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편 - 두 번째 상행
'지금도 부족해.'
장수는 한걸음을 옮기는 것도 수련이라 생각을 했다. 그랬기에 이동 중에 잠시도 쉬지 않고 수련을 했다. 더구나 한창 태극권에 물이 오른 상태였다. 그랬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걸으면서도 수련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수련을 하는데 그 주위를 십여 명의 무사들이 둘러쌌다. 다른 사람들이 최대한 그들의 소장주를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야를 가린 것이다.
소장주는 석가장의 희망이었고 자랑이었다. 그랬기에 이상한 모습을 타인이라 할 수 있는 표국의 무사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위치가 교묘했기에 장수는 그런 것을 몰랐고 신경을 쓸 시간도 없었다. 장수에게는 해야 하는 수련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수련에 집중하는 동안 시간이 되었다.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삐!"
피리소리와 함께 상단의 무사들과 하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휴. 드디어 쉬는 시간이구나."
쉬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이었다. 쉬지 않으면 장거리 상행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편하게 두 다리를 뻗은 무사들과 달리 하인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루에 세끼의 식사를 해야 한다. 만약 가까운 곳에 도시가 있다면 그곳에 들러서 식사를 해결하겠지만 가는 길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랬기에 세끼 식사시간이 되면 하인들은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다.
무사들은 천천히 건량을 꺼냈다. 그리고 건량을 입에 문 뒤에 물을 조금 들이켰다. 그리고 부풀어 올라서 씹기 편하게 되면 씹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하인들이 간단한 죽을 끊일 준비를 했다. 긴 시간 동안 움직여야 했기에 뜨거운 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시간 장수는 쉬지 않고 수련에 열중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도 수련을 해야 했다. 언제 혈교의 무사가 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는 동안 익숙한 게 보였다.
"음?"
장수는 급하게 그곳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솥을 준비하는 하인들이 보였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소장주님! 금방 음식을 만들 테니 기다려 주십시오."
소장주는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따로 먹을 만한 식사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먹을 것은 제가 챙겨야지요. 그런데 무슨 음식을 만들려고 하십니까?"
"멀건 죽입니다. 그냥 밀가루를 넣고 끊이는 건데 기운을 보하기 위해 무사님들과 하인들에게 줘야 합니다."
"그렇습니까?"
장거리 상행을 하면서 영양보충은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더구나 언제 산적들이 공격할지 몰랐다. 그랬기에 먹는 문제만큼은 신경을 쓴 것이다.
장수는 솥을 보자 손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요리는 누가 만드는 겁니까?"
장수의 말에 하인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식이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거지요. 오늘은 제가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장수는 잠시 생각을 해봤다.
'내가 만들어 볼까?'
상행 중에 짬짬이 식사를 만드는 것도 나쁠 거 같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요리 실력이 증가할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하루 종일 수련만 한다고 해도 좋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도 괜찮았다. 휴식 겸 요리 실력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이었다.
"그렇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장수의 말에 하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직접 만들겠습니다."
하인이 말에 장수가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제가 직접 해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양보를 해주십시오."
장수의 거듭된 부탁에 하인은 황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인에게 있어서 소장주는 까마득히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 분이 부탁을 거절할 담력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소장주님."
하인의 말에 장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재료를 넣었다. 그리고 하인에게 물었다.
"양념은 어디 있습니까?"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하인은 급하게 마차에서 조미통을 꺼냈다.
그들이 만들려고 했던 건 뜨거운 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그냥 걸어가면서 뜨거운 물이라도 마시라는 의미로 만드는 거지 양념을 해서 맛있으라고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장주의 명이었다. 그것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하인은 급하게 조미통을 꺼냈는데 그 양이 상당히 많았다. 더구나 매우 기초적인 양념뿐이라 가짓수도 겨우 다섯 개였다.
'이거 너무 부실하구나.'
양념 자체도 저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잔의 주방에서 쓰는 조미통에 비한다면 많이 부족했던 것이다.
장수는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이걸로 대충 간을 맞추고 내 걸로 맞추어야겠구나.'
장수는 생각을 정리한 다음에 솥에 국자를 넣고 한 숟가락 집어 들어 맛을 보았다.
밋밋했다. 아예 간을 안했기에 맛이 없었던 것이다.
장수는 국에 대충 간을 맞추었다. 그러자 대충 맛이 맞는 듯했다.
첫 실전이었다. 첫 실전이었는데 기가 막힌 게 나올리는 없었다. 하지만 음식을 전혀 해보지 못한 하인이 만든 것보다는 훨씬 나은 맛이 만들어 졌다.
"이정도면 된 거 같습니다."
장수로서는 만족스러웠다. 그러자 하인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졌다.
"괜찮은데?"
평판은 제법 괜찮았다.
"이거 너무 짜잖아!"
물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십여 명의 불평을 내뿜기는 했지만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장수는 자신이 만든 것을 먹고 좋아해 주자 기쁜 마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장수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한 적이 없었던 거 같았다. 그의 인생은 피로 얼룩이 져 있었다. 눈에 띠는 자를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큰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그런데 스승을 위해 배운 요리를 먹은 사람들이 만족한다는 듯이 기뻐하자 장수로서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오천여 명의 병사들이 완전무장을 한 채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맨 앞에 화려한 무장을 한 장군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젠장! 이번이 대체 몇 번째야?"
"참으십시오. 장군님."
참모인 듯한 남자는 장군을 달래기에 여념이 없었다.
"분명 이산에 산적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어. 그런데 녀석들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미 숨어 버린 거 같습니다."
대규모 군대가 움직인다는 것은 금방 소문이 돌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비밀을 유지하려고 해도 보급선을 유지해야 했고 막대한 물량이 이동했기에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군대가 나타나면 산적들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망을 쳤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중이였지만 그들의 전리품은 제법 가득했다. 어떻게 산채를 찾아 물품을 압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산적들은 이미 도망간 뒤였기에 한 명도 잡을 수는 없었다.
이 정도라면 전과를 세운 것이다. 더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지나온 뒤에 하늘로 연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산채를 불태웠기 때문이었다. 본거지를 잃은 산적들은 그 세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산적들의 시체를 가져가는 것보다 공훈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장군은 그런 점이 매우 아쉬웠던 것이다.
"화끈하게 붙어야 하는데…!"
장군이 말에 참모는 고개를 저었다.
"장군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황제폐하에게 받은 소중한 병사들입니다. 전면전으로 잃을 수는 없습니다."
“자네는 황제폐하의 용맹한 병사들을 겨우 산적들에게 잃을 거라 생각하는가?”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오라….”
“그런데 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죄,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찌 되었던 녀석들이 언제 나타날지 몰라. 그러니 이 주변을 샅샅이 뒤진다."
"알겠습니다."
* * *
불타오르는 산채를 보자 붉은 옷을 입은 남자가 인상을 썼다.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남자는 혈교의 절정고수였다. 그리고 이번 임무는 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더구나 세뇌를 당했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황실의 군대 때문에 그들의 차지한 근거지를 잃은 것이다.
"젠장! 녀석은 뭔데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인가?"
"군대도 어쩔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들 때문에 세수가 상당 부분 적어졌을 테니까요."
산적들 때문에 물류의 이동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황실에서 부담이 된 것이다.
그만큼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백성들이 큰 불만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황실에서 조사차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혈교와 부딪히는 일이었다.
“이것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붉은 옷을 입은 남자는 인상을 썼다. 복수를 하기 위한 계획을 생각한 것이다.
* * *
상단은 동쪽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양양이었다.
상단은 무려 백 명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랬기에 약소 산적들이 감히 공격해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평화로웠다.
장수는 수련을 하며 걷다가 의아함을 느꼈다. 지금쯤이면 산적들을 만나 통행료를 요구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저번 상행에서는 이때쯤에 산적을 만나 통행세를 받았다. 더구나 옆에는 산이 있었다. 이렇게 조용하다니.
그때 욱현이 장수의 옆으로 왔다.
"수련은 잘 되십니까?"
말을 하면서 욱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