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편 - 두 번째 상행
철마표국은 이번 표행에 고수를 두 명이나 붙였다. 그들로서는 상당히 모험을 한 것이다. 아무리 일이 없는 표국이라고는 하지만 표행을 함부로 받지는 않는다. 만약 산적을 만나 전멸이라도 하게 되면 더욱 큰 손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표국들도 나름대로 기준이 있었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표행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이 되어준 것은 장수의 무위였다. 정확한 측정은 힘들지만 고수가 포함되었고 따로 고수를 한 명 더 부른다고 했기에 철마표국에서도 고수인 표두 두 명을 붙인 것이다. 원래라면 한 명의 표두가 붙겠지만 현재 정세가 워낙 험했기에 한 행동이었다.
"그나저나 다른 고수는 누구인가요?"
"예? 고수라니요?"
장수는 매우 바빴기에 상행을 같이 떠날 자가 누구인지도 아직 파악을 못한 상태였다. 그랬기에 반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주가 왔다.
"오셨습니까?"
"예. 단주님. 오랜만입니다."
욱현은 단주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거래처의 실질적인 고객이었다. 그랬기에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흠이 있게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물론입니다. 단주님도 풍채가 더욱 좋아지셨습니다."
"아닙니다. 그 동안 업무가 너무 가중되어서 그 많던 살이 쪼옥 빠지는 중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하는 단주의 얼굴에는 윤기가 흘렀고, 몸은 오히려 더 불어난 듯 했다. 하지만 욱현은 그것을 문제 삼을 수 없었다.
"하하하하. 그렇군요. 고생이 많으셨나 봅니다."
"원래 새로운 사업체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에휴. 더구나 이번에 상단을 운영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욱 신경을 쓰게 되었지요."
"그렇군요."
욱현은 단주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희 말고 다른 고수도 참여한다고 들었습니다."
욱현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일이었다. 고수의 존재는 상행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고수가 많으면 그만큼 습격을 받을 확률이 적었고, 전투가 벌어졌을 때 이길 승산이 높아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저번과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주의를 가져야만 했다.
"예. 상화표국(祥華鏢局)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상화표국이요?"
욱현의 인상이 구겨졌다.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표국도 근처에 있으면 사업상 경쟁자가 되었다. 그랬기에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졌지만 사업적으로 팽팽한 경쟁자가 있었던 것이다. 철마표국에 있어서 상화표국이 그랬다.
"요즘 이용하시는 표국이 상화표국이였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전에 몇 번 거래를 했지요."
이왕이면 거래가 있는 곳을 이용하는 곳이 좋다. 더구나 표국이라 해도 신의가 있고 약속을 잘 지키는 곳을 확인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행을 떠났는데 계약을 맺은 표국이 산적으로 돌변하는 경우도 간혹 가다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한 번 거래를 해보고 믿을 수 있는 상화표국에게 거래를 하자고 한 것이었다.
그때 한 곳에서 깃발을 들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오는 것이 보였다. 깃발에는 상화표국이라 적혀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니 마침 오시는군요."
표사들의 숫자는 십여 명이었다. 그리고 맨 앞에 표두로 보이는 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다가와서 단주에게 인사를 했다.
"단주님! 오랜만입니다."
"예. 역기세(力氣勢)표두님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최근에 산적들의 도발이 심하니 일부러 제가 왔습니다."
말과 함께 역기세는 어깨를 폈다. 그는 욱현을 보며 말을 했다.
"오랜만입니다. 욱현표두."
"예. 역기세표두. 오랜만이군요."
같은 호북에 있었기에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사업적으로 맞수였기에 한쪽이 거래에 성공하면 한쪽은 당연히 거래에 실패하는 법이었다. 그랬기에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역기세는 욱현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욱현도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예.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장수는 그들의 신경전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정말 재미있구나.'
장수의 무위는 절정고수였다. 눈앞에 보이는 고수인 표두들은 심하게 말하자면 장수가 손바닥을 펴는 것만으로도 제압할 수가 있었다. 그 정도로 실력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들을 고용한 것도 많은 숫자로 상대방을 위협하려는 것이었지 장수가 나서면 웬만한 자들은 모두 이길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절정고수인 자신의 앞에서 신경전을 벌이는 고수들을 보자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장수는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는 동안 준비는 대충 끝이 난 것 같았다.
장수는 천천히 무사들을 살펴보았다.
석가장의 무사들이 열다섯 명이었고, 철마표국의 무사들이 이십 명에 고수인 표두가 두 명이었다. 그리고 상화표국의 무사들이 열두 명에 고수인 표두가 한 명이었다. 무사만 무려 오십 여명이었고, 고수가 세 명이었다.
'이정도면 할 만하구나.'
자신이 절정고수를 맡고 그 사이에 이들이 산적들을 상대한다면 웬만하면 지지는 않을 것만 같았다. 설마 상단을 공격하는데 초절정고수가 올리는 없었다. 초절정고수가 상단을 습격한다는 것은 그들의 급에 맞지 않는 일이였기 때문이었다.
'와봐야 절정고수겠지.'
혈교 내부에서 생활을 했던 장수였기에 그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었다. 여러 번 물리치다 보면 초절정고수들도 나타날 것이 뻔했다.
'초절정고수가 나타나기 전에 실력을 키워야 한다.'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다. 더구나 혈교의 고수들은 힘에만 의존하거나 사이한 술법만을 사용한다. 그러니 비슷한 실력이거나 어느 정도 자신보다 강하다 할지라도 새롭게 얻은 깨달음으로 승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신보다 강한 자와 싸워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동안의 깨달음을 손끝으로 쏟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기다려라! 혈교의 멍청이들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표두들은 배치를 어떻게 하는지를 의논하고 있었다.
"뒤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역기세의 말에 욱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앞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럼 단주님. 석가장의 무사들로 가운데를 지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상단의 규모는 백여 명이 넘었다. 무사들의 숫자를 빼도 하인들과 일꾼들 수만 해도 오십 명이 넘는 큰 규모의 상행이었다. 그랬기에 앞과 뒤를 분리해서 대열을 짜야 했던 것이다.
철마표국의 기수는 맨 앞에 자리를 잡았고, 상화표국의 기수는 맨 뒤로 가서 기를 들어 올렸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표두들은 단주에게 다가왔다. 명령을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출발할까요?"
의뢰주는 단주였다. 그리고 책임을 지고 모든 것을 관리하는 사람도 단주였다. 그랬기에 표두들이 단주에게 온 것이다.
그러자 단주는 장수를 바라보았다.
"소장주님.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소장주의 말에 장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단주에게 여러 번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그랬기에 상단이 돌아가는 것은 자세하다 할 정도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수는 마음속으로 준비상황을 다시 한 번 살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된 듯 하자 단주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 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장수가 말을 하자 표두들은 급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상행이 시작된 것이다.
"출발!"
표두들의 큰 목소리가 하나가 된 듯 울렸다. 그와 함께 하인들과 무사들이 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수십 대의 마차가 따르기 시작했다.
* * *
이번이 두 번째 상행이었다. 저번에는 무한에서 방현으로 가는 것이었지만 이번 상행은 규모가 더욱 큰 것이었다. 호북 전체를 도는 거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호북은 동쪽과 서쪽으로 광물이 많았으며, 중앙에는 곡식이 풍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운반만 해도 큰 이득을 낼 수 있었다.
상당히 먼 거리이기 때문에 무사들은 힘을 비축하며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두에 서서 정찰을 하는 무사들은 매우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 근래에 들리는 흉흉한 소문 때문이었다. 산적들은 전에는 그래도 대규모 상행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대규모 상행도 건드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는 동안 마차에서 단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정말 소장주님이 몰라보게 달라지셨구나.'
자신이 소장주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소장주의 외향은 너무 순진해서 장사를 한다고 해도 남에게 손해만 볼 얼굴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행동은 너무나도 굼떠서 보고 있는 자신의 속이 타들어 갔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보는 소장주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거기다 어느새 익힌 무공실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단주는 생각을 하면서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장수가 이상한 자세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대체 뭘 하시는 것일까?'
정말 웃기는 일이었다. 걸어가면서 공연을 하다니. 손을 이리저리 흔들고 발로 기이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단주의 눈에는 공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저 자세는 태극권인 것 같은데…….'
단주가 무공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대중적인 태극권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저 자세가 태극권이라는 정도는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태극권은 처음이었다. 더구나 걸어가면서 태극권을 하다니 위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두 눈으로 장수의 무공실력을 똑똑히 본 뒤였다. 그랬기에 수련을 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었다.
'무공은 저 정도면 되었으니, 상업에 매달려 주셨으면 좋겠는데….'
무인은 돈을 주고 사면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고수를 3명이나 고용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위기시기에 고수를 고용하는 값은 매우 비쌌지만 안전을 위해서 고용을 한 것이다.
단주는 무인은 은자를 주고 고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쉬지 않고 수련을 하는 장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힘들지는 않을까?'
이상한 자세로 움직였기에 힘이 매우 들어 보였다. 더구나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기에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마차에 타라고 권유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마다 장수가 거절을 했기에 단주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단주는 마차 안에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그랬기에 잠시도 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소장주를 걱정하느라 본신의 일을 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단주는 소장주를 생각하면 자신의 일에 집중이 안 되었기에 지금은 포기하고 업무에 몰두했다.
장수는 움직이면서도 잠시도 쉬지 않았다.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