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편 - 대장간
대장간에 가자 장수로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은 꼭 만들어야지.'
겨우 이십일 동안 실력이 많이 늘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장인들이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이런 것은 수많은 작업을 하면서 경험을 쌓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랬기에 지금까지 만든 것은 전부 실패작이었다.
더구나 장수는 몰랐지만 대장간에서 최고의 재료만을 장수에게 공급했기에 손해도 많았던 것이다.
장수는 자신의 화덕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 동안 무수히 많은 실패작을 만들었다. 그리고 실력이 부족할 때마다 다른 장인들이 만드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물론 다른 장인을 훔쳐보는 것은 허락을 받았지만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대장장이들도 인상을 구기거나 화를 내는 자들까지 생겼다. 하지만 협조를 해주는 장인들도 있었기에 실패 요인을 어느 정도 알았고 해결 방안도 알아낸 장수였다.
장수는 천천히 화덕 앞에 섰다. 그리고 불을 지폈다. 그러자 불길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어났다.
화르륵.
불길은 다른 화덕보다 더욱 강했다. 장수가 쓰는 재료는 최고였다. 더구나 그 동안의 경험 덕분인지 불길은 일정한 온도를 유지했다.
"좋아. 첫 번째는 성공이구나."
불길이 강한 것은 양날이었다. 불길이 강한 만큼 원하는 제품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했고 다루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장수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 아니면 앞으로 대장간 일을 할 기회가 언제 생길지 몰랐던 것이다.
잠시 뒤 기다리고 있던 도제가 금속판을 가져다주었는데 매우 두꺼웠다. 금속판도 종류가 있었는데 일부러 두꺼운 것을 달라고 한 것이다.
장수는 금속판을 불에 넣은 뒤에 꺼내서는 망치로 힘 있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쾅! 쾅쾅!
장수는 힘 있게 망치질을 하다 불속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망치질을 시작했다.
망치질을 한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정확하게 같은 부위를 쳐야 하는 것이다. 장수 역시 처음에는 애를 먹었지만 나중에 가자 요령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숙련된 장인보다도 때리는 것은 더욱더 정확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세월이 주는 감은 아직까지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는 불길도 장수의 의지를 많이 따라주었다. 어떻게 보면 장수의 의지에 의해 불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정도 불길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숙련된 장인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장수가 손을 내밀자 불은 스스로 움직이듯이 장수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 덕분에 불길을 쉽게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하다 겨우 만들어 냈다.
"휴. 드디어 완성했구나."
만들어진 것은 매우 조잡한 칼이었다. 그것도 부엌에서나 쓰는 식칼이었다.
하지만 매우 좋은 재료를 높은 온도에서 만들었기에 모양은 투박했지만 강도는 튼튼했다.
장수는 물로 식힌 뒤에 하늘로 높이 쳐들어 올렸다.
그러자 식칼의 날이 반짝였다.
"흐흐흐!"
장수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계속 실패하다 드디어 완성한 첫 작품이었다. 물론 상품가치는 없다고 봐야 했다. 거기다 사용한 재료나 비용을 따지자면 안 만드니 만 못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자신이 만들었기에 기뻤다.
"이 정도라면 훌륭해!"
장수는 상인의 눈으로서 가치를 살필 것도 없었다. 대충 봐도 단점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십일 동안 많은 작품을 봐 오면서 안목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금속판 값도 못 받을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땀과 노력이 베인 작품이었다. 그랬기에 소중했다.
장수는 아쉬운 눈으로 화덕을 바라보았다. 작품을 더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만약 며칠이라는 시간만 더 있었어도 좋은 제품을 넉넉하게 만들 수 있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나중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젊은 대장장이가 그에게 다가왔다.
"이게 완성품입니까?"
"그렇습니다."
이 공방에서 가장 많이 도와준 자가 지금 말을 걸어 온 젊은 대장장이였다. 젊은 대장장이는 웃으면서 장수를 바라보았다.
"이정도 시간에 이정도 제품을 만들다니 대단하십니다."
장인의 말에 장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정말 소장주님의 열정에 감탄했습니다."
젊은 대장장이는 장수의 일을 상관하다가 자신의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이번에 받을 월급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대장장이는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장수의 눈에 들었다 생각한 것이다.
"저도 그 동안 도와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도와드려야 하는 거죠. 그래도 이런 대장장이 일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장주님이 관심을 가져주셔야 앞으로 이쪽 업계가 발전을 할 거 아니겠습니까?"
대장장이의 말에 장수는 미소만을 지었다. 아직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상행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재료를 좀 많이 가져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제가 최선을 다해 가져오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장인은 미소를 지었다.
장수는 천천히 식칼을 챙겼다. 그사이에 친해진 사람들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아쉽습니다. 다음에 또 들려주십시오."
"그 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물론 무뚝뚝한 장인들 중 몇 명은 장수를 쳐다도 보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장수에게 좋은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동안 입을 열지 않던 늙은 대장장이가 장수에게 찾아왔다. 그리고 식칼을 힐끔 쳐다보았다.
"수고했다."
단 한마디였다. 그리고 무뚝뚝하게 돌아가 다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늙은 대장장이의 한마디 말이었지만 장수는 크게 기뻤다. 왠지 인정을 받은 느낌이었다.
단 이십일이었다. 그 동안 숙련된 대장장이 같은 실력을 얻지는 못했지만 대장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는 계기였다.
장수는 대장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대장간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대장간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한 것이다.
대장간에서의 경험 역시 객잔 주방에서 요리를 배운 것처럼 장수에게 새로운 것을 알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오늘의 경험은 나중에 장수에게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애초에 며칠 만에 무언가 완벽하게 배울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만 대장간이 돌아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장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그곳을 떠났다. 사업체를 모두 둘러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업체를 모두 돌고 나자 밤이 깊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이다.
"드디어 내일이구나."
이제 내일이면 상행을 떠난다. 장수에게 있어서 두 번째 상행이었다.
"걱정이 많이 되는구나."
두 번째였지만 긴장감은 오히려 첫 번째보다 더 심했다. 한번 경험을 했기에 오는 부당감이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혈교에서 언제 사람을 보낼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절정고수가 구름같이 많은 곳이 혈교였다. 그런 곳이었기에 방심할 수가 없었다.
장수는 천천히 자세를 잡았다. 수련을 하기 위해서였다.
장수가 펼친 자세는 칠선장의 기수식이었다.
"합!"
장수는 천천히 장을 내밀었다. 그러자 장수의 소매가 펄럭였다. 매우 좁은 공간을 움직였지만 장력에 의해 소매가 움직인 것이다.
그렇게 장수는 한참동안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참을 수련하던 장수는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그렇게 땀을 닦아낸 장수는 이어서 태극권을 펼쳤다.
장수는 이곳 방현에 와서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다.
그 덕분에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무공에 관한 감은 여전한 상태였다.
"휴."
태극권의 마지막 자세를 펼치고 나자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드디어 다 펼쳤구나."
태극권 수련은 해도 해도 편하지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경지에 오를수록 더욱 힘이 들었던 것이다. 오히려 처음에 배웠을 때가 더 쉬웠던 거 같았다. 더구나 그 무리 또한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은 것이 한도 끝도 없었던 것이다.
"누가 태극권을 하급 무공이라 했단 말인가?"
태극권은 잘 알려진 무공인 만큼 고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태극권으로는 고수의 경지에 오르기 힘들다고 사람들이 말을 많이 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장수 역시 태극권을 무시하고 경시하던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태극권을 알면 알수록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매력에 푹 빠진 상태였다.
"이 정도라면 흑룡권보다 한수 위다."
천하에서 가장 파괴적인 권법으로 유명한 흑룡권이었다. 그런데 장수가 그 흑룡권보다 한수 위라고 말한 것이다. 그 정도라면 엄청난 것이었다.
무공을 배운 사람들은 대부분 육한권과 삼재검법, 그리고 태극권은 기본적으로 알고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상승무공인 태극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고수가 되지 못했으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정말 열심히 연습해야겠구나."
혈교에서 어떤 녀석이 올지 몰랐다. 그리고 이번 상행에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몰랐다. 하지만 태극권과 칠선장만 있다면 어떤 위험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태극권을 펼쳤다.
어차피 내일의 상행 때문에 오늘은 쉴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랬기에 아깝게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수련을 하는 게 더 나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련을 하자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
"드디어 오늘이 왔구나."
오늘은 상행을 하는 날이다. 이제 어떻게 되었던 혈교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밖에서 누구가가 문을 두들겼다.
"소장주님!"
"무슨 일이십니까?"
"단주님이 오시라고 합니다."
하인이 말에 장수는 천천히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