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편 - 태극권
'이런…. 이대로는 승산이 없구나.'
우선은 권법을 펼쳐야 했다. 장법만으로는 접근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권법을 펼쳐야 할까?’
난감한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장법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아무리 공격을 당해도 피하면서 일격을 날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서 가까이 접근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권법으로 상대를 견제하면서 장법을 구사해야만 했다.
장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권법이 떠올랐다. 그 중에는 마교의 극악한 권법도 있었고, 혈교의 사이한 권법도 있었다. 떠오르는 대부분의 권법이 살상을 중시했고 파괴적이면서 강력했다.
하지만 장수는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흑룡권을 써볼까?'
흑룡권은 흑룡심법을 익히고 있을 때 더욱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권법이었다. 더구나 권법을 펼치는 동안 자연스럽게 내력이 증진이 되기도 했기에 전생에서의 장수는 자주 쓰던 권법이었다.
하지만 흑룡권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쓰기가 싫었다.
'이제 나는 전생의 내가 아니야.'
장수는 마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되었다. 그것이 유운 때문인지 석가장에서의 생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공을 쓰는 것이 썩 마음 내키지 않았다.
그로서는 마공이 아닌 무공 중에서 오랜 시간 배운 것은 한가지 밖에 없었다.
바로 태극권이었다.
'태극권을 사용해 볼까?'
태극권은 한 달이라는 시간동안 쉬지 않고 수련을 해왔었다.
하지만 태극권은 어딘지 모르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태극권은 매우 느린 무공이었고, 위력도 약해 보였다. 게다가 무공이 아닌 준비 운동이라 해도 될 정도로 장수의 눈에 태극권의 결점이 많이 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장수는 이제껏 혈교의 강맹하면서 빠른 무공들을 보아왔다. 그런 장수가 태극권에 신뢰가 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도가 장수를 벨 듯한 기세를 내며 휘둘러졌다.
그러자 장수의 몸은 자연스럽게 태극권을 펼치기 시작했다.
장수의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자 그 흐름에 맞게 도의 흐름이 어긋나 버렸다.
가벼운 한수였다. 더구나 무의식적으로 펼친 태극권이라 힘도 거의 주지 않았다. 기껏해야 수련에서 사용하는 정도.
그런데도 빠르고 강맹한 위력을 가진 절혼도법의 휘두르기를 피해낸 것이다.
'이럴 수가?'
무당에서 태극권을 수련하던 노력이 헛수고가 아니었던 것이다. 살을 빼기 위해 열심히 수련한 것이지만 실전에서 이정도로 쓸모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하일악 역시 마찬가지였다. 느린 손 움직임에 자신이 도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느새 자신의 도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궤도를 그리며 장수를 피한 것이었다.
"무슨 짓이냐!"
하일악으로서는 장수가 속임수를 쓴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절정고수가 사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수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장수의 몸은 상처와 함께 의복이 피로 얼룩이 져있었다. 하지만 아까보다 가벼운 표정이 된 장수는 여유를 가지고 말을 했다.
"실력입니다."
장수의 말에 하일악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실력일리 없다."
말과 함께 하일악은 빠르게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장수는 몸과 손 그리고 허리를 이용해서 도를 피해 내기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수련한 태극권은 장수의 움직임과 하나가 된 상태였다. 그랬기에 하일악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었다.
하일악은 계속해서 도를 휘둘렀지만 장수를 벨 수는 없었다. 마치 온몸을 이용해서 피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장수 역시 지금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태극권이 이정도로 훌륭한 무공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로 대단한 무공이었다니!'
강호에서는 태극권을 알아주지 않는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익히고 있지만 태극권으로 유명한 고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당에서조차 속가제자들은 많이 익히고 있지만 직전제자들은 기초만 배우고서는 다른 위력적인 검술을 배웠다.
그런데 이 정도로 훌륭한 무공이라니!
강호의 소문이나 인식은 분명 잘못되어 있었다.
장수의 움직임에 하일악은 자신이 계속해서 헛손질을 하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게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하일악은 장수의 움직임이 눈에 익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대체 네가 펼치는 무공이 무엇이냐?"
하일악으로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이 아니기를 빈 것이다.
"태극권입니다."
태극권은 너무나도 유명한 무공이었기에 숨길 필요가 없었다.
장수가 무공의 명칭을 말하자 하일악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태극권으로 나의 도를 피할 수 있다는 말이냐?"
태극권에 비전이 있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이렇게 날렵한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하일악의 말을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태극권은 훌륭한 무공입니다."
장수 역시 실전에 써보고 나서야 태극권의 훌륭한 점을 알았다.
장수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장수가 한 달 동안 최선을 다해 익혔고, 수십 년 동안 태극권을 익힌 유운이 적절하게 가르침을 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의 태극권이었다면 하일악의 첫수에 장수의 몸이 두 동강 나버렸을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태극권이 훌륭하다면 천하의 무인들 중 반은 절정고수일 것이다!"
하일악이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지만 도의 움직임만은 절정고수가 아니라면 쉽게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런데 장수는 태극권만으로 하일악의 도를 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이 맞습니다."
열심히만 배운다면 충분히 태극권만으로도 절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자세와 무학의 이치를 깨달아야만 가능했다. 유운 정도의 명사에게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며 수련을 하지 않는다면 절정의 경지에 오르기는 무척 힘들 것이다.
장수의 말에 하일악은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류 잡배도 익히는 태극권으로 절정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우롱할 셈이냐? 아까까지는 병신을 만들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네놈의 손 하나정도는 가져가야겠다!"
말과 함께 하일악의 도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도기가 도에 덧씌워진 것이다.
도기를 보자 장수의 안색은 굳어졌다. 예상대로 녀석은 절정고수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절정고수는 도에 도기를 생성할 수 있었다. 도기는 무엇이든 자를 수 있었다. 그런 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 맞는 무공과 무리, 그리고 깨달음과 엄청날 정도의 수련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도기를 생성할 수 있을 정도라면 절정고수라 할 수 있었다.
도기를 생성하는 것만으로 장수는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금 절정고수를 이길 수 있을까?'
무공을 통해 도기를 생성하는 것과 인위적으로 도기를 생성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실력 차이가 분명했던 것이다. 더구나 도기를 들어냈다는 것은 이제부터 본신의 실력을 모두 발휘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뜻이었다.
‘스승님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
장수로서는 오직 유운만을 믿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다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유운이 가르쳐준 태극권과 칠선장만으로 절정고수를 무찔러야 했다.
장수는 천천히 태극권의 자세를 취했다. 장수가 기수식을 취하자 하일악은 장수를 비웃었다.
"태극권으로 나의 절혼도법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태극권보다 상위 무공으로 평가되어 있는 절혼도법을 상대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도에는 붉은 도기가 덧씌워진 상태였다. 지금 상태에서 하일악을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장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단 한번이라면!'
장법의 장점은 한 방이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상대방에게 접근해서 단 한번만 장력을 격중시키면 상대가 아무리 절정고수라 할지라도 승산이 있었던 것이다.
태극권을 사용하여 절혼도법을 피하면서 공격을 성공시킨다면 승리는 장수의 것이었다.
장수가 진지한 표정을 짓자 하일악은 혀를 날름거렸다.
"병신을 만들어야 정신을 차릴 녀석이군. 그래, 네 녀석이 얼마나 강하기에 도기를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는지 확인을 해봐야겠다."
말과 함께 그의 도가 빠르게 움직였다. 절혼도법이 펼쳐진 것이다.
하일악이 진심을 다해 펼치는 절혼도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서운 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도법은 장수로서는 피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피해 내야 했다. 도기가 덧씌워졌기 때문에 살짝만 스쳐도 상처가 크기 때문이었다.
"받아라!"
절혼도법은 빠르게 장수의 몸을 베어 들어왔다.
장수는 당황하지 않고, 팔과 다리를 느리게 움직이면서 휘저었다. 태극권의 특징은 모든 신체를 전부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신체를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적으로 많이 움직여지는 것이다.
장수는 두 손을 공을 말듯이 움직이면서 도의 칼날을 연신 후려 쳤다. 그러면서 하일악에게 파고들었다.
장수가 도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도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하일악의 몸에 파고들자 하일악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
하일악은 말과 함께 도를 위로 치켜들면서 한 바퀴 돌아 뒤로 빠졌다. 그런 후에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그대로 몸을 팽이 돌리듯이 돌면서 도로 장수의 몸을 꿰뚫어 버릴 듯이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