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편 - 방현의 사정
"예. 지금 상황이 매우 심각합니다. 이런 상황은 방현뿐만 아니라 인접한 도시들이 모두 겪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습니까?"
장수는 놀라웠다. 도시 하나가 황폐화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 지금 사태가 매우 심각합니다. 그래서인지 백성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무당파가 천하를 아우르는 큰 문파였지만 결국 근본적인 힘은 호북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호북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무당파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 뻔했다.
'이번에는 혈교가 정말 머리를 잘 썼구나.'
장수는 혈교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이런 일을 실제로 벌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한 개의 지역을 고사지낸다는 것은 몇 십 년 뒤를 생각하며 일을 벌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때문에 아무리 강한 세력이라 해도 잘 하지 않는 일이었다.
더구나 혈교는 최단 시일에 무림정복을 꿈꾸었지 이렇게 뜸을 들이며 상대방을 말려 죽여 승리를 거두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 줄 알았다.
장수가 있었을 때도 수많은 음모를 꾸몄다. 천하에 음모나 계략이 생긴다면 모두 혈교에서 꾸민 것이라 생각하면 될 정도였다.
혈교 때문에 수많은 문파들이 멸문하고 무림인들은 서로 다투었다. 그리고 혈맹이던 문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싸웠으며 무림맹이 마교를 의심하고 전면전을 펼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음모는 장수가 한번쯤은 혈교에 있으면서 참여했기에 그 누구보다 정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장수였기에 이번 계략은 칭찬해줄 만했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도시가 서서히 말라 죽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매우 서서히 진행되었고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음모가 있다는 것은 어느 누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무당파는 힘도 못쓰고 멸문할 것이 뻔했다. 보급품이 없이 혈교와 싸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실패할 계획이지.'
만약 무당파만 아니라면 장수는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로서는 유운에 대한 은혜와 화경의 경지에 대한 욕심이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혈교가 무당파를 건드린다면 유운 역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장수가 나서야 했다.
'어떤 음모든지 파헤쳐주마.'
이용할 수 있는 패는 많았다. 무림맹도 증거가 드러나면 나설 것이고, 혈교의 음모라면 어떻게든 방해하고 싶어 안달이 난 마교도 이용할 수 있었다. 때문에 장수는 딱히 걱정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단주가 말을 걸었다.
"소장주님. 현재의 상황을 설명해 드립니까?"
"예. 부탁드립니다."
방현의 상황은 생필품이나 필수품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물자가 부족해졌기 때문에 상거래도 거의 증발한 뒤였다. 그나마 석가장의 물품이 시장에 풀려서 방현의 사정이 나아진 것이다.
단주는 그러한 사정을 이해하기 쉽고 자세하게 장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상인으로서 쌓은 감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도 설명을 해주었다.
"단주님 말씀은 상행을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대답은 간단했다. 부족한 물건을 다른 곳에서 가져오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상단들이 물품을 잃어버리거나 상단자체가 그대로 없어진 상황이었기에 지금 물건을 옮기면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었다.
장수로서는 쉽지 않은 대답이었다.
'지금 혈교에서는 절정고수들을 운용하고 있을 텐데… 그것은 어떻게 하지?'
혈교에는 수많은 절정고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고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고수들을 상대할 세력은 거대문파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세력들은 아직까지 절정고수가 나타났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산적들이 일시적으로 세가 강해진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무당파에서도 나설 때가 된 거 같은데.'
무당파도 지금의 위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당파는 지금 그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다.
바로 자신들이 현문의 전통계승자라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장수가 가져다준 전진심법이 그것이었다. 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오대도문은 서로가 자신들이 현문의 전통계승자임을 끊임없이 주장했다.
그런데 그런 다툼을 해결할 방법이 생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당파는 다른 것들은 뒤로 미루고 전진심법에 대해 집중을 했던 것이다.
장수는 자신이 기증한 전진심법 때문에 무당파가 나서지 않는 것을 알지 못했다.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장수가 혈교의 하일악을 상대로 이긴 것도 운이 좋아서였지 실력으로 이긴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절정고수가 둘이나 된다면 이길 승산이 아예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장수는 말을 아꼈다.
"글쎄요.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쉽게 대답할 일이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표국에서도 표사들을 지원해 주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그럼 세 개 표국의 무사와 고수인 표두들이 움직이니 상단은 안전하게 될 것입니다."
단주는 무림인은 무사와 고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가 그렇게 쉬웠다면 다른 상단이 전멸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장수가 소장주였다. 그리고 그의 수업을 위해 이곳 방현까지 온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결정은 장수가 내려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소장주님. 충분히 생각을 하십시오."
그렇게 대화를 하는 동안에 마차는 석가장 방현지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섯 필의 말이 이끄는 마차가 방현지부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상인들이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그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장수로서는 어리둥절했다. 원래 석가장의 상인들은 장수를 못미더워 했다. 워낙 뚱뚱하고 행동이 느렸기 때문에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그래서인지 말로는 어쩔 수 없이 공경을 다했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은 장수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들은 장수를 매우 기다렸는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수는 어리둥절하면서 상인들에게 인사를 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무당파에 가셔서 새로운 거래의 물꼬를 트셨다고요?”
"예?"
장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단주가 장수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렇습니다. 소장주님이 이번에 애를 많이 쓰셔서 무당파에서 석가장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무당파와 새로운 거래를 맡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장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단주가 말을 하는 이상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소장주님의 능력을 그 동안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무공도 훌륭하신데 상업적 능력도 특출하니 석가장의 홍복입니다."
장수는 민망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칭찬을 받는 일은 전생과 지금을 통틀어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상인들의 말에 단주가 크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소장주님 덕분에 석가장의 부는 앞으로 열 배 이상 증가할 것입니다. 호북 십대 상인에서 천하 십대 상인으로 오르는 것도 꿈만이 아닐 것입니다. 하하하!"
천하의 무당파가 밀어준다면 천하 십대 상인이 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거대문파와 가까이 지내면 떨어지는 게 많았다. 더구나 필요할 때 무력을 제공 받을 수 있으니 무서울 게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당파에서 호북 십대상인에 불과한 석가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줄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인들은 우레 같은 박수를 쳤고 장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부로 들어갔다.
지부에는 장수의 개인 사무실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자 단주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당황하셨을 겁니다."
장수는 지금도 어찌된 영문인지 알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환대도 그랬고 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칭찬을 받는 것도 꺼림직 했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게 시간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설명을 진작 해드리려고 했는데 위기상황이었지 않습니까?"
물론 위기상황이었다. 만약 장수가 절정고수인 하일악에게 패했다면 그들 모두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소장주님도 아시다시피 이번 상행은 소장주님의 교육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행동은 교육을 전제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것은 장수도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예. 사실 소장주님의 모든 행동은 가신들에게 보고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신들이 그런 보고에 동의를 해야 소장주님도 편하게 업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신들에게 보고가 들어간다고요?"
"예. 그분들이 실질적으로 교육을 주관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분들이 허락이 있어야 정식으로 석가장의 부를 소장주님이 이어 받으실 수 있습니다."
석가장 같이 거대한 사업을 하는 곳에 안정장치가 없을 리 없었다. 새롭게 취임한 장주가 무능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최대 출자자들이나 장원에 공헌이 많은 가신들이 소장주를 시험한다는 말이었다.
"그렇군요."
부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이었다. 그리고 초절정고수만 된다면 부는 한도 끝도 없이 구해 올수 있었다.
“이번에 소장주님이 무당파에 간 것도 무공을 익히러 간 것으로 하면 문제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소장주님이 무당파에 새로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간다고 보고를 올렸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장수는 어이가 없었다. 조금 불편하겠지만 그딴 재산은 포기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것을 위해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무당파의 제자가 되셨으니 앞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니지요."
단주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그렇군요."
"예. 거기다 기부도 했으니 좋은 소식이 올 것입니다. 그럼 그게 소장주님의 업적이 되시는 겁니다."
"그렇군요."
'상인도 보통일이 아니구나.'
장수는 속으로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물건을 팔아 은자를 버는 게 끝인 줄 알았던 상인이 사실은 생각해야 하는 게 많은 직업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