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편 - 요리를 배우다
그렇게 한참을 듣자 단주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도면 오늘 배울 양은 된 거 같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소장주님도 한 명의 어엿한 상인이 될 수 있을 것 입니다."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제 당연한 의무인데요."
"그런데 대장간에서는 언제부터 일을 배울 수 있습니까?"
"그것은 제가 오늘 말해 놓을 테니 내일부터 배우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업체도 가보셔야 합니다."
방현에 벌려놓은 사업체는 매우 많았다. 그것을 일일이 돌아다니는 것도 일이었다.
"원래 이렇게 사업체를 일일이 찾아 다녀야 하는 겁니까?"
"당연한 겁니다. 주인이 자신의 것을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기겠습니까? 허허허. 소장주님. 이러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챙겨주지 않습니다. 물론 고용인들도 모두 믿을 만한 사람들이지만 자신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소장주님께서는 번거롭더라도 꼭 방문을 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몇 개의 사업체를 방문했다. 귀금속 가게와 곡물가게 등을 거쳐 외지로 향했다.
큰 창고로 보였다. 그 앞에는 석가장의 무사 여섯 명이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가 창고입니다."
창고는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당히 큰 창고였는데 몇 개의 건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곳이 창고 입니까?"
"그렇습니다. 저희 석가장이 방현에서 취급하는 모든 물품은 우선 이곳에서 처리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군요."
장수로서는 창고가 크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안에 곡식이며 광석이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큰 겁니까?"
"이곳에서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일부러 큰 곳을 골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물품을 옮긴 곳과는 다른 곳이었다. 그것을 보니 새롭게 짓거나 확장한 듯 했다.
"그렇군요."
상인으로서 단주에게 배울 점이 매우 많았다. 단주는 숙련된 상인으로서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과감했으며 실용적이었던 것이다.
'정말 이분에게 배우면 많은 것을 배우겠구나.'
배울 것도 많지만 인간적으로 따듯하고 자신을 생각해주는 점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런데 왜 이렇게 외지에 창고를 마련하였습니까?"
"그것은 땅값이 비싸서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시내 중심부가 땅값이 비싸지요. 그에 반해 이곳은 외지라 땅값이 싸서 임대료가 적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시내에서 이렇게 멀면 도둑들이 오지 않을까요?"
"그래서 무사들이 숙소를 이 근처로 잡았습니다."
단주는 말과 함께 손으로 납작한 모양의 집을 가리켰다. 저곳이 무사들의 숙소인 것처럼 보였다.
"저곳인가 보군요."
"예. 저기에 본장의 용감한 무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사업체를 가진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생각해야 하는 게 무척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단주의 말이 이어졌다.
"가뜩이나 요즘 방현에 불손한 자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경계도 늘리고 본장에 상주인원을 더 증원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본가에서는 피해가 없습니까?"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물론 피해가 있었지요. 그래서 외부활동을 안하고 있습니다."
"예? 그런데 왜 이곳에는 이렇게 투자를 많이 하는 건가요?"
"당연히 소장주님의 교육을 위해서 입니다. 이곳을 전부 잃더라도 소장주님이 배우는 게 있으면 남는 장사입니다."
"……."
장수로서는 가슴 떨리는 말이었다. 자신이 존재 가치가 이들에게는 그 정도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본장의 중심은 소장주님이십니다. 소장주님이 배우는 수업료로 이정도도 부족하지요. 소장주님은 잊지 마셔야 합니다. 소장주님은 석가장의 소장주님이십니다. 그러니 어디를 가던 당당해지셔야 합니다."
단주는 석가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 단주를 보자 장수로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석가장을 위해서라면 이정도도 못하겠습니까? 제 직장이고 제 모든 것인데요."
말을 하는 단주의 표정에는 미소가 서려 있었다. 그에게는 석가장이 전부였던 것이다.
'이런 마음은 정말 배울 만하구나.'
장수는 전생에서 혈교에 있으면서 한 번도 소속감을 가져 본적이 없었다. 그리고 수하들을 다루면서도 수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저 세뇌로 이루어진 관계였고 장법을 익히기 편한 곳이라는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단주의 말에 의식이 깨이는 것을 느꼈다. 장수는 무인이었지만 단주 앞에서는 상인으로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의 앞에서는 상인으로서 진진해 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주제넘은 말을 했군요."
단주라 해도 결국에는 석가장의 고용인이었다. 그러니 석가장의 차세대 주인이 될 장수에게 너무 깊이 말을 한 것이다.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무인으로서 그리고 상인으로서 처세를 단주에게 배운 것이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러려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니까요."
"예."
"이제 사업체는 모두 둘러보았습니다. 사업체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셔야 하고 문제점이 있으면 즉각 고쳐야 합니다. 주인으로서 해야 할일을 하는 거죠. 아무래도 고용인으로서는 할 수 있는 권한이 적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 볼까요? 내일 또 많은 일들이 있을 텐데요."
"예."
숙소로 돌아온 장수는 쉴 시간이 없었다. 처리해야 하는 서류도 많았고 결산을 봐야 하는 장부도 많았던 것이다. 더구나 무공수련도 쉬지 않고 해야 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게 장수는 운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일정시간 동안 운기조식을 취해서 소모된 내공을 증가시키거나 단전의 용량을 증가시켜야 했다. 하지만 잠시도 쉬지 않고 운기가 되는 장수로서는 그만큼의 시간을 벌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권법과 장법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을 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든 빨리 봐야겠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류였다. 장수의 머리가 좋다면 처리하는 시간이 짧아질 것이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머리가 좋아질 수는 없었다. 물론 장수는 선천지기 덕분에 무의식적으로 머리가 좋아지고 있었지만 장수는 더욱 빠르게 처리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류를 한참 동안 보자 머리가 지끈 거리며 아파왔다. 한계가 온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계속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선천지기가 도와주었지만 한계에 직면한 것이다.
"이제 수련을 해야겠구나."
따로 수련장에 갈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수련을 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장수는 천천히 집무실에서 한걸음 앞으로 나갔다. 태극권은 이렇게 좁은 곳에서 수련을 해도 된다. 더구나 집무실은 많은 서류를 두는 곳이고 장수의 개인 공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넓었다. 그래서 공간이 충분히 남았다.
“흐읍!”
장수의 몸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극권의 기수식이 펼쳐지더니 한 동작, 한 동작 자연스럽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매우 느린 태극권이 펼쳐지자 장수는 주변을 잊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작 하나하나에 세심하게 주의하면서 태극권을 수련했다.
그렇게 태극권을 한 번 펼치고 나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하면 안 돼."
태극권은 매우 훌륭한 무공이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그 점을 생각한 것이다.
"그때 느꼈던 것을 생각하며 펼쳐 보자."
하위 무공이라 생각했던 태극권이지만 그 속에는 무궁할 정도의 무리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치를 깨달아야 본질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초절정의 경지를 개척한 장수였지만 아직까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장수는 혈교의 권법을 펼칠 때 파괴적인 것만을 생각하며 더욱 빠르고 강한 권법만을 추구했다. 그리고 그것도 장법이 경지에 오르자 관두고 오로지 장법만을 탐구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상승의 경지에 오를 수 없었다.
하지만 태극권을 열심히 수련한다면 진정한 권법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장수는 혈교의 하일악과 싸울 때 느낀 것을 그대로 자신의 태극권에 적용시켰다. 그러면서 움직임도 생각을 정리했고 한수한수 고심을 하며 펼치지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동안 무공을 펼치자 저절로 동작이 멈추어졌다.
바로 앞에 서류들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에 자연스럽게 서류를 피해서 권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장수는 무의식중에도 주변 사물을 건드리지 않고 태극권을 펼쳤던 것이다.
그렇게 한차례 춤사위와 같은 태극권이 펼쳐지자 천천히 장수의 몸이 정지되어졌다.
"휴우."
지금 기분 같아서는 일 년 내내 라도 태극권만 수련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태극권은 알면 알수록 그 오묘함에 놀라울 정도였다.
장수가 장법에 심취하지 않았더라면 태극권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장수는 장법에 매진한 상태였다. 그리고 양의 번천장이라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랬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에 매진할 수 없는 게 아쉽구나."
장수는 태극권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현재 천하에 태극권을 사용하는 자는 없었다. 이미 천하에 대중무공이라 하여 떠돌이 약장수까지 익히는 태극권이었고, 육합권과 삼재권법과 함께 기본적인 무공으로 알려졌지만 태극권의 발생지인 무당에서조차 사장되었고, 극에 달할 때까지 익히는 자가 없었기에 태극권으로 이름 높은 고수도 없는 실정이었다. 그랬기에 장수 역시 태극권을 익히면서 무시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익히면 익힐수록 그 오묘함에 감탄을 금치 못한 것이다.
"수련 시간이 부족해."
장법 하나만 수련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더구나 태극권에, 상업도 배워야 했으며, 사업체도 관리해야 했고, 유운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해 음식 만드는 것과 대장간 일도 배워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지금은 어쨌든 그가 그토록 원하던 유운의 가르침도 받은 뒤가 아니던가? 꿈에서도 원하는 유운의 가르침을 받은 뒤였고 방현에서의 일이 모두 끝나면 다시 무당으로 돌아가 유운에게 무공을 배울 수 있었다. 더구나 자신은 유운이 죽었는지 알았는데 살아있었다. 이보다 행복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가만 생각해보니 나란 녀석은 참 행운아로구나."
전생에서 그는 착한 일을 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았다. 혈교의 임무에 충실했고 장법을 익히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이런 행운이 찾아 올 줄은 몰랐다. 사실 유운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행운은 넘치도록 있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더욱 최선을 다하자."
더 이상 최선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장수로서는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다. 더욱 열심히 해서 자신을 옥죄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누군가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소장주님, 식사하셔야죠."
"이런…!"
장수는 잠시도 모르게 날을 샌 것이었다. 가뜩이나 늦은 시간에 와서 서류를 보고 수련을 했기에 새벽도 거의 끝나가는 것이다.
"어서 나오십시오. 단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수는 피곤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하루 일과를 안 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야 무당파로 유운을 만나러 갈수 있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장수는 대답을 한 뒤 의복을 정제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 단주가 장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밤에 편안히 쉬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숙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객잔에 가자 낮이라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하지만 주방에 가자 상황은 딴 판이었다. 요리를 돕는 주방보조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 하인들이 무거운 것을 나르고 있었고, 제법 짬이 되는 숙수들은 고함을 지르며 난리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한가운데서 주방장이 그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는데도 주방이 유지되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다 주방장이 장수를 보고 말을 했다.
"아, 소장주님. 오셨습니까?"
"예. 주방장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언제 오실지 기다리던 중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사실 요리라는 게 직접 해봐야 느는 겁니다. 그러니 소장주님께서도 제 지시에 따라 일을 하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그때 한 숙수가 급하게 말을 했다.
"주방장님! 지금 음식을 만들까요?"
"그렇게 해라!"
"예."
주방장이 말에 숙수는 급하게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