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편 - 두 번째 상행
오십여 명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뛰어 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하인들이었다. 오늘 상행을 출발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삼십여 대의 마차를 오가며 분주하게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방현의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최근에는 산적들이 대규모로 나타났기에 근래에 없는 상행이라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장수는 하인들의 모습을 관심 있게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충 그들이 무엇 때문에 뛰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발전했구나.'
장수는 스스로 감탄을 했다. 전생의 장수라면 이런 일은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혈교에서 준비해준 것을 가지고 갈뿐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관심도 없었고, 사람관리도 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의 장수는 하인들이 왜 분주하게 다녔으며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았고 무엇이 부족한지도 알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마차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상단은 방현 근처에서 주로 나는 것들과 공방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주로 실었던 것이다. 제품은 비싼 귀금속도 있었고, 농기구도 있었으며, 이곳에서 나는 희귀한 금속도 있었다.
이것을 중앙으로 가져가 팔고 다시 농산물을 사들인 다음에 동부로 가서 팔고 광산에서 광석을 정제한 금속을 사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큰돈을 벌 것이다.
"오셨습니까? 소장주님."
일꾼들과 하인들을 지휘하던 단주는 쉬지 않고 일을 시키다가 장수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예, 단주님. 바쁘시네요."
"예, 항상 그렇죠.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상단을 이끈다는 것은 매우 주의력을 요하는 일이거든요."
단주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단주가 이십여 일 동안 얼마나 힘들게 일을 했는지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단주의 재능은 정말 신이 내린 것이었다. 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래,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예."
장수가 준비할 것은 자신의 몸 하나였다. 하지만 그에 반해 단주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상단 전체였기에 매우 바빴던 것이다.
"그럼 제 일을 배우십시오. 소장주님도 아셔야 하는 게, 앞으로는 소장주님이 직접 챙기셔야 하는 일입니다. 제가 언제까지고 해드릴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원래는 장수의 일이었다. 단주는 대리인이고 고용인일 뿐이었다.
"자, 어서 지시를 내리십시오."
"예."
단주는 말과 함께 다시 일꾼들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장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적응이 되지 않는구나.'
아직까지 상단을 운영하는 것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무사 오십 명을 인솔해서 중소문파를 습격하는 게 편했지 상단을 꾸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상단을 운영해야 은자를 벌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단주에게 배운 것을 되새기며 마차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내자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한 무리가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오다가 장수를 보고 인사를 했다.
"소장주님 계셨습니까?"
그들은 석가장의 고용무사들이였다.
"예. 오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앞에 나선 자는 무사장이었다. 무사장이었기에 무사들보다 나은 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수가 봤을 때는 오십보백보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부하들에게 인망이 높았기에 통솔력은 있는 듯했다.
무사들은 따로 준비를 할 것이 없었고 자신의 무기만 챙기면 되었기에 출발 시간이 되기 직전에 나온 것이다. 그나마 석가장의 무사였기에 빨리 나온 것이다.
무사들은 등에 행낭을 메고 있었다. 여행을 하며 노숙 때 덮을 짐이나 갈아입을 옷이나 간식거리였다. 무거운 것은 마차에 실었지만 개인용품은 개인이 짊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열다섯 명이었는데, 상단을 호위한다기보다는 석가장의 장수를 호위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실제로 그들은 장수의 근처에 섰던 것이다.
더구나 고수는 아니지만 상당히 실력이 있는 자들을 석가장에서 골랐는지 제법 근육도 붙었고 날카로운 기도를 가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고수가 아니었기에 장수는 그들이 전력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혈교와 싸울 때 이들에게 조심하라고 해야겠구나.'
이들은 석가장의 재산이었다. 표국에서 데려오는 무사들은 계약직이라 상단이 성공해서 계약이 끝나면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석가장의 무사들을 잃으면 그만큼 손실이었다. 더구나 고수수준이 아닌 이상 혈교와의 대전에서 쓸모가 없었기에 장수로서는 이들을 죽이기 싫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의 이면에는 장수의 자신감도 한몫을 했다. 그의 실력은 계속해서 상승 중이었다. 고수 두 명을 이겼고, 절정고수도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 더구나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다시 싸운다면 필승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는 동안 어딘가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주님! 여기 계셨습니까?"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왔다. 그랬기에 장수는 그곳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큰 깃발을 들고 오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아 저들은……!"
그들은 철마표국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삼십여 명이었는데, 앞에는 상당한 기세를 풍기는 두 명의 표두 복장을 한자가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낯이 익었는데 전에 표행을 같이 한 욱현이었다. 이미 예전에 봤던 그들의 모습에 장수로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셨습니까?"
"예. 소장주님.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두 달 만이었다. 그랬기에 오랜만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말도 마십시오. 산적들이 미쳤는지 여기저기서 난리라서 상행을 떠나는 상단이 줄었습니다. 더구나 상단을 떠나도 워낙 대형 표국에만 의뢰를 맡기니 저희 같은 중소 표국은 파리만 날리는 실정입니다."
"그렇습니까?"
"예. 더구나 갑자기 산적들이 고수들을 뽑아내는 법을 알아냈는지 고수들이 많이 등장해서 표국에서 그들을 상대하는 것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고수들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역시 혈교와 관련이 있구나.'
고수는 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고수정도 되는 자가 산적질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고수라면 어떤 것을 하더라도 대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천하에 비해 고수의 숫자가 너무 적은 것이다.
그런데 한 개 산채에 채주 외에 고수가 있다면 그것은 크게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산적들의 배경이 되어 산적들을 지원하지 않는 이상 산적들이 자체적으로 고수들을 보유하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그랬군요."
"예 저희뿐만 아니라 표국들이 전반적으로 상황이 안 좋습니다. 상단의 일이 없으니 일거리도 떨어졌고 막상 생긴다고 해도 여러 군데의 표국과 계약을 맺기 때문에 계약 자체가 터무니없이 적은 돈으로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불황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는 응해야 하지요."
여기까지 말한 욱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규모가 큰 상행은 산적들이 건드리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전멸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규모가 크면 아무래도 산적들도 부담이 가겠지요."
욱현의 말에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많은 사람을 죽이면 군대가 나설 것이기 때문에 자제를 하는 거구나.'
혈교가 군대를 무서워 할리가 없었다. 서장에 하나의 왕국을 건설하고 중원 전체에 싸움을 거는 녀석들인데 겨우 호북성에 위치한 군대 따위를 무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면 그들의 행사에 많은 방해를 받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를 정해 놓은 거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예. 하지만 그 정도의 상단의 물자로는 모든 물자를 감당하기 힘들지요. 그래서 물자 값이 예전에 비해 엄청나다 할 정도로 올랐습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갑작스러운 축하인사에 장수는 어리둥절했다.
"예?"
"소장주님이 직접 표물을 운반한다면 상행은 성공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야말로 은자로 헤엄을 칠정도로 많은 돈을 버실 테니 축하를 드리는 겁니다."
욱현의 말에 장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제가 무슨 실력이 있겠습니까?"
"아니! 소장주님이 실력이 없으면 천하에 누가 실력이 있겠습니까? 전에 본 소장주님의 실력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
"어쨌든 이번에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들도 소장주님이 있으니 든든하네요."
욱현의 말에 장수는 어안이 벙벙했다. 보호를 받기 위해 철마표국을 불렀는데 오히려 장수의 보호를 받고 싶어 하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수는 표두에게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도 철마표국을 믿겠습니다."
"걱정 하지 마십시오. 잔챙이들은 저희가 다 처리하겠습니다. 소장주님은 강한 녀석만 처리해 주십시오."
욱현은 장수가 얼마나 강한지 몰랐다. 그가 상대한 자는 채주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 그가 상대하지 않은 세 명의 무위는 채주를 월등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욱현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수의 정확한 실력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막연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자신보다 약간 강하다고 생각했지, 설마 절정고수를 이길 정도라는 것은 파악을 하지 못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 내 정신 좀 봐! 제가 표두 한 명을 더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말과 함께 욱현은 자신과 같은 옷차림을 한 자를 장수 앞으로 끌어당겼다.
"인사드리게. 석가장의 소장주님이네."
젊은 표두는 장수를 향해 인사를 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 이름은 강헌성(姜憲成)이라고 합니다."
"아, 강대협이셨군요."
"하하하. 대협이라고 할 것까지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표두가 되신 것을 보니 실력이 상당하신가 봅니다."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아 된 것뿐입니다."
강헌성은 말을 하면서 장수를 유심히 살폈다.
'도저히 고수라고는 할 수 없겠는데?'
강헌성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비록 살이 빠지고 근육이 붙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도 장수의 체구는 뚱뚱했고, 행동도 조금 느린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도저히 고수다운 풍모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고수에게 있는 날카로운 기세가 장수에게는 없었고 그저 사람 좋은 모습만이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무인인 그가 뚱뚱한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받을 리 없었다. 어려 보이는데다가 뚱뚱하기까지 하니 석가장의 소장주가 아니라면 교분을 맺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