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편 - 방현의 사정
"그러니 그것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구나 소장주님의 무공 실력이 의외로 뛰어나다는 것이 가신들에게 알려져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무공에만 전념하시면 곤란합니다. 소장주님은 상인이시지 무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피식 거리며 웃음이 나왔다.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라고? 나는 뼛속까지 무인이다. 아무리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무인인 것은 변함이 없다.'
장수는 속으로 자기 자신에게 말을 했다.
"어쨌든 이번 일은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대규모 상행만 성공시킨 다면 소장주님의 장주 취임식도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 질수 있으실 겁니다."
"장주취임식이요?"
"그렇습니다. 소장주님도 그것을 꿈꾸지 않았습니까? 장주가 된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입니다. 이렇게 거대한 사업체를 자지우지 하는 장주가 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장주라는 것도 짐스러웠다. 장수는 석가장의 장주가 된다는 것은 아주 어렸을 적 유운이 죽었다고 낙심했을 때 한 번 정도였다. 그 뒤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장주님의 재능은 워낙 뛰어나셔서 조금만 노력하셔도 금방 모든 것을 터득하실 겁니다."
"예."
장수는 무공을 포기하고 장원의 장주가 될 자신이 없었다.
"힘을 내십시오. 참! 소장주님. 소장주님께서 해결하셔야할 업무가 있습니다."
단주가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집무실이었는데 집무실 가운데 있는 책상에는 하나 가득 서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저게 무엇입니까?"
"그 동안의 업무를 정리한 것과 결재를 받을 서류, 그리고 새로운 사업체에 대한 보고내용입니다."
"허…. 그게 저렇게 많습니까?"
"물론 아니지요.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인데 겨우 저것 밖에 없겠습니까? 밖에 저만한 양이 두 배정도 더 있습니다."
장수는 말만 들어도 질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혈마와 맨몸으로 싸우면 싸웠지, 저 많은 서류와 싸운다는 것은 미친 짓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저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익숙해지면 눈 감고도 하실 겁니다. 그럼 열심히 하십시오."
"예? 지금 하는 건가요?"
"예. 어서 하셔야지요. 지금 하셔야 할 업무가 매우 많습니다. 그러니 어서 하셔야 할 것입니다."
장수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이리저리 도망갈 곳을 찾았지만 도망갈 곳이 없었다. 이제 절정고수보다 무서운 서류와의 싸움을 할 시간이 온 것이다.
* * *
관리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아직도 산적 떼의 전황이 심각한가?"
"그렇습니다."
"산적들이 미친것도 아니고 대체 왜 그렇게 난리인 것인가?"
관리의 말에 군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것들입니다. 이번에 병력을 보내 남김없이 토벌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장군. 나는 자네만 믿겠네."
"예."
"자네에게 오천 명의 병사들을 줄 테니 호북에 만연한 산적들을 남김없이 싹 잡아 제거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 * *
장수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서류를 검토했다.
서류라는 것이 직급이나 계급이 높아질수록 많이 생기는 것이었다. 장수는 전생에서도 많은 서류를 처리했기에 이런 일에 익숙한 줄 알았다.
하지만 상인들의 서류는 일반 서류와는 차원이 달랐다. 우선 모든 서류에는 은자에 대한 것이 나왔다. 은자가 들어가고 나온 출납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고, 그러한 숫자가 맞는지 확인 작업을 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행동은 숫자로 나타났는데 그러한 숫자는 서류마다 달랐기에 조금만 잘못 봐도 헷갈릴 수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체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들어온 물건으로 방현에 뿌리를 내린 사업체는 여러 개의 사업체를 인수했고, 그것을 정상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보고할 것이 계속해서 생겨났고, 그러한 것을 처리하는 것과 자세한 사정을 알아둬야 하는 사람은 장수였던 것이다.
장수는 쉬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했지만 아직도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만 했다.
'정말 신기하구나.'
전생에서의 장수의 머리는 나쁜 편은 아니었다. 아니,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편이었다. 때문에 무공을 한 번에 기억할 수 있었고, 많은 무공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의 장수는 전생의 장수를 월등히 뛰어넘고 있었다. 아무런 연관도 없는 숫자를 너무도 쉽게 외워 버렸던 것이다.
그전까지 장수는 자신의 재능을 알 수가 없었다. 이토록 많은 서류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이 닥치자 장수의 놀라운 재능이 드러난 것이다.
'선천지기 때문이구나.'
머리도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선천지기는 놀랍게도 두뇌를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두뇌에 일정한도 이상의 지식이 담기면 선천지기는 스스로 움직이며 두뇌에 지식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장수의 머리는 눈에 보일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해서 쉬지도 못하고 뇌를 자극하자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리 선천지공을 통해 상단전으로 운기를 하면서 두뇌를 자신도 모르게 자극했다고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은 것을 담아서 인지 한계가 온 것이다.
"그만 쉬어야겠다."
장수는 머리를 감싸면서 뒤로 물러나더니 푹신한 의자에 털썩하고 앉았다.
"내가 이런 일이나 하고 있다니…."
장수로서는 시간이 아까웠다. 지금 이 시간에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분명히 할 수 있는 일이였고, 지금 노력을 하면 언젠가는 크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많은 은자를 벌어서 유운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공부를 해야만 했다.
장수가 불만을 토로하는 동안에도 선천지기는 장수의 뇌를 끝없이 진화시키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라면 이미 고정이 된 두뇌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비밀로 가득한 선천지기는 의식을 가진 것처럼 끊임없이 뇌를 자극했던 것이다. 그 때문인지 장수는 자신도 모르게 천재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잠시 쉬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랬기 때문에 태극권의 기수식을 한 채로 얌전히 있었다. 비록 수련을 할 수는 없었지만 자세를 취하고 있자 태극권의 무리를 자연스럽게 얻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있자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 멈춰졌다.
"이제야 진정이 되었구나."
장수는 머리 아픈 것이 진정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선천지기로 자극을 받은 두뇌가 보통 이상으로 확장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까까지 골치를 아팠던 것도 이제는 쉽게 이해가 된 것이다.
장수는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금 아까 보던 것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까는 머리가 지끈거리던 것들이 다시 보자 무난한 수준으로 바뀌었다.
"계속 보다 보니까 서류들이 쉬운 것도 있구나."
장수는 복잡한 것과 쉬운 게 섞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용은 앞의 내용과 크게 다른 게 없었다. 잠시 사이동안 장수의 머리가 좋아진 것뿐인 것이었다.
장수는 서류가 쉬워지자 보던 것을 계속해서 보았다. 한참을 보자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것을 느꼈다.
"이게 이런 것이구나."
서류를 보기 시작한지 첫날이니 한 번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선천지기는 장수의 머리만 좋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수련을 하는 중에도 장수의 신체를 태극권에 맞게 변형을 시키고 있었다.
장수는 서류를 보면서 태극권을 수련했는데 선천지기는 장수의 몸을 태극권을 펼치기 이상적인 체형으로 변형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누구도 몰랐던 선천지기의 공능이었다.
그 덕분인지 장수의 몸의 골격은 전설에나 나오는 천무지체와 유사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소장주님, 업무를 보시고 있으십니까?"
장수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단주였다. 단주는 거대한 상단을 이끄는 자로서 이곳에서 실질적인 책임자였다.
"그렇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주위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서류는 얼마만큼 처리를 하셨습니까?"
오자마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단주는 자신이 직접 모든 것을 처리했기에 제반사정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장수는 어제 와서 오늘부터 서류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장수에게 크게 기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석가장의 소장주로서 책임감과 교육을 위해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었고 확인을 한 것뿐이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아직 많이 보지는 못했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 역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짐작을 했기 때문이다. 오자마자 상황을 모두 파악하면 자신에게 수업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아니, 지금 당장 석가장을 이끈다 해도 잘 운영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모자란 점이 많으니 수업을 받는 것이다.
"그러시군요. 노력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석가장에는 소속된 식구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생각하시면서 항상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이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제 그만보시고 저와 함께 어디를 가셔야 합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로 말씀이십니까?"
"사업체를 둘러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업체요?"
사업체라는 말에 장수는 호기심이 들었다. 석가장이 가지고 있는 사업체는 규모가 매우 컸다. 그리고 객잔도 하나 있었으니 거기서 음식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예. 소장주님이시니 당연히 사업체도 둘러보셔야죠.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있습니다. 한 달 전에 이곳에 오자마자 둘러보셨어야 했는데…."
단주는 일부러 뒷말을 흐렸다. 뒷말은 장수 탓을 하는 것이리라.
"죄송합니다. 그 당시에는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닙니다. 무당에 가셔서 많은 것을 배우셨으면 오히려 잘된 것이지요. 소장주님은 나중에 석가장을 이을 분으로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셔야 합니다. 그리고 무공 역시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무인입니다. 그러니 전적으로 무공에 매진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상업도 아예 손을 놓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장수는 속으로 웃으며 되뇌었다. 장수는 단주가 자신을 생각하는 마음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석가장에서 완전히 손을 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업 때문에 무공을 놓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알겠습니다. 단주님."
"늦었습니다. 어서 저를 따라 오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