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고수-87화 (87/398)

87편 - 대장간

'이런.'

장수로서는 잠시의 시간도 중요했다. 이런 중요한 때에 상처를 입는다면 다른 일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원래 대장간 일이라는 게 다치는 일 투성이었지만 장수는 다쳐서도 안 되었다.

'어떻게 하지.'

장수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무인이다. 이정도 상처에 겁을 낼 거 없어.'

장수는 무인이었다. 그리고 상처는 훈장 같은 것이었다. 겨우 화상을 입은 걸로 시간을 끌 수 없었다.

장수는 과감하게 집게를 집었다. 그리고 금속판을 불속에 집어넣었다.

치치칙.

금속이 불에 의해 강한 소리와 열을 발산했다. 금속이 달아오르는 소리였다. 그와 함께 강한 열기가 장수의 손 안으로 파고 들어왔다. 집게 속으로 강한 열기가 들어온 것이다.

윽.

장수는 신음을 삼켰다.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겨우 이것도 참아내지 못하면 대장간일은 아예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장수는 침을 한번 삼켰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집게를 쥔 손을 다시 움켜잡았다.

장수의 몸에는 두 가지 심법이 운기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화기를 참아내자 단전에서 나오는 시원한 기운이 손을 차갑게 만들어주었다.

'참을 만하구나.'

전진심법의 묘용이었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장수가 의식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알아서 외부의 침입을 막아준 것이다. 손이 음공을 익힌 것처럼 차가워지자 고통을 버티기가 한결 수월해 졌다.

'최선을 다하자.'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통을 참아 내야 했던 것이다. 장수는 정신을 집중하고 금속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이런….'

장수는 집중을 했지만 허사였다. 금속판의 금속이 어느 시점을 넘어서자 그냥 녹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액체 같은 상태가 되어 화덕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젠장!"

다시 잡으려면 화덕을 굳혀야 했다. 그리고 다시 분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숙련된 대장장이라면 그런 작업을 빠르게 할 수 있겠지만 장수는 그렇지 못했다. 게다가 그 작업을 하기엔 장수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금속판을 하나 더 갖다 주십시오."

장수의 말에 도제가 급하게 금속판을 가져왔다. 그러자 장수는 다시금 집중을 하고 금속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렇게 집중을 해서 쳐다보는 사이에 장수의 단전과 상단전에서는 끊임없이 주변의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유달리 화기가 많은 대장간 안이었다. 그 덕분인지 장수의 몸에는 유달리 화기가 많이 흡수가 되고 있었던 것이다.

화기란 일부러 열이 많은 곳을 들르지 않는다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기운이었다.

장수는 이곳에 있기 전에 대자연이 있는 무당파에 있었기에 목기가 풍부했다. 그런데 대장간에 와서 새로운 기운인 화기를 접할 수 있었다.

장수는 집중을 해서 모르고 있었지만 화덕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았다. 그래서 불길이 마치 장수에게 향해있었던 것이다.

"젠장. 불길이 미쳤나?"

장수 옆의 화덕에서 불길을 보던 대장장이 하나가 화를 냈다. 불길이 말을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벌써 불길만 수십 년 동안 잡은 그였다. 그랬기에 불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불길은 미묘하게 장수가 있는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 * *

다음날이 되어 객잔으로 가자 주방장이 수십 개의 화구 중 한곳을 장수에게 가리켰다.

"소장주님. 오늘부터 이곳에서 수업을 배우셔야 합니다."

화구는 불길을 일으키는 도구였다. 그 안에 불이 타는 자제를 넣으면 불길이 일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하인들은 화구에서 불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계속해서 불길을 유지해 주어야 했다.

화구 역시 오랜 시간 집중을 해야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장수는 계속해서 특전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객잔 주방에 있던 사람들은 장수를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거의 십일 동안 보아 왔지만 이것의 정체는 아직도 모르는 상태였다. 화로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보기에는 대장간의 화덕과 비슷하게 불길을 붙이는 것이었지만 사용법은 전혀 달랐다.

"이것이 화구입니다. 이곳에서 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요리라는 것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웬만한 음식은 이걸로 가공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장수는 화로를 자세히 보았다. 그러자 주방장이 웃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조심하십시오. 잘못하면 화상을 입으실 수도 있습니다. 불길이라는 것이 잘 다루지 못하면 크게 다치는 거거든요."

다친다는 말에 장수는 어제 화상을 입은 것을 자신도 모르게 쳐다보았다.

'이런 어디로 갔지?'

놀라운 일이었다. 어제 분명히 화덕에서 상처를 입었는데 오늘 보니 상처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의문은 잠깐이었다. 배워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불길은 매우 뜨겁습니다. 하지만 요리를 배운다는 것은 불길과 싸워서 승리를 쟁취하는 일입니다. 불과 친해질 수는 없습니다. 불과 싸워서 이겨 자신의 마음대로 부려야 합니다. 그래야 최고의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주방장의 요리철학은 놀라울 정도였다. 보통의 상리를 벗어난 사고방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럼 제가 지금부터 화구를 사용하는 법과 솥을 사용하는 것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이미 이곳보다 더 뜨거운 화덕에서 십여 일 동안 지낸 장수였다. 그랬기에 화구의 불길이 그렇게 뜨겁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때문에 어떻게 보면 위험하고 어려울 수도 있는 화구를 쉽게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본에 지나지 않았다. 요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과 배움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화로 사용법을 어느 정도 익히자 주방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셨습니다. 이정도 실력이라면 기본적인 것은 전부 배우신 겁니다."

주방일이라 해서 무공을 쓰는 것보다 쉽지 않았다. 오히려 세심한 면에서는 더욱 배우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무공을 통해 신체능력이 좋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 빠르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진심법과 선천지공 덕분인지 오감이 다른 사람보다도 월등히 뛰어났다. 그 때문에 남들은 어렵게 배우는 것을 조금 더 빠르게 익힐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스승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었기에 남들보다 열심이었다.

"감사합니다."

장수로서는 고마운 일이었다. 만약 주방장이 제대로 된 기초를 가르쳐 주지 않았더라면 혼자서 익히기 난해 했을 것이다. 더구나 장수에게는 남들보다 시간이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시간동안 배워야 했는데 주방장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화로 사용법을 다 익힌 거 같으니 이제 양념을 익히셔야 합니다."

"양념이요?"

"그렇습니다. 미각이라고 하죠? 미각을 익히기 위해서는 먹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말과 함께 조미통을 꺼내 들었다. 조미통에는 삼십여 가지 이상의 양념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색깔이 다채로웠다. 장수로서는 그것을 보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장수역시 숙수들이 요리를 만들 때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뿌리는 것을 보기는 했다. 그래서 호기심을 가졌는데 오늘에서야 설명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게 양념이라는 것입니다. 일부러 알기 쉽게 제가 정리를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보통 주방에서 쓰는 양념은 열 가지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 가지고도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방장은 자신의 직접 개발한 양념까지 썼기에 음식의 맛이 한층 깊고 풍부했다.

'와. 요리라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구나.'

요리도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장수는 무공을 배우면서 무공의 길을 걷는 것이 가장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일도 어려운 길은 마찬가지였다. 한 분야에서 대성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수는 마음을 다 잡았다. 왠지 앞으로는 무공의 길이 힘들다고 포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자, 맛을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장수는 양념들을 하나하나 맛을 보았다. 그러자 미각을 통해 짠 맛과 단 맛, 그리고 매운 맛이 느껴졌다.

"어떻습니까? 대충 아시겠습니까?"

장수는 미식가가 아니었기에 음식투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양념만 따로 먹으니 구토가 날 지경이었다. 맛이 극과 극의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장수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끄덕이자 주방장은 미소를 지었다.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에 음식을 배울 때는 많은 고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 음식을 먹고 기뻐해줄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쁘게 배우니 어느 순간 이정도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방장의 말에 장수는 유운이 생각났다. 유운이 맛있게 먹을 생각을 하자 기쁨이 느껴졌다.

"열심히 배워야겠습니다."

"예. 내일부터는 음식을 직접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주방장의 말에 장수의 심장이 떨렸다. 드디어 음식을 직접 만들게 되는 것이다.

사실 처음 음식을 배울 때는 너무나 간단해서 며칠만 배우면 될 거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직접 음식을 만들어 보니 자신의 생각은 오산이었다. 며칠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음식에 매진해도 깊은 맛을 내기 힘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장수에게는 이정도 수확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앞으로 열심히 배우면 되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음식이라는 것은 정성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만드신다면 최고의 음식을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예."

장수는 주방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의 인사였다. 그러자 주방장 역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십일 뒤에 상행을 가신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익히신다면 기본적인 것은 만드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방장에게는 기본적인 것이지만 웬만한 객잔에서는 그 정도 실력으로도 충분히 운영이 가능한 실력이었다.

"알겠습니다."

"자, 어서 대장간으로 가십시오.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예."

시간이 많이 늦었다. 해야 할게 많았던 것이다.

장수는 급하게 대장간으로 향했다.

대장간에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도제들과 대장장이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같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수의 눈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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