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편 - 상인의 눈
'하지만 잔소리가 너무 많아.'
자신의 무위를 봤으면 일말의 두려움이 생겨 잔소리를 피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뒤에서 호위를 하는 무사들도 어느 정도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단주는 자신이 사람을 육장으로 죽이는 것을 본 뒤에도 한결같은 태도이니 장수로서도 당황스러운 상태였다.
장수의 정확한 무위는 모르겠지만 장수의 무공을 어느 정도 소문이 났고 육장으로 산적들의 가슴을 부셔가며 죽인 것을 본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무공을 모르는 단주의 태도는 배포가 있다고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젓는 장수였다.
"들어가 보시지요."
단주가 계획하고 있는 것에는 객잔이 꼭 필요했다. 왕복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객잔이 상시 준비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미리 예약을 해서 숙박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만 했다.
장수는 천천히 객잔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매우 넓은 게 눈에 들어왔다.
"훌륭하군요."
"예. 제가 일부러 신경을 써서 구입을 했습니다."
이정도 크기라면 백여 명 정도 되는 무사들도 숙박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장수는 흥미롭게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그의 흥미를 끄는 것은 따로 있었다.
"단주님."
"예. 소장주님."
"주방에 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요."
단주는 반색을 했다.
사실 객잔은 객실만 보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중요한 곳은 주방이라 할 수 있었다. 객잔의 손님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주방이 숙수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주방시설이 형편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숙수라 할지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지 못했고 주방이 좁거나 지저분해도 문제가 많았다. 그랬기에 객잔을 구입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곳이 주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장수가 가르쳐 주지도 않은 주방에 흥미를 보이자 단주는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저를 따라오십시오.”
단주는 장수를 인도했다.
주방에는 수많은 주방보조들이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주방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장수와 구면이었다.
"저분은?"
"예. 석가장의 전속주방장입니다."
장수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 마차를 탄 주방장이었다.
장수는 매우 반가웠다. 그가 만드는 음식은 매우 맛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음식을 배우면 훌륭한 음식을 배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수는 급하게 주방장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인사를 했다.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주방장은 음식을 만드느라 바쁜 와중에 매우 덩치 큰 거한을 보고 인상을 썼다.
"누구신데 음식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십니까?"
"접니다."
주방장은 장수의 얼굴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소장주님!"
"예."
"그 동안 많이 변하셨습니다."
"하하하…."
장수는 쓴웃음만을 지었다. 한 달 전에 본 주방장이 다른 사람인줄 알았던 것이다.
그 동안 장수의 몸은 여전히 거구였지만 예전에 비해 덩치가 줄어들었다. 거기다 근육도 생기고 얼굴 생김새도 둥그스름한 상태에서 각이 생겨 다른 사람 같아 진 것이다.
"잘 지내셨습니까?"
주방장이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나저나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소장주님이 체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제가 큰일이 납니다. 이런 몸을 보니 큰일이군요."
주방장은 장수의 몸을 살피더니 울상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전에는 보기 좋은 덩치셨는데 그게 다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드셔야 예전 모습을 찾을지 걱정입니다."
"……."
장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지금 모습에 만족합니다."
"아닙니다. 지금 너무 가냘파 보이십니다. 더구나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는지 너무 빠지셨습니다."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앞으로는 무조건 따라다니며 음식을 해드릴 테니 걱정을 하지 마십시오.”
장수는 잠시 쓴웃음을 짓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앞으로는 제가 이곳에 와서 음식을 먹겠습니다. 그러니 번거롭게 하지 마십시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제 임무는 소장주님의 살을 책임지는 겁니다. 그러니 본연의 임무를 지켜야지요."
주방장이 말에 단주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주방장님은 이곳에서의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소장주님이 없어지셔서 일시적으로 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일류주방장인 제가 황실도 아니고 이런 외진 곳에서 주방장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주방장의 말은 맞았다. 미식을 좋아하는 석가장의 장주가 일부러 좋은 조건으로 주방장을 데려온 것이다. 그런 그가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좋은 객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음식이었다. 한참 좋은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이 사라진다면 객잔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자 장수가 웃으며 말을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주방이 있어야 음식을 만드실 거 아닙니까? 아까 제가 말했듯이 이곳에 와서 음식을 먹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가 반색을 했다.
"그래 주시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단주의 입장에서는 일류주방장을 이곳에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장수가 이곳에 오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장수가 노리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하루 세 번 이곳에 오는 것은 시간이 부족한 장수에게 상당한 낭비였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말씀해 보십시오."
“주방장님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예? 요리요?"
단주로서는 어이가 없는 말이었다. 석가장의 소장주인 장수가 뭐가 아쉬워서 요리를 배운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정말 요리가 배우고 싶습니다."
“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갑자기 요리라니요? 요리가 하루 이틀 안에 배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여행을 많이 다닐 텐데, 그럴 때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데 곤욕을 치르기 싫어서 그렇습니다. 하하하."
장수의 말에 단주와 주방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주역시 음식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예. 맞는 말씀입니다."
"앞으로도 움직일 일이 많은데 음식을 배운다면 움직이는데 좀 더 편해질 거 같습니다."
"안됩니다."
단주의 말이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럴 수 없습니다. 지금 소장주님이 배워야 할 게 산더미 같습니다. 그것을 모두 배우려면 시간이 모자랍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음식을 배우는 것은 식사 전에만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단주는 잠시 고민을 하는 듯했다. 음식을 배울 필요는 없지만 배워둔다면 쓸모는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업을 하다보면 음식과 관련이 되는 일이 많았다. 음식을 알면 생활이 편리해 지는 것이다.
더구나 중요한 거래처와 계약을 하러 갈 때면 음식을 먹으러 가야 하는데 맛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거래가 쉬워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수가 음식에 대해서 알기 위해 음식을 배운다면 단주로서도 고민을 해야 했다. 더구나 단주가 음식을 배우는 것을 반대한다면 장수가 식당에 오지 않을 것이고 그걸로 주방장이 객잔을 나가 장수의 전속요리사가 된다면….
‘큰 손실이구나!’
단주는 한참을 고민을 하다 결정을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장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배우시겠다고 하시니 더는 말릴 수가 없겠군요."
"감사합니다, 단주님! 하하하! 단주님은 역시 훌륭하십니다!"
"허허허. 아닙니다. 음식도 배워두면 좋겠지요. 하지만 시간은 지켜주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단주님."
장수로서는 음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 중요했다. 더구나 식사는 하루 세 번을 한다. 그러니 적은 시간이라고 해도 하루 세 번을 하게 되면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객잔을 나와 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대장간이었다. 대장간은 장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매우 컸다. 상의를 입지 않고 털이 수북이 난 장인들이 잠시도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곳이 대장간입니다."
대장간은 전생의 장수 역시 여러 번 갔었다. 하지만 구경하러 간 것이지 무기를 사기 위해 간 것은 아니었다. 장법을 사용하는 그에게는 사실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그랬기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그렇군요."
장수는 관심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장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곳에서는 무인들의 무구도 만들지만 일반 백성들을 위한 생필품도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희 석가장이 주력으로 하는 것은 광석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그냥 파는 것보다 일차가공을 해서 파는 게 더 높은 가치가 있습니다. 또한 이차가공을 하면 더 많은 은자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장수는 은자를 많이 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렇습니까?"
장수는 스승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은자가 많이 필요했다. 그런데 광석을 가공만 하면 돈을 번다니 관심이 가는 것이었다.
"이제 서야 관심이 가십니까?"
'역시 상인의 피를 이어서 인지 은자에 민감하시구나.'
"예."
말을 하고나자 장수는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꼭 은자에 환장한 사람처럼 보이겠구나.'
자신을 위해서라면 은자가 필요 없었다. 은자 따위는 무공을 익히는데 하등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산속에 들어가 과일이나 먹으면서 수련을 해도 무공을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은자를 벌기 위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일을 해야 은자가 생겼다. 그리고 스승님을 위해 쓰는 돈인데 정식으로 노력해서 돈을 벌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