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편 - 상인의 눈
단주의 말에 장수는 천천히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오자 자연스럽게 무사들이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석가장의 무사들이었다.
장수는 그들을 보자 단주에게 물었다.
"저들은 누구입니까?"
"호위 무사들입니다. 소장주님이 이동하시는데 당연히 따라다녀야 하지요."
단주의 말에 장수는 웃음이 나왔다. 저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장수는 순식간에 해치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물리셔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들의 무력이 소장주님보다 부족해도 지도자는 위엄을 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그런 위엄을 세워줄 자들입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의 고개가 끄덕여 졌다. 단주의 말이 맞았다. 비록 저들의 무력이 장수에 비해 보잘 것 없었지만 저들이 있으면 위엄도 생기고 귀찮은 일들은 시킬 수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생에서라면 필요 없다고 고집을 피웠을 것이다.
전생에서의 자신은 초절정고수였다. 그런 무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천하를 혼자 돌면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수하들도 없이 작전을 할 때가 많았고 그런 성격 탓인지 호위무사들이나 직속무사들도 없었던 것이다.
어떨 때는 무력단체를 이끌어야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도 무력단체를 두고 혼자 가서 임무를 완성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지금은 석가장이 소장주였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귀찮아도 꼭 필요한 것은 해야 했다.
무사들은 비장한 자세로 장수의 뒤를 따랐다. 사실 시내에서 무슨 다툼이 일어날 리는 없었다.
하지만 장수는 석가장의 소장주였고, 상단의 움직임이 줄어들면서 방현 내에서도 소규모 범죄가 자주 일어났다. 그랬기 때문에 장수의 신변보호에 신경을 써야 했던 것이다.
장수는 걸으면서 수련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시내라서 그런지 지켜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어떻게 하면 걸으면서 수련을 할 수가 있을까?'
무의미하게 걷는 이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렇다고 시내를 활보하는데 마차를 탈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한 가지 생각이 났다.
'몸이나 관조를 할까?'
몸속에 기운을 관찰하는 것은 매우 상승 공부였고 중요한 일이었다.
기라는 것은 무공을 배우는 그 순간부터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기를 움직여 적을 공격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낳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경지가 올라 고수나 절정고수의 경지에 가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기운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하고 방어를 할지를 연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초절정의 경지에 오르면 명상을 통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몸속을 관조하며 혈도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아직까지 그런 게 필요가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몸을 만드는 것이었고 몸을 관조하는 것은 몸을 만든 이후의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웠으니 아쉬운 대로 걸으면서 관조라도 해야 했다.
장수는 걸으면서 천천히 몸속의 기운을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그러자 두 가지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전진심법의 기운과 상단전에 있는 선천지공의 기운이었다.
두 기운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데 기이하게도 전신의 모든 혈도와 세맥을 모두 거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한 움직임은 사실 장수로서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보통의 심법은 무공을 사용하기 쉽게 진화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장법을 쓰는 자나 검법을 쓰는 자, 권법을 쓰는 자가 익히는 심법이 달랐던 것이다. 주로 쓰는 곳의 혈도를 개발해서 기운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발전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진심법과 선천지공은 보통 심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식하게도 모든 혈도를 모두 거치는 것이었다.
심법은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도 제법 많은 양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야.'
장수는 몸속을 관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모든 혈도를 활용하고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속도는 그리 느리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그런 심법이 두 개나 몸속에 도는 것은 장수의 무학상식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수는 곧 다른 것에 집중을 했다. 장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두 팔이었다. 단전과 팔로 연결된 혈도를 통해 기운이 움직여 장을 통해 기운이 방출되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팔의 혈도가 더욱 발전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두근.
그 순간 팔을 통한 혈도가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뭐지?'
장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장수가 팔을 의식하는 순간 팔을 통한 혈도들이 강하게 뛴 것이다.
장수로서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 순간 팔을 통하는 혈도가 다시 강하게 움직였다.
두근. 두근.
움직임은 그게 다였다. 하지만 장수는 지금 일어난 일이 진짜 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구나.'
장수는 팔의 혈도가 더욱 강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그런 자신의 심정을 이해라도 한다는 듯 갑자기 팔의 혈도가 강하게 뛰자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장수는 다시 한 번 생각을 했지만 이변은 그때뿐이었다. 팔의 혈도는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수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 순간 팔의 혈도가 더욱 강인하게 발전을 한 것이다.
장수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무슨 일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의식이 깨었다.
"…… 듣고 계십니까?"
갑자기 들려오는 단주의 목소리에 장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장수의 표정에 단주는 힘없이 고개를 내렸다.
"제가 지금까지 사업체에 대해 설명을 드렸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엇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이런.'
장수는 당황했다. 장수가 자신의 몸속을 관조하는 동안 단주가 사업체에 대해 설명을 한 듯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소장주님은 석가장을 이어받으실 후계자이십니다. 그러니 자신의 위치에 대해 한번쯤은 심각하게 고민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천하의 흑룡혈장이 한낱 상인에게 구박을 받는다면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과거의 그였다면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는 상인은 단번에 머리를 부셔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과거와는 처한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장수의 표정에 단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집중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사업체를 물려받으실 수도 있고, 석가장을 더욱 크게 일으키실 수도 있습니다."
단주는 계속해서 말을 하며 장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귀를 막고 싶구나.'
장수는 잔소리는 질색이었던 것이다. 언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잔소리를 들어봤는가.
"알겠습니다."
"휴. 이만하면 알아들으신 거 같으니 그만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곳이 석가장에서 운영하는 객잔입니다."
처음으로 당도한 곳은 객잔이었다.
"이곳입니까?"
"예"
객잔은 3층 높이였는데 매우 컸다. 그리고 오후였는데도 그 앞을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장사가 잘되는 것으로 보였다.
"석가장에 소속된 사업체가 많아서 일부러 인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대규모 상행을 하면 꼭 필요한 것이라 큰 객잔을 구입했지요."
객잔에 대해서는 장수 역시 궁금한 게 많아 일부러 서류를 뒤져 확인을 한 상태였다. 원래 가격보다 단주가 수완을 부려 매우 저렴하게 샀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단주는 그 말을 안 한 것이다.
'단주는 자기 자랑을 안 하는 성격이구나.'
단주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단주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수완도 괜찮고 수하들을 다루는 것을 바도 훌륭한 것이 왜 부친이 자신에게 붙였는지 알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