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편 - 상인의 눈
장수는 귀걸이를 건네받아서 세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자 단주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했다.
"금강석 같은 다른 광석들이 추가로 세공되어서 그렇지 금속 자체는 같은 재질입니다.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우측에 있는 게 빛이 나는 듯합니다. 특별한 합금을 쓴 거 같습니다."
"글쎄요? 특별히 무엇을 첨가했는지는 모르겠고 그것이 기술이니 알 수는 없지만 그것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예? 그럼 다른 것도 판단을 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무게중심과 순도를 알아봐야 합니다."
"무게중심과 순도요?"
'그렇습니다. 제품을 손대중으로 민감하게 파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따로 제품의 순도도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잡하군요."
"아닙니다. 복잡할 게 없습니다. 열심히만 한다면 어려울 게 없는 것입니다. 제 말만 잘 듣고 따라 주신다면 소장주님도 금세 배우실수 있을 겁니다."
장수는 흥미가 생겼다.
"어떻게 배우면 되겠습니까?"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직접 눈으로 보시고 품질을 파악하셔야 할 겁니다."
장수의 눈에 많은 제품이 보였다. 이 많은 것을 다 파악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전부다 하는 겁니까?"
"예. 저희 이곳에는 저희 공방뿐만 아니라 하청을 준 다른 대장간에서도 물건을 배달해주니까 하루에 엄청날 정도의 물건이 쌓입니다. 그러니 소장주님의 안목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의 길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명품을 만드는 장인은 다른 분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겠군요."
장수의 말에 단주는 씁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게 맞는 말입니다. 명장이니 당연히 수입이 엄청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만든 제품이 황실에도 들어갈 정도이니 우리 공방의 얼굴이며 자부심이기도 하지요."
단주의 말에 장수는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대체 얼마나 받습니까?"
"… 그게 다른 장인들과 비슷한 정도로 주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
"사실 본장에 손해만 끼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니 안 쫓아내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장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인들의 세계에서는 무공이 강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강자의 말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인들의 세계는 다른 듯 했다.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른, 그것이 무인과 장인이었다.
"왜 그렇습니까?"
"저분은 물건을 만드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그리고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물건을 파기해 버리고 다른 분들에게 안 넘깁니다. 억지로 빼앗아도 미친 듯이 회수하려고 해서 지금은 포기한 상황입니다."
"허…. 광인이군요."
"예. 물건을 만드는 광인이지요. 더구나 제품이라는 게 가공을 하면 할수록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지만 저분은 녹여서 없애버리는 재료가 많아서 좀처럼 이득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 만드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없애는 재료도 많다는 말씀이시군요."
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실 본장이니 버티는 거지, 다른 대장간 같았으면 벌써 내쫓았을 겁니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자는 쓸모가 없었다. 손실만 일으키는 장인을 좋아할 곳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제품은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게 사실 그리 큰 차이도 없습니다. 정말 미묘한 차이인데 그런 것을 수백 배 웃돈을 주면서 살 분은 없으니까요. 기본적으로 화구의 온도가 일정하고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도 한계가 있습니다. 거기다 비기라고 해봐야 거기서 조금 나은 정도지요."
장수로서는 한숨만 나오는 말이었다.
"그럼 실제로 저분은 본장에 이득을 주지 못하는 분이군요."
"그렇습니다. 거기다 성격도 얼마나 괴팍한지 맞춰주는 것도 고역입니다."
장수가 가만히 들어보니 대장간에 필요가 없어 보였다.
"대체 저분을 왜 데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저런 분이 가끔 명품을 만듭니다. 몇 년에 한 번이겠지만 한 번 나오면 그 동안의 손실을 모두 만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다른 분들보다 실력이 나으니 본 장의 간판으로 데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저분이 실패를 하지 않으면 크게 이득이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켜보면서 무엇을 실수하는지 봐야겠다.'
장수로서는 관심이 가는 것이었다. 실패만 하지 않는다면 큰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있습니다."
장수가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자 단주도 흥이 나는지 웃으며 말을 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그런데 구분을 할 때 말입니다. 광인하고 명장하고 그렇게 큰 차이가 없을 거 같습니다. 그건 어떻게 구분하는 겁니까?"
맞는 말이었다. 장수가 듣기에는 명장하고 광인하고 그리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긴 그렇습니다. 사실 미쳐야 무엇이든 잘하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떤 것이든 신들린 듯이 잘 만들면 장인이라 칭해 주는 겁니다. 근데 사실 광인이죠. 미치지 않고서는 그런 제품을 만들지 못합니다."
'미쳐야 장인이 된다. 그래 맞는 말이야. 무공에도 미쳐야 경지를 넘을 수 있어. 장인도 미쳐야 명장이 되는 거구나.'
장수 역시 혈교에서 미친 듯이 장법을 수련했다. 그 덕에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대장간에서 일을 해볼까?'
장수에게는 무공을 익힐 시간도 부족했다. 하지만 대장간에서 일을 하면 이득이 많이 날거 같았다. 그리고 석가장은 광산에서 광석을 얻어 그것을 가공해 팔아 지금의 부를 이루었다. 그랬기에 대장간 일을 하면 장수로서는 큰 도움이 될 것만 같았다.
그때 단주의 말이 이어졌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미치고 주정뱅이라 해도 눈을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눈을 가진 자와 계약을 하면 기대한 이상의 제품은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눈이 죽어 있으면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지 못하더군요. 물론 제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닙니다. 눈이 살아있는데도 제대로 된 제품을 못 만드는 경우가 있더군요."
"그렇군요."
단주는 계속해서 좋은 제품을 구분하는 것과 제품의 무게중심에 관한 것, 그리고 제품들을 보며 일일이 장단점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시간이 많이 지났다.
"앞으로 저에게 계속해서 안목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소장주님도 느끼시는 게 있을 겁니다."
무인인 장수였기에 다른 사람보다 더 신체적인 능력이 훌륭했다. 또한 기감도 예민해서 단주가 요령만 알려주어도 익히는 속도가 빨랐다.
"감사합니다."
"뭘요. 저로서는 당연한 것입니다. 제 바램은 소장주님이 제대로 배워서 석가장을 잘 인도해 주시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잠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생에 이런 수하가 있었던가?'
혈교에서 대부분의 수하들은 세뇌를 당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는 진정한 수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석가장은 혈교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곳이었지만 단주 같은 자가 있었기에 혈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무공을 익히는 시간 이외에는 상업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단주님."
"예. 소장주님."
"대장간에서도 일을 좀 배워도 되겠습니까?"
"예?"
단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주방에서 일을 한다고 했는데 거기다 대장간에서 일을 하겠다는 말에 단주로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입니다. 대장간에서도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장수로서는 무기를 쓰지 않기 때문에 대장간 일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대장간 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실 필요가 없습니다. 상인이라고 해서 모든 일을 잘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냥 감별만 잘해도 충분합니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감별에 대해 정확한 것을 알 수가 없을 거 같습니다. 요령이라도 익히려고 그러니 허락을 해주십시오."
단주로서는 난감한 말이었다. 전문적으로 장인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감별을 위해서 대장간 일을 배우겠다는 것은 나중에 상인으로서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더구나 장원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광산과 관련된 일이기에 장원의 사람들도 장수를 인정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까 요리를 배우겠다고 했던 것과 지금 대장간의 일을 배우겠다는 것 모두 다 소장주를 위해서, 더 나아가 석가장을 위해서 좋은 일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힘든 일이니 오래 버티지 못하실 거다.'
쇠를 다루는 일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화덕의 불길은 보통사람은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무공이 강하더라도 소장주가 금세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을 보내실 수는 없습니다. 객잔 주방에서도 일을 배우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사업체 일도 배우고 그러시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또한 아직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상행을 떠날 날짜가 되면 배우는 것을 더 이상 배우지 못한다는 것도 기억하셔야 합니다."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수도 어느 정도 각오하던 바였다. 은자를 버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그만큼 고생을 해야 남들보다 더 벌수 있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제품을 감정하는 것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장수는 은자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단주의 설명을 들었다.
장수가 배워야 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확장한 사업체와 상인으로서 배워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더불어 잠시도 쉬지 않고 무공을 수련해야 했기 때문에 장수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