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편 - 대장간
'아…. 저것은 저런 원리로 움직이는 것이구나.'
도제들과 대장장이들이 움직임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그것은 장수가 화덕을 통해 제품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을 했기에 그만큼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였던 것이다.
장수는 그렇게 한 명, 한 명의 대장장이들을 살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자신만의 기술로 제품을 만드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되는 거였구나!"
사실 장인들은 타인이 자신의 기술을 보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신경이 쓰이고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장수가 주인이 아니었다면 허락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이곳의 주인이고 대장간 운영을 위한 기초 적인 것만 배운다고 했기에 장인들이 허락을 한 것이다. 사실 대장간 일이라는 게 일, 이 년 배운다고 기술을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구나 그들은 자신들의 비기라 할 수 있는 것들은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장수는 무인으로서 신체능력이 다른 사람보다도 월등히 뛰어났다. 더구나 시력과 두뇌가 비상할 정도로 좋았기 때문에 장인들은 무심코 넘기는 부분도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장인들의 기술은 의도하지 않게 장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더구나 직접 만드는 과정도 해보았다. 그랬기에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이런 부분이 부족하구나.'
장인들은 익숙하게 금속판을 넣어 원하는 모형으로 만들어 냈다. 그것은 오감을 모두 사용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시간을 잘 맞출까?'
장수는 장인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집중했다. 하지만 오랜 경험과 기술을 단시간에 배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부족한 부분이 보였다. 물론 대단한 것은 아니었고 다른 대장장이들과 비교했을 때 다른 점이었다.
이미 그들이 만드는 제품은 일과가 끝나고 모두 확인을 하는 작업을 했다. 그랬기에 누가 실력이 뛰어나고 누가 실력이 떨어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감별 덕분인지 장인들에게 급을 매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은 역시 늙은 대장장이였지만 만드는 숫자가 너무 적었다. 어떤 날은 아예 안 만드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단주에게 물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장인의 부족한 점을 더욱 자세하게 알 수가 있었다.
'저 장인은 세심한 게 떨어진다고 했지.'
코가 살짝 부어오른 장인이었다. 그 장인은 세심함이 부족했다. 그래서 세공이 정밀하지 못했다.
'저 장인은 내구성이 떨어진다고 했지?'
팔이 기형적으로 긴 장인이었다. 그 장인은 만들면서 망치질을 다른 장인들에 비해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만든 물품에 대한 해설과 함께 장인들의 작업을 직접 보니 느끼는 게 많았다. 하지만 그들에게 직접 그런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단주가 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절대 장인들에게 단점을 지적해 주면 안 됩니다. 그들은 자존심이 강해서 누가 지적을 하면 분개를 합니다.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미 초기의 생각은 많이 바뀐 상태였다. 처음에는 단점을 파악해서 고쳐줄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장인들은 고집이 있었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은 늙은 대장장이였다. 그는 항상 이곳에서 최고의 작품을 만들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망치질도 오랜 시간 동안 하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불 속에 넣어서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다.
장수는 계속해서 장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자 어느 정도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만들어 봐야겠다.'
장수는 자신의 화덕으로 갔다. 화덕에 불을 붙이고 금속판을 화덕에 넣었다.
지이익.
쇳물이 튀었다. 그러면서 금속판이 달구어지기 시작했다.
장수는 금속판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단련이 될 대로 된 장수의 눈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눈이 더 좋아졌기 때문에 금속판이 달구어지는 게 다른 사람보다 정확하게 보였다.
장수는 한순간을 노렸다.
확.
장수는 순식간에 금속판을 들어올렸다. 정확한 시간이었다. 다른 대장장이들이 금속판을 꺼내는 시간에 꺼낸 것이다.
'성공했구나.'
기쁨은 잠시였다. 어서 빨리 가공을 해야 했다.
장수는 급하게 망치를 들었다. 그리고 금속판을 두들겼다.
땅! 땅! 땅!
금속을 두들겨 원하는 모형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망치가 원하는 데로 움직여 지지 않았다. 더구나 때리는 방향이 매번 달라 모형이 이상한 형태를 취했다.
장수는 보면서도 웃었다.
'이거 너무 엉망이구나.'
장수는 이번에 망치를 처음 써본다. 망치 같은 것을 무기로 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망치질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힘의 분배가 있어야 했고 모형을 제대로 타격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더구나 쓰는 근육도 달랐다. 아무래도 망치질을 연달아 하는 것이었기에 어느 한쪽 근육만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구나.'
보기에는 쉬워보였지만 막상 하려니 하나하나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배워야 많은 은자를 벌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뚝.
잠시 딴생각을 하자 금속판은 그대로 부러졌다. 힘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세게 쳤기에 버티지 못한 것이다.
'이런….'
처음부터 잘 될 수는 없었다.
장수는 고개를 흔들더니 다시 화덕에 망친 금속을 집어넣었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것이다.
* * *
십일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제 내일이면 상단이 출발할 시간이 된 것이다.
장수는 이른 시간에 객잔으로 향했다. 해야 할일이 매우 많았기 때문이었다.
주방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무려 이십일 동안 이곳에서 요리를 배웠다. 그랬기에 주변이 익숙하게 느껴진 것이다.
'드디어 떠나는구나.'
주방에는 언제나처럼 뜨거운 열기와 강한 냄새가 코로 밀려 들어왔다. 처음에는 정신이 멍할 정도로 강한 냄새였지만 막상 떠나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느껴졌다.
'음식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처음에는 우습게 생각했다. 음식이야 재료만 넣으면 알아서 만들어 지는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말 많은 것을 알아야 음식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오셨습니까?"
주방장이 장수에게 인사를 했다.
"예."
"내일 떠나신다고요."
대규모 상행이었다. 그것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석가장 사업체에서는 아니, 방현의 시내 안에서는 모두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바쁘시겠군요."
"예. 그 동안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소장주님에게 요리를 알려드릴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주방장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저도 주방장님에게 요리를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장수의 말에 주방장이 미소를 지었다.
"저도 따라가고 싶지만 못 가는 것이 아쉽네요."
소장주 직속 요리사였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위험한 상행이었기에 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또한 객잔이 안정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주방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닙니다. 어차피 짧은 상행이니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호북의 북과 남을 오가는 큰 상행이었다. 그랬기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주방장이 따라올 것이기에 위험하다고 말을 한 것이다.
"예. 하지만 소장주님께서 음식을 배우셔서 다행입니다. 앞으로 좋은 음식을 스스로 만들어 드시면 되니까요."
이십일 동안 배워서 얼마나 배웠겠는가? 하지만 장수가 스스로 먹을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큰 발전이었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이걸 받으십시오.”
"무엇입니까?"
주방장은 미리 준비한 듯 호주머니를 장수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꺼내서 안에 들것을 살펴보자 조미통이 들어있었다.
"음식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양념들을 제가 간추린 것입니다. 가져가시면 요긴하게 사용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조미통은 매우 컸는데 정확하게 열 개였다. 혼자서 먹는다면 몇 년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뭘요. 이걸로 앞으로 요리를 하는데 더욱 정진을 하셨으면 합니다."
"예. 정말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장수가 음식을 만드는 이유는 유운을 위해서였다. 그랬기에 열심히 배우려고 한 거지 자신을 위해서라면 배우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도 음식을 열심히 만드셔야 합니다. 배우기만 하고 실제로 써먹지 못하면 실력이 금세 줄어듭니다. 그러니 오늘까지 익히신 것은 꼭 복습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꼭 명심하겠습니다."
"늦으셨는데 어서 가십시오."
"예."
그러자 주방에 있던 하인들과 숙수들이 장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그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박수에 장수는 뿌듯함을 느꼈다.
‘정말 기쁘구나. 성취감도 들고 음식을 배우기를 잘한 거 같구나.’
장수는 객잔을 나서자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나도 음식을 만들 수 있겠어.'
물론 잘 만들 수는 없었다. 겨우 이십일이었다. 그 정도 날짜 가지고 몇 십 년 동안 음식을 만들던 사람보다 잘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기본은 익혔으니 앞으로 노력 여하에 따라 발전을 할 것이다.
"왠지 떠나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구나."
장수로서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대장간에서의 경험처럼 객잔에서의 경험은 무공만을 알던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상행으로 인해 많은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 대장간에도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수는 잠시 객잔을 쳐다보다 대장간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