거의 접근했기 때문이었다.
타다다닷!
이제 적의 발소리가 자신의 귀에까지 들렸다. 장수의 감각은 과거의 초절정 경지 때보다도 더 예민한 상태였다. 때문에 그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경지의 고수는 이제껏 만나본 적이 없었다.
장수는 발소리만으로 몇 명인지도 알 수 있었다.
'세 명이구나. 그런데… 두 명의 발자국 소리가 약한 것을 보니 몸이 상한 것이 분명해 보여…. 몸이 상했다라……. 이, 이런! 아까 그 녀석들이구나!'
두 명은 내상을 입었고 한 명은 절정고수라면 방금 전에 마차를 습격한 놈들이 분명해 보였다.
'쉽지 않겠구나.'
장수는 가슴이 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지금 장수의 기감에 잡히는 절정고수는 방금 전에 싸운 상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한 자였다.
절정급 고수와 절정고수는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 절정급 고수가 초식을 통해 검기를 시전한다면, 절정고수는 초식을 통하지 않아도 검기를 시전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신체능력도 월등히 뛰어나고, 모든 것이 절정급 고수보다 절정고수가 나았다.
그런 절정고수와 지금 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분명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장수는 마음 한편에서 호승심이 일었다.
'한번 싸워 보고 싶구나.'
순수한 무인의 심정이었다. 원래라면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유운에게 배운 깨달음이 있었다. 그것이 있다면 절정고수라 해도 상대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싸워 보자.'
승부를 피하는 것은 남자답지 못한 짓이다. 그리고 유운에게 배운 것을 쓰면 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여기 있었구나!"
나타난 자는 중년에 덩치가 매우 큰 자들이었다. 바로 조장과 16호, 18호였다.
"방금 전에 봤는데 또 뵙는군요. 그리고 한 분은 구면이군요."
장수가 최대한 여유를 가지고 말을 하자 조장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어이가 없는지 웃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구나. 여유가 넘쳐 정말 대단한 뱃심이야. 보통사람이라면 우리를 보자마자 도망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정말 대단한 녀석이구나. 내 이름은 하일악(荷一嶽)이라 한다. 네 녀셕을 지옥으로 데려갈 분이지! 흐흐."
"전 도망치지도 않고, 지옥으로도 가지 않습니다."
"그래? 대체 어떤 여유지? 전에 봤을 때보다 나아진 거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를 이기지는 못해. 그런데 자신 있는가?"
장수는 잠시 하일악의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그 세 명 외에는 다른 사람들은 없는 거 같았다. 만약 방금 전에 하일악이외의 두 명에게 내상을 입히지 못했다면 아무리 장수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절정고수와 절정급 고수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정고수 한 명만 상대하면 된다. 물론 그것도 도박을 하는 것이지만 그나마 가장 나은 상황이었다.
"그렇습니다."
전생이었다면 하일악은 장수를 감히 마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혈교의 서열 안에 하일악이라는 이름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혈교는 상명하복이 철저한 곳이었다. 더구나 교내 삼십 위인 자신에게 서열도 받지 못한 교의 소모품들 같은 것들이 저런 식으로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생을 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하일악을 보자 감회가 새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있다고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승부라는 것은 붙어 봐야 아는 것이니까요."
장수는 말을 하면서 도전적인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실력을 하일악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승부라는 것은 붙어 봐야 하는 거지만 기본적인 실력 차이라는 게 있다. 네놈이 내 부하들을 이겨서 간덩이가 부었나본데, 나를 내 부하들과 같은 실력이라 판단하지 마라."
장수는 하일악의 실력이 부하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이지요."
"그래. 그런데 궁금한 게 있구나. 너는 저번에 내 부하들이 사용하는 도법을 알고 있는 눈치더구나."
하일악의 말에 장수는 안색을 굳혔다. 그의 뼈아픈 실수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장수가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면 그렇게 대놓고 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자신은 너무 여유가 없었다. 그랬기에 도가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미리 움직였던 것이다. 때문에 장수가 절혼도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상대가 눈치 채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짐작하는 것과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저는 무슨 도법인지 알지 못합니다."
장수는 거짓말을 하기 싫었다. 전생에서의 그는 혈교에 있으면서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운에게 정파의 무공을 배우고 새로운 삶을 살면서 거짓말을 하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고집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석가장과 유운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법을 모른다고? 크크크. 웃기는 말을 하는구나. 어차피 네 녀석을 잡아서 본교로 압송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전후사정이 들어날 터. 긴 말은 하지 않겠다."
하일악의 말에 장수는 두 주먹을 들었다.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좋다. 너의 실력을 보고 싶구나. "
하일악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거대한 도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16호와 18호는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하일악은 거대한 도로 장수를 가리켰다.
“네 녀석이 아무리 도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실력차이는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일악이 익히고 있는 도법도 절혼도법이었다.
하일악의 말에 장수는 속으로 웃었다. 기수식만 봐도 녀석이 익히고 있는 도법이 절혼도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네 녀석도 절혼도법을 익히고 있었구나.'
절혼도법은 매우 강력하면서 위력적인 도법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혈교에서도 많은 무사들이 익히고 있었다.
장수는 혈교에 있으면서 수많은 무공에 대해 분석을 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다른 무공을 사용한다고 해도 혈교의 무공이라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강한 무공일수록 더욱 더.
하지만 하일악의 말은 분명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도법을 알고 있다고 해도 실력차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겉으로 느껴지는 하일악의 기세만으로도 상당히 잘 단련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수는 긴장감을 느꼈다. 늘어난 실력이나 새로운 무리에 자신이 있었지만, 자신보다 강한 적을 상대로 대결을 펼쳐야 했기 때문에 긴장이 된 것이다.
"받아라!"
말과 함께 하일악의 도가 빠르게 움직였다. 장수의 몸을 일도양단 할 기세로 베어 들어온 것이다.
장수는 빠르게 몸을 피했다. 하일악의 도가 장수의 몸을 빠르게 지나갔다.
"녀석 제법이구나."
하일악의 도 끝에 피가 한 방울 맺혀 있었다. 하일악의 도가 장수의 몸을 스친 것이다.
장수는 피해낸 줄 알았지만 완벽하게 피하지는 못한 것이다.
'위험하구나.'
하일악의 도는 부하들의 도보다 월등히 빨랐다. 때문에 알고 움직여도 피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정신 차리자.'
하일악과의 대결은 조금만 방심해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상기했다.
장수의 얼굴이 굳어지자 구경을 하고 있던 무사들과 단주의 얼굴도 굳어졌다. 단주는 장수와 괴인의 실력 차이는 알지 못하지만 장수가 불리해 보였던 것이다.
장수는 앞으로 한걸음 나아갔다.
'최선을 다하자. 나는 예전이 내가 아니다!'
장수는 자신감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하일악의 도를 똑똑히 바라보았다.
하일악은 장수를 향해 다시금 도를 휘둘렀다.
도는 다시 한 번 장수의 몸을 벨 듯이 움직였다.
장수는 집중해서 피했지만 이번에는 아까보다 깊이 베였다. 아까는 살이 살짝 까지는 정도였지만 이번에는 제법 깊숙하게 들어온 것이다.
"윽!"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정말 빠르군요."
도법은 정해진 초식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움직임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하지만 하일악과 장수사이에는 실력 차이라는 게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의 도를 완벽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네 녀석이 태어나지 않았을 때부터 도를 수련했다. 그러니 이정도 실력은 당연한 거겠지. 네가 막을 정도가 아니란 말이다, 꼬마야. 크크크."
하일악의 비웃음이 섞인 말에 장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네 녀석이 태어나기 전부터 장을 수련했다.'
하일악의 실력은 생각보다 매우 뛰어났다. 더구나 자신은 장법을 구사한다. 장법은 상대방의 가슴까지 파고들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위력이 반감된다.
"다시 한 번 받아라!"
하일악은 장수를 향해 빠르게 도를 휘둘렀다. 도가 깊숙이 들어오자 장수는 급하게 몸을 굽혀 피했다. 도는 장수의 몸을 지나가자마자 원을 그리며 다시 장수를 베어 들어왔다.
장수는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도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장수는 급하게 두 손을 들었다. 그리고 날아오는 도를 쳐내려고 했다.
팅!
다행히 도의 면이 넓어 방향을 바꾸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바꾸지 못해서 가슴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쓰악!
이번에는 아까보다도 깊게 베였는지 피가 제법 많이 흘렀다.
'젠장! 보통 녀석이 아니다.'
하일악의 실력은 대단했다. 장수도 한 달 동안 수련을 열심히 해서 실력을 많이 키웠지만, 하일악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제법이다만 아직 멀었구나."
하일악은 장수를 희롱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장수는 안색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