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편 - 태극권
하일악의 몸이 미친 듯이 돌면서 장수에게 파고들자 장수는 급하게 뒤로 빠졌다. 절혼도법의 초식 중 절초 중 하나로 전신을 칼날로 바꾸는 무공이었다. 바람마저 무기로 삼기 때문에 빈틈으로 보이는 곳도 공격을 하면 안 되고 물러나야만 했다.
장수가 물러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일악은 돌리던 몸을 멈추고 급하게 사선으로 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장수는 두 손으로 급하게 칼날을 막으려고 했다. 그때 장수의 두 손에는 전진심법에서 나온 기운이 감싸고 있었다. 도기가 덧씌워진 칼날은 맨몸으로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위험했다. 같은 기운으로 기를 중화시켜야만 했던 것이다.
“윽!”
장수는 비명을 지르며 급하게 물러났다. 손바닥이 한 꺼풀 벗겨졌다. 상대방의 내공을 모두 해소시키지 못한 것이다. 하일악의 도에 집중된 도기는 장수의 내공보다 한수 위였다. 그랬기 때문에 손을 다친 것이다.
장수가 물러나자 하일악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안 되겠다! 한 팔을 내놔라!"
하일악은 장수의 오른팔을 노리고 도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강하게 내리쳤다.
‘어떻게 하지?’
장수는 다친 것이 손만이 아니었다. 손을 다치면서 흘러들어온 기에 내장의 일부도 다친 것이었다. 그 때문에 무리하면서 까지 움직일 수 없었다.
장수는 그대로 쓰러지듯이 몸을 굴렸다. 하지만 도를 완벽히 피해 낼 수는 없었다.
도는 스치듯이 장수의 팔을 지나갔다. 분명 장수의 팔을 스쳐 지나갔지만 도기가 서려있어서 그 결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팔의 절반 정도에 깊은 상처가 남은 것이다. 상처는 그대로 벌어졌는데 그 속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본 단주는 “아이고, 소장주님! 괜찮으십니까? 소장주님!”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흐흐흐! 아깝구나."
도가 조금만 깊게 들어갔다면 장수의 팔은 그대로 잘려 버렸을 것이다.
장수는 하일악의 말에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예전의 무위를 가지고 있었더라면 쳐다도 보지 못했을 녀석이…!'
장수는 분했다. 과거의 무위였다면 단 한 번에 녀석을 곤죽으로 만들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반대로 자신이 곤죽이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일악은 천천히 장수에게 다가갔다.
"어리석은 녀석! 순순히 처음부터 협조적으로 나왔다면 이렇게 병신이 될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버릇없는 녀석은 혼을 내야겠지. 벌로 그 팔을 완전히 잘라주마.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혈도를 짚어서 죽지는 않게 해줄 테니 말이야."
장수의 팔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뼈가 보일정도로 살이 보이게 된 것이다. 더구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지금 상황이라면 하일악의 도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오히려 장수의 정신은 또렷한 상태였다.
장수는 전생에서 수많은 혈전을 벌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이보다 더한 상처를 입은 적도 있었다.
그러한 경험뿐 아니라 그의 몸에는 전진심법과 선천지공이 있었다. 선천지공은 선천지기를 인위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심법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팔은 빠르게 아물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다친 상황에서도 선천지공으로 운기 되는 선천지기는 장수의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지금 장수의 실력으로는 절정고수를 이길 수가 없었다. 겨우 유운에게 한 달 동안 수련을 받은 상태였고, 그런 상태에서 단련된 신체와 정심한 내공을 지닌 혈교의 절정고수와 비슷한 실력을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 장수가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뿐이었다.
'칠선장을 펼치자.'
전생에서도 장수의 흑룡장은 무림일절이었다. 지금은 그때의 깨달음과 새롭게 얻은 무리까지 있었다. 거기다 내공심법은 잊혀진 전설의 전진심법이었다. 그 정도라면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일악은 자신의 몸만 한 도를 치켜들고 천천히 장수에게 다가갔다. 그의 말대로 팔을 잘라버리기 위해서였다.
장수는 천천히 하일악의 상태를 살폈다. 그러자 장수의 기운이 하일악의 몸 속 상태를 그대로 파악하게 해주었다.
'호흡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집중하자 호흡소리뿐만 아니라 하일악의 몸 속 혈관이 뛰는 소리까지 들렸다. 더구나 기의 운용까지도 기감에 잡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일악의 몸속의 기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 때문에 하일악의 도에도 도기가 끝없이 펼쳐지는 것 같지만 그 사이사이에 기운이 끊어질 때가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 간극이 빨랐지만 장수는 그 순간이 정확하게 보이는 듯했다.
'지금이다!'
장수의 감은 정확한 순간을 파악했다. 그와 함께 장수의 몸이 번개처럼 하일악을 향해 파고 들어갔다.
갑자기 장수의 몸이 하일악에게 파고들자 그는 놀라워했다. 순간적인 장수의 행동이었지만 수많은 실전경험이 하일악을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이미 하일악의 호흡까지 파악한 장수는 첫 공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첫 공격을 무난하게 피해냈다.
크게 다친 장수가 쉽게 피해내자 하일악은 다시 도를 움직였다.
두 번째 공격도 장수가 재차 피해내자 하일악은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장수가 너무 가깝게 다가온 것이다.
'젠장!'
하일악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방심한 게 탈이었다.
그는 세 번째 공격을 하려다가 포기했다. 장수가 너무 가깝게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도의 문제점은 거리였다. 상대방이 일정범위까지 들어오면 공격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일악은 급하게 몸속에 기운을 가득 담았다. 이 상태에서 외부로 표출이 되면 호신강기가 된다.
하지만 하일악의 경지는 그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장을 보호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정도라도 웬만한 공격은 커버할 정도는 되었다.
장수는 움직일 수 있는 게 왼쪽 팔뿐이었다. 오른쪽 팔은 회복중이였지만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장수의 왼쪽 팔이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하일악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것은 유운의 가르침과 장수가 전생을 통해 얻은 깨달음, 그리고 전진심법과 선천지공의 내공이 결합된 움직임이었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로 뭉쳐 칠선장으로 표출된 장력은 그대로 하일악의 몸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러자 하일악의 몸에서도 장수가 보낸 장력을 이겨내기 위해 내장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하일악의 몸속 기운은 내장을 굳건한 힘으로 보호했다. 이 힘이라면 같은 힘이 아니라면 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보다 강한 힘이라도 굳건한 힘을 제거하다 기운을 모두 소비해 하일악의 내장을 다치게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장수의 장력은 달랐다.
부드럽게 파고든 기운은 하일악의 몸을 보호하는 힘을 튕기듯이 민 다음에 자연스럽게 그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그와 함께 자연스럽게 내장을 흔들어버렸다.
“크악!”
하일악은 입에서 선혈을 내뿜었다. 하일악은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내상을 크게 입은 것이다. 장수의 장력이 그의 몸을 크게 상하게 만든 것이다.
그와 함께 하일악의 도는 장수를 벨 듯이 파고들었다.
장수는 하일악의 도가 자신을 베어 오려고 하자 급하게 몸을 피했다. 그러면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시 반발력이 없구나!'
장수는 자신의 모든 힘을 왼손에 모았다. 아까보다 더욱 자신감에 차있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원래대로라면 돌아오는 반발력을 이기지 못하고 장수 역시 큰 타격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운에게 배운 가르침 덕분인지 이번에도 반발력을 아예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보다 더 큰 힘을 쓸 수 있는 하일악의 몸에 타격을 준 것을 정확하게 느낀 것이다. 그 때문인지 장수는 기쁨에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하일악의 얼굴은 썩은 감을 씹은 표정이 되었다. 내상을 크게 입은 것이다. 그는 발작적으로 외쳤다.
"녀석을 죽여!"
장수의 오른 팔은 뼈가 드러날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다. 더구나 몸 곳곳에는 도를 피하다 입은 상처로 가득했다. 지금 상태라면 절정고수에 가까운 부하들이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부하들이 내상을 입었다고 해도 말이다.
"존명!"
16호와 18호는 장수를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장수는 도를 피하다 땅을 뒹구는 중이었다. 그랬기에 거대한 도를 휘두르는 두 명의 덩치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였다.
그 순간 장수는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자연스럽게 16호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16호, 18호 둘 다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에 반해 장수는 내상을 입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외상은 심해 보여도 움직임에는 불편함이 없었던 것이다.
퍽!
장수의 왼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그와 함께 16호의 몸이 붕 떴다.
"이… 이런……."
16호를 잠시 보던 18호는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느새 다가온 장수의 손이 18호의 가슴에 닿았던 것이다.
18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역시 하늘을 날게 된 것이다.
내상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장수의 장력을 맞았으니 나중에 회복이 된다 해도 정상적인 생활은 하기 힘들 것이다.
하일악은 순식간에 자신의 부하가 쓰러지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젠장!"
눈으로 보기에도 두 명의 부하는 큰 부상을 입은 것처럼 보인다. 거기다 자신 역시 내상을 입었기에 멀쩡해 보이는 장수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때 하일악의 도가 크게 움직였다. 그와 함께 부하의 목 부위를 빠르게 지나갔다.
부상을 입은 부하를 남겨둘 수 없어 죽인 것이다.
순식간에 두 명의 부하를 죽인 하일악은 인상을 구겼다.
"좋아하지 마라. 교에서는 네 녀석을 죽일 새로운 자들을 보낼 것이다."
말과 함께 하일악은 급하게 경공을 펼쳤다. 멀쩡해 보이는 장수를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일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은 장수의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상이 도질 것을 알면서도 무리하게 경공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소장주님!"
단주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장수에게 달려들었다. 장수가 세 명을 이겨서 자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소, 소장주님!"
단주와 무사들은 급하게 장수를 마차에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